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52화 (52/316)

52화

다음 날 아침이 되자, 학교 게시판에 진상조사 결과와 징계위원회의 결정이 공지되었다.

학교 내에 벌어질 혼란을 우려한 다수의 선생들이 말렸지만, 형석은 이사장과 교장을 설득하여 본보기로 붙여놔야 한다고 권유했고 그들은 결국 승인했다.

“와, 조성준 도와서 삥 뜯던 애들 모두 전학 가게 됐어.”

“조성준은 전학도 아니고 퇴학이네? 하긴 그럴 만하지 이 자식들이 한 것만 생각하면 이것도 약해.”

많은 학생들이 게시판 앞에 모여 성준과 조력자들을 두고 설왕설래했다. 그리고 공지되지는 않았지만, 성준을 도와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유출시키는데 가담한 그의 담임과 명철은 모두 해임 조치되었다.

“나는 아니라고, 난 피해자야.”

종명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승원을 비롯한 상납금을 걷는 데 참여했던 학생들은 게시판을 확인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다른 학생들의 경멸하는 눈초리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준의 강요로 돈을 걷은 부분은 참작이 됐으나 경현을 집단 폭행한 것이 문제가 되어 전학 가게 되었다.

“그거 알아? 이 사건을 2반에 강수혁이 해결한 거라는데?”

“나도 들었어. 조성준이 행패 부리는 것도 직접 다 막아냈데, 정말 대단하다.”

학생들은 수혁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번 일에 그가 많은 공헌을 했다는 것을 언급했다.

수혁은 등교를 한 뒤 게시판을 확인하고 반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퀘스트 창이 활성화 되었다.

<히든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매력이 5 향상되었습니다.>

‘조성준과의 악연이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속이 후련하다. 매력이 상승한 것은 아마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는 문제를 해결해서 준 거겠지?’

<맞습니다. 사용자께서 학생들의 고민을 해결해주어 학생들 사이에서 호감도가 상승한 것이 매력의 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생각을 읽은 도움말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내용을 확인한 수혁은 창을 끄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스스로 끊어낸 것에 대한 감상에 젖었다.

‘속이 뻥 뚫린 기분이다.’

잠시 복도에서 감상에 잠겨있던 그의 옆에 경현과 유리가 다가왔다.

“이제 다 끝났네?”

경현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홀가분하다.”

수혁도 씽긋 웃어 보였다.

“홀가분하다고 표현하기에는 표정이 너무 밝은 걸?”

유리는 장난기어린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그들은 일이 마무리 된 것을 축하하며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눴다.

수혁은 대화를 마치고 반에 들어와 자리에서 쉬고 있는데 몇 몇 아이들이 다가왔다.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면목 없다. 네가 힘들 땐 도움이 못 됐었는데.......”

“그저 할 일을 한 건데 뭘.”

“아니야, 정말 고마워. 우리라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거야.”

‘이런 반응은 예상 못 했는데 뭐지?’

수혁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며 지난날 방관하던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는 그들을 보며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학교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 있었다.

* * *

이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났다. 학교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성준이 사라지자 웃음을 잃었던 학생들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참 좋다.’

종명이 없는 반에는 더이상 거친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고 아이들은 이전에 비해서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수혁은 반에서 잠시 쉬다가 유리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일이 끝나면 같이 놀러 가기로 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는 점심을 먹고 그녀의 반으로 갔다.

‘6반이면 3층 끝에 있는 반인 것 같은데, 저쪽인가?’

수혁은 다른 반들을 지나쳐 6반으로 향했다. 그런데 한 남학생이 유리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대화 중인가, 무슨 일이지?’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듯 했으나 그녀는 이내 단호한 표정이 되었고 남학생은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떴다.

유리는 수혁을 발견하자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와, 어쩐 일이야 수혁아. 네가 여기까지 오고?”

“그냥, 너 보려고 왔지.”

“네가 먼저 나 찾아온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유리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듯 말했다.

“뭐, 맨 날 네가 왔으니까. 그런데 아까 그 남자아이는 뭐야? 되게 심각해 보이던데?”

“아, 그게.”

유리는 조금 부끄러운 듯 말을 주저했다. 그러나 이내 곧 말을 이어갔다.

“아니, 가끔씩 쓸데없는 말을 하는 애들이 있어서 곤란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야.”

유리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곤란하게 하는데?”

수혁은 궁금해서 물어봤다.

“아니, 막 같이 영화 보자고 한다던가. 나랑 친해지고 싶다는 둥 민망한 말들을 하고 가.”

“많이 불편해?”

“그렇긴 하지. 말은 번드르르해도 속셈이 뻔히 보이니까.”

유리는 피곤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나도 오늘 이번 주말에 같이 놀자고 하려고 왔는데.”

수혁은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

“응? 아, 너는 당연히 괜찮지!”

유리는 살짝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내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럼 이번 주 토요일 날 학교 끝나고 시내 갈까?”

“좋아!”

이들은 그 외에도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유리가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구나. 하긴.......’

수혁은 아까 상황을 떠올리며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해도 학교에서 유리보다 아름다운 여학생은 없어 보였다.

밝게 웃는 미소와 유쾌한 성격은 그녀의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 * *

시간은 흘러 유리와 약속한 토요일이 되었다.

수업을 마친 수혁은 그녀를 만나러 학교 앞 문방구로 향했다.

‘유리다.’

유리를 발견한 수혁은 한걸음에 그녀에게 가려고 했다. 그런데 저번과 마찬가지로 또 한 남학생이 말을 걸고 있었다.

‘또?’

수혁은 살짝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지켜봤다.

그날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대화를 나누던 유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한 뒤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인기 많다, 유리야.”

수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놀리지 마, 그런 거 아니니까. 자 가자.”

유리는 조금 부끄러운지 말을 돌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수혁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웃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

“여기가 내가 말했던 데야. 얼른 들어가서 먹어보자.”

수혁은 유리가 예전에 말했던 떡볶이 집에 왔다. 그들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맛있게 떡볶이를 먹은 후 시내 근처에 있는 천변을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니까 느낌이 또 다르네.’

그는 처음에 같이 걸었던 곳이라 그런지 괜히 감회가 새로웠다.

“유리야, 너한테 말 못했는데 나 이사 갔어.”

수혁은 자신이 이사 간 사실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알고 있었어, 자율학습 끝내고 집에 왔는데 할아버지가 알려주셨어.”

유리는 의외로 덤덤하게 반응했다.

“미안하다, 진작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아니야, 나도 돈 많이 벌어서 우리 가족들이랑 좋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 그리고 축하해 수혁아.”

“고마워.”

그녀는 밝게 웃으며 수혁을 바라봤다. 마음을 따뜻하게 미소에 그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항상 열심히 하잖아.”

“응, 난 더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성공할 거야, 두고 보라고.”

수혁의 응원에 유리는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매우 진지하고 열의에 가득 차 있었다.

‘유리는 공부와 성공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구나, 하긴 나도 회귀한 후로는 항상 목표를 향해서 달렸었지.’

수혁은 삶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진 유리를 보며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다.

그들은 대화를 하며 걷다가 달동네 근처에서 헤어졌다.

‘들어가자.’

유리를 바래다 준 수혁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이사 간 빌라를 가기 위해서는 건물이 밀집한 거리를 지나가야 했다.

각 건물에는 많은 학원들이 있었는데 그 거리는 근방에 사는 학생들이 제일 많이 오가는 학원가였다.

‘주말인데 학생들이 많네.’

토요일 저녁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있는 여러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밥을 먹으러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혁은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어디서 말다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미희야. 오늘 수업 일찍 끝났으니까 같이 밥이라도 먹자.”

“미안한데, 말했잖아. 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너랑 밥 먹기 힘들어.”

‘뭐하는 거지?’

수혁은 학원가에 있는 어느 골목에서 다른 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선민고등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치근덕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뭐야, 이미희잖아.’

이미희는 선민고등학교에서 전교1등을 하는 아이로 공부뿐만 아니라 뛰어난 외모로 유명했다.

“하, 나도 지금까지 정성을 보였잖아. 네가 바쁘다고 해서 이제까진 참았는데 오늘은 더 이상 양보 못해. 그리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건데 왜 이렇게 예민해?”

남자는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짜증을 냈다.

“그때마다 좋게 이야기했잖아. 적당히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왜 날 붙잡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이 손 못 놔? 아프잖아.”

남자는 미희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막기 위해 그녀의 팔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미희는 안간힘을 써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남자는 힘을 주어 못 가게 막고 있었다.

“손 놔라.”

수혁은 지켜보다가 참지 못하고 남자에게 말했다. 그는 나서기 전에 스캔을 해봤는데 상대의 힘은 고작 13에 불과했다.

“누구야?”

남자는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이내 곧 얼어붙기 시작했다.

미희의 손을 잡은 남자는 제법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수혁은 성장이 계속되어 어느새 키는 184에 달했고 몸은 근육이 보기 좋게 자리 잡아 한눈에 보아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빨리 놓고 가.”

수혁은 다시 한번 말했다.

“우리는 학원 친구야. 같이 수업 듣고 밥 먹기로 했는데 애가 약속을 갑자기 안 지키려고 했단 말이야.”

남자는 당황하여 말을 지어냈다.

“이거 거짓말이야, 너 우리 학교지? 나 좀 도와줘.”

“놓라고.”

미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혁은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세게 움켜쥐었다.

“아아악!”

남자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고 미희의 팔을 놓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수혁은 그의 팔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당해보니까 아프지? 또 그러다 걸리면 죽는다.”

남자는 고통에 대답을 못 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잠시 뒤, 수혁은 그를 놓아줬고 남자는 바로 달아났다. 미희는 아픈 팔을 움켜쥐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고마워, 너 우리 학교 학생이지. 본 적 있는 것 같아.”

“응. 쟤 많이 위험해 보이던데 조심해라.”

“걱정하지 마. 학원에서 만난 앤데 겁이 많아서 나한테 또 그러지 못할 거야. 그건 그렇고 반가워 난 이미희야.”

“난.”

“알아, 너 강수혁이지?”

수혁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미희는 말을 잘랐다.

‘뭐지?’

그는 과거 생에 화려하게만 느껴졌던 그녀가 자신을 안다는 것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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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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