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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51화 (51/316)

51화

처음에는 각 반에서 한두 명씩 지명되어 상담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종명과 승원 그리고 나머지 무리들이 모두 불려 나갔다.

다른 학생들은 20분 남짓 조사가 진행된 것과 달리 그들은 1시간이 넘게 조사를 받고 나서 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끝났어.......”

종명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며 반으로 돌아왔다.

그들에 대한 조사가 끝나자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하여 우후죽순으로 다른 아이들도 조사를 받으러 가기 시작했다.

“하. 이거,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는걸?”

조사를 총괄하는 형석은 종명과 다른 아이들에게 입수한 상납금 관련 명단을 훑어보며 한숨을 쉬었다.

* * *

상담실 안, 수혁은 멍하니 책상에 앉아 있었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과 달리 상담실은 조용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그는 밥을 먹으러 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수혁아, 출출하지. 밖에 나가서 같이 밥 먹자.”

점심때가 되자 담임은 상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수혁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가자 담임은 진중한 태도로 이야기를 꺼냈다.

“수혁아, 대충 들었다. 성준이랑 싸웠다면서.”

“네.”

수혁은 차분히 대답했다.

“네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걸 먹고 나랑 같이 성준이 병문안을 가야할 것 같다. 조사 중이라 나중에 가자고 건의를 해봤지만, 성준이 아버지께서 워낙 강하게 말하셔서.”

“상관없습니다. 가시죠.”

“알겠다. 자 차에 타라.”

담임은 수혁을 데리고 성준이 입원한 병원에 갔다.

병원은 동네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이었는데 그는 특실에 입원한 상태였다.

담임은 특실의 문을 노크했다.

“누구요?”

안에서 한 장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저는 수혁이 담임입니다. 수혁이랑 같이 병문안을 왔습니다.”

“들어오시오.”

다소 고압적인 남자의 목소리는 그의 기분이 어떤지 좋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혁은 담임과 안에 들어갔다. 성준은 복부와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고 조일오는 어떤 남성과 함께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담임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말을 먼저 꺼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반 학생의 일로 아드님이 크게 다쳐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담임이라는 사람이 학생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요?”

일오는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담임에게 훈계하듯이 말했다.

수혁은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담임 옆에 서 있었다.

“네가 강수혁이냐? 아주 깡패새끼가 따로 없구나.”

“네.”

“네? 잘못했다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일오는 손을 날려 수혁의 뺨을 때렸다.

수혁은 피할 수 있었으나 굳이 피하지 않고 맞아주었다.

“내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들어보니까 집도 가난해서 합의금도 받을 수 없을 거 같은데, 너 같은 놈은 형사 처벌해서 소년원을 보내든 콩밥을 먹이든 해야 해!”

일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저 아버님 흥분하지 마십쇼. 아이들끼리 일이지 않습니까. 수혁아 어서 잘못했다고 해라.”

담임은 일오를 진정시키며 수혁에게 사과를 권했다. 그러나 그는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묵묵 답답이었다.

“저놈, 저거 봐. 잘못한 기색은 하나도 없네. 박서장, 이 친구 이거 안 되겠어. 서에 연락해서 입건시키고 콩밥 먹일 수 있는지 좀 알아봐 주게.”

일오의 뒤에 있던 남자는 그의 지역구에서 서장을 하면서 잡다한 일을 처리해주는 수족과 같은 자였다.

“네, 의원님. 이 친구 이거, 폭행죄, 상해죄 등 적용할 죄는 넘칩니다. 걱정 마십쇼.”

“폭행죄, 상해죄?”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한 노인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수혁은 누군지 확인하려고 옆을 보니 그는 다름아닌 정평우였다.

“할아버지.”

“수혁아, 늦어서 미안하구나. 이야기는 잠시 뒤에 하자. 이 봐, 자네는 뭔데 내 손주를 겁박하는가?”

“저는 이쪽 관할 경찰서장입니다. 그리고 겁박이 아니라 손자분의 위법행위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누구신데 이 일에 끼어드는 겁니까?”

“잠깐, 가만히 있어 보게.”

서장은 법에 관해 아는 체를 하며 평우를 약간 하대하듯이 대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일오는 얼굴이 완전히 굳어져 있었다. 그는 서장을 제지하고 평우에게 인사를 했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박서장이 잘 몰라서 결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 강현재 대표님과 인사드리러 간 적 있는데 기억하시겠습니까?”

“그래. 자네 강 대표와 함께 날 찾아온 적이 있지? 그때 분명 선한 정치, 정의로운 정치를 한다고 했는데 자식 교육은 완전히 엉망으로 시켰더군, 쯧쯧.”

평우는 혀를 차며 말을 이어나갔다.

“방금 아는 변호사와 통화했네. 지금 학교에서 자네 아들에 대한 진상 조사가 벌어지고 있어. 우리 손자가 폭행죄, 상해죄라고 했나?”

“…….”

조일오와 박서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네 아들은 지금 납치 및 감금죄, 특수폭행, 문서유출교사죄, 폭행교사, 금품 갈취를 위한 공갈죄 등 지금 해당하는 죄목들 수가 엄청나다고 하네. 낯짝도 두껍구먼. 그리고 내 손자도 자네 아들한테 폭행당한 피해자야”

“네?”

일오는 자신이 듣지 못했던 일을 듣자 당황해했다.

“자네 아들이 일행들과 수혁이를 집단 폭행한 CCTV 영상을 운 좋게 확보했어. 그 동네에 CCTV가 별로 없는데 멍청하게도 학교 앞에서 일을 벌인 덕분에 구할 수 있었네.”

일오는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나야말로 자네 아들을 형사입건해서 감방에 보내려고 했으나 강대표가 나에게 대신 사과하며 이 일을 묵과해주기를 애원하더군. 자네 아들 일은 학교 선에서 끝날 걸세.”

강현재 대표는 일오가 속해 있는 정당의 대표로 평우와는 오래된 사이였다.

그는 이 일이 매스컴에 알려지면 당 이미지에 큰 훼손당할 것을 우려하여 평우에게 사정을 하였던 것이다.

“기다려보게.”

평우는 대충 할 말을 다 했다고 판단되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전화를 일오에게 넘겨주었다.

“누구?”

일오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누구긴 누구야, 강대표지. 받아봐.”

“네, 전화 받았습니다.”

일오는 공손한 태도로 전화를 받았다.

“조의원, 날세.”

“네 대표님”

“아들이 일을 크게 벌였더군. 그리고 관할 서장을 부하처럼 부리며 권력을 남용한 것도 내 알게 되었네.”

“해명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쇼.”

일오는 다급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해명은 무슨 해명인가. 어제 어르신께서 자네에 대한 일들을 소상히 말해주셨어. 길게 말 않겠네. 당에서 스스로 탈당하고 사퇴하시게, 사유는 일신상의 이유든 뭐든 자네가 알아서 만들게.”

“대표님. 죄송합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십쇼.”

“해당 행위를 한 자가 뭘 그리 변명이 긴가. 전화 끊겠네. 만약 내 말을 무시하면 당론을 모아 제명을 하지. 명예를 지키는 길이 뭔지 잘 고민해보게.”

“제가 비록 대표님 정도는 아니지만, 명색이 국회의원인데 이렇게 쉽게 절 버리실 수 있으십니까?”

“이 사람 이거 안 되겠구먼. 국회의원에서 제명당해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더 이상 할 말 없으니까 네 마음대로 해.”

현재는 할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국회의원은 국회의 투표를 통해 제명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마냥 허풍은 아니었다.

‘큰일이다.......’

몸을 떨며 패닉 상태에 빠진 일오는 갑자기 평우에게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어르신. 절 좀 도와주십쇼, 제발 살려주십쇼. 성준아 뭐하느냐? 너도 어서 어르신과 친구에게 사과하지 않고?”

이 상황을 지켜보던 담임과 수혁 그리고 성준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망했다, 어떻게든 용서를 빌어야 돼.’

사태를 파악한 성준은 아픈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그리고 수혁아 정말 미안하다. 내가 죽일 놈이다. 살려줘라.”

“.......”

그 모습을 본 수혁은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평우가 대신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강 대표 부탁으로 자네 아들은 이미 큰 편의를 본 거나 다름없어. 스스로 처신 잘하게. 법적 싸움으로 번져봤자 좋을 것 없으니까. 알아들었으면 이만 가겠네.”

“어르신!”

일오는 손을 붙잡고 다시 사정했다. 그러나 평우는 손을 냉정하게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

“아들 교육 똑바로 시키고,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게. 자네는 정치할 그릇이 아니야.”

“살려 주십쇼, 어르신!”

“잘못했습니다.”

평우는 애원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수혁과 담임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손자 데리고 어딜 좀 가도 되겠소?”

“아, 네 학교에는 제가 잘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는 담임과 짧게 이야기를 한 뒤 근처 카페에 갔다.

수혁은 카페에 가 음료를 시킨 뒤 평우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수혁은 이제까지 수많은 도움을 받아 항상 고마운 마음이 있었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더욱 특별한 감정이 들었다.

“오늘은 여기서 좀 쉬었다 학교로 돌아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거라. 힘들었지? 마음 잘 다독이고 푹 쉬어라.”

평우는 공치사를 하지 않고 그저 수혁의 안위만 살필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세요?”

수혁은 보면 볼수록 평우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유명한 사람들을 두루 알고 있는 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누구긴 누구야, 고서 수집하는 평범한 노인이지.”

“할아버지, 좀 말씀해주세요. 저도 솔직하게 제이야기를 다 말씀드렸잖아요.”

수혁은 보통 때와 다르게 거듭 물어보았다.

“허허, 그래 알겠다. 뭐 별것도 아니니 이야기하마.”

평우는 자신의 배경에 대해 수혁에게 설명해주었다.

그의 다양한 인맥은 자신의 집안과 연관되어 있었다.

평우의 가문은 대대로 선비 집안으로 관직에 몸담은 사람이 적지 않았고 특히 고서를 모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다 보니 옛 부터 유명인사와 교류가 끊이지 않았다.

그 가풍은 일제시대를 지나 해방 이후까지 이어져 정재계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들 중 평우의 집안과 연결된 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뭐, 집안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고 내 아들 덕도 크지. 녀석이 제법 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거든, 거기서 파생된 인맥도 상당해.”

“그렇군요. 정말 대단하네요.”

설명을 들은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우리 가문의 일을 맡게 되면 그 인맥이 고스란히 다 네 것이 될 거니까 부러워할 것 없어. 그건 그렇고 이제 좀 가서 쉬어야 하지 않겠니?”

“네 할아버지, 집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들은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다. 그리고 수혁은 바로 집으로 들어가 푹 쉬었다.

학교 일로 복잡했던 마음은 이미 다 정리가 된 상태였다.

‘할아버지 덕분에 일이 잘 풀릴 거 같아.’

수혁은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수혁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조사를 받았다.

“학생,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이미 자네한테 유리한 증언과 증거를 충분히 수집해놨어.”

조사를 총괄하는 형석은 형식적인 조사를 마친 뒤 수혁을 안심시켰다.

“네, 감사합니다.”

“어르신이 잘 챙겨달라고 어찌나 신신당부를 하시던지...... 어르신께 잘해야겠어.”

“명심하겠습니다.”

요식적인 조사를 마친 수혁은 반에 들어와 평소와 같이 수업을 들었다. 그날 저녁 이틀에 걸쳐 진행된 조사는 마무리되었고 형석은 몇 몇 선생들과 교감을 불러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 5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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