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영업은 늦은 시각까지 계속되었고 가게 문을 닫고 정리가 끝나자 오후 11시쯤이 되었다.
선웅과 혜정은 테이블에 앉아서 첫 매출을 정산하고 있었다.
“코스요리가 생각보다 많이 팔려서 수익이 꽤 나왔어. 오늘 하루 320만원이나 벌었어.”
선웅은 자신이 번 돈이 믿어지지 않은 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현금을 바라봤다.
“개업 날이라서 손님들이 몰린 거일 수도 있으니까 방심하면 안 돼.”
혜정은 의외로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네, 앞으로 이것보다 더 잘 되는 날도 안 되는 날도 있을 테니까 일희일비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오늘 하루를 성공적으로 보내서 기분이 좋네요.”
수혁은 옷을 갈아입고 나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일하면서 보니까 개선해야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먼저 대기하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예약제를 도입해서 코스요리 준비 시간을 단축할 필요도 있고요.”
수혁은 일하면서 느낀 점들을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그러자 선웅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네 말이 맞아. 준비가 덜 된 부분이 있어서 손님들께 불편을 끼친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하루빨리 일에 익숙해져야 돼. 직원들도 그렇고 다들 허둥지둥 될 때가 있었어.”
“그거야 뭐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 어딨겠어. 우리 심각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맥주나 한잔할까?”
혜정은 가벼운 뒤풀이를 하고 싶어 했다.
“좋지, 수혁아 너도 딱 한 잔만 해라.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어디 가서 실수하지 않는다.”
“하하, 저는 그냥 음료수 마실게요. 가서 맥주 가져올게요.”
수혁은 자리에 일어나 맥주 2병과 탄산음료를 가지고 왔다.
“아들, 조금만 기다려줘. 지금 빚이 좀 있는데 이걸 갚고 나면 빌려준 돈은 바로 갚을게.”
선웅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말했다.
“빌려준 돈이라니요. 그런 건 신경 안 쓰셔도 되요.”
수혁은 손을 내저으며 돈 받을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아무래도 우리가 아들 하나는 잘 둔 것 같아. 고마워 아들.”
혜정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미소를 지으며 수혁을 바라봤다.
이날 밤 수혁과 가족들은 현월당의 첫 스타트를 잘 끊은 기념으로 술을 마시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 * *
‘휴, 바쁜 한 주였어.’
수혁은 개학을 하루 앞둔 날 자신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개학 전 마지막 한주를 부모님을 도와 현월당에서 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님이 계속 늘어났기에 일손은 부족했고 급기야 추가로 직원을 더 뽑아야 되는 지경이 되었다.
‘또 12시나 되서야 오시려나?’
선웅은 개학 이틀 전부터 수혁에게 가게에 그만 나오고 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부모님은 이제 매일 아침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비록 사업을 하려고 모아둔 밑천을 다 쓰긴 했지만, 성인이 되면 돈은 금방 모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돈으로 작게나마 사업체를 꾸려본 수혁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사업 아이템의 선정부터, 홍보 그리고 영업까지 두루두루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대학에 입학하면 바로 회사를 설립해야겠어.’
수혁은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며 밤을 보냈다.
* * *
방학은 끝이 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는 한풀 꺾이고 이른 아침에는 선선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특별반에서의 첫날이네.’
수혁은 학교 정문을 지나 3학년들이 쓰는 건물로 들어갔다.
일반 반들은 건물의 2층과 3층에 몰려있는 반면에 특별반은 건물 1층에 위치해 있었다.
이는 학교에서 특별반을 배려하기 위해 내린 조치 중 하나였다.
“수혁아 오늘부터 우리 같은 반이네?”
수혁이 반에 들어가자 유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설레는 표정의 유리와 달리 반의 분위기는 다소 무거웠다.
학생들은 이제 특별반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리에 앉아 조용히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나가서 이야기할까?”
수혁은 반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유리에게 말했다.
“그래, 안 그래도 나도 그렇게 하려고 했어.”
그들은 밖에 나와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복도에서 미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다들 나와 있네? 이제 우리 모두 같은 반이구나.”
미희는 반가움을 표시하며 수혁과 유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뭔가 반이 넓어진 것 같은데?”
수혁이 복도에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응, 특별반은 다른 반들보다 좀 더 넓은 것 같아. 그리고 한 반에 20명씩 밖에 안 되니까 이전에 비해 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 것도 있고.”
미희는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특별반은 확실히 다른 반들과 비교해봤을 때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지만 수혁은 아이들이 떠드는 활기있는 분위기가 그리웠다.
그들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아침조회를 하러 선생이 오는 것을 보고 교실로 들어갔다.
“안녕, 난 특별1반을 맞게 된 김형식이라고 한다. 만나서 반가워.”
다소 젊어 보이는 남자 선생이 조회시간이 되자 반에 들어와 자기소개를 했다.
“다들 알겠지만 수능이 얼마 안 남았어. 입시상담을 하고 싶은 사람은 1층 끝에 있는 상담실로 와라. 물론 기존에 있던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나하고 상의하는 것이 훨씬 나을 거야.”
형식은 선민고등학교에서 특별히 채용한 입시 전문가였다.
그는 학원가에서 먼저 이름을 날리다가 스카우트 되어 현재는 교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1층 상담실은 오직 특별반 학생들에게만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너희들과 효율적으로 소통을 하기 위해서 반장을 뽑으려고 하는데 항상 해오던 데로 반우리 학교 1등인 사람이 반장을 맡을 거야. 강수혁, 네가 오늘부터 특별반 반장이다.”
형식은 관례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혁을 반장으로 지목했다.
“선생님, 혹시 다른 친구에게 양보해도 되나요? 저보다는 적합한 학생들이 있을 것 같아서요.”
형식의 말을 들은 수혁은 손을 들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그는 반장 자리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도 없었고 공부 외에는 학교에서 다른 걸로 신경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직책도 맡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뜻밖의 소리를 들은 형식은 난감해했다. 그런데 그때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민정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괜찮으면 제가 반장을 해도 될까요?”
정식은 선생님들이 편의를 봐줘 각 학년마다 반장을 도맡아 했었다.
그는 특별반에서 자신이 반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막상 수혁이 그 자리를 포기하려하자 기회를 잡으려고 했다.
“흠, 네가 해도 괜찮긴 한데....... 강수혁, 정말 안 할 거야? 반장이 되면 내가 집중적으로 케어도 해주고 좋은 점이 한 두 개가 아니라고. 남들은 하고 싶어서 난리인 자린데 참 이상하네.”
형식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네, 저 말고 다른 친구가 하는 게 반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관심이 없는 일에는 잘 집중을 못하는 편이거든요.”
수혁은 재차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형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면 어쩔 수 없지. 반장은 정식이가 맡도록 해라. 입시 상담은 내일부터 진행할 거니까 반장은 아이들에게 물어봐서 순서를 정해 나에게 알려줘라.”
“알겠습니다.”
얼떨결에 반장이 된 정식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며칠 후면 9월 모의고사니까 철저히 준비해라. 개인적으로 특별반 구성원들이 중간에 교체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니까. 그럼 수업 잘 듣고 또 보자.”
형식은 조회를 마치고 교실을 나갔고 잠시 후 수업이 진행되었다.
정식은 자신이 일일이 물어보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져 신청자들이 알아서 찾아오게 만들었다. 그러나 수혁은 입시상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자리에 앉아서 할 일을 했다.
“강수혁, 넌 상담 안 받을 거야?”
수혁이 하교할 시간이 다 되도록 신청을 하지 않자 정식은 결국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게 되었다.
“어, 이미 대학 갈 곳도 정했고 딱히 상담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수혁은 책상에 엎드려 쉬고 있다가 정식이 말을 걸자 건성으로 대답했다.
‘건방진 새끼, 공부 잘한다고 뻗대기는 엄마한테 들었는데 설명회 때 이 녀석 엄마가 망신당했다는데 이놈은 알고 있나 모르겠네?’
정식은 비열하게 웃으며 수혁을 쳐다보았다.
“뭐해, 대화 끝났으면 자리로 가라. 공부 안 하냐?”
수혁은 차가운 말투로 쏘아붙였다.
“아, 잠시 뭐 좀 생각하느라 알았어. 상담은 안 하는 걸로 할게.”
정식은 수혁이 말을 걸자 살짝 당황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재수 없는 새끼.’
수혁은 그의 얼굴을 보자 혜정이 정식의 엄마에게 망신당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리고 말없이 웃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불쾌감을 느꼈다.
수혁은 잠시 정식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이내 엎드려 다시 휴식을 취했다.
* * *
9월 한 달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기간 동안 수혁에게는 좋은 일들이 있었다.
9월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전교1등을 한 것이다.
“2학기 9월 모의고사 1등은 수혁이가 차지했다, 3학년 들어 계속 1등을 했기 때문에 별 감흥들이 없겠지만 수혁이는 이번에 전국에서도 20등 안에 들었다. 다들 박수.”
형식은 9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아침조회를 하고 있었다.
한 명을 제외한 특별반 학생들은 수혁을 위해 힘차게 박수를 쳤다.
‘자율학습도 안하고 학원도 안 다니는 거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잘하지? 공부만큼은 저 녀석을 이길 수 없겠어.’
정식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박수치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전국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수혁은 또 다른 좋은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현월당의 장사가 무척 잘 된다는 것이었다.
8월 말에 오픈을 한 음식점은 9월이 되자 더욱 손님이 모여들었고 급기야 근처 방송국에서 취재하러 오기도 했다.
매주 수요일 저녁 6시에 방송되는 ‘현장특종’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현월당이 지역에서 화제가 되는 음식점으로 선정되어 리포터들이 취재차 방문한 일이 있었다.
“수혁아, 어제 방송 봤어? 현장특종이라는 프로에서 너희 아버지가 현월당을 소개하시고 인터뷰도하고 그러던데?”
“응, 부모님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어.”
경현은 수혁을 보러 1층까지 내려와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어제 우리 부모님도 방송 보더니 주말에 가보자고 하더라고.”
“일정 잡히면 알려줘. 내가 미리 말해둬서 예약 잡아 놓을게.”
수혁은 경현과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방송으로 인해 화제의 주인공이 된 현월당은 이후 장사가 더욱 잘 되었고 수혁의 집에는 매일 매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추세면 빚도 머지않아 금방 갚겠어, 장사가 잘되니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즐거운데?”
선웅은 혜정과 가게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러게요, 방송에 나간 후로 더 바빠지신 것 같은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면서 일하세요. 이젠 여유도 좀 생겼잖아요.”
수혁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하하하, 아니야.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도 있잖아, 이럴 때 일수록 더 열심히 일해야지.”
선웅은 가뿐하다는 듯 팔을 들어 보이며 크게 웃었다.
“뭐야, 뭐가 좋아서 웃고들 있는 거야?”
혜정은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수혁과 선웅이 대화하고 있는 거실로 나왔다.
“내가 오늘 같이 일하는 주방 아주머니한테 잡지를 하나 받았는데 현월당이 앞으로 더 잘 될 것 같아.”
“왜요?”
“중요한 이야기 같은데? 뜸들이지 말고 말해 봐.”
선웅과 수혁은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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