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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55화 (55/316)

55화

다음 날부터는 유리가 짜놓은 공부 패턴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오전과 오후는 그녀가 준 암기노트를 외우거나 문제들을 풀었고 밤에는 유리에게 과외를 받았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지나자 스텟 상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리와 공부한지 3주가 지났다. 이 기간 동안 지능이 벌써 9나 올랐네?’

수혁은 공부를 마치고 그녀와 헤어지는 길에 스텟 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의 지능은 그 동안의 공부를 통해 대폭 향상되어 어느새 30이 되어 있었다.

‘확실히 배우면서 공부하니까 훨씬 효율적이야. 혼자 할 때랑 비교가 안 되잖아?’

그는 유리와의 학습 효능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1주일이 지났다. 수혁은 공부를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흘러 1월 중순을 맞이하고 있었다.

‘흠, 얼마나 발전했을까?’

그는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학교로 향했다. 이날은 유리가 이야기했던 중간평가가 예정된 날이었다. 반에 가보니 저번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프린트를 뽑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잘 잤어? 말한 대로 오늘은 중간평가를 실시할 거야.”

“응.”

“지금까지 수업 성과를 봤을 때 아마 저번하고는 많이 다를 거야. 그러면 시작하자.”

유리는 언어 과목 프린트를 수혁에게 건네주었고 그는 말없이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중간평가는 끝이 났다.

채점을 끝낸 그녀는 수혁을 앞에 앉히고 결과에 대한 논평을 했다.

“와, 수혁아 너 진짜 대단하다. 저번에 비해서 점수가 말도 안 되게 올랐어.”

유리는 모의고사 결과가 믿기지 않은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래?”

“이 점수면 한국대학교를 가기에는 약간 부족하지만 다른 유수의 대학교들은 충분히 지원할 수 있어.”

“아직 많이 부족하네, 난 한국대학교 경영학과에 가야 하는데.”

수혁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지 표정이 조금 구겨졌다.

“수혁아, 네가 가려는 곳은 한국대학교에서도 법대랑 더불어 가장 가기 힘든 과야, 나도 그곳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장담하기 어려운 곳이야. 하지만 방학을 잘 보내고 남은 1년 열심히 보내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거야.”

유리는 수혁을 위로해주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어느새 자신의 실력을 턱밑까지 쫒아온 그에게 놀라고 있었다.

‘점수가 이렇게 급격하게 오르는 경우도 있나? 어쩌면 불가능한 것이 아닐지도 몰라.’

수혁의 잠재력에 놀라워하는 유리와는 달리 그의 속내는 복잡한 상태였다.

‘유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최근 1주일동안 스텟의 변화도 없고, 스스로도 실력의 진전이 느껴지지 않아. 지금으로는 열심히 해서 한국대학교는 간신히 들어갈지는 몰라도 경영학과에 진학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그는 실력을 좀 더 향상시킬 필요를 느끼고 대책을 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혹시 오늘은 일찍 들어가도 될까?”

수혁은 유리에게 말했다.

“수혁아 이 정도의 성과도 정말 대단한 거야. 너무 조급해 하지 마. 지금과 같이 꾸준히 공부하면 더 좋아질 거야.”

“괜찮아 유리야, 그냥 시험 보느라 조금 피곤해서 그래.”

“응 그래, 오늘 수고 많았어. 쉴 때는 푹 쉬어 괜히 오답정리 같은 거 하면서 머리 싸매지 말고. 난 남아서 좀 더 할 테니까 먼저 들어가.”

“그래, 내일 보자.”

수혁은 유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집에 도착한 그는 저녁을 먹은 뒤 방에 들어와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지? 뭔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텐데.’

고민에 빠진 수혁은 계속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프로그램이 작동되더니 도움말이 켜졌다.

<사용자가 스스로의 성장에 한계를 느낀 것을 감지하였습니다. 도움이 되는 말을 드리려고 하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도움말은 수혁의 마음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활성화 되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참 유용하단 말이야? 무조건 들어야지.’

그는 도움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저는 사용자에게 히든 퀘스트와 별도로 스텟 향상을 위한 일반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을 권합니다.>

‘퀘스트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거였어?’

<네, 퀘스트의 성격에 따라서 제약이 될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히든 퀘스트같은 경우는 사용자가 원하면 일반 퀘스트와 동시에 진행이 가능합니다.>

‘알려줘서 고마워, 그럼 퀘스트를 확인해볼까?’

수혁은 도움말 끈 뒤 퀘스트 창을 열었다. 그리고 열거된 여러 스텟들 중 지능을 클릭했다.

그는 지금까지 스텟 향상의 양상을 봤을 때 지능을 올리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 프로그램은 작업을 시작했고 퀘스트가 수혁에게 부여되었다.

<현재 공부하고 있는 부분을 대학 전공 서적으로 공부하십시오.>

‘수능 공부를 대학 전공 책으로 하라는 건가? 우선 나한테는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무조건 해봐야겠다.’

퀘스트를 수락한 수혁은 공부 방향에 대하여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이 되자 그는 유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유리야, 내가 오늘부터 할 일이 있어서 문제풀이는 오전에만 하고 오후엔 간단한 질문만 하고 개인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혹시 괜찮아?”

“응, 나야 상관없지. 그런데 공부에 지장가지 않겠어?”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혁을 보며 말했다.

“괜찮아. 공부에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가 되진 않을 거야. 밤에 따로 개인공부를 해서 감이 떨어지지 않게 할게.”

“그래, 혼자 하다가 막히는 부분 있으면 언제든지 가져와서 물어봐.”

“고마워.”

양해를 구한 수혁은 그녀에게 말 한데로 오전에만 문제를 풀었다.

수혁은 다행히도 틀린 문제가 거의 없어 질문할 거리가 많지 않아 예상보다 빨리 공부를 마치고 학교를 나올 수 있었다.

‘칸타빌레에 가야겠어. 거기에 대학생들이 중고로 넘긴 전공 서적들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수혁은 곧장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있지 않아 그는 칸타빌레에 도착했고 불을 켠 뒤 책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수학이랑 과학에 관련된 서적들을 찾아봐야겠다.’

수혁은 먼저 전공서적들이 모여진 책장을 살펴봤다. 그리고 수능의 시험범위와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전공 책을 찾기 위해 이 책 저 책 읽어보았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자신의 공부에 필요한 전공 책을 모두 찾아 사무실의 탁상에 놓았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네, 책이 두껍긴 해도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으면 생각보다 부담이 없을 것 같아. 원래 과학과 수학 관련된 것만 찾으려고 했는데 사회과학 서적들 중에 탐구에 도움 되는 책들도 있어 양이 늘어났어.’

책을 다 찾은 수혁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 뒤 의자에 앉아 바로 전공 서적을 읽어나갔다.

전공 책은 확실히 수능에서 요하는 개념보다 깊은 내용들이 많이 서술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용의 구성이 기초부터 어려운 내용까지 단계적으로 나아갔기에 읽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 향상된 지능은 책을 빠르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확실히, 수능 개념서보다 좀 더 효율적이고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하는 것 같아.’

수혁은 전공 서적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밤을 지나 새벽 3시가 될 때까지 책을 읽어 나갔다. 이미 집에 가기에 시간이 애매해진 그는 칸타빌레에서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부터는 같은 루틴의 반복이었다.

오전과 점심시간에는 학교에서 문제를 풀고 유리에게 질문을 했다. 그리고 오후부터 새벽까지 서점에서 전공 책을 읽고 책 뒤에 딸린 연습 문제를 푸는 작업은 계속 되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그의 스텟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다.

‘지능이 2주 동안 8이 늘었어. 스텟이 높아질수록 성장이 느려지는 것을 감안하면 괜찮은 성과야.’

수혁은 칸타빌레에서 스텟 창을 확인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변화는 단순히 스텟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능 수준보다 더 고차원의 내용을 학습하자 문제를 분석하고 접근할 때 필요한 통찰력이 깊어지고 시야가 한층 넓어졌음을 느꼈다.

“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수학문제 하나를 두고 같이 고민하던 중 수혁이 해답지의 풀이 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내자 유리는 감탄했다.

그 외에도 다른 탐구문제에서도 이전에 비해 훨씬 깊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파생되는 현상들을 고려해보면 굳이 곡선 그래프를 그리지 않고도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어, 이 방식이면 푸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거야.”

“수혁아, 너 진짜 대단하다. 밤에 개인공부를 한다더니 실력이 더 늘은 것 같아.”

“아니야, 얻어 걸렸지 뭐.”

수혁은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지만, 유리는 최근 들어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요즘 보면 네가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것 같아.”

“아니야, 너한테 아직 배우고 있는 입장인데 뭘.”

수혁은 손을 흔들며 부인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수혁은 유리의 능력을 스캔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창에 물음표로만 표시가 될 뿐 정확한 수치는 알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그녀의 스텟을 소상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엔 확인도 안 됐는데 지금은 정확하게 보이네. 지능은 33이고 지혜는 20이구나.’

최근에 그녀의 스텟을 확인했던 수혁은 자신의 스텟이 유리를 넘어선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전공 책을 읽으며 생긴 특별한 일이 또 있었다. 수능서적으로 공부했을 때는 오르지 않았던 지혜 스텟이 향상된 것이다. 그는 지난 2주 전에 비해서 지혜도 3이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히 단편적 지식을 습득하는 수능 서적과는 달리 전공 서적은 지혜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구나. 확실히 이전보다 공부할 맛도 나고 좋은데?’

수혁은 내심 자신의 변화에 고무된 상태였다.

“휴, 잘 모르겠어, 점점 가르칠 부분도 없어지는 것 같고 오히려 내가 배울 때도 있고 그러니까.”

“난 서로 도울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은데? 그리고 네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어? 그니까 방학 때까지는 같이 잘 해보자.”

수혁은 자괴감에 빠진 유리를 달래주었다.

어느덧 공부는 끝이 났고 그는 칸타빌레로 걸음을 옮겼다.

서점에 가는 도중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수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혁군, 잘 지냈나?”

“아 교수님이셨군요?”

수혁은 우진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응, 다름이 아니라 일전에 말했던 출판 계약이 드디어 성사되었네. 자네 도서는 많은 부수는 아니지만, 미국, 유럽 등 각지에서 번역되어 출판 될 걸세, 우선 한국에서의 출판은 이번 달 말에 진행 될 예정이네.”

“그렇군요.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아 그리고 계약금은 자네 통장에 넣었으니 확인해보게.”

“감사합니다.”‘이렇게 돈이 들어와 줘야 일 할 맛이 난단 말이야.’

계약금이 들어왔다는 말을 들은 수혁은 일한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 5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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