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46화 (46/316)

46화

“혁수야, 아직도 모르겠어? 친구를 버리고 다른 데에 붙은 놈이야. 그리고 그 자식이 아무리 싸움을 잘해봤자 어차피 혼잔데 뭘 어쩌겠어.”

성규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강수혁의 실력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욱이까지 상대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아.”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그 새끼는 우리가 잡고 네가 김종욱을 처리해주면 되잖아.”

성규는 뭐가 문제냐는 듯 태평하게 말했다.

“너희는 모르겠지만 난 1학년 때 종욱이랑 싸운 적이 있어. 녀석이 체전에서 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한 판 붙어보고 싶었거든.”

혁수의 말에 주변은 조용해지더니 모든 사람들은 그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꽤나 긴 시간 동안 싸웠지만, 승부를 내지 못했어.”

“둘이 호각이었다고? 종욱이가 그렇게 강했어?”“말도 안 돼.”

몇 몇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그래, 비록 종욱이가 먼저 그만두자고 했지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건 아니었어.”

“센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였어?”

혁수는 그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중앙회 멤버들은 혁수가 나머지 멤버들과 붙어도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혁수가 종욱과 호각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종욱이를 자극해서 이 일에 끌어들인다고 우리에게 좋을 건 없어.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혁수는 멤버들 사이에서 흐르는 어색한 기류를 깨고 말했다.

“아니, 왜 네가 직접 나서려고 해? 차라리 나나 다른 애들 시켜.”

철민은 그를 말리려고 했다.

“기현이가 그렇게 쉽게 진 거라면 너희들로는 힘들 거 같아서 그래. 군말 말고 그렇게 하자. 성준아 네가 강수혁한테 말해서 약속 잡아라.”

“나한테 맡겨.”

“성준아, 내 성격 알지? 되도록이면 지저분한 상황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혁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준에게 넌지시 말했다.

그는 누군가와 승부를 겨룰 때는 정정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걱정마.”

성준은 그의 성격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기에 순순히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다들 수고해라.”

혁수는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도 잠시 후 해산했다. 성준은 애들을 보내고 홀로 남았다.

그는 혁수가 직접 나서기로 결정되자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기현이가 당했지만, 이번에는 어려울 거다. 기필코 녀석의 콧대를 꺾어야겠어. 건방진 자식,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

그는 홀로 남아 담배를 태우며 수혁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잠겼다.

* * *

한편 수혁은 집에 가던 중 비가 추적추적 내리자 방향을 선회하여 칸타빌레에 갔다.

어차피 집에서는 딱히 할 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서점에 가서 우산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서점에 도착한 그는 비에 젖은 교복을 잠시 옷걸이에 걸어둔 뒤 사무실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후. 조금 쉬었다가 가자. 훈련은 글렀고 뭘 하면 좋을까?’

그는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수혁은 발신인을 확인하고 곧 전화를 받았다.

“네, 교수님 전화하셨어요.”

전화를 건 사람은 우진이었다.

“잘 지냈어? 공 원장한테 들었는데 바둑 실력이 일취월장 했다면서? 그 친구가 자네보고 천재라고 극찬을 하더군.”

“아닙니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 뭐 그거 때문에 연락한 것은 아니고, 저번 달에 자네가 번역해준 충의록을 협회에 소개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네. 요즘 자네 좀 소개시켜달라고 아우성 되는 사람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어.”

“반응이 좋았다니 다행입니다. 다른 것도 번역이 완료되면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사실 그것보다 더 좋은 소식이 있다네.”

우진은 뭔가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자네가 처음에 번역한 책 있지 않은가? 그 책을 다른 몇몇 학회에도 소개를 했는데 반응이 엄청났어. 심지어 책 내용을 공유해달라는 요청도 벌써 두 군데에서 들어왔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니까? 그래서 내가 차라리 이 책을 출판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협회에 제안을 했네. 마침 우리 협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출판사가 잘 알고 있었거든. 자네는 어떤가? 아무래도 일을 진행하려면 의견을 들어봐야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제 익명성만 보장된다면 상관없습니다.”

출판을 하게 되면 추가적인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자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사실, 출판사에게 미리 책을 줘봤는데 그것을 검토하더니 번역본으로는 이례적으로 계약금 천만 원을 제시하더군. 독점출판이 조건을 달렸긴 했지만 자네가 손해 보는 건 없을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되네.”

“그렇습니까?”

‘생각보다 짭짤하잖아, 이런 식으로 고서들을 출판해서 사업자금을 모아야겠어.’

수혁은 금액을 듣고 적지 않게 놀랐지만, 겉으로는 차분한 자세를 유지했다.

“이번에 번역한 고서는 많은 부수는 아니지만 전 세계로 출간될 거야. 철학책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아 큰돈을 벌기는 힘드나, 우리 같은 학자들이나 인문학도들은 제법 많이 사 읽을 걸세.”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알아서 잘 진행해 주십쇼.”

“그렇게 하지, 책 제목은 뭘 로 하면 좋을까? 고서에 따로 제목이 달려있지 않아서 고민이야.”

수혁은 우진의 말을 듣고 생각을 하다가 잠시 뒤 대답을 했다.

“흠, 잊혀진 소피스트의 학문과 사상. 이 제목이면 내용을 표현하기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허허 좋은 제목이구먼, 알겠네. 내 그러면 일을 진행하지, 계약금과 인세와 관련된 부분은 들어오면 바로바로 자네 통장에 넣어줄 테니까 걱정 마시게.”

“알겠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수혁은 그 후 우진과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통화를 마쳤다.

‘출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이렇게 빨리 일이 진행될 줄은 몰랐다.’

뜻밖의 행운이라고 느꼈기 때문일까, 수혁은 통화 후 기분이 좋아졌다. 지식인협회에 들어가서 생긴 정기적인 수입 외에도 추가적으로 인세가 들어오면 그의 재정 상황은 더욱 좋아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 빚이 얼마였지? 꾸준히 모으면 갚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 물어볼까?’

원체 빚에 관한 부분은 수혁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기에 그는 지난 생에도 그 부분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아니야 자식한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하시는 점을 고려해볼 때, 분명 심하게 반대하실 거야. 차라리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면 그때 갚아드려야겠어.’

그는 능력을 확실히 갖춘 후 부모의 빚을 갚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후 수혁은 칸타빌레에서 앞으로 들어올 돈들에 대해 즐거운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 * *

‘후, 조금 지루하군.’

며칠 동안 평화로운 나날은 계속되었다. 성준은 싸움이 있은 후 따로 시비를 걸거나 건드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다. 수혁은 그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가면 훈련을 하거나 서점에서 번역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이삿날이 왔구나.’

어느새 시간은 흘러 11월에 접어들었고 수혁은 이사하는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새로 갈 집은 평범한 빌라여서 큰 집은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 낡은 집을 벗어나지 못했던 부모를 떠올리면 새로 살게 될 집으로 빨리 가고 싶었다.

‘바로 가볼까?’

수혁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빌라로 향했다.

이사 간 곳은 시내와 새로 개발된 단지 사이에 위치하여 통학거리도 예전에 비해 훨씬 짧아졌다.

‘여기구나.’

큰길에서 약간 들어가 빌라 단지에 들어온 수혁은 자신이 살 집을 발견했다.

주황색 벽돌로 산뜻한 느낌을 주는 빌라는 3층짜리 건물로 다른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빌라 주변이 부산스럽지 않은 것을 보니 이사는 이미 완료된 것 같았다.

“저 왔어요.”

수혁은 새집으로 들어왔다. 문은 이사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열려있었다.

“오, 수혁아 들어와라.”

선웅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방에는 이전에 썼던 책상과 서랍 등이 있었고 거실은 가구가 별로 없어서인지 조금은 횡 해보였다.

“가서 네 방 한 번 확인해봐라. 그리고 바로 나갈 거니까 준비해라.”

“네? 청소도 좀 하고 그래야 하지 않아요?”

“이사 왔으니까 집들이 해야지, 근처에 삼겹살집 있던데 거기 가서 식사할 거다. 엄마도 여기 오는 중이니까 얼른 준비하고 나가자. 청소는 나중에 하자고.”

“네, 알겠어요.”

혜정은 얼마 안가 집에 도착했고 그들은 음식점에가 새로운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미묘한 변화였지만 이전 삶에 비해서 가족 분위기는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하, 좋다.”

수혁은 자신의 방에서 이불을 깔고 누웠다.

비록 크지 않은 방이었지만 곰팡이가 핀 벽지와 벽에 균열이 보이지 않는 깔끔한 공간이었다.

‘훈련은 앞으로 어쩌지?’

새집에 오게 되면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단점도 있었다. 빌라 주변에는 마당이 없다 보니 이전처럼 훈련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사하면서 부모님이 흰진교도 그냥 버리신 것 같아. 산 넘어 산이군.’

수혁은 괜찮은 훈련 방법을 고안해야 냈다.

최근에 통찰력 퀘스트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힘에 관한 퀘스트를 클릭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저 쉬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수혁은 지금까지 쌓였던 피로를 풀기라도 하듯 이불속으로 들어가 주말은 내내 휴식을 취했다.

* * *

월요일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반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수혁은 경현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독서를 하고 있었다.

“저, 그 수혁아. 밖에 성준이가 잠시만 나오라는데?”

책을 읽고 있는 수혁에게 말을 건 사람은 종명이었다.

그의 말투는 보통 때와 달리 약간의 상냥함이 느껴졌다.

‘이 새끼가 왜 이러지?’

수혁은 의아했지만, 알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2반 바로 앞 복도에는 성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평소엔 오라 가라 하더니, 네가 여기까진 웬일이냐?”

“할 말이 있으니까 따라와라.”

수혁은 반 앞에 성준이 있으면 다른 학생들이 위화감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순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말없이 1층까지 내려간 성준은 교문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 2개를 뽑아서 하나를 수혁에게 주었다.

“뭐냐?”

낯선 성준의 행동에 수혁은 적응이 되지 않아 물었다.

“쳇, 나도 사람 대할 줄은 아는 사람이야. 마셔, 마시면서 이야기하자고.”

“용건이나 말해.”

성준은 대답을 하지 않고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 4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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