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원장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현재 강사수급은 어떤가요?”
수혁은 현재 회사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을 찬명에게 물었다.
“사실, 업계에서 유명한 강사들은 이미 대부분 자리를 잡은 상황이라 그렇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찬명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유명한 강사들이 꼭 잘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온라인 강의가 뜨게 되면 사교육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겁니다. 젊고 유능한 사람들을 찾아서 우리 회사의 비전을 알려주고 섭외를 시도해보세요. 그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수혁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실제로 그가 회귀하기 전에 돌아가던 상황을 살펴보면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되어 강사들이 큰돈을 벌자 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강사가 되려고 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기성 강사들을 뛰어넘는 스타성을 지닌 젊은 강사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었다.
“네, 참고하고 알아보겠습니다.”
수혁은 그 외에도 회사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모두 지시한 다음 회의를 마쳤다. 그는 늦은 밤까지 회사에서 잔업을 한 뒤 집에 돌아갔다.
‘예상보다 신경 쓸 것이 정말 많구나.’
회사를 처음 경영해보는 수혁은 격무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회사 업무에 필요한 능력들을 고교시절에 많이 익혀놓았던 것이 큰 효과를 보고 있었다.
‘그때 재미있게 읽었던 경영학 서적들이 아예 쓸모가 없지는 않네.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이나 사업적 결정을 내릴 때 참고가 많이 된다.’
수혁은 원룸 안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 * *
5월 중순의 어느 날 수혁은 교양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 수업은 ‘철학의 이해’라는 수업이었는데 한국대학교 1학년이라면 모두 들어야 하는 핵심교양이었다.
“야 준비 잘했어?”
“모르겠어. 교수님께서 중간고사가 끝나고 말씀하셔서 책을 사기는 했는데 거의 못 읽었어.”
교양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50여명의 학생들은 오늘 있을 특별수업에 대해서 설왕설래를 하고 있었다.
교수는 이례적으로 기말고사를 쪽지시험과 레포트로 대체를 한다고 하였는데 오늘은 그 쪽지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여러분 첫 주 월요일에 예고한 대로 쪽지시험이 있을 예정입니다. 긴장하지 마세요. 쪽지시험의 평가반영비율은 5퍼센트로 크게 영향은 없을 겁니다.”
‘별 문제 없겠군.’
시험을 준비하는 수혁은 시험에 대해서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교수가 읽으라고 권한 책이 다름 아닌 그가 처음으로 번역하고 출판한 ‘잊혀진 소피스트들의 학문과 사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이 책을 여러분들께 권한 이유는 설명 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세상은 당대에 이름을 떨치고 유명했던 자들만 기억하기 마련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정약용의 제자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는 분 계신가요?”
교수가 질문을 하자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는 평소에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철학에 관심이 많아 보이던 학생이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시절 그의 곁에서 학문을 배우고 정진하였던 황상에 대해서 설명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는 스승이었던 정약용으로부터 다양한 학문과 사상을 익혔고 당대의 문인들에게도 인정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약용이 가장 총애하는 제자였던 황상은 뛰어난 글솜씨와 다산의 사상을 잘 이해했던 사람으로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이다.
훗날 그와 관련된 책이 발간되어 큰 관심을 받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0년 정도가 지난 후의 일이었다.
“맞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역사에 기록이 되고 유명한 사람들만 기억할 뿐 이름이 나지 않은 사상가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제가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한 건 바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훌륭한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교수는 시험을 보기에 앞서 책을 권한 취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중간고사 때는 흔히 알 수 있는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들로 수업을 한 교수는 기말 기간에는 소외되었던 사상가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 할 텐데요, 시간은 딱 20분만 드리겠습니다.”
교수는 시험지를 앞 좌석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준 다음 뒤로 넘기게 했다.
시험지를 받은 수혁은 문제들을 읽어보았다. 적은 비중의 쪽지시험인 만큼 문제들은 책을 한 번 정도만 읽으면 쉽게 풀 수 있는 문항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간이 다 됐군요. 뒤에 있는 사람은 종이를 걷어오세요.”
사람들은 시험이 끝나자 시험에 대해 논평을 했다.
“문제는 간단했는데 책이 워낙 내용이 많고 두꺼워서 못 풀은 문제들이 제법 있었어.”
“너도 그랬어? 앞 문제들은 쉽게 풀었는데 나도 몇 문제는 놓친 것 같아.”
수혁에게는 쉽게 느껴졌던 문제들이었지만 어떤 학생들에게는 만만치 않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책을 안 읽은 학생들이 제법 있는 것 같네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쪽지시험은 몸풀기 과정이었고 이제부터 문답시간을 갖겠습니다.”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꼼꼼히 읽어봤지.”
학생들은 미리 공지 받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하였고 강의실 분위기는 어수선해졌다.
“저 교수님, 말씀하신 걸 들어보면 문답 과정이 평가에 반영되는 것 같은데 책을 자세히 읽지 못한 학생들을 고려하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한 학생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질문을 했다.
“여러분들이 중간고사를 다들 잘 보셨고 아시다시피 기말 평가는 오늘 쪽지 시험과 레포트로 대체되기 때문에 변별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분명히 이 책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는 차분하게 질문에 답변한 다음 문답 시간을 진행했다.
“제가 지금부터 남은 시간 동안 질문을 할 텐데 잘 답변하신 분들에게는 가산 점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첫 질문입니다. 책에 나오는 클레이포스의 이론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교수의 질문과 동시에 몇 사람이 손을 들었고 앞서 정약용에 대한 답변을 했던 학생이 지목되었다.
“클레이포스는 정치, 경제, 철학 등 다양한 부분에서 자신만의 사상을 확립한 인물입니다. 그는 특히 정치 편에서 대중들과 교감하는 연설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요. 그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선동에 가까운 방법을 선호했습니다.”
교수는 답변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한 뒤 평가를 내렸다.
“정리를 잘해주셨네요. 가산 점 1점을 드리겠습니다. 혹시 이 인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앞선 사람보다 더 나은 답변을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수혁이 손을 들고 나섰다.
“네, 말씀해 보세요.”
교수는 수혁을 지목했다.
“앞전의 학우 분이 설명해주신 데로 클레이포스는 연설을 강조한 것이 맞습니다. 저는 그가 주장한 연설의 방식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게 뭐죠?”
“클레이포스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을 항상 기록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연설을 할 때 그것을 활용하라고 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대중들의 선호가 자주 바뀌는 현상을 고려하여 예전 연설과 나중 연설 간의 모순이 발생하여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수혁은 그 뒤에도 모순된 연설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위화감 없이 전달할 수 있을지 설명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워낙 매체가 잘 발달되어있어 기록이 다 남아있기 때문에 클레이포스의 방식은 통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혁이 긴 발표를 마치고 주변을 살피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수는 수혁의 답변을 듣고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아주 훌륭해요, 마음 같아서는 5점을 주고 싶지만, 이는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에 3점 드리겠습니다.”
교수는 자신이 들고 있는 명단에 수혁의 이름을 찾아 점수를 표기했다.
그 뒤에도 날카로운 질문이 오갔고 학생들은 저마다 대답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항상 마지막은 수혁의 상세한 설명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이거는 점수와 관련은 없고요. 그냥 여러분들의 생각을 묻는 거예요. 소피스트의 사상이 후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보존되지 못한 이유가 뭘까요?”
질문을 듣자 사람들은 다양하게 말했다.
“사상의 깊이가 얕아서 그렇습니다. 소피스트들은 항상 진리는 상대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절대적 진리에 대한 탐구가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언변, 이미지 구축과 같은 표면적인 부분에 집착했기 때문에 나중에 후대에 외면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저마다의 상식을 토대로 답변을 했으나 교수는 만족하는 것 같지 않았다. 발표를 지켜보던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나온 의견들은 모두 맞는 말씀입니다. 전 지금까지 나온 의견들 외에도 크게 2가지 이유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수혁이 발표를 시작하려고 하자 사람들은 좀 전과 같이 다시 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번 말씀해 보시죠.”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첫째는 당시 로마시민들은 출세를 위해서 소피스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려고 했지만 출세가 보장된 귀족들은 소피스트들의 이론들을 경박하다고 여겼습니다. 당시 학문과 문화의 주체인 귀족들이 소피스트들을 외면했기에 후대에 전승이 잘 안 됐다고 여겨집니다.”
“그럼 둘째는요?”
“그들에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훌륭한 제자들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스승의 이론을 기록하고 발전시켜 후대에 널리 보급시켰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그 이후에도 수혁은 원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했고 종국에는 교수를 완전히 납득시켰다.
고서를 번역하며 생긴 수많은 상식들 덕분에 그는 수월하게 답변을 마칠 수 있었다.
그날 수혁은 교수에게 많은 가산점을 받았고 사람들의 주목도 받을 수 있었다.
‘일전에 고서를 번역한 것으로 재미를 톡톡히 봤네.’
수혁은 수업이 끝나자 짐을 싸고 강의실 밖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되게 인상적이던데?”
“누구?”
수혁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그의 앞에는 정돈이 안 된 덥수룩한 머리에 안경을 끼고 있는 평범한 남자가 서 있었다.
“1학년인 것 같은데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난 김용민이라고 해.”
“아, 응 안녕.”
초면인데 다짜고짜 반말을 하며 말을 걸어오는 남자로 인해 조금 당황한 수혁이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대답을 했다.
“난 대학에서 컴퓨터를 공부하고 있어. 철학수업은 이번이 처음인데 오늘 너를 보면서 친하게 지내고 싶어졌어, 수업 내내 조용히 지내서 몰랐는데 정말 대단하다.”
조금은 특이한 느낌을 풍겼지만, 수혁은 통찰력의 능력으로 그가 순수하고 착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고마워. 컴퓨터라면 나도 요즘 공부하고 있어서 관심이 있는 편이야, 나중에 날 잡고 이야기해봤으면 좋겠다.”
“어? 진짜? 나도 요즘 각종 프로그래밍이랑 소프트웨어 공부 많이 하고 있거든. 그래 언제 한 번 만나서 밥이라도 먹자!”
용민은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었고 그들은 서로 연락처를 교환한 뒤 나중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재미있는 친구네.’
수혁은 강의실을 나오며 생각했다. 그는 학교를 빠져나와 노량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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