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이것들은 돈의 가치로만 따지면 마을에 있는 것들보다 훨씬 값어치가 나가는 것들이네.”
우진은 도자기와 동전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뭐, 제 것이 아닌데 욕심을 가져서 뭣 하겠습니까?”
수혁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자 승대는 그를 장난스럽게 쳐다봤다.
“혹시 동전 몇 개 주머니에 넣어 놓은 거 아닌가? 저것들 하나만 해도 가치가 상당할 텐데 말이야.”
“훗 설마요.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 나가야 되지 않을까요?”
수혁은 승대의 농담에 헛웃음이 나왔으나 이내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잠깐, 가기 전에 사진을 좀 찍어야 할 것 같아.”
우진은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어 사진을 찍어댔다.
“섬을 나가기 전에 사진들을 찍어놔야 해, 그래야 당국에 신고를 해도 우리말을 믿어줄 거 아닌가?”
“맞는 말씀이네요.”
수혁은 그의 말에 공감했다. 우진이 촬영을 모두 마치자 그들은 토굴에서 나온 뒤 산을 내려왔다.
“마을도 들리지.”
우진은 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다시 들어가 가옥 내부와 창고 등 곳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우물가의 사진을 찍고 마을을 빠져나온 이들은 다시 해안가로 나왔다.
“오늘은 돌아가기 힘들 것 같네요.”
주변은 이미 해가 져 어두워진 상황이었다.
“배를 몰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어.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내일 출발하지.”
우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승대와 수혁은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나뭇가지와 풀들을 구해와 불을 피웠고 그들은 저녁을 먹었다.
“정말 대단한 발견을 했어. 내 생에 살면서 이런 유적을 직접 발견할 줄은 상상도 못했네.”
우진은 아직도 감개가 무량한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저 교수님 사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수혁은 식사를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가?”
“어떻게 보면 이곳을 교수님하고 연구원님과 함께 발견한 거라서 조금 염치가 없는데요, 유적이나 유물을 발견하고 문화재청에 신고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생각해보니 그랬던 거 같군.”
우진은 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다들 괜찮으면 포상금은 제가 받을 수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그 돈으로 할 것이 좀 있거든요.”
“그렇게 하게, 난 포상금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이런 경험을 한 것만으로 충분해 돈은 다 너 가져라.”
우진과 승대는 돈에 연연하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이 일의 파장을 고려한 그는 유적과 유물의 발견자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했다.
“아니 왜? 사실상 네가 거의 다 발견한 거잖아.”
승대는 수혁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다.
“알았다. 정 선생, 수혁군 말대로 하지. 원체 남들의 이목을 귀찮아하는 애라서 말이야.”
우진은 평소 수혁의 스타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식인협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포상금을 받게 되면 바로 통장에 넣어주겠다고 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수혁은 우진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시했고 그들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보트를 타고 태안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밥을 먹고 바로 서울로 돌아간 수혁은 차를 반납하러 집으로 향했다.
빌라에 도착한 그는 오랜만에 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아무도 없나보네?’
아직 낮 시간에 불과했었기 때문에 수혁은 방에 들어가서 조금 쉬려고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시간에 선웅과 혜정이 집에 들어왔다.
“수혁아. 우리 왔다.”
혜정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왠지 모르게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수혁이 말했다.
“좀 전에 채권자들을 만나서 이제까지 있었던 빚을 모두 청산했다. 오늘 일요일이라 은행도 안 열고 해서 현금으로 줘버렸어.”
선웅은 빚을 갚기 위해 계속 돈을 모았고 카드 사용이 많지 않던 당시 음식점 소비자들의 특성상 현금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그것을 차곡차곡 모은 후 거액의 현금으로 채무를 청산한 것이다.
“정말 잘됐네요.”
선웅의 말을 들은 수혁은 덩달아 홀가분해졌다.
“잘 된 정도가 아니라 날아갈 것 같다.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기분이야. 이러지 말고 어디 가서 맛있는 거나 먹자.”
선웅은 가족식사를 제안했고 혜정과 수혁은 이날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했다.
그들은 저마다 앞으로 그려질 밝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우진은 섬을 다녀온 다음날, 문화재청에 가서 담당자를 만났다.
그는 담당자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했고 섬에서 본 것들을 토대로 대화를 나누었다. 직원은 연락을 줄 테니 기다리라고 말을 하였고 용건을 마친 우진은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수혁은 평소처럼 수업을 들으며 사업에 대한 구상을 계속하고 있었다.
‘포상금이 들어오면 바로 사업을 진행해야겠어.’
봄기운이 제법 감도는 3월 말의 어느 수요일, 수혁은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수혁아 나다.”
“네, 교수님.”
수혁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우진인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문화재청에 가서 신고를 했는데 드디어 오늘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어.”
우진의 목소리는 조금은 들뜬 상태였다.
“담당자가 그날 확답을 못해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왔다간 날 바로 문화재청장에게 섬 유적에 대한 사안을 보고했다고 하더라.”
“그래요?”
“들어보니 보고 받은 청장이 당장 팀을 꾸려서 섬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모양이야. 아마 조만간 문화당국에서 이 사안을 기자들에게 발표할 것 같아.”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네요.”
“그럼, 이게 보통 일이야? 그리고 보상금은 1억원 정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담당자가 말하는데 고려청자 하나를 발견한 사람이 2천만원 상당의 포상금을 받았다더라. 우리가 발견한 것은 그것보다 훨씬 많으니까 1억은 받지 않을까?”
“일이 잘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수혁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하, 조만간 티비에 출연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방송국이나 기자들이 나를 인터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저는 생각만 해도 피곤하네요. 그런 거는 교수님이랑 정 선생님이 잘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이후에도 한동안 유적과 유물에 관한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수혁은 전화를 끊었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럴 게 아니라 바로 사업에 돌입해야겠어.’
수혁은 전화를 꺼내 찬명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수업이 끝나면 카페에서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이제 시작이야.’
수혁은 전화를 끊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그는 자신이 펼치고자 하는 사업 구상을 정리하며 식사를 했다.
“형, 여기에요.”
수업이 끝난 수혁은 카페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약속시간에 늦은 찬명은 헐레벌떡 들어오고 있었다.
“빨리 왔네?”
“네. 아메리카노 마시죠? 미리 시켜놨어요.”
“고마워 수혁아.”
찬명은 민망한 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왜 보자고 한 거야?”
찬명은 수혁이 시켜놓은 커피를 마시며 물어보았다.
“예전에 제가 같이 돈 벌어보자고 한 거 기억나요?”“응, 기억하지.”
“오늘 형이랑 같이 사업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예요.”
“사업?”
찬명은 커피 잔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였다.
“네, 제가 교육사업을 해보려고 하는데 형의 도움이 필요할 거 같아서요.”
“내가 너한테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사실 지금 돈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고.”
찬명은 시무룩해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돈은 이미 다 준비 되어 있어요. 제가 형한테 필요한 건 돈 말고 다른 거예요. 들어보시고 사업을 같이 할 건지 정하세요.”
찬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학원을 차리려고 하거든요.”
“네가 학원을 차린다고?”
“네,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기에는 형편이 어렵거나 좋은 학원이 주변에 없어서 고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
“되게 좋은 생각이다. 어떻게 하는 건데?”
찬명은 수혁의 아이디어가 획기적이라고 여겼다.
“일단 양질의 온라인 강의를 만든 다음에 현장에서 듣는 것보다 훨씬 싼 가격에 공급을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이미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도 우리 회사에 관심을 갖게 될 거예요.”
수혁은 오랜 시간을 들여 계획했던 온라인 강좌 회사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해주었고 찬명은 진지하게 그의 말을 경청했다. 찬명은 수혁의 말을 듣다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까 잘만 하면 대박날 것 같아. 사교육시장도 계속 성장하고 있고 확실히 학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도 충분하니까. 근데 내가 그 일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거야?”
찬명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몹시 궁금해 했다.
“흠......”
수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형이 관리하는 과외선생님들이 필요해요. 예전에 듣기로 상당히 많은 선생님들을 관리하시는 것 같던데?”
수혁은 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50명은 되지 않을까? 아니다 최근에 들어온 신입회원까지 감안하면 55명 정도 관리하는 것 같아.”
찬명은 머릿속으로 숫자를 가늠해보았다.
“혹시 각 과목별로 학생들이랑 학부모한테 가장 인기 많은 선생님들도 파악하고 있나요?”
수혁은 사업을 하는데 핵심이 되는 질문을 했다.
“뭐 그런 거를 딱히 알아볼 생각은 안 했지만 학생들에게 반응이 좋은 선생님들은 알고 있지. 보통 그런 선생님들은 과외 소개가 엄청 잘 들어오거든.”
“잘됐네요. 그럼 형이 느끼기에 가장 평판이 좋은 사람들을 한 번 모아줄 수 있어요? 조만간 온라인 강의를 촬영할건데 그분들을 강사로 쓸까 생각 중이거든요.”
수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날 보자고 한 거구나. 알았어. 한 번 알아볼게, 근데 과학탐구와 달리 사회탐구 같은 경우는 과외를 뛰는 분들이 거의 없는데 괜찮겠어?”
“어차피 초반에는 주요과목 위주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에요. 탐구 과목들은 나중에 회사가 매출이 늘고 하면 외부강사를 영입하면 되니까 지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알겠어. 그러면 오늘 너랑 헤어지면 바로 알아볼게.”
“네.”
수혁과 찬명은 카페에서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빠른 시일 내에 미팅을 잡기로 정한 후 헤어졌다.
‘그러면 이제 다음 스텝으로 가 볼까?’
수혁은 찬명과 헤어진 후 핸드폰을 꺼내 평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수혁아 잘 지내지?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통 못 봤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연락을 드렸어야 됐는데.......
“됐다. 죄송은 무슨, 것보다 무슨 일이야?”
“제가 부탁드릴 것이 좀 있는데요.”
“말해봐라.”
“옛날에 학교에서 일 생겼을 때 만났던 변호사님을 소개 받을 수 있을까요?”
수혁은 직원을 고용할 때 필요한 계약서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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