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1999년 8월의 여름은 무척 더웠다.
태양의 햇살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서울의 평균기온은 매일 34도 이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수혁과 가족들은 이런 날씨 속에서 8월 말에 가게를 오픈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나무를 대패질 하면 된다는 거지?”
“응, 빨리 마무리하고 저쪽도 손을 봐야 한다고.”
선웅은 더운 여름에 땀을 훔쳐 가며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돕고 있었다. 그는 지인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업체에 공사를 맡겼는데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작업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아, 혹시 주방 일 해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네, 저희가 잠깐 일할 사람이 아니라 오래 일할 사람을 구해서요.”
선웅이 밖에서 구슬땀을 흘릴 때 혜정은 개업에 맞춰 직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전통 한정식 집이다 보니까 반찬을 만들고 음식을 하는데 손이 많이 갔기 때문에 그녀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들의 서비스도 중요했기 때문에 괜찮은 직원을 뽑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렇게 선웅과 혜정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그 때 수혁은 칸타빌레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홈페이지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복잡하진 않네.’
수혁은 음식점을 홍보하기 위해서 웹 사이트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는 경영학을 공부하며 습득한 지식들 덕분에 홍보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터넷 사용자들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웹사이트를 이용한 홍보는 괜찮은 수단이었다.
‘홈페이지 제작이 나중에 온라인 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 더 열심히 해야겠어.’
수혁은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서 웹 디자인에 관한 책을 몇 권 구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큰 전자상가에 가서 웹 디자인 프로그램 CD도 샀다.
그는 홈페이지 만드는 법에 대한 내용을 빠르게 숙지한 다음 사무실의 컴퓨터를 켠 뒤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어플의 도움을 톡톡히 받는군.’
수혁은 웹 사이트 제작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후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만능도구 이용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실행이 되면서 물 흐르듯이 홈페이지가 만들어져갔다.
‘이 정도 속도면 금방 만들겠어.’
수혁은 이전 생에서 봤던 여러 홈페이지들의 장점들을 떠올리며 제작에 몰두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홈페이지가 거의 다 완성이 되어갈 때 쯤, 그는 경현과 종욱에게 연락하여 만나자고 했다.
“수혁아, 뭐 때문에 부른 거야?”
종욱은 오토바이를 타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타났다. 수혁은 그들을 가게 근처에 위치한 카페로 오라고 했다.
“친구 한 명 더 오기로 했는데 그때 가서 말해줄게.”
“알겠어.”
잠시 후 경현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경현아, 여기야.”
“뭐 마실래? 종욱아 너도 골라.”
“오, 네가 사는 거야? 고맙다.”
“고마워 수혁아.”
수혁과 아이들은 커피를 주문한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날도 더운데 와줘서 고마워. 사실 부탁할 게 좀 있어서 너희들 불렀어.”
“무슨 일인데?”
“왠지 그냥 보자고 한 것 같지는 않더라.”
종욱과 경현은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수혁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는 메고 온 가방에서 족히 수천 장은 돼 보이는 종이 다발을 꺼냈다.
“이것들은 뭐야?”
종욱은 수혁이 가져온 전단지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이거 내가 직접 디자인 한 건데 괜찮지? 일주일 뒤에 우리 부모님이 여기 근처에서 한식당을 여시거든, 그래서 홍보 좀 하려고 너희들을 불렀어.”
“음식점 이름이 현월당인가보네?‘
전단지 상단에는 가게명이 크게 적혀있었다.
선웅은 새 간판을 달기 위해 가족들과 가게 명을 정했다. 그들은 고풍스러운 한식당에 어울리는 명칭을 고민하다가 현월당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내었다.
“깔끔하게 잘 만들었네. 우리가 이걸 돌리면 되는 거지?”
경현은 전단지를 살펴보며 말했다.
“응, 날도 더운데 수고 좀 해줘야겠어, 여기 근처에 있는 아파트 단지들이랑 주택들 중심으로 싹 돌릴 거야, 대신 내가 일당으로 10만원씩 챙겨줄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파트 현관에 자동문이 설치되고 자체적으로 전단지 배포도 금지하는 곳들이 많이 생겼지만, 이때만 해도 아파트에 전단지 돌리는데 문제 생길 일은 거의 없었다.
“무슨 10만원이나 주냐, 친구 돕는 건데 그냥 할 수도 있지.”
종욱이 말했다.
“아니야, 그게 편해. 지금 점심시간이니까 커피 마시고 바로 나가서 돌리자 저쪽에 있는 아파트 단지부터 해서 부지런히 돌리면 저녁이면 끝날 거야.”
“알겠어.”
수혁은 친구들은 잠시 후 카페에서 나와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고 저녁이 다 된 시점에 일이 끝났다.
그는 아이들에게 일당을 준 후 저녁까지 먹이고 헤어졌다.
개업까지 5일밖에 남지 않은 어느 날. 현월당은 공사를 모두 마치고 마지막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잠깐만 지나갈게.”
선웅은 요리에 쓸 식자재들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각종 채소와 고기들을 커다란 냉장고에 넣고 있었고 혜정은 주방에서 일할 직원과 서빙을 할 직원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시키는 중이었다.
“아침에 일찍 나와서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늘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드릴게요.”
다들 코앞으로 다가온 식당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수혁은 최근에 구입한 카메라로 음식들과 식당내부를 찍고 있었다.
그는 혜정에게 요리를 해달라고 미리 부탁을 했고 그녀는 어차피 직원교육이 끝나면 회식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겸사겸사 만들었다.
“전 먼저 가볼게요. 좀 있다 집에서 뵈요.”
“알았다.”
수혁은 한창 일하고 있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칸타빌레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점에 도착한 그는 사무실 컴퓨터를 켠 뒤 홈페이지에 사진들을 삽입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다른 식당들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수혁은 검색을 하여 다른 음식점들의 홈페이지를 살펴보았다.
99년도라는 것을 감안하여 홈페이지가 많지 않을 줄 알았지만 의외로 여러 업체들이 인터넷으로 자신의 가게를 홍보하고 있었다.
‘대충 봤는데 그래도 내 것이 가장 낫네.’
수혁은 한 시간 가량의 시간을 투자해서 타 음식점들의 홈페이지를 관찰했다.
대부분의 홈페이지는 메뉴와 가격, 위치에 관한 정보만 나와 있었는데 수혁이 만든 것에 비하면 조잡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이제 등록해야겠다.’
수혁은 현월당 홈페이지를 사이트에 올렸다.
‘사람들이 많이 오려나? 흠, 두고 보면 알겠지?’
그는 사이트에 접속자수를 파악할 수 있는 기능을 넣어놨기 때문에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이틀이 지났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홈페이지에 방문하는 사람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후....... 뭐가 문제지?’
방문자 수를 확인한 수혁은 실망스러운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그는 상황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고민을 해봤다.
‘아무래도, 우리 홈페이지가 다른 사람들 것보다 늦게 업로드 돼서 그런 거 같아. 무슨 방법이 없을까?’
포털 사이트에 한식당을 검색하면 현월당은 기존의 것들에 밀려 저 멀리 하단에 표시되어 있는 상태였다.
‘한 번 시도해보자.’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수혁은 포털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푸른닷컴이죠? 네, 제가 이번에 사이트에 홈페이지를 하나 등록했는데요.”
수혁은 한 동안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과거에도 파워링크 개념은 통하는 구나. 이젠 문제없겠어.’
수혁은 담당자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줄 테니 특정 검색어를 치면 자신의 홈페이지를 상단에 위치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담당자는 사이트 원칙상 인기 순으로 사이트들이 표시되기에 어렵다고 했지만, 수혁은 끈질기게 설득했고 끝내 거래를 성사시켰다.
‘확인해볼까?’
통화를 한 후 몇 시간이 지나자 수혁은 한식당과 서울 음식점을 검색했다. 그러자 이전과는 달리 현월당이 사이트 상단에 노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워낙 유명한 곳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했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그로부터 다시 이틀이 흘렀다. 수혁은 이전에 비해 방문자 수가 3배 이상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시판을 보니까 개업식 때 사람들이 제법 붐비겠는데?’
수혁은 다가오는 개업식을 차분히 기다렸다.
3일 후, 수혁네 가족들은 현월당을 오픈했다. 가게 앞에는 선웅의 지인들이 보낸 화환들이 놓여 있을 뿐 특별한 행사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행사도우미라도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 다른 데는 오픈할 때 음악도 크게 틀고 사람들이 와서 춤추고 호객행위도 하고 그러던데.”
선웅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현월당 입구에 서 있었다.
“아니에요, 식당 컨셉상 그런 호객 행위는 어울리지 않아요.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올 거니까 편하게 기다려 봐요.”
“그래, 철저히 준비했으니까 믿고 기다려보자.”
현월당은 일반식당과 같이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는 공간도 있었지만,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룸들도 구비되어 있었다.
혜정은 이런 식당의 특성에 맞게 코스요리 외에 간단한 백반 정식과 같이 가격부담이 비교적 덜한 메뉴도 넣어 놓았다.
“여기가 저번에 말했던 곳이야,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아봤는데 메뉴 구성도 괜찮고 내부도 깔끔하더라고.”
“그래? 애들아 한식 괜찮지?”
“뭐 맛만 있으면 상관없어.”
중년의 남성이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가게로 오고 있었다.
선웅은 그들을 발견하자 급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맞을 준비를 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시죠?”
“4명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선웅은 그들을 자리로 안내한 뒤 주문을 받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백반정식을 시켰고 곧 음식이 나왔다.
“와, 그릇 예쁜 거 봐. 반찬들도 깔끔해서 딱 내 입맛인데?”
“이 연근튀김 먹어봤어? 엄청 맛있는데?”
“간을 세게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맛을 냈을까?”
그들은 혜정이 요리한 음식들을 먹으며 연신 감탄사를 토해 내고 있었다.
“역시 엄마 음식솜씨는 대단한 것 같아요.”
“그게 다 네가 도와줘서 그런 것 아니냐?”
“어? 손님들이에요.”
수혁과 선웅은 흐뭇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손님들이 연달아 계속해서 들어왔다.
“좀 있다가 사람들이 더 올 거라서 그런데 코스요리로 6인 가능한가요?”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선웅은 그들을 룸으로 안내한 뒤 직원들을 시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게 시켰다.
전단지와 홈페이지로 홍보했던 것이 성공했던 덕분일까 어느새 가게는 손님으로 꽉 찼고 밖에는 대기 손님까지 생기게 되었다.
“수혁아, 바쁘니까 오늘만 도와줘라.”
“당연하죠. 보니까 오늘 고생 좀 하겠는데요?”
선웅은 쉼 없이 움직이며 말했다.
가게 오픈 날이라 그런지 수혁을 포함한 직원들은 일에 익숙한 상태가 아니었다.
“잠시만 안에 좀 갔다 올게요.”
“빨리 와야 된다.”
“네.”
수혁은 본격적으로 일하기 위해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 가게 일에 발 벗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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