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58화 (58/316)

58화

‘수혁이가 이번 시험은 어떻게 볼까? 궁금하다.’

시험이 시작되고 자리에 앉아 공부할 책을 꺼낸 유리는 수혁의 뒷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아마 점수가 많이 오를 거야. 이미 실력으로는 나보다 위인 것 같아. 이제는 내가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때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녀는 최근 수혁이 공부를 하며 보여준 문제풀이 실력을 떠올리며 결과를 예상해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모의시험의 마지막 교시도 끝이 났다.

시험이 끝난 수혁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갔고 유리는 자리에 남아 채점을 했다.

“유리야 점수는 어떻게 나왔어?”

수혁은 복도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고 반에 들어오며 물었다.

“…….”

유리는 충격에 빠진 듯 머리를 감싸 쥐고만 있을 뿐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수혁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다그쳤다.

“유리야, 아직 채점 안 했어? 어떻게 됐는데?”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채점한 문제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혁아, 의심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혹시 이 문제들 풀어본 적이 있어?”

“아니, 오늘 처음 본 건데?”

“정말?”

유리는 수혁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 문제들은 대학 들어간 선배들이 본 95년 수능 기출이거든. 그래서 물어본 거였어.”

“아 그래? 어쩐지 이전 시험들보다 문제들이 깔끔하더라.”

수혁은 시험을 보며 느꼈던 의문점들이 해소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아 너 만점이야, 시험이 이전들 것보다 어려웠고 범위가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 진짜 대단해.”

유리는 여전히 결과가 믿겨지지 않은지 시험지를 거듭 살피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만점이라고?”

수혁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래, 만점이야 만점. 이 점수면 한국대에 속한 어떤 과든 수석으로 들어갈 수 있어! 진짜 멋지다.”

유리는 수혁을 진심으로 칭찬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칭찬에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으며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오늘이 어떻게 보면 같이 공부하는 마지막 날인데 시내 가서 맛있는 거 먹을래?”

“그래, 우리 저번에 갔던 분식점으로 갈까?”

유리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들은 시험 점수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누다 짐을 싸고 시내에 있는 떡볶이 집에 갔다.

수혁과 유리는 그곳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먹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와 계속 말하게 되는데 너처럼 실력이 빠르게 오른 애는 처음이야.”

“다 지도해준 선생님이 좋아서 그런 거지.”

“알긴 아는 모양이네.”

“그리고 오늘은 유난히 집중이 잘 되는 편이었어. 아마 다음에 비슷한 난이도의 시험을 치면 만점 받기는 어려울 거여.”

“와, 끝까지 그럴 거야? 이번만큼은 우쭐할 줄 알았는데?”“하하,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들은 서로 농담을 하며 공부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었고 수혁은 유리와 인사를 나눈 후 헤어졌다.

공부에 대하여 감을 잡은 그는 개학까지 남은 시간 동안 간단한 공부와 번역작업을 병행하며 하루를 보냈다.

‘간만에 돌아온 여유로운 시간이다. 시간도 남았는데 경영 관련 도서를 좀 읽을까?’

오랜만에 여분의 시간이 생긴 수혁은 서점에서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도서들을 찾아보았다.

‘피터 드러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읽어본 적이 없는데......’

칸타빌레에서 피터 드러커의 책을 찾은 수혁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정독을 했다.

피터 드러커는 미국의 경영학자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유명 자동차 회사인 GM의 컨설턴트로서 기업 혁신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글로벌 기업 CEO들이 앞 다투어 극찬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CEO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사업을 할 때 필요한 지식들이 잘 서술되어 있다.’

수혁은 드러커의 책에 빠져들었다. 그는 이외에도 드러커가 쓴 다른 저서들도 모두 꺼내어 탐독했다.

‘성공한 사람은 역시 다르구나.’

그는 피터의 책을 통해서 사업에 필요한 다양한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수혁은 경영학 도서들을 읽으며 2월을 보냈고 어느덧 개학날이 되었다.

* * *

‘개학을 하니 거리에 활기가 넘쳐서 보기 좋네.’

한산했던 방학 때의 등굣길과 달리 아이들은 친구들과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등교를 하고 있었다.

수혁은 익숙하지만 잠시 잊고 지냈던 이 광경이 반갑게 느껴졌다.

‘저 건물이다.’

3학년 건물은 2학년 때 건물과 달리 정문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수혁은 건물 안에 들어가 자신이 앞으로 지낼 3반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친구들과의 만남이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2학년 때 친해진 경현도 자신과 같은 반이었기 때문이다.

“수혁아!”

반에 들어가니 경현이 아는 체를 했다.

“응 경현아, 잘 지냈어?”

수혁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복도에 나가 그동안의 근황을 서로 물어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새로운 담임이 반에 들어왔다.

“애들아 안녕? 난 이번에 3반을 맡게 된 이경자라고 해. 만나서 반갑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

수혁의 새로운 담임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수수한 차림으로 반에 들어온 그녀는 한 눈에 보아도 성격이 좋아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배정과 반장을 뽑는 것 관해 간략하게 이야기를 한 뒤 3월 모의고사에 대한 공지를 해주었다.

“첫 만남에 무거운 이야기해서 미안한데 앞으로 2주 뒤에 너희들의 첫 모의고사가 예정되어 있어. 그리고 이번 모의고사 결과는 2학기 때 특별반 편성에 참고가 되니 열심히 하길 바란다.”

아이들은 모의고사 이야기를 듣자 얼굴에는 금세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그와 달리 수혁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의고사에 대한 공지를 마친 담임은 반장선거를 바로 실시했다.

이전의 선생들이 성적 좋은 애를 추천했던 방식과 달리 그녀는 학생들에게 후보를 추천받아 제대로 선거를 치르게 했다. 몇몇의 학생들이 후보로 거론되었고 곧 투표가 이루어졌다.

“투표 결과 경현이가 반장을 맡게 되었다 다들 박수.”

이 선거에서 경현도 추천을 받았는데 압도적인 표 차이로 반장에 뽑혔다.

경현은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생각을 했지만, 그는 평소 원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와도 마찰을 일으키지 않은 편이라 학생들 사이에서 평이 좋았다.

“축하해 경현아.”

“뭘,...... 애들이 왜 날 뽑았는지 이해가 안 되네?”

경현은 본인이 반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얼떨떨해 하고 있었다.

“내가 볼 땐 될 만한 사람이 된 거 같은걸? 앞으로 잘 부탁할게.”

수혁은 웃으며 축하해줬다. 선거가 끝나고 잠시 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은 수능이 곧 다가온 고3 수험생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수능과 관련 없는 부분도 배웠던 2학년 때와 달리 문제풀이와 핵심 개념을 짚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3학년들의 수업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다.

‘너무 편한데?’

이미 수능에 완전히 적응한 수혁은 수업이 한편으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수혁은 집에 가지 않고 칸타빌레에 갔다. 그곳에는 지난 방학 때 공부한 책과 전공 서적이 있었다.

‘3월 모의고사 준비를 해야겠다.’

그러나 막상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려고 보니 이미 다 푼 문제들이고 개념들도 머리에 모두 적립된 상태라 크게 공부할 필요를 못 느꼈다.

수혁은 수험서를 보다가 이내 덮고 드러커의 저서들을 읽었다.

‘후, 뭐 상황에 맞지 않은 것 같지만, 나중에 사업 준비에도 도움이 되니까.’

사무실에서 경영학 도서들을 읽은 수혁은 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수혁은 다른 학생들이 모의고사 공부에 매진할 때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고3들어 치루는 첫 모의고사 날이 되었다.

“공부들은 열심히 했지? 다들 책상 띄고 시험 준비하자.”

담임은 문제지가 든 봉투를 교탁 위에 놓고 학생들에게 시험 준비를 지시했다.

얼마 있지 않아 시험은 개시되었고 각 교시가 끝날 때마다 반 곳곳에서는 탄성이 들려왔다.

“아, 이번에 수학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원래 3월 모의고사는 범위도 짧고 할 만해야 되는데 하…….”

“야 아까 24번 문제 답 뭐야?”

“몰라, 묻지 마!”

시험 난이도에 불평을 토해내며 우왕좌왕하는 애들과 달리 수혁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했다.

그에게 있어서 오늘의 시험은 쉽게 느껴졌던 것이다.

모의시험에 몰입하여 문제를 푼 수혁은 마지막 외국어 시간을 끝으로 시험을 마무리했다.

“이건 너희들이 본 시험 답안지니까 알아서 채점해라. 그리고 정확한 점수와 등수는 내일 바로 나오는데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고3 생활의 첫 발걸음을 뗐을 뿐이니까 결과에 부하뇌동하지 말아라.”

담임은 답안지를 나눠주며 시험을 보느라 스트레스 받았을 아이들을 위로해 주었다.

경자가 반을 나가자 아이들은 저마다 부산을 떨며 채점을 하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수혁은 채점도 하지 않고 바로 학교 밖을 나섰다.

‘서점 가서 번역 일 조금만 하다가 포드의 자서전이나 읽어야겠다.’

포드는 자신의 이름을 본 따 자동차회사를 만든 인물로 1900년대 초 미국 경제에 크게 이바지했던 인물이었다. 이처럼 수혁의 머릿속에는 시험에 대한 생각은 거의 없었다.

그는 시험 중간에 결과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을 얻은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의 점수가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칸타빌레에서 시간을 보낸 수혁은 집에 들어가 잠을 잤다.

‘성적이 나왔나 보네?’

다음 날 아침, 학교 정문을 지나 건물로 향하던 수혁은 3학년 학생들이 1층 게시판 앞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야, 이미희가 1등이 아닌 적은 이번이 처음이지 않아?”

“그러게 1학년 때부터 항상 1등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래?”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등수를 확인하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게시판 앞에는 등수를 확인하고 좌절하는 학생부터 기뻐서 즐거워하는 학생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많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수혁이었다.

‘내가 1등이구나, 어쩐지 시험이 쉽게 느껴졌는데 잘됐다.’

수혁은 게시판 앞에서 등수를 확인했고 1등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수혁아, 예상대로긴 하지만 첫 모의고사부터 1등이라니 대단한데?”

유리가 그를 발견하고는 옆으로 와서 축하해줬다.

“야, 대박이다 진짜. 언제 그렇게 공부를 한 거야? 갑자기 성적이 이렇게 오른다고?”

경현도 어느새 그들에게 다가와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야, 운이 좋았어. 방학 때 유리가 많이 도와줘서 성적이 오른 것 같아.”

수혁은 손사래를 치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내가 도와주긴 뭘, 처음이야 그랬지만 나중에는 내가 오히려 배울 때가 많았어. 두고 봐, 누가 됐든 여간해서는 수혁이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을 걸?”

유리는 수혁의 실력에 대하여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축하해 수혁아.”

미희도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고등학교 들어와 처음으로 2등을 했지만, 등수를 의식하지 않고 축하해주었다.

“응, 고마워. 너도 잘했던데 뭘.”

“채점했을 때 거의 안 틀려서 나름 자신있었는데 놀랍다 수혁아, 혹시 실례가 안 되면 이번에 몇 점 나온 거야?”

“아직 채점 안 해봐서 잘 모르겠네?”

“흠, 이건 내 예상인데 아마 5개 이상은 안 틀렸을 거야.”

“뭐? 전체에서 5개?”

경현은 옆에서 듣다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틀린 개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혁의 점수를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모의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 반으로 돌아갔다.

- 5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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