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65화 (65/316)

65화

“저 왔어요.”

“아들 왔어? 뭐 하느라 이제 오는 거야?”

선웅은 수혁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혜정은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좀 있다 시간 괜찮으세요?”

“뭔데? 말해봐라.”

“저녁 먹고 엄마랑 다 같이 이야기해요.”

“알겠어.”

수혁과 가족들은 혜정이 준비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잠시 후 그들은 안방에 앉아 대화할 준비를 했다.

“그래, 수혁아. 무슨 일이야?”

“네, 제가 아버지랑 엄마한테 제안할 게 있어서요.”

수혁은 긴장이 되었다. 자신의 계획을 들으면 부모님께서 반대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수혁아 왜 멍하니 있어 빨리 말해봐.”

혜정은 궁금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수혁을 재촉했다.

“제가 고민을 해봤는데 우리 음식점을 해보는 게 어떨까요?”

수혁은 에둘러 이야기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음식점을 하자고?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선웅과 혜정은 수혁의 말에 상당히 놀란 반응을 보였다.

“말씀드린 데로에요. 지금까지 아버지랑 엄마 모두 힘들게 일해 오셨잖아요. 음식점을 하게 되면 남의 눈치 보는 일도 줄어들 거고 잘 되면 돈도 잘 벌 수 있어요.”

“수혁아,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너무 당황스럽구나, 현재 빚을 갚느라 여유도 없고 가게를 운영해 본 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하냐?”

수혁의 예상대로 대화는 쉽게 흘러가지 않고 있었다.

“그 부분은 전혀 문제없습니다. 제가 대책을 짜놨어요.”

그는 칸타빌레에서 가져온 자영업에 관련된 책과 번역본을 내놓았다.

“이건 뭐야?”

선웅은 수혁이 꺼내놓은 것들을 보며 물었다.

“이것들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요, 혹시 한 달 정도 일을 쉴 수 있어요? 앞으로 엄마는 이 프린트를 보고 요리를 익히셔야 되고요, 아버지는 주변의 음식점들을 돌아다니면서 장사 노하우를 공부하셔야 되요.”

“수혁아. 좀 차근차근 설명을 해봐, 난 현재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

선웅은 수혁에게 채근을 했지만 그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 이야기했다.

“저는 엄마랑 아버지가 각자 맡은 일을 처리 할 동안 돈을 모을 거예요, 아버지는 말씀드린 대로 괜찮은 가게자리 알아보시고 엄마랑 상의해서 메뉴 구성 같은 것을 논의 해보세요.”

“뭐? 지금 네 돈으로 가게를 차리라는 거야?”

선웅은 대화 중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아버지, 옛날에 말씀드렸는데 제가 아는 교수님이랑 같이 작업한다고 했잖아요. 그 뒤에도 꾸준히 일을 같이 했는데 잘 풀려서 들어온 돈이 있어요,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되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너한테 신세를 지는 게 용납이 안 되니까 하는 말 아니냐?”

선웅은 해명을 듣고도 여전히 완고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 혜정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수혁아, 이 프린트 보고 요리를 익히고 음식점에 필요한 메뉴를 짜면 된다는 거지?”

“여보......”

혜정이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자 선웅은 그녀를 제지하려 했다.

“내가 최근에 느낀 건데 우리가 빨리 자리를 잡는 것이 수혁이 부담을 덜어주는 거야. 어차피 한 달 정도는 일 안해도 버틸 생활비는 있잖아.”

혜정은 선웅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지난 설명회 사건 때 겪은 것을 떠올리며 수혁의 제안에 동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창업을 하려면 월세나 권리비 등 해서 1억 가까이 들 건데 이 돈을 어떻게 수혁이한테 받아?”

“우리가 장사 잘해서 갚으면 되지. 그게 무슨 문제야.”

혜정은 이미 프린트를 훑어보며 내용을 살피고 있었다.

“제가 볼 때 엄마는 요리를 잘하시니까 금방 익히실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 저를 믿고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수혁은 고개를 숙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자 선웅은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나도 너희 엄마한테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가 바로 서야 네가 앞으로 사는데 지장이 없겠어. 내일부터 당장 이것저것 알아볼게.”

선웅은 수혁이 꺼내놓은 책을 손에 쥐고 창업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이날 저녁 그들은 앞으로 운영하게 될 가게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고 밤늦은 시간이 돼서야 잠에 들었다.

‘생각보다 돈이 꽤 많이 모였는데?’

수혁은 은행에 가서 통장 잔고를 확인해보았다. 지식인협회에서 매달 들어오는 돈과 출판사에서 받은 계약금 그리고 인세를 포함하니 대략 5천만원 정도의 돈이 있었다.

수혁이 번역한 책은 의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잘 팔리고 있었다.

‘아직은 부족해 돈을 더 모아야겠어.’

수혁은 오랜만에 우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있지 않아 남성의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오, 수혁아. 웬일이야? 먼저 연락을 다 주고.”

“안녕하세요. 교수님. 잘 지내셨어요?”

평소에 먼저 연락을 하곤 했던 우진은 수혁에게 전화가 오자 반가워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까지 제가 번역한 것들 있잖아요.”

“응, 매달 협회에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어. 걱정 안 해도 돼.”

“네, 그중 쓸 만한 것들은 출판을 진행하면 어떨까 해서 연락드렸어요.”

“아, 안 그래도 출판 관련해서 자네한테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깜빡 하고 있었네.”

우진은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 듯 보였다.

“자네가 예전에 번역했던 것들 중에 고대 제자백가 시대에 활동했던 자에 대한 자료 있잖아. 그것도 지금 출판 논의 중에 있다네.”

“그렇군요. 잘 됐습니다.”

“2주 전에 출판 관계자와 연락을 했었는데 내가 깜빡하고 연락을 못 했네. 내 전화 끊고 바로 알아볼게.”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출판 논의되는 것들이 있으면 교수님께서 잘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후후, 걱정 붙들어 매라고.”

그들은 그 후에도 한참을 고서 번역에 관한 것과 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우선 번역한 고서들을 출판하는 것은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당장 한 달 뒤에 목돈은 어떻게 마련하지?’

수혁은 은행을 나와 시내를 걸으며 생각했다.

‘부동산으로 해보자니 당장 목돈이 없고 주식으로 벌자니 아직 거래하기에는 나이가 어리니....... 이래가지고는 미래를 안다고 해도 당장 써먹기는 힘들겠어.’

한참을 고민하며 걷던 수혁은 별안간 좋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과거 종욱이 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예전에 종욱이가 전문 선수들과 스파링을 해주면 그에 맞는 수당을 받는다고 했어. 그래 이거야. 여러 격투기를 할 줄 아는 장점을 살려서 스파링으로 돈을 벌면 되겠어.’

수혁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종욱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그는 전화를 받았고 체육관에서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내가 지금 체육관으로 갈 테니까 거기서 보자.”

“어, 좀 있다 봐.”

수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복싱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철에서 내려 건물에 도착한 그는 바로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왔어?”

종욱은 더운 여름날 구슬땀을 흘리며 미트를 치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김철중 관장이 보호장구와 미트를 착용하고 자세를 지도해주고 있었다.

“수혁이구나. 온다고는 들었는데 어쩐 일이야?”

철중은 종욱에게 수건을 건네주며 수혁을 쳐다봤다.

“상의드릴 것이 있어서요. 훈련 끝나셨으면 잠깐만 대화할 수 있을까요?”

“누구? 나랑?”

“네 관장님.”

“뭐야, 수혁아. 나보러 온 것 아니었어?”

“그렇긴 한데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자.”

철중은 끼고 있던 미트 장갑과 보호구를 벗었다.

“종욱아 넌 가서 아까 배운 자세로 샌드백을 치고 있어라. 수혁아 사무실로 가자.”

철중은 수혁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체육관이 푹푹 찌는 날씨로 인해 더웠던 것에 반해 사무실 안은 에어콘이 틀어져 있어 시원했다.

“음료수 마실래?”

“네, 감사합니다.”

철중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수혁에게 주었다.

그는 고된 훈련으로 생긴 갈증을 달래기 위해 음료수를 단숨에 들이켰다.

“무슨 일로 이 더위에 여길 온 거야? 운동을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거라면 문은 언제든지 열려있다.”

철중은 내심 기대하며 물었다.

“죄송하지만 복싱을 배우려고 온 건 아닙니다. 전 스파링을 뛰고 싶어서 관장님과 상의하러 왔어요. 빠른 시일 내에 목돈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흠, 스파링 파트너로 수당을 받는 것 말이냐?”

“네.”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스파링 파트너가 필요한 체육관들을 많이 아는 편이긴 하지. 너 정도의 실력이면 많은 곳에서 환영해줄 거야. 원한다면 소개시켜줄게. 근데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네, 듣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80년대 이후 복싱의 인기는 많이 시들어버렸다. 따라서 복싱인구는 계속 감소세에 있어. 각 체급별로 고위 랭킹 전과 타이틀전을 준비하는 사람을 모두 소개시켜 줘도 목돈을 만지는 것이 쉽지 않을 거야.”

“그렇군요.”

철중은 대한민국 복싱의 현실을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더군다나 체육관들 중에는 사정이 좋지 않은 곳도 많아.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시장이 큰 나라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스파링으로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다.”

철중은 목소리는 어느새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그러나 수혁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복싱만 한다고 했나요? 킥복싱, 무에타이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스파링을 뛸 생각입니다.”

“뭐라고?”

철중은 수혁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최근에 이종격투기도 유행하고 있고 킥복싱이나 무에타이도 전국대회가 있잖아요. 아마 스파링할 수 있는 좋은 상대를 구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건 맞지만 넌 어떻게 스파링하려고 하는 거냐? 네 말이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해?”

철중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관장님을 뵈러 왔잖아요. 예전에 한국격투기협회 부회장이라고 말씀하셨던 거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수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을 했다.

“그야 그렇지.”

“그러면 관장님이 소개시켜줄 수 있지 않나요?”

“내가 서울에 있는 유명한 격투기 체육관들은 다 꿰고 있기는 해. 하지만 문제가 있어. 내가 뭘 믿고 관장님들께 널 소개시켜 주겠어?”

철중은 다양한 곳에 스파링을 소개시켜줄 능력은 됐지만, 수혁의 실력이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증명하면 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관장님이 다른 체육관에 잘 말씀해주셔서 시간 낭비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수혁은 자신감이 가득한 상태였기 때문에 복싱 외의 다른 체육관에 갔을 때도 테스트나 검증 같은 절차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 그게 문제야. 내가 소개시켜줬는데 다른 관장들이 실망했다고 생각해 봐, 그러면 내가 무슨 면목이 있겠냐고. 이래 봐도 명색이 협회 부회장인데 아무나 추천할 수 있겠어?”

“혹시 선수들을 보면 실력을 대충이라도 파악하실 수는 있으십니까?”

“물론이지, 내가 이래 봐도 Z-1경기뿐만 아니라 국내의 모든 투기 대회들은 모두 참관하는 사람이야.”

철중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면 나오시죠. 제가 실력을 증명해보이겠습니다.”

수혁은 의자에서 일어나 사무실에서 나갈 것을 권했다.

“수혁아, 예전에 네가 여러 격투기들을 할 수 있다고 말했었지만 난 믿지 않았어. 헛수고 하지 말고 종욱이랑 놀다가 돌아가라.”

“확인해 보고 판단해주세요. 손해 보는 건 아니잖아요?”

그는 문을 열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뭘 하려고 하는 거지? 도무지 모르겠네.’

철중은 머리를 긁으며 얼떨결에 따라나섰다. 종욱은 샌드백을 치다가 사무실에서 나오는 그들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한 거야?”

“어, 종욱아 그냥 관장님이 내 실력을 조금 의심하시는 것 같아서........ 혹시, 괜찮으면 좀 있다가 스파링해줄 수 있어?”

“문제없지. 준비되면 알려줘.”

수혁은 종욱과 대화를 끝낸 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증명할 거냐? 한 번 보여줘 봐.’

철중은 팔짱을 낀 채 몸을 푸는 수혁을 관찰하고 있었다.

- 6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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