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누구? 아. 형석이를 말하는 거구나. 물론 가능하지, 내가 바로 연락해보마.”
“네, 감사합니다.”
평우가 언급한 김형석은 예전에 선민고등학교에서 조성준을 처리하는데 도와주었던 변호사였다. 그는 신평이라는 로펌의 대표변호사였는데 업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오늘은 도서관 가서 공부를 좀 해야겠다.’
형석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 할 일이 딱히 없었던 수혁은 4월 중순에 있는 중간고사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때는 3월 말로 곧 있으면 4월이 다 되가는 시점이었다.
* * *
이틀 후 수혁은 평우의 소개 아래 형석과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강수혁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뵌 적이 있는데 기억나십니까?”
“아 기억나네, 그때는 앳되어 보였는데 이제는 제법 어른 티가 나는군.”
수혁은 약속시간에 맞춰 종로에 위치한 신평 법무법인 본사로 갔다. 그는 건물 안에 있는 형석의 사무실로 가서 대화를 나누었다.
“제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계약서를 작성해본 적이 없어서요.”
“무슨 계약서를 말하는 건가? 계약서의 종류는 워낙 다양한데.”
“고용계약 관련된 계약서를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을까요, 제가 학원업을 하려고 하거든요.”
“대충 짐작이 가는구먼. 자세히 말해보게.”
수혁은 사업체에서 강사를 어떤 방식으로 고용할 건지에 관한 계획을 밝혔고 형석은 신중하게 계약조항들을 만들어주었다.
그는 전생에서 계약문제로 학원과 강사들 간에 많은 분쟁이 발생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계약서를 잘 만드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얼추 이 정도면 강사와 학원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 거야.”
형석은 컴퓨터로 계약서 초안을 작성한 뒤 수혁에게 보여주었다.
“제가 보아도 충분한 것 같네요. 일을 도와 주셨으니 사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그런 소리 말게, 내 자문료가 상당히 비싸기는 하나 자네한테 돈을 받으면 어르신한테 혼쭐이 날거야.”
“할아버지한테는 말씀드리지 않을 테니 편하게 말씀하세요.”
수혁은 시간을 내어 도와준 형석에게 돈을 주려고 했으나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는 형석과 계약서를 조금 더 보완한 뒤 사무실에서 나왔다.
‘이제는 찬명이형과 강사들을 만나봐야겠어.’
그는 대학가 근처에 위치한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났다.
찬명과 수혁은 수업이 끝난 후 알음알이 동아리 방에서 만났다.
방에는 그들 외에도 5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다.
“모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강수혁입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앞으로 벌릴 사업에 여러분들이 함께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찬명과 강사가 될 사람들은 모두 의자에 앉아 있었고 수혁은 벽면에 붙어있는 조그만 화이트 보드 옆에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해가 지날수록 사교육 시장은 점차 커져가고 있습니다. 반면에 많은 학생들은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고요. 이러한 현상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겁니다. 지리적 한계, 금전적인 부분 등 다양한 이유가.......”
수혁은 해마다 커지는 사교육 시장의 규모와 사업 전망에 대해 정확한 수치를 언급하며 설명했다.
“그래서 저는 서울의 많은 학생들에게 검증을 받아 실력이 보증된 여러분들께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전 회사를 차려 학생들에게 작은 비용으로 좋은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 참여하시게 되면 현재 과외로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수혁은 이야기를 하던 중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음료수를 잠깐 마셨다. 그런데 한 남자가 질문을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 온라인 강의로 어떻게 돈을 번다는 거죠?”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일단 여러분들이 2주 분량의 짧은 맛보기 강의를 찍어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저는 사이트에 무료로 강의를 올릴 겁니다.”
“뭐? 무료로?”
수혁의 말을 들은 찬명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직 온라인 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원은 없는 걸로 압니다. 먼저 학생들에게 온라인 강의의 유용성을 느끼게 해서 고객의 수를 확보해야 해요. 그리고 제가 말한 2주가 지난 뒤 그때부터 정식 유료강의를 개설하면 됩니다.”
“고객 수는 얼마나 예상하세요?”
가만히 앉아 있던 안경을 쓴 남자가 물었다.
“제가 이곳저곳에 홍보를 할 것을 감안하면 2주차가 되면 최소 2만명 이상이 우리 강의를 들으려고 할 겁니다.”
“2만명이요?”
질문한 남자는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2만 명은 최소치로 산정해 놓은 숫자입니다. 저는 이것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충 설명을 다 드린 것 같은데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이곳에서 나가셔도 됩니다.”
수혁은 말을 멈추고 그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찬명이 데려온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방에서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씽긋 웃으며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다들 관심이 있으신 것 같네요. 저는 빠른 시일 내에 회사를 설립하려고 합니다. 그 전에 여러분들이 해주실 것이 있습니다.”
“저희가 뭘 준비하면 될까요?”
머리가 짧은 여자가 질문을 했다.
“제가 부르기 전까지 맛보기용 강의를 위한 준비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중의 문제집을 활용하여 해도 좋으나 나중에는 강의 전용 교재를 만들어야 되니까 그 부분 참고해주세요.”
수혁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실력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과외와 대중들 앞에서 수업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다음 주에 한 번 모여 수업시연을 해볼 겁니다. 그에 대한 대비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그 뒤에도 자신들이 준비해야 하는 사항들에 대해서 열심히 들었고 수혁은 꼼꼼히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잠시 후 설명회는 모두 끝이 났고 동아리 방에는 찬명과 수혁만 남게 되었다.
“나는 그러면 뭘 할까?”
찬명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형은 다음 주 수업시연에서 저랑 같이 사람들을 평가하고 지도해주시면 되요. 그리고 쓸 만한 직원들을 좀 뽑아주세요. 학원사무는 기본이고 나중에 강사님들의 교재편찬을 보조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요.”
“알겠어, 내가 이곳저곳에서 알아볼게.”
“형한테만 미리 알려줄 건데 회사 이름은 SH스터디로 할 거에요. 나중에 이 회사를 토대로 SH그룹을 만들 생각이니까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차분히 이야기를 하는 수혁의 모습은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이야, 스케일 참 크다. 근데 잘 될 수 있을까?”
“두고 보세요.”
수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찬명과 대화를 마무리한 그는 오랜만에 칸타빌레에 가서 사업에 필요한 준비를 계속했다.
수혁이 바쁘게 움직이던 사이 여러 일이 있었다. 칠부도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우진과 승대는 9시뉴스에 나와 인터뷰를 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조용히 지나갈 일은 아니었지.’
수혁은 티비를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뒤 우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문화재청에서 1억원의 보상금이 나왔는데 이를 바로 통장에 넣어주겠다고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어.’
수혁은 통장에 1억원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자 바로 업체에 연락하여 인터넷 강의에 필요한 서버를 구축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경현에게 연락하여 노량진에 사무실 임대 계약을 완료했다.
‘우선 급한 것들은 처리했고 다음엔 또 뭘 할까?’
수혁은 그 외에도 학원업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뒤 학원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사업에 투자했고 학교에 가있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사업에 대한 생각만 했다. 동아리 방에서 설명이 있은 후 1주일이 지났다.
* * *
“내용은 좋은데 판서에 좀 더 신경을 써주세요. 이제는 전문 강사로 뛰셔야 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프로처럼 보여야 됩니다.”
“네, 다음에는 더 나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수혁은 대학의 빈 강의실에서 찬명이 데려온 사람들이 수업을 시연하는 것을 보고 피드백을 해주었다.
아직은 조금 어색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살짝만 다듬으면 충분히 강의를 해도 될 수준이었다.
“오늘 피드백 참고하셔서 다음 주에 수업 시연 한 번 더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괜찮다고 말씀하신 분들은 돌아가셔서 강의 교재 구성에 대해서 고민해보세요. 우리 회사에서도 교재 편찬을 지원할 예정이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요.”
사람들은 수업시연을 마치고 수혁의 지시를 들은 뒤 강의실을 떠났다.
강의실 안에 둘만 남자 찬명은 수혁에게 자신이 했던 일들에 대해서 보고했다.
“공고를 붙여서 5월 초부터 일할 수 있는 직원들을 모집했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했고 날 잡아서 면접을 진행해야 될 것 같아, 그리고 혹시 몰라서 강사들도 추가 모집 공고를 올렸어.”
“그런 부분들은 형이 알아서 잘해주세요.”
수혁은 찬명의 보고를 듣고 인사와 관련된 사항은 그에게 전권을 맡겼다.
“응, 알겠어. 사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잘 진행해볼게.”
찬명은 자신을 믿어주는 수혁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그들은 그 뒤에도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헤어졌다.
* * *
수업시연이 끝난 후 수혁은 매우 바쁘게 지냈다.
계약한 사무실에 들려 스튜디오로 사용 될 곳과 회의실, 작업실 등을 정리했다. 그리고 칸타빌레에 가서는 사이트 제작에 몰두했다.
‘많은 사람들이 접속해야 하니까 돈이 좀 더 들더라도 트래픽 용량은 최대한 크게 해야 해.’
수혁은 사이트 제작을 비롯하여 각종 사업상 처리해야 할 업무 등을 쉬지 않고 했다.
그 외에도 얼마 남지 않은 중간고사까지 준비해야 하니 몸이 2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후, 오늘도 쉽지 않았다.’
수혁은 서점에 있는 침대 위에서 눈을 붙이려고 했다.
그는 매일 바쁜 하루를 마치고 새벽이 다 돼서야 잠이 들곤 했다.
4월 중순에는 중간고사가 있었다. 시험을 마친 수혁은 매일 노량진과 칸타빌레를 오가며 일에 열중했다.
* * *
“촬영 하겠습니다.”
찬명이 뽑은 직원은 촬영용 카메라를 잡고 큐 싸인을 보냈다.
강사는 칠판에 공부할 내용을 판서한 뒤 수업을 진행했다.
“나쁘지 않은데?”
찬명은 스튜디오에서 녹화되는 수업을 보고 있었다.
“옆 스튜디오도 촬영 잘하고 있죠?”
“응, 문제없어.”
수혁의 사무실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 촬영을 동시에 2개밖에 할 수 없었다.
그는 강사들과 협의하여 시간표를 짠 뒤 촌음을 아끼며 촬영을 했다.
직원은 촬영이 끝나면 홈페이지에 수업을 업로드 했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수혁의 지시에 따라 홍보에 나섰다.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는 커뮤니티나 채팅사이트 등을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우리 회사를 홍보하세요.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겁니다.”
학원 정문 앞에 마련된 안내 데스크에서 직원들은 쉬지 않고 홍보작업을 했다.
5월 1일에 서비스를 시작하는 SH스터디는 개업 전에 인지도를 쌓는 것은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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