45화
‘이 싸움, 해볼 만하다.’
수혁은 지난번과 달리 긴장하거나 자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들을 학교 앞에서 만나자마자 통찰의 능력을 사용해 성준과 기현의 힘을 살펴보았다.
그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성준의 힘은 18, 기현은 25였고 나머지 3명은 모두 15나 16 정도로 일반 성인정도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수혁의 힘은 최근에 1이 더 올라 34에 달한 상태였다.
“저번하곤 많이 다를 거야. 배기현이라고 했지? 앞으로 알량한 힘만 믿고 설치지 마라.”
수혁은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요즘 김종욱이랑 같이 다닌다는 소문은 들었다. 그래봤자 한 달뿐이었는데, 복싱 기초나 뗐겠냐? 하여간 운동 처음 배우는 새끼들이 제일 겁이 없다니까?”
기현은 말이 끝나자마자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수혁은 스텝을 밟으며 차분히 그를 관찰했다.
‘신기하네. 예전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지금 보니까 엄청 느리잖아?’
수혁은 그의 몸놀림을 따라가기 힘들었던 과거와 다르게 움직임이 쉽게 예측이 될 정도로 훤히 보였다. 기현은 주먹을 날리는 모션을 취하는 척하다 자세를 낮춰 수혁의 다리를 낚아채려고 했다.
‘뻔해.’
수혁은 사이드 스텝을 밟아 가뿐히 피한 후 스트레이트로 기현의 관자놀이를 정확히 가격했다.
“악!”
기현은 주먹을 얻어맞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하이킥으로 얼굴을 강타했고 그는 그대로 실신했다.
“예전에 받았던 빚이다.”
수혁은 쓰러진 기현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복부를 강하게 걷어찼다.
강한 타격음과 함께 의식을 차린 기현은 고통을 견디기 어려운지 비명을 질러댔다.
“으악, 아아악.”
그는 복부에 강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상태를 봤을 땐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 확실해 보였다.
“기현아!”
성준을 제외한 녀석들이 처참하게 쓰러진 기현을 보더니 이성을 잃고 동시에 달려들었다.
수혁은 그들을 침착하게 보며 대비를 했다.
‘비겁한 새끼들 예상은 했지만 또 다구리 놓으려고 하네?’
수혁은 남자들 중 한 명이 뒤에서 끌어안으려고 하자 뒤차기로 그의 복부에 꽂았다.
“컥......”
그는 신음을 내고 쓰러진 놈을 무시하고 앞의 둘에게 대시하여 훅과 어퍼컷을 날렸다.
“크악!”
“윽.”
수혁의 공격은 상대의 턱에 정확히 적중했고 그들은 자리에 쓰러져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이제 너 혼자 남았네? 학교에서 그런 것처럼 또 지껄여보시지.”
수혁은 싸늘한 얼굴로 성준을 노려봤다.
“오, 제법인데? 그런데 너 큰일 났다. 오늘 그냥 맞고 조용히 넘어갔으면 바로 끝날 일인데 기현이까지 이 꼴로 만들다니, 감당할 수 있겠어?”
성준은 몸이 떨릴 정도로 긴장이 됐지만, 마음을 다스리며 센 척을 했다.
“훗, 넌 개소리가 아주 입에 배었구나?”
수혁은 헛웃음을 지은 뒤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하하, 뭘 어쩌려고 나도 때리게? 마음대로 해봐 어차피 넌 어차피 무릎꿇게 돼있어. 생각 잘하고 행동해라.”
성준은 수혁의 위협적인 모습에도 끝까지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뭐, 뭘 어쩌려고......”
수혁이 어느새 코앞까지 가까이 붙자 성준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좀 맞자.”
그는 성준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으으…….”
중심을 잃은 성준은 몸을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뺨을 어루어만지며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했다.
“싸대기 한 대 맞은 거 가지고 되게 아픈 척 하네? 병신이냐?”
수혁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흐흐, 그래 지금이라도 때려, 나중에 쳐 맞을 때 후... 악!”
그는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얼굴에 펀치를 날렸다.
“개소리 하지 말라니까?”
“헉, 헉.......”
성준은 얼굴을 감싸 쥐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세게 안 때렸으니까 엄살 피지 마라. 내가 예전에 한 번만 더 헛소리 하면 입을 뭉갠다고 했는데 기억해?”
“허, 헉.......몰라.”
“기억나게 해줄까? 너 지금부터 한 번만 더 거짓말하거나 개소리하면 그 주둥이 부셔버린다.”
“…….”
성준은 계속되는 위협에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그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고 엄청난 두려움에 압도되어 입을 떼지도 못하고 있었다.
“뭐야? 지금 떠는 거야? 한심한 새끼, 한 대 더 쳤다가는 오줌까지 지리겠어? 야, 쪽팔리지도 않냐? 배종명이랑 네 딱가리들이 이 꼴을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냐?”
“…….”
“대답 안 하냐? 아 그리고, 이제 앞으로 상납금 걷는 거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내 눈에 띄면 오늘 당한 거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쳐 맞게 될 거야.”
“…….”
성준은 두려움을 넘어 수치심을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까는 아가리 잘 털던데 갑자기 입에 본드라도 붙였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수혁은 성준을 때리려는 모션을 취하며 교복 소매를 걷었다. 그 순간이었다.
“생각해 볼게.”
“생각? 병신새끼가 아직도 자존심을 세우네?”
“미안하다…….”
성준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붙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야? 맞을 거 같으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네?”
“진, 진짜야…… 앞으로 조심할게.”
“쳇, 재미없네. 그럼, 알아들은 줄 알고 이만 간다. 여기 쓰레기들 데리고 병원을 가든 네 알아서 해라.”
수혁은 걷어 올렸던 소매를 내리면서 말했다.
상황을 정리한 그는 가방과 옷을 챙기고 바로 자리를 떴다. 그리고 성준의 몸은 치욕감을 이기지 못하고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저런 거지새끼한테, 이런 꼴이라니…… 두고 보자.”
성준은 한참을 서서 힘들어하다가 쓰러진 애들을 수습했다.
한편 수혁은 다리 밑에서 올라와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낯익은 여자애가 다리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혁아.”
“어, 유리야. 여긴 뭐 하러 왔어?”
“잠깐 문구점에 가려고 밖에 나왔는데 네가 조성준이랑 어디 가는 것 보고 걱정이 되어서…….”
유리는 보통 때라면 자율학습을 위해 학교에 남아있어야 했지만 이날은, 필기도구를 사러 문방구에 들렸다가 우연히 수혁과 성준의 무리를 발견하여 뒤를 따라왔다.
“아, 조성준이 할 이야기 있다고 해서 잠깐 보고 오는 길이야.”
수혁은 자신을 걱정해서 따라온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서 많이 놀랐어, 너희가 다리 밑에 내려가는데 난 무서워서 못 따라가겠더라.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 줄 알고 난.......”
유리는 겁이 났는지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자 수혁은 조심스럽게 어깨에 손을 얹어 그녀를 진정시켰다.
“아무 일도 없었어 유리야. 그냥 가볍게 이야기한 게 다야. 흠, 내가 괜히 너한테 걱정을 끼친 것 같아서 미안하다.”
수혁은 그녀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별일 아니라니, 다행이야. 정말 괜찮은 거지? 사실 네가 학교에 없을 때 몇몇 애들이 너에 대해 험담하는 이야기가 돌아서 되게 많이 걱정했었어.”
유리는 마음이 좀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그런 시덥지 않은 소리는 신경 쓸 필요 없어. 그것보다 중간고사도 끝났는데 또 놀러 갈까?”
“그래 좋아! 시내에 떡볶이 집이 새로 생겼다는데 한 번 가보자.”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수혁은 그런 유리의 모습을 보며 성준으로 인해 생겼던 불쾌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좋아. 그전에 내가 잠깐 할 일이 있는데 그거 끝나면 바로 놀러가자.”
수혁은 일단 성준과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녀와의 만남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알았어. 편할 때 나한테 말해줘, 아, 이제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겠다. 공부할 게 많은데 시간을 너무 많이 썼어.”
“그래. 조심히 들어가. 비 올지도 모르는데 우산은 있어?”
“밤에 비 온다고 해서 아침에 챙겨왔어. 괜찮아!”
“응, 그럼 나중에 보자.”
수혁은 유리와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다음에 보면 뭐하고 놀까?’
잔뜩 낀 구름으로 인해 캄캄했던 하늘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수혁은 주황빛이 나는 가로등을 맞으며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했다.
* * *
서울 시내에 있는 어느 병원의 병실, 이곳에는 중앙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성준의 전화를 받고 기현의 병문안을 왔다.
“야, 괜찮냐? 누구랑 붙었길래 이 꼴이 된 거야?”
철민이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기현을 보며 물었다.
“아 씨, 그런 거 묻지 마,”
갈비뼈가 부러져 입원한 기현은 창피한지 제대로 말을 못 했다.
“성준아, 네가 불러서 오긴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혁수는 기현의 일로 마음이 상했는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우선, 기현이 쉬게 나가서 이야기하자.”
“그래 애들아, 와줘서 고마운데 오늘은 좀 혼자 있고 싶다. 나중에 보자.”
아이들에게 면목이 없던 기현은 성준의 말에 반색을 드러냈다.
“새끼, 뭐 때문에 저러는 거야?”
“알았어. 쉬어라.”
중앙회 사람들은 기현에게 인사를 한 뒤 성준을 따라 병원 밖에 있는 작은 쉼터로 갔다.
쉼터에는 둘러앉을 수 있는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혁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면서 입을 열었다.
“성준아, 이제 말해봐라.”
“우리 학교에 강수혁이라고 있는데, 하도 건방져서 기현이랑 손봐준 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이 녀석이 끝까지 뻣뻣하게 굴더라고 그래서 교육 좀 시키려고 오늘 불렀는데......”
성준도 덩달아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만 말해.”
혁수는 자세한 과정은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본론을 물어봤다.
“얘가 안 본 사이에 완전 다른 사람이 됐더라고. 기현이를 그냥 순식간에 눕혀버리는데 나도 놀랄 정도였어.”
“뭐? 기현이가 손 한번 못 쓰고 졌다고?”
혁수의 옆에 앉아 있던 금철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응, 믿기 힘들겠지만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어, 그리고 이 자식이 날 협박하더라고 앞으로 학교에서 얌전히 지내라고. 하, 웃기는 새끼야 진짜.”
성준은 기가 찬 지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기현이 일도 그렇고 가만히 두면 다른 애들이 중앙회를 우습게 보겠어. 강수혁이라고 했지? 가만 두면 안 되겠는데?”
한 사내가 신중하게 이야기를 듣다가 말을 꺼냈다.
“그냥 넘길 일은 아니지.”
혁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기현이가 진 걸 보면 웬만한 애들로는 힘들 것 같은데?”
성규는 내동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왜? 혁수랑 종욱이가 있잖아, 걱정할 필요 없어.”
“김종욱은 이 일에는 참여하려고 하지 않을 거야.”
누군가 종욱을 언급하자 성준은 회의적인 자세를 보였다.
“야, 아무리 김종욱이 요즘 우리랑 사이가 안 좋다지만 기현이가 다쳤는데 안 도와주겠어? 나도 그 놈이 싫지만 의리는 있는 녀석이야.”
철민은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전에 기현이 친구들이랑 강수혁이 싸운 적이 있는데, 그때 김종욱은 기현이네 애들을 때리고 쫓아냈어. 한마디로 그놈은 우리보다 강수혁을 더 친구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에이, 거짓말하지 마. 그 새끼를 얼마나 봤다고 도와주냐?”
철민은 그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나중에 네가 기현이한테 물어봐. 그리고 난 오히려 김종욱이 강수혁을 도와 우리랑 붙을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아서 걱정이야. 애들한테 들어보니까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았어.”
“김종욱 이자식 안 되겠네? 친구를 배신하고 적에게 붙다니…… 야! 상관없어. 이번 기회에 김종욱 그 새끼도 같이 처리하면 돼!”
옆에서 듣던 성규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안 돼.”
이야기를 차분히 듣던 혁수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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