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안 되겠다. 이제 겨우 3분밖에 안 남았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시도해봐야겠어.’
상대 팀의 집중견제로 인해 주로 경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던 수혁은 자신이 직접 득점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하프라인 밑으로 내려가더니 수비하는 친구에게 소리를 질렀다.
“패스해!”
“알았어.”
골키퍼에게 패스를 받은 수비수는 볼을 바로 수혁에게 주었다. 그러자 상대편 선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슛 쏠 틈을 주지 마, 모두 가서 막아. 뒤는 내가 지킬게!”
4번 수비수는 동점골을 내준 이후로 수혁의 슈팅력을 경계하고 있었다.
‘훗, 내가 중거리를 노릴 줄 아나 본데 이번에는 다를 거다.’
수혁은 자신이 어젯밤 연습했던 모든 드리블 스킬을 사용해 상대팀을 뚫기 시작했다.
상대 선수 둘이 동시에 달려오자 마르세유 턴을 하여 단숨에 제친 다음 빈 공간에 공을 차서 빠르게 질주했다.
“막아, 막아!”
수혁이 빈 공간에 볼을 치고 달리자 수비수들은 급하게 그의 뒤를 쫓았지만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어느새 골대에는 4번과 5번만 남았다.
둘은 온 신경을 모아서 수혁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무조건 막아야 돼.’
그들은 천천히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그러자 수혁은 슈팅하는 자세를 취했다. 위협을 느낀 4번은 순간적으로 점프를 하며 등을 돌렸지만 그는 슈팅하려던 발로 드리블을 하여 가뿐히 그를 제쳤다.
‘페이크였어? 슛 모션이 강해서 드리블로 전환하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5번 선수는 수비가 자신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그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수혁은 두 발로 공을 잡고 사포를 하여 마지막 수비수를 가볍게 제친 후 공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발리슛을 하여 골을 만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수혁이 역전 골을 성공시키자 첫 골과 비교가 안 되는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7반 학생들은 수비진영에서 드리블을 하여 8명을 제치고 골을 만든 그의 실력에 넋이 빠진 상태였다.
“야, 이건 그냥 말이 안 나오네.”
“저걸 어떻게 막아? 사기야 사기.”
상대팀원들은 그 골을 보고 탄식을 하며 전의를 잃었고 잠시 후 경기는 마무리 되었다.
“수혁아 진짜 대단했어. 너처럼 축구 잘하는 애는 처음 봤어.”
“공부 잘하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축구까지 와.......”
반 아이들은 수혁의 주변으로 몰려와 그를 영웅대접하고 있었다.
3반은 씨름과 축구에서 우승을 거둬 많은 점수를 획득했고 이날 종합우승을 거뒀다.
선생들은 흥분한 학생들을 진정시켰고 곧이어 우승팀에 대한 상품수여식이 진행되었다.
“올해 3학년 우승팀은 3반입니다. 모두 축하해 주세요.”
교장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커다란 박수가 울려 퍼졌고 경현은 대표로 나가 우승상품을 받았다. 그렇게 수여식이 끝나고 학생들은 각자의 반으로 돌아갔다.
“수혁아, 네 덕분에 우리 반이 우승했다.”
“맞아, 너희는 씨름하는 건 못 봤지? 진짜 장난 아니었어.”
“난 축구할 때가 소름이었어.”
“우리가 다 같이 한 거지 뭐.”
3반 학생들은 앞다투어 칭찬을 하였고 수혁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옅은 미소를 띠며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들이 돌아가고 자리에 혼자 남게 되자 퀘스트 창이 활성화 되었다.
<히든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매력 스텟이 3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예상대로 매력수치가 올랐네. 아이들을 기쁘게 해준 거에 대한 보상이겠지? 운동회가 별 건 아니긴 한데 애들이 즐거워하는 거 보니까 나쁘진 않네.’
수혁은 퀘스트가 끝난 것을 확인하고 창을 닫은 뒤 행복한 기분을 만끽했다.
이전에는 몰랐던 단체 활동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그를 뿌듯하게 해주었다.
“수혁아, 너 대단하더라. 나는 무슨 프로 선수인줄 알았어.”
“아니야, 아무리 고교 수준이라지만 웬만한 프로도 그 정도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는 힘들 거야.”
어느새 유리와 경현은 곁에 다가와서 수혁의 활약상에 대하여 설왕설래했다.
“하하,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고 하면 재수 없어 보이겠지?”
수혁이 그들을 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응, 솔직히 좀 그럴 것 같아.”
경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푸훗,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유리는 경현의 말을 듣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그들은 한동안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고 수혁의 기억에 남을 고3 운동회는 끝이 났다.
* * *
운동회가 마무리되자 학생들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수혁은 항상 하던 대로 일정 시간을 할애하여 공부를 했고 남는 시간에는 종욱의 훈련을 도와주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리고 늦은 밤이나 새벽에는 가끔씩 번역작업을 해서 우진에게 주었다. 바쁘게 지내다 보니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어느 새 6월이 되었다.
그 사이 적지 않은 일이 발생했었다.
“축하해 종욱아.”
“네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야.”
“우리끼리 무슨 공치사야. 이제 프로만 노리면 되겠어.”
종욱은 수혁과 꾸준히 훈련을 한 뒤 5월 말에 전국대회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었다.
체육관 관장 철중은 대회 이후에도 수혁에게 정식으로 운동을 배우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더 이상 체육관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6월에는 모의고사와 기말시험이 있었다.
“참나, 또 1등이네. 이제 놀랍지도 않다.”
경현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게시판에 배치된 등수 표를 보며 말했다.
“이제는 학원 강사들이랑 다른 학교 학생들도 수혁이에 대해서 아는 것 같던데? 나한테 너희 학교 1등한 애 누구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조금 귀찮더라고.”
미희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수혁은 6월 모의고사와 기말고사에서 저번과 마찬가지로 전교 1등을 했다.
학교 내신뿐만 아니라 전국 석차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자 학원가나 다른 학교에서도 점점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공부는 이제 유지만 하면 될 것 같아.’
수혁은 좋은 성적이 반복되자 마음이 편해졌고 부모님은 말할 필요 없이 기뻐했다. 학교 일정들을 마무리 한 그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고 방학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곧 있으면 방학인데 웬만하면 학교에 나와서 자율학습을 하면 좋겠다. 우리학교가 자율을 보장해준다지만 왠지 걱정이 되는구나. 고3이라 다들 긴장하며 지내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절제하는 생활이 중요하다.”
담임은 6월 중순이 지난 어느 날 학생들에게 아침조회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2학기 때는 문이과 각각 20명씩 뽑아서 특별반을 만들어 운영하는 건 알고 있지? 해당되는 사람들은 조금 있다가 금일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와라.”
경자가 이야기하는 특별반은 선민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특이한 제도인데 전교에서 2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을 문이과 양쪽에서 선발하여 반을 만들어 운영하는 제도다.
문과 이과는 반이 따로 운영되며 공인받은 20명의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따로 떨어져 수능 전까지 함께 공부하게 된다.
‘조금 있다가 가봐야겠군.’
수혁은 자신도 특별반에 해당하기에 담임을 찾아가기로 했다. 어차피 반에는 자신을 포함해서 특별반에 해당하는 학생이 3명밖에 안 됐기 때문에 여유 있게 가도 상관없었다.
“이제 2학기 때는 떨어져 지내겠다.”
경현은 수혁의 자리로 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반만 다른 건데 뭘. 쉬는 시간이나 이럴 때는 볼 수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어째 네가 점점 먼 곳으로 가는 기분이 든다. 나도 분발해야겠어.”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지내.”
경현은 요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수혁을 보며 자극을 받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도 수혁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공부는 아닌 것 같고 나름대로 뭔가를 준비해야겠어. 그래야 너한테 뭐라도 도움이 돼지.”
경현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자 수혁은 담임을 보러 교무실에 갔다.
“왔니?”
“네.”
경자는 서류를 정리하다가 자연스럽게 수혁을 맞았다.
“따로 자료를 보고 상담할 필요도 없겠어. 수혁이는 우리 학교 1등이니까.”
“열심히 해야죠.”
수혁은 부끄러운 지 머리를 긁적였다. 담임은 그런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특별반에 가게 되면 이전과는 많이 다를 거야.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러 들어오지만 대부분 수업을 하지 않고 자율학습을 시키거든. 그게 다 너희들을 믿기 때문에 주는 특혜야.”
“넵.”
“수혁이는 크게 걱정 안하지만 가끔 중간평가에서 성적이 떨어진 애들은 원래 반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열심히 해야 된다.”
“알겠습니다.”
특별반은 고정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기 도중 반을 나가거나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이 발생하곤 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개인자습을 선호하기 때문에 다들 이곳에 들어오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잘할 거라고 믿는다.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오렴. 아 그리고 특별반 학부모들은 방학식 다음날에 설명회가 있으니까 어머니나 아버지 중 편한 분 학교에 오시라고 해.”
“네 선생님.”
“그래, 들어가 봐.”
수혁은 담임에게 인사를 하고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바로 집에 가서 부모님과 대화를 나눠야겠다.’
오후수업을 마친 수혁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집으로 향했다.
선웅과 혜정은 집에 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집을 깨끗이 청소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선웅이 먼저 집에 왔고 혜정도 곧 이어 도착했다.
수혁은 부모를 불러 담임의 말을 전달했다.
“제가 이번에 특별반에 가게 됐는데 부모님들 대상으로 설명회를 연데요. 그래서 두 분 중에서 한 분이 참석을 하셔야 될 것 같아요.”
“그렇구나 수혁아빠, 괜찮으면 내가 가려고 하는데 괜찮지?”
혜정은 선웅이 고민하기도 전에 먼저 대답을 했다.
“그럼 선생님한테는 엄마가 가신다고 말씀드릴게요.”
“정확한 날짜가 언제니? 미리 일 쉰다고 말해놔야겠다.”
“당신 괜찮겠어? 내가 가도 되는데.”
선웅은 혜정을 배려하려는 마음에 말을 꺼냈다.
“아니야,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 수혁이가 공부 잘해서 가는 거잖아. 이런 자리라면 언제든지 가고 싶어.”
혜정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살면서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자식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설명회가 괜히 기대되었다.
‘가면 선생님들한테 수혁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겠지?’
“그냥 엄마가 가는 걸로 하죠.”
“수고스럽겠지만 부탁할 게.”
혜정의 마음을 모르는 수혁과 선웅은 그녀가 가는 것에 선선히 동의했다. 그리고 며칠 뒤 학교에서 방학식을 했다.
담임은 아이들에게 간단한 당부를 한 뒤 방학식을 짧게 진행했다. 오전에 방학식을 마치고 돌아온 수혁은 오랜만에 칸타빌레에 들리기로 했다.
‘간만에 서점에 가볼까?’
수혁은 서점에 가서 경영학 도서를 읽었고 다섯 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어? 와 계셨네요, 벌써 퇴근하셨어요?
“좀 전에 사모님한테 내일까지 쉰다고 말씀드리고 오는 길이야 그건 그렇고 수혁아, 이 옷 어떠니?”
수혁은 혜정이 집에 있는 옷들을 꺼내 벌여놓은 것을 발견했다.
“뭐 하러 이런 것까지 신경 써요. 그냥 평소 때처럼 가세요. 단순한 설명회일 뿐이에요.”
수혁은 혜정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
“아니야 담임선생님도 만나고 다른 부모들도 다 오는 자리에 어떻게 그러니? 내가 잘해야 너도 욕 안 먹는 거야.”
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옷들을 하나하나 비교해보며 내일 있을 설명회 준비를 했다. 수혁은 만류하려고 했으나 이내 포기하고 방에 들어갔다.
* * *
설명회 날이 되었다. 혜정은 비싼 옷은 아니어도 그나마 괜찮은 옷을 꺼내 입은 뒤 곱게 단장을 하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려니까 좀 긴장 되는 걸.’
혜정은 1학년 때 이후로 처음 학교에 가게 되어서 약간 긴장이 되었다.
과거에 수혁의 담임으로 인해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명회는 특별반으로 활용될 장소에서 개최되었다.
“어머 미희 엄마, 오셨어요?”
“네, 정식이는 잘 지내죠?”
“네 그럼요.”
반에 도착한 혜정은 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니 학부모들은 이미 서로 아는 사이인 것처럼 보였고 이는 그녀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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