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그건 그렇고 요즘 고서 번역은 잘 돼가고 있어?”
우진은 수혁이 일을 잘하고 있는 지 체크를 했다.
“사실, 번역이 거의 완료된 고서가 있기는 한데, 제가 공부 때문에 바빠 잠시 손을 놓았습니다.”
“하긴, 이제 고3이라고 들었는데 공부에 힘쓸 때가 온 거지. 천천히 해도 되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아닙니다. 지금 공부도 잘 돼가고 있고 오늘부터 번역 작업에 집중하면 이틀이면 충분히 작업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3일 뒤에 칸타빌레에 찾아갈 테니 번역본을 받을 수 있겠는가?”
“네, 문제없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수혁은 통화를 끊은 후 당분간은 공부를 내려놓고 번역 작업에 열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공부는 매일 오전에 유리랑 하니까 실력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야.’
칸타빌레에 도착한 수혁은 전공 책은 잠시 밀어두고 컴퓨터를 켠 뒤 번역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번역이라 조금은 낯설었지만 금세 적응하고 일에 몰입했다.
‘흠, 생각보다 남은 양이 상당하네. 잠을 줄여서라도 해야겠다.’
수혁은 밤잠을 줄이며 번역에 매진했고 어느새 우진과 보기로 한 날이 되었다.
그는 전날에 유리에게 양해를 구하여 학교에 가지 않고 번역에만 매달린 덕분에 약속 날 아침에 번역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휴, 끝났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지만 약속 전날부터 지금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작업을 했기 때문에 무사히 번역을 마칠 수 있었다.
수혁은 조금 피곤했지만 높은 체력과 어플의 도움으로 피곤함을 견딜 수 있었다.
그는 번역본을 프린트한 뒤 시계를 확인했다.
‘11시에 오시기로 했으니까, 이제 곧 오시겠군.’
시계는 어느새 10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10분이 지나 11시 정각이 되자 우진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수님 어서 오세요.”
“하하, 내 잔뜩 기대하면서 여길 왔네.”
“와서 보시죠.”
수혁은 자신이 작업한 번역본을 사무실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이건 무슨 책인가?”
“네, 당나라 때 어느 지방 관료가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의 풍토와 문화 등을 서술한 책입니다.”
“이거 또 대단한 것을 건졌구먼.”
우진은 번역본을 검토하며 감탄사를 토해냈고 수혁과 한참 동안 고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점심때가 다 되었군.”
“네.”
“혹시 괜찮으면 나랑 식사하지 않겠나? 내 가끔 가는 식당이 있는데 음식 맛이 나쁘지가 않아.”“좋습니다.”
“가보면 마음에 들 거야, 내 자네가 고3이 된 기념으로 대접하지.”
우진의 제안에 수혁은 흔쾌히 응했다.
식사를 하기로 결정되자 그들은 칸타빌레 밖에 나왔다. 나와서 보니 건물 앞에는 우진의 승용차가 정차되어 있었다.
“타게.”
우진은 그를 태우고 서울 교외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도심을 벗어나자 도로 주변에는 자연 풍광이 드러났고 수혁은 말없이 경치를 즐겼다. 그리고 30분쯤 지났을까 도로가에 집을 개조하여 만든 아름다운 식당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 식당이 있었네요?”
수혁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이 식당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식당이야, 가격도 적당하고 맛도 그만이라 내 종종 찾는다네. 자, 들어가지.”
우진은 수혁을 데리고 안에 들어갔다.
음식점은 겉에서 봤을 때는 일반 가정집처럼 생겼으나 안은 일반 식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집은 오리고기가 참 맛있네. 먹어보겠나?”
“네.”
우진은 밖의 풍경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오리주물럭을 주문했다. 곧 음식이 나왔고 그들은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잘 먹었어?”
“네, 덕분에 고3 생활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허허, 안 본새 넉살이 늘었구먼.”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신 뒤 다시 차에 탑승했다.
“수혁군, 괜찮으면 잠깐 드라이브라도 할까? 비록 산을 깎아 만든 도로이지만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려고 노력해서 드라이브코스로는 제격이야.”
“안 그래도 오는 길에 경치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훗, 더 좋은데도 많으니까 기대하라고.”
우진은 수혁이 드라이브 제안에 응하자 차의 시동을 켠 뒤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수혁은 창문을 연 뒤 겨울의 찬바람을 느끼며 설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시야에 작은 목재 건물 하나가 들어왔다.
‘이런 곳에 웬 건물이지?’
수혁은 별 생각 없이 건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퀘스트 창이 활성화되었다.
<히든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내용을 확인해보겠습니까?>
‘저 건물과 관련이 있는 건가?’
수혁은 지체없이 바로 퀘스트를 확인했다.
<오래된 성당으로 가 보물을 찾으시오.>
‘오래된 성당이라면 아까 본 그 목재 건물을 말하는 건가? 그곳에 뭔가 귀중한 것이 있는 모양이야. 한 번 가봐야겠어.’
내용을 확인한 그는 수락 버튼을 누른 뒤 우진에게 말을 건넸다.
“교수님, 좀 전에 지나온 길에 나무로 된 건물있던데 보셨어요?”
“아, 도로 가드레일 너머에 있는 폐건물 같은 것 말하는 거냐?”
한참 운전에 열중하던 우진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네, 혹시 그곳에 가볼 수 있을까요? 뭔가 의미가 있는 장소 같아서요.”
“알겠다. 차를 돌려 그쪽으로 가보자.”
우진은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 유턴을 하여 아까 온 길을 되돌아갔다. 그러자 곧 가드레일 너머로 오래된 목재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차를 길가에 세워둔 뒤 시동을 껐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한 번 확인해보자.”
“네, 교수님.”
수혁은 차에서 내려 우진과 함께 건물로 향했다.
그들은 가드레일을 넘어 풀숲을 헤치며 조금 걷자 멀리서 본 목재 건물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건물의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고 지붕은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주변에는 낮은 돌담이 쌓여져 있었다.
“흠, 이곳은 유적지인가 보군. 과거 프랑스에서 온 선교사들이 지냈던 숙소였나 봐. 건물의 추정연도를 봤을 때 조선 후기에 세워진 거야.”
우진은 돌담 앞에 세워진 녹이 슨 표지판을 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건물 상태나 주변을 보니 시에서 제대로 관리를 안 한 지 오래된 것 같아. 우리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그대로 보여주는군, 쯧쯧.”
우진은 혀를 차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수혁은 담 안쪽으로 들어가 목재 건물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우진은 수혁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살았던 장소로 추정되는 건물의 내부는 처참했다. 곳곳에는 거미줄이 처져 있었고 나무는 부패가 많이 진행되어 갈라지거나 깨져있는 곳이 많았다.
“엉망이네요.”
“그렇군. 이런 보존상태라면 이 장소에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뭔가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어, 왜 시에서 이 건물을 버려뒀는지 알 것 같네.”
우진은 내부를 살펴보며 말했다.
‘바닥은 두꺼운 돌을 깔아두고 목재로 건물을 지어서 지냈나 보군, 그건 그렇고 이런 곳에 보물이 있을까? 아무리 봐도 버려진 지 오래된 폐건물일 뿐이다.’
그는 우진의 말에 내심 공감하고 있었다.
“수혁군, 유감이지만 여기서 구경할 것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겠나?”
우진은 주변을 둘러보다 포기했는지 이곳을 떠날 생각으로 수혁에게 물었다.
“교수님, 저는 잠시 이곳을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차에 가 계시면 금방 따라 가겠습니다.”
수혁은 아직 이곳에 용건이 남았기 때문에 우진에게 먼저 돌아갈 것을 권했고 이에 그도 순순히 응했다.
“알겠네. 천천히 보고 오게.”
우진은 건물 밖을 나와 차로 돌아갔고 수혁은 홀로 남아 놓친 부분이 있는지 건물 내부를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으나 건물 안에서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한 수혁은 점점 지쳐갔다. 그는 별안간 돌바닥에 앉아 멍하니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곳에 보물이 없는 것 같은데....... 아니야, 어플이 틀린 말을 할 리가 없어, 그럼 어디 있는 거야? 어 그런데 저건 뭐지?’
수혁이 돌바닥에 앉아 생각을 정리던 도중 건물의 왼쪽 벽면 아래쪽에 특이한 문양을 발견했다.
서 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앉으니 보였던 것이다.
이 문양은 왼쪽 벽면에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그냥 봤을 때는 인테리어를 위해 그린 것처럼 보였다.
‘얼핏 보면 모든 문양이 똑같은 것 같으나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수혁은 예리하게 문양들을 관찰했고 곧 그 문양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메시지야, 여기에 있었던 선교사가 죽기 전에 썼던 것 같군. 그런데 도데체 어디 나라 말이지? 처음 보는 기호인데?’
수혁은 도움말을 켜 벽면에서 발견한 문양에 관해 물어보았다.
‘여기 있는 문양은 무슨 언어로 써진 거야?’
<이 문양은 옛날 프랑스 교인들이 암암리에 쓰던 암호입니다.>
‘어쩐지 이제까지 봤던 어느 언어들하고 좀 다르더라.‘
수혁은 설명을 듣고 문양에 대한 이해가 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한 부분도 생겼다.
“언어이해 프로그램이 암호도 해독할 수 있는 거야?”
<네, 암호라는 것도 일종의 설정한 사람들끼리의 언어입니다. 언어이해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어떠한 암호도 쉽게 풀 수 있게 됩니다.>
‘암호까지 풀 수 있다고 완전 사기잖아?’
수혁은 다시 한 번 어플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는 도움말을 끈 채 특이한 문양으로 쓰인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과연 그렇군. 그래서 퀘스트에서 이곳을 성당이라고 한 거야.’
암호로 된 메시지를 읽은 그는 이 장소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다.
이곳은 표지판에 서술된 것처럼 단순히 선교사들이 생활을 한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잠을 잔 것만이 아니라 종교를 믿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미사도 드렸던 곳이었다.
수혁은 메시지를 계속 읽어나갔다.
[근래 들어 조선의 왕은 우리를 배척하여 많은 동료들은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또한 살아서 고국에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이곳에 우리에 대한 기록과 소중한 물건을 남기려고 한다. 이 물건은…….]
‘드디어 찾았다.’
수혁은 암호문 속에서 보물에 대한 단서를 발견했다.
암호를 해석한 바에 따르면 보물은 건물의 바닥에 숨겨놓았다고 했다.
‘이 돌덩이들 어딘가에 있겠군.’
수혁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바닥을 살펴보았다.
그는 천천히 걸으며 특이한 돌이 있는지 찾아보기도하고 의심이 가면 손으로 두드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밟았을 때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돌을 발견했다.
‘대담하기도 하지. 한 가운데에 보물을 숨겨놓았네.’
선교사들은 건물 구석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오갈 수 있는 건물 중앙부에 보물을 놓았다.
수혁은 돌 틈 사이에다 손을 집어넣은 다음 힘을 주어 들어 올렸다. 그러자 돌 아래의 빈공간에서 목함, 목걸이 그리고 둘둘 말린 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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