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편지 먼저 읽어볼까?’
수혁은 먼저 낡은 편지를 읽어보았다.
[이 편지를 찾은 자가 암호를 읽을 수 있는 우리 교의 신자이길 희망하며 글을 씁니다. 편지 옆에는 목걸이와 목함이 있을 겁니다. 이 목걸이는 위험한 곳에 파견가는 선교사들을 위해 주교가 하사한 신의가호가 깃든 물건입니다. 그리고 목함은 선교활동으로 피곤에 지쳤을 때 저희를 위로해줬던 특별한 물건입니다. 부디 이 물건이 무사히 본교에 귀환되길 희망합니다.]
편지를 읽은 수혁은 고민했다.
‘선교사들은 이 물건이 되돌아가길 바라는 것 같군. 미안하게 됐는걸.’
수혁은 습득한 보물을 누군가에게 줄 생각이 없었기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털어버리고 목걸이를 살펴보았다. 목걸이는 은으로 된 평범한 물건처럼 보였다.
‘한번 차볼까?’
수혁은 별로 고민하지 않고 목에 목걸이를 찼다. 그러자, 화면이 뜨더니 목걸이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다.
<이 목걸이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옛 성인이 착용했던 악세사리입니다. 그는 고대에 포교를 활발히 했던 자로 이교도들의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심을 잃지 않은 자였습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목걸이의 영향으로 인해 운이 7 향상되었습니다.>
‘뭐야? 목걸이를 착용한 것만으로 운이 상승하다니, 그래서 주교가 선교사에게 이 목걸이를 주었구나. 그러면 이제 상자를 한 번 볼까?’
어플을 통해 목걸이의 기능을 확인한 수혁은 다음으로 목함을 살펴보았다. 목함은 상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조그만 보물 상자처럼 생겼네. 열리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목함은 테두리에 금테가 씌워져 있었는데 이상하게 열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면에는 동그란 버튼 같은 것이 달려있었는데 그것을 누르고 뭘 어쩌려고 해도 상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게 손잡이인가?’
수혁은 동그란 버튼을 손가락으로 쥐고 힘을 주었으나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분명히 선교사들은 이 목함으로 위안을 받았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 나무 덩어리로 뭘 했다는 거야?’
그 뒤에도 그는 한동안 목함을 만졌지만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이런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잖아. 교수님은 뭐하고 계실까?’
수혁은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시간은 꽤나 흐른 상태였고 우진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건물을 빠져나와 차에 도착하니 의자를 젖히고 자고 있는 우진을 볼 수 있었다.
“교수님, 죄송해요. 많이 늦었죠?”
“응? 누구 아 수혁이 왔구나.”
“예, 이제 출발해도 될 것 같아요.”
“그래, 건진 것은 있느냐?”
우진은 비몽사몽 상태로 깨어나 수혁에게 물었다.
“특별한 건 딱히 없었어요. 그냥 알게 된 건 저곳이 단순히 선교사들이 머무르던 장소는 아니라는 거예요. 추측건대 이 근처에 살던 주민들과 저곳에서 미사도 지내고 했던 것 같아요.”
“그렇구나. 하긴 마냥 생활하는 곳으로 보기에는 공간이 좀 넓기는 했었지. 그건 그렇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이만 돌아갈까?”
“네.”
우진은 차에 시동을 켠 뒤 서울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우진이 데려다준 덕분에 편하게 집에 올 수 있었다.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아니야, 나야말로 오랜만에 바깥바람 쐬고 좋았네, 조심히 들어가게.”
수혁은 빌라 앞에서 우진과 헤어지고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올 때가 되셨는데 다들 안 오셨네?’
시계는 어느새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아직 귀가하지 않은 상태였다.
수혁은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아까 가지고 왔던 목함을 품속에서 꺼냈다.
‘물건을 찾았는데도 히든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 목함의 비밀을 알아내야 할 것 같아.’
수혁은 다시 목함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끊임없이 궁리했다.
그는 마음이 급해져 망치로 목함을 깨볼까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하, 진짜 모르겠다. 이 나무 상자가 대체 뭐길래, 선교사들이 그리 강조를 한 거야? 궁금해 죽겠는데 단서는 없고.’
수혁은 목함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고 있던 그때 그의 눈앞에 화면이 떴다.
‘뭐지?’
수혁은 목함을 내려놓고 도움말을 확인했다.
<사용자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감지하였습니다. 이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제안하려고 하는데 살펴보시겠습니까?>
‘응 뭐야? 이거 왠지 예전에 헌책방에서 히든퀘스트 했던 상황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도움말은 수혁의 마음을 읽었는지 바로 반응을 했다.
<맞습니다. 예전에 사용자가 언어 때문에 어려움을 느껴 드렸던 언어이해프로그램처럼 이번에도 사용자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이것도 저번처럼 패널티가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어플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세상의 균형을 깨뜨릴 정도로 유용하기 때문에 패널티는 불가피 합니다.>
‘패널티라 그래도 뭐 일단은 확인해봐야겠지?’
수혁은 프로그램을 살펴보기로 결정했고 그 마음을 감지한 도움말은 곧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를 했다.
<사용자가 현재 상황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능도구 이용 프로그램을 추천 드립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시 모든 도구와 물건을 아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됩니다. 현재 목함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 또한 이 프로그램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엄청난 프로그램이잖아? 혹시 패널티는 뭔지 알 수 있을까?’
<프로그램을 활용할 시 부여되는 패널티는 앞으로 사용자께서 히든퀘스트를 깼을 때 수여되는 보상의 정도가 30퍼센트 감소되는 것입니다.>
‘패널티가 상당한데 어떻게 하지? 역시 공짜로 이런 걸 줄 리가 없지.’
<부여되는 패널티에 비해 주어지는 이득이 훨씬 크므로 저는 사용자께서 이 프로그램을 활용할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도움말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쓸 것을 권했다.
‘네 말 들어서 손해 본 적은 없었지,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줘.’
수혁은 잠시 망설였지만 어플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프로그램을 다운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움말 창은 꺼졌고 어플은 다운로드 진행상황을 중계했다.
‘언어이해 프로그램 때도 디버프가 적용되었지만, 타격은 크지 않았어.’
수혁은 화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만능도구 이용 프로그램 다운로드 60퍼센트 진행 중 70퍼센트 진행 중>
잠시 뒤 다운로드 완료 표시가 떴다. 완료 표시 옆에는 실행버튼이 있었는데 수혁은 그 버튼을 클릭했다. 그러자 도구이용프로그램을 실행하겠다는 문구가 뜸과 동시에 어플 창은 자동으로 꺼졌다.
‘뭐 특별하게 변하거나 그런 거는 없네.’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번 프로그램도 수혁에게 특별한 변화를 느끼게 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바로 목함을 만져보기로 결정했다.
‘그때도 헌책방 가서 책을 보고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지, 이번에도 마찬가지 일거야.’
수혁은 목함을 집어 들고는 멍하니 있는데 오래전부터 이 목함을 사용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지지?’
그는 말없이 목함 앞에 달린 버튼을 능숙하게 돌렸다.
왼쪽으로 살짝 돌리고 오른쪽으로 깊게 돌리고 이런 식으로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뭐야? 금고에 달린 다이얼 같은 거였어? 근데 좀 전에는 아무리 돌려봐도 미동도 안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힘으로 무작정 돌리려했을 때와 달리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버튼을 조작하자 버튼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음악 소리가 목함에서 흘러나왔다.
‘뚜껑이 열리는 상자인줄 알았는데 오르골이었구나.’
수혁이 버튼을 적절히 돌리자 목함 안에 설치되어 있던 태엽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르골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경건하게 들릴 수도 있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피곤이 가시고 정신이 맑아진다.’
수혁은 음악을 듣자 몸에 긴장이 풀리며 쌓여있던 피로가 가심을 느꼈다. 이때 도움말이 다시 켜졌다.
<사용자의 체력이 회복되고 정신이 상쾌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이 목함으로 위안을 받았다고 한 거였네.’
수혁이 음악을 들으며 목함에 대해 감탄을 하고 있는데 도움말이 꺼지고 퀘스트 창이 활성화 되었다.
<히든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통찰력 스텟이 2 상승하였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통찰력이 보상으로 주어졌네, 아마 원래대로 라면 더 많이 향상되었을 거야.‘
수혁은 퀘스트가 완료된 것을 확인한 후 창을 끄고 자신이 찾은 목걸이와 목함을 한동안 살펴보았다.
‘어쩌다 이런 물건들이 나한테 오게 됐지?’
새삼 세상에는 신비로운 물건이 많다고 느끼는 수혁이었다. 정작 자신의 어플이 가장 신기하다는 것은 잊어버린 채 말이다.
* * *
성당에서 보물을 찾은 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 2월이 되었다.
그동안 수혁은 유리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대학 서적도 지속적으로 읽어나갔다.
이에 더해 틈틈이 고서 번역 작업도 하니 하루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벌써 새벽 2시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수혁은 고서 번역을 하다 잠시 휴식을 하고 있었다. 칸타빌레에서 공부와 번역작업을 하고 나면 항상 새벽이 다 되곤 했다.
‘후, 거의 쉬지를 못 하는군. 그래도 발전이 눈에 보이니 힘든 줄 모르겠어.’
이 기간 동안 수혁의 지능과 지혜 스텟도 향상을 하여 각각 3씩 오른 상태였다. 스텟창을 키고 성장한 자신을 확인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는 겉옷 안주머니에서 오르골을 꺼냈다.
‘조금 피곤한데 또 들어볼까?’
최근 집에 들어가지 않고 칸타빌레에서 지낸 수혁은 작업이 끝나곤 하면 오르골을 작동시켜 종종 듣곤 했다.
잔잔한 음악이 오르골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몸의 피로가 서서히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일이면 유리랑 공부하기로 한 마지막 날이구나. 개학 전에 보는 마지막 진단고사도 있고....... 걱정은 안 되지만 괜히 기분이 그렇네.’
수혁은 오르골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내일 있을 마지막 시험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는 내일 최종 모의고사를 봄에도 불구하고 컨디션 조절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최근에 학교에서 문제를 풀 때 틀리는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잘 못 읽는 실수만 안 하면 괜찮을 거야.’
수혁은 어떤 긴장도 하지 않은 채 사무실 불을 끄고 잠에 들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수혁은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한 뒤 등교를 했다.
그는 반에 들어가기 위해 실내화를 꺼내던 중 유리를 발견했다.
‘역시, 먼저 와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네. 저렇게 부지런하니 공부도 잘하는 거겠지?’
그녀는 프린트 된 종이를 시험 순서대로 정리하며 오늘 있을 모의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혁은 반에 들어가 유리에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일찍 다니면 안 피곤해? 대단하다 진짜.”
“응, 이번 시험이 개학 전에 보는 마지막 모의시험이잖아 당연히 일찍 와야지. 어제 컨디션 관리는 잘했어?”
유리는 보통 때처럼 밝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냥 평소 컨디션대로 보면 되는 거지 뭐. 특별히 관리해봤자 긴장만 더 돼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수혁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하여간, 긴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니까.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다. 자, 자리에 앉아 좀 있다가 바로 시작할 거야.”
유리는 스톱워치를 꺼냈고 수혁은 자리에 앉아 짐을 풀고 시험 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시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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