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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72화 (72/316)

72화

수혁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보면 엄마랑 아버지께서 개업한 이후로 여태껏 거의 쉬지도 않고 매일 가게에서 늦게까지 일하셨는데 이러다가 두 분 다 건강을 해치겠어요. 아무래도 대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 그래도 앞으로 격주에 한 번씩은 쉬면 어떨까 상의하고 있었어.”

혜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네, 괜찮은 아이디어 같아요. 그리고 정말 힘들 때는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을 늘렸으면 좋겠어요.”

“그래, 다양하게 한 번 생각해보자. 그런데 아직 중요한 요리는 내가 도맡아서 하느라 당장은 어려울 거야.”

“네, 그 부분은 차차 해결하면 될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괜찮으시면 다같이 2박 3일 일정으로 여행을 가면 어떨까요?”

“여행?”

묵묵히 말을 듣고 있던 선웅은 여행이라는 말에 반응했다.

“네, 대학원서도 이미 낸 상황이고 기다리는 일만 남아서 요즘 한가하거든요.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가족끼리 제대로 된 여행을 가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서요.”

“하....... 그러면 가게 문을 며칠 닫아야 할 거야. 매출이 잘 나와서 빚을 순조롭게 갚고 있는 중이라 고민을 좀 해봐야겠어.”

선웅은 여행에 대해서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아니야, 그냥 말 나온 김에 며칠 쉬자, 다른 가게들 보면 가끔씩 휴가들 가는데 우리라고 못 갈 것 없잖아. 그간 쌓인 피로도 털어낼 겸 바람 좀 쐬지 뭐.”

혜정은 수혁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서울을 좀 벗어나면 괜찮은 펜션들이 많이 있어요. 괜찮은 곳에다 방 잡고 고기도 구워먹으면서 며칠 푹 쉬게요. 좋으면 2박 3일이 아니라 좀 더 있어도 되고요.”

그들은 가게를 잠시 닫고 여행을 다녀오는 것에 대해서 한참을 논의했고 결국 선웅도 여행을 가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펜션은 제가 알아볼게요. 이왕 가는 거 좋은 곳으로 가야죠.”

“그래, 예약하면 날짜만 나한테 알려줘. 당신은 여행 전까지 일 나오지 마. 당분간은 수혁이랑 알아서 잘 해볼게.”

“알았어.”

선웅의 대답을 끝으로 대화는 마무리 되었고 수혁은 방으로 돌아가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수혁은 일어나자마자 칸타빌레에 가서 컴퓨터를 켠 뒤 숙소를 찾아보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경기도 가평 쪽에 하우스를 펜션으로 내놓은 곳을 발견했다.

그는 번호를 확인한 후 전화를 걸어 펜션을 예약했다. 그리고 바로 가게에 전화를 걸어 혜정과 여행날짜에 대한 부분을 상의했다.

* * *

“짐 이리 주세요, 제가 옮길게요.”

혜정과 수혁은 여행을 가기 전에 사두었던 고기와 야채 같은 것들을 아이스박스에 넣고 차에 옮기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현월당에 출퇴근하기 위하여 산 중고 승용차가 있었다.

‘고작 이틀 머무는 건데 많이도 가지고 가네.’

수혁은 트렁크에 잔뜩 있는 짐들을 보며 생각했다.

“운전은 내가 할게.”

혜정은 몸이 좋지 않은 선웅을 대신해서 운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엄마, 다 실은 거 같아요.”

“어서 타라.”

그녀는 여행 준비가 끝나자 시동을 켜고 차를 움직였다.

수혁네 가족은 목요일 아침에 출발했는데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차는 밀리지 않았고 날씨도 화창하니 좋았다.

그들은 서울을 벗어나 가평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다.

“날씨 참 좋다.”

“그러네요. 날을 잘 잡은 거 같아요.”

혜정은 오랜만에 장거리 드라이브를 하니 그간의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선웅은 피곤한지 옆자리에서 눈을 감고 잠만 자고 있었다.

잠시 후 가평에 진입한 그들은 곧 펜션들이 밀집한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주변에 펜션들이 모여 있는 걸 보면 다 온 거 같은데? 수혁아, 얼마나 더 가야 돼?”

“아니에요. 여기서 좀 더 가셔야 돼요.”

수혁은 지도를 살펴보며 혜정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느새 차는 산길로 들어섰다. 산 능선에 맞춰 형성된 굽이진 길을 10분 정도 타고 들어가자 예약한 펜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속에 위치한 하우스는 바비큐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고 현관문은 그때 당시에는 드물게 번호 키로 잠금 장치를 해놓은 상태였다.

“주변이 한적하니 조용하고 좋네.”

혜정은 차를 주차한 뒤 물건을 내리면서 말했다.

수혁은 사장이 알려준 대로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연 뒤 차근차근 짐을 옮겼다.

“진짜 좋다.”

“그러게요, 며칠 쉬다 가기에는 딱 이네요.”

짐을 들고 안에 들어온 수혁의 가족들은 집 내부를 보고 감탄을 했다.

안에는 냉장고와 티비 외에도 각종 가전기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거실과 주방은 분리되어 있어 펜션이 아니라 고급 저택에 온 기분이 들었다.

“이쪽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요.”

“그래? 한 번 가서 살펴봐.”

수혁은 2층에 다락방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올라가 보았다. 그곳에는 잠을 잘 수 있는 침대와 이부자리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와, 웬만한 주택보다 훨씬 나은데? 예약하는데 돈이 많이 들었겠어.”

혜정은 집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네 조금 들긴 했지만 가족 여행이라 아깝지 않아요. 보니까 집 밖에 해먹도 있어서 고기 구워먹고 저기 누워서 쉬어도 될 것 같아요.”

거실 창문을 열면 발코니에 설치되어 있는 해먹이 눈앞에 보였다. 선웅은 공기 맑고 경치 좋은 데에 오니 기운이 나는지 집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그들은 집에서 쉬다가 바깥에 구비된 숯과 불판을 들고 고기를 구울 준비를 했다.

“오늘은 제가 다 할 거니까 편하게 계세요.”

수혁은 추운 날씨가 부모님께 해가 될까 염려되어 혼자 나가 고기를 구웠다.

그 사이 혜정은 거실에 마련된 커다란 책상에 반찬과 그릇들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1월의 겨울 산은 낮이 짧았다. 아직 다섯 시 정도 밖에 안 된 시간이었지만 해는 점점 저물어 가고 있었다.

“참 예쁘다.”

고기를 한창 굽다가 노을이 지는 산세를 구경하던 수혁은 붉게 물든 겨울 산의 풍경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수확이 나쁘지 않은데?”

“볕도 잘 들고 토질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아.”

점점 수혁이 있는 쪽으로 오던 그들은 그를 발견하고는 밝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놀러 오셨나 봐요?”

“네. 부모님이랑 바람 좀 쐬러 나왔습니다.”

“그래요? 가을에 오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지금은 낙엽이 다 져서 조금 아쉽겠네요.”

“네, 그래도 겨울산도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아요.”

수혁과 그들은 대화를 나누었고 밖에서 소리가 들리자 혜정이 집 밖으로 나와 무슨 일인지 살펴봤다.

“어? 안녕하세요.”

낯선 손님을 예상하지 못한 혜정은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잠깐 일을 하고 내려오는 길인데 아드님을 만나서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러세요? 혹시 식사하셨어요? 안 그래도 우리가 고기를 너무 많이 사와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괜찮으면 같이 드시죠?”

혜정은 며칠을 지낼지 몰라 고기를 잔뜩 가져온 상황이라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근처에 사는 곳이 있어서 저녁은 별 문제 없습니다.”

여자는 괜히 여행 온 사람들을 방해할까 싶어 완곡히 거절했다.

“어휴, 아니에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녁만 드시고 가세요. 수혁아 고기 좀 더 구울 수 있어?”

“네. 괜찮아요, 저희는 상관없으니까 들어가셔서 같이 식사하시죠.”

수혁도 잠깐 대화를 나누었지만, 예의가 바르고 인상이 좋은 그들에게 호감을 느끼던 참이었다.

“어떻게 하지?”

“계속 말씀하시는데 거절하는 것도 실례야.”

남녀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혜정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차린 건 많지 않지만 맛있게 드세요.”

수혁은 구운 고기를 집 안으로 가져왔고 혜정도 간단한 반찬과 식기를 세팅한 후 이들에게 식사할 것을 권했다.

“여보, 맥주 어디다 놨어? 가볍게 술 한 잔 하시죠.”

“냉장고에 뒀으니까 찾아 봐.”

선웅은 냉장고에 가서 캔 맥주를 꺼내왔다.

“고기를 정말 잘 구웠네요. 고기 자체도 질이 좋은데다가 불향이 잘 배어들어서 아주 맛있습니다.”

남자는 고기를 먹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더 드시고 싶으면 말씀 하세요 바로 구워 다 드릴게요.”

수혁은 바비큐용 화로에 숯을 넣고 불판을 얹은 다음 고기를 구웠는데 도구 이용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실행이 되어서 고기 집에서 일해 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조리를 하였다.

수혁의 가족들과 젊은 남녀는 식사를 마친 뒤 간단한 안주와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여기는 길을 따라 많이 들어와야 하는 곳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데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여자가 술을 마시다 질문을 했다.

“우리 남편이 일을 좀 무리하게 해서 잠깐 쉬려고 온 거에요. 펜션은 저희 아들이 찾았고요.”

“아버님께서는 술을 줄이시는 게 좋습니다. 현재 안색을 보면 스트레스와 피로에 의해서 간이 많이 약해진 상태이신 것 같거든요.”

남자는 선웅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뭔가 생각이 난 듯 자신이 메고 온 가방을 열어 약초를 꺼낸 후 혜정에게 건넸다.

“이거는 산에 서 베어온 헛개나무 가지인데 적당히 썬 뒤 뜨거운 물에 고아서 드시며 간에 좋습니다. 저희 가면 좀 있다 우려서 드세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귀한 걸 선뜻 내주시다니.........”

혜정은 남자가 보인 호의에 고마워했다.

“아닙니다. 저희가 식사도 대접받았는데 오히려 부족하지요.”

“별말씀을요, 그런데 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 하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녀는 산 근처에서 거주하며 약초를 캐는 젊은 남녀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저희는 이 산 아래 동네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지내는 부부에요. 대학시절 때 만나서 같이 공부를 하고 결혼까지 한 뒤 지금 같이 일하고 있어요.”

여자는 남편을 대신해서 답변을 했다.

“아, 그러셨구나.”

“근처에서 지내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산에 좋은 약초들이 참 많더라고요. 최근에 수집해 놓은 약초들이 거의 다 떨어져서 다시 구하러 산에서 일하고 오는 길이었어요.”

그녀는 자신들의 사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겨울인데 약초가 많이 있나요?”

혜정은 이 추운 겨울에 제대로 된 약초가 있을까 의문을 가졌다.

“약초는 오히려 잎이 다진 겨울에 효능이 더욱 좋아요. 왜냐하면, 줄기와 잎으로 간 약성이 모두 뿌리에 모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겨울에 산을 많이 탄답니다.”

“오호, 그렇군요.”

“저 그럼 언제까지 약초를 캘 예정이십니까?”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수혁은 대화에 참여했다. 그는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선웅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초를 직접 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음, 아마 주말 포함해서 3일에서 4일 정도는 이곳에 머물 생각이에요.”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일부터 저도 산행에 따라갈 수 있을까요?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는 약초를 찾고 싶거든요.”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 깊군요, 그런데 혹시 약초를 캐 본 경험이 있나요?”

남자는 수혁의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 7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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