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내가 보기 전에 믿을 수는 없겠지만 만약 사실이면 정말 대단한 일이야. 자네는 이종격투기를 해도 되겠어.”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한 공수도 단체가 세계에서 유명한 무술가들을 초청해 서로 겨루는 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이들은 저마다의 기술을 선보였고 타 무술가들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이 수련한 무술이 가장 강한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이 대회는 곧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금에 와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회로 발돋움한 상태였다.
‘하긴 이때쯤에 한국에 이종격투기가 소개되었던 것 같아.’
수혁은 철중의 말을 들으며 전생을 떠올렸다.
“요즘 서울에 이종격투기 체육관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네. 이게 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Z-1이라는 대회 때문이지, 복싱과 달리 한 경기에서 제법 큰돈도 만질 수 있어서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네.”
“저도 들어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격투기를 전문적으로 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종욱이를 도와주는 이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수혁은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는 철중의 노력이 무색하게 냉담히 말했다.
“흠, 어쩔 수 없지. 스파링이라도 잘 도와주게.”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혹시 스파링 후 마무리 훈련도 같이 할 수 있어? 내가 볼 때 자네가 종욱이한테 큰 자극이 될 것 같아서.”
“네, 그렇게 하죠.”
수혁은 스파링이 끝난 후 종욱과 함께 관장의 지시에 따라 마무리 훈련을 했다. 간단한 체력훈련과 미트치기 후 스트레칭으로 끝나는 단순한 과정이었다.
“수혁아 고맙다. 네 덕에 훈련에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아.”
종욱은 체육관에서 나와 집에 가려는 수혁을 배웅하고 있었다.
“고맙긴, 내가 너한테 도움 받은 것이 얼만데. 앞으로 열심히 하자.”
“그래.”
둘은 잠시 대화를 나눈 뒤 헤어졌다. 수혁은 지하철을 타고 바로 집으로 갔다. 그리고 자신의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줬다. 혜정과 선웅은 전교1등을 한 수혁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수혁아. 이게 진짜냐, 전체에서 1등이라고?”
선웅은 눈을 크게 뜨며 성적표를 쳐다봤다.
“우리가 어쩌면 수혁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나 봐.”
혜정도 덩달아 놀라 옆에서 거들었다.
“고 3이니까 공부에도 신경을 좀 쓰고 있어요. 더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릴 테니까 기대하세요.”
수혁은 호들갑 떨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 아들이지만 참 대단해.”
“그러게, 걱정할 일이 없다니까?”
그들은 이후에도 한동안 수혁을 칭찬했고 기분 좋은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했다.
늦은 밤 방에 들어온 수혁은 성적표를 책상 서랍에 넣으며 생각했다.
‘여러모로 뿌듯한 하루였어. 계속 1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수혁은 앞으로의 학교생활을 계획하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그는 정해진 일정에 맞추어 단순한 일상을 보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열심히 듣고 쉬는 시간을 틈틈이 활용하여 공부를 했다.
‘지금 실력이면 이 정도만 해도 감이 유지될 거야.’
학교에서는 공부에 매진했다면 방과 후에는 체육관에 가서 종욱과 스파링을 하고 훈련을 했다.
“가면 갈수록 실력이 느는데, 진짜 이러다가 관장님보다도 더 잘해지는 거 아니야?”
종욱은 수혁과 스파링을 한 후 너스레를 떨었다.
“과장이 심한데.”
수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현역의 나라도 장담할 수는 없겠어.”
철중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수혁은 매일 종욱과 훈련을 하면서 힘과 체력이 다시 향상되고 있는 중이었다.
어플의 힘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감안하면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이제는 책을 읽어볼까?’
수혁은 훈련이 끝난 밤이면 칸타빌레에서 종종 경영학 도서도 읽었다. 그에게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것보다 추후에 벌일 사업에 대한 준비가 더 중요했다. 이처럼 수혁은 매일 반복적인 일상을 보냈고 어느덧 2달의 시간이 흘러 5월이 되었다.
‘후, 이제 완전히 봄이네.’
수혁은 교실 창가 자리에 앉아 꽃이 만발한 학교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2달의 시간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는 중간고사에서 또 1등을 기록했다. 문제를 잘 못 읽어 비록 몇 문제를 틀렸지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맞았다.
“수혁이가 또 1등이야?”
“하긴 모의고사도 1등 했는데 놀랍지도 않지. 3학년부터는 시험 유형이 모의고사와 유사하게 나오잖아.”
3학년 때부터는 내신 시험도 수능과 연계된 문제를 다수 출제하였기 때문에 수혁은 공부하는데 지장이 없었고 학생들도 그가 1등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속적인 스파링과 훈련의 결과 같은 기간 동안 힘은 5 체력은 7 상승했다.
‘수치가 상당히 높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2달의 기간 동안 5가 향상되었지만, 수혁은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반 아이들이 다가왔다.
“수혁아.”
“응?”
창밖을 보던 수혁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응 괜찮아, 뭔데?”
수혁은 자세를 고쳐 앉고 들을 준비를 했다.
“내일 운동회 날이잖아. 그래서 말인데 혹시 좀 도와줄 수 있나 해서.......”
아이들은 내일 있을 운동회 때문에 수혁과 상의하러 온 것이었다.
매년 5월이면 선민고등학교에서는 운동회를 했다.
전교생의 관심이 집중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각반의 학생들은 여러 종목 중 하나라도 우승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그랬나? 까먹고 있었네.’
수혁은 운동회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체육대회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뭘 어떻게 도와줘야 되는데?”
“우리가 내일 축구경기가 있는데 괜찮으면 우리랑 같이 안 뛸래?”
학교 측은 운동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며칠 전부터 피구, 농구, 축구 종목에서 예선 경기를 실시했다.
수혁네 반은 농구와 피구는 예선에서 떨어지고 축구는 결승에 진출한 상태였다.
“축구만 우승해도 종합우승할 가능성이 엄청 높은데 이번에 결승 올라온 7반이 워낙 강하거든.”
“7반에 프로 준비하는 애가 둘이나 있어서 우리가 완전 불리해 수혁아.”
수혁은 관심이 없었기에 건성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게네들이 공격수는 아니고 수비 포지션인데 예선부터 준결승까지 득점에 성공한 반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수비력이 좋아.”
“그래?”
“그리고 지난 준결승에서 현배도 다쳐서 내일 경기 못 뛰게 됐거든, 한 번만 도와줘라.”
현배는 같은 반 학생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축구경기에 참가한 에이스였다.
그런 그가 다치자 반 아이들은 사람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 되었다.
‘심정은 이해들 가는데 솔직히 귀찮은데......’
수혁은 내심 떨떠름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퀘스트 창이 활성화되더니 창이 눈 앞에 떴다.
<히든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이 순간에 웬 퀘스트야.’
수혁은 의아했지만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기로 했다.
<반 아이들을 도와 운동회에서 우승하십시오.>
‘운동회에서 우승? 하긴 고등학생 때를 떠올려보면 우승에 목매던 애들이 많았던 것 같아. 한 번 해볼까? 퀘스트 깨서 보상도 얻고 추억도 쌓고 나쁘지 않잖아.’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수혁은 잠깐 고민한 뒤 수락버튼을 클릭했다. 그리고 곧이어 아이들에게 말했다.
“현재 상황은 어때?”
“상황? 어떤 거 말하는 거야?”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애당초 수혁이 운동회에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동회에 나가볼까 하는데 우리 반 순위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축구결승만 이기면 불가능은 아닐 꺼야.”
여러 종목을 석권하여 압도적인 점수를 딴 반이 없었기 때문에 수혁네 반이 축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종합 우승을 생각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 일단 나도 참여하는 걸로 할게. 우리 우승 한 번 해보자.”
“고마워 수혁아.”
“맞아, 우승해야지.”
아이들은 수혁이 우승에 대하여 언급하자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축구 말고 다른 종목들은 뭐가 있어?”
수혁의 물음에 그들은 운동회 날 열리는 여러 종목들을 열거했고 차분히 듣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 날 열리는 것 중에 축구하고 씨름 우승하면 1등할 수 있을까?”
“가능 정도가 아니라 거의 확실하지, 이어달리기가 변수기는 한데 다른 종목들 성적이 엄청 나쁜 건 아니라서 충분할 것 같아.”
“내가 그럼 씨름이랑 축구 모두 참여할게.”
“힘들지 않겠어?”
한 학생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나 수혁은 계획이 다 짜져 있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혀.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돌아들 가. 나도 따로 준비를 좀 해야겠어.”
그는 태평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응, 알겠어. 그럼 경현이한테 이야기해서 참가명단에 네 이름 넣어놓을게.”
“고마워. 아 근데 혹시 축구공 좀 구할 수 있을까? 내가 축구를 안 한지 오래 되서 개인 연습을 좀 할까 하는데.”
수혁은 자리로 돌아가려는 아이들을 다시 불러세웠다.
“내 사물함에 축구공 있는데 그거 쓸래?”
“어, 사용하고 내일 제자리에 놓을게 고맙다.”
대화를 마친 수혁은 책상에 앉아 생각을 하고 있는데 경현이 와서 말을 걸었다.
“수혁아, 이번에 운동회 참여한다며.”
“응.”
“씨름은 그렇다 치더라도 축구해본 적은 있어? 고등학교 내내 너 축구하는 건 못 본거 같은데?”
“축구라....... 해본 적이 없긴 한데, 괜찮을 거야.”
“뭐?”
경현은 터무니없는 그의 말에 황당해했다.
“애들 말로는 네가 우리 반 우승시킬 거라고 했다면서? 잔뜩 기대하고 있던데 괜찮겠어?”
“당연하지. 경현아 내가 허튼소리 하는 거 본 적 있냐?”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건 아니지만…….”
경현은 여전히 미심쩍은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수혁은 씽긋 웃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수업이 끝나고 하교할 시간, 그는 공을 챙기고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조용하니까 좋네, 연습하기에는 딱 이야.’
운동장에 도착한 수혁은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저녁이 다 된 시간이라 그런지 초등학교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가볍게 런닝을 한 뒤 어플을 키고 도움말을 클릭했다.
‘내가 축구 연습하려고 하는데 궁금한 게 있어서, 축구공도 어떻게 보면 도구지?’
<그렇습니다. 축구공도 축구를 하는데 쓰이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전에 다운 받은 만능 도구 이용 프로그램으로 축구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
<가능합니다. 공을 이용해 축구를 하는 것도 도구를 사용하는 것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그게 뭔데?’
<이전의 오르골 목함과 달리 축구공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축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갖고 있어야 합니다. 공을 다루는 것에 대한 사용자 나름의 개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긴 축구공이라고 꼭 그걸로 축구만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수혁은 납득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이 축구공을 가지고 도구 이용 프로그램을 쓴다 하더라도 축구에 관한 기본지식이 없다면 그가 아는 다른 방식으로 축구공을 능숙하게 다루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런 거라면 전혀 문제가 없지.’
수혁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회귀하기 전, 그는 해외축구를 즐겨보는 편이었다.
따라서 축구에 쓰이는 드리블 기술과 슈팅 방법, 패스까지 모든 부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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