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5월 한 달 동안 매출이 20억 가량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이 저번에 지시하신 스튜디오 확충 부분도 잘 처리했습니다.”
수혁은 회의실에서 직원의 보고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각종 지표를 체크하고 앞으로의 전략에 대하여 논의를 하는 중이었다.
“고객들 의견을 보니까 우리 강사들에게 현장강의를 듣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느는 것 같아요. 새로 알아본 학원 사무실을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찬명은 대답했다.
“아, 원장님 5월 초에 말씀드렸던 모의고사 제작은 잘 되고 있나요?”
“네, 강사들과 직원들이 힘을 모아 함께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며칠 후면 완성될 것 같습니다.”
“문제들을 꼼꼼히 살펴서 오류가 발생하지 않게 신경써주세요, 그리고 최대한 수능과 비슷하게 출제를 해야 합니다. 제가 연락처를 알려드릴 테니 작업이 완료되면 검수를 받으세요.”
“이분들은?”
“연락해보시면 차차 알게 될 겁니다. SH스터디에서 전화 드렸다고 말씀드리면 알아들으실 겁니다.”
찬명은 수혁에게 연락처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받았다. 수혁은 학원 강사들로는 퀄리티 있는 모의고사를 제작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진에게 연락하여 지식인협회에서 활동하는 은퇴한 교수들 중에서 문제 검수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문의한 적이 있었다.
“오, 수혁이 아니냐? 무슨 일이야?”
“네, 교수님 안녕하세요. 제가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혹시 협회 분들 중에 교수님처럼 은퇴한 분이나 학계에는 몸을 담고 있으나 시간적 여유가 되시는 분들 계신가요?”
“그런 사람들이야 찾아보면 적지 않겠지. 그런데 뭐 때문에 그런가?”
“제가 이번에 고등학생들 대상으로 문제를 만들었는데 적절하게 만들어졌는지 확인을 해야 돼서요.”
“무슨 말인지 알겠네, 한 번 알아보지.”
우진은 단번에 수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사람들에게 한 번 검수하실 때마다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수당을 드릴 거라고 말씀해주시면 대화가 좀 더 수월하게 이루어질 거예요. 괜찮은 용돈 벌이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알겠네, 그럼 알아보고 연락 주지.”
우진은 통화가 끝난 후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하여 일을 해줄 학자들을 찾아냈고 이들의 연락처를 수혁에게 알려주었다.
‘이렇게 하면 다른 학원보다 더 앞서나갈 수 있어.’
그는 문제의 질을 높여 사설 모의고사 시장을 재패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 * *
5월은 지나고 6월이 되었다. 이제 한낮에는 기온이 30도에 육박할 정도로 날씨가 더워졌다.
강남에는 대한민국 학원 계에서 첫 번째를 다투는 명성학원의 본사가 있었다
5층 건물의 꼭대기에 마련된 미팅 룸에는 학원 관계자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SH스터디라는 곳이 생긴 것은 다들 아시지요?”
명석학원의 대표이사인 천규식이 말을 꺼냈다.
“네, 인터넷으로 강의를 하는 업체인데 노량진에 조그만 사무실을 두고 있답니다.”
직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저도 사이트 들어가서 확인해봤는데 강사 수도 많지 않고 그렇게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요?”
직원의 보고를 들은 대표가 대답했다.
“그래도 참고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격이 일단 현장강의의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제법 듣는 걸로 압니다.”
“그래봤자 거기까지죠. 샘플 강의를 들어봤는데 몇몇 눈에 띄는 강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강사 수준이 떨어져요. 싼 맛에 보는 거지 절대 우리를 못 따라옵니다.”
규식은 직원들이 저마다 SH스터디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을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사업성이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우리 학원에서도 해보는 건 어떤가요?”
“그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그쪽에서 여러 강사들과 접촉하는 것 같은데 현장 수업에 익숙해진 강사들이 거의 다 거절하고 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수업은 학생들과 마주 보고 서로 호흡을 하는 건데 무슨 촬영을 해서 강의를 합니까? 무리가 많습니다.”
직원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며 온라인 강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그럼 이 건은 그냥 보류합시다. 혹시 모르니 SH스터디를 잘 주시하세요. 그럼 다음 안건은......”
규식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SH스터디를 중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각 지점의 원장들에게 현황에 대한 보고를 듣기 시작했다.
‘큰일이야.’
수혁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매출 현황표를 보고 있었다. 5월 첫 달에 20억의 매출을 올리고 다른 지역에 학원을 론칭하고 있었지만, 수입은 거의 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정도였다.
“그래도 6월 첫 주 매출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앞으로 3주 동안 열심히 해서 늘려 가면 됩니다.”
찬명은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수혁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SH 스터디는 6월 첫주에 3억의 매출을 올렸다.
이 정도면 회사를 운영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가 기억하는 온라인 강의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턱도 없는 수치였다.
“지금 당장 우리 강의를 신청했던 사람들의 정보를 정리해서 저한테 가져다주세요. 아무래도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수혁은 찬명을 보며 지시했다.
“네. 바로 준비해서 갖다드리겠습니다.”
찬명은 밖으로 나가 직원을 시켜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의 정보를 뽑아오라고 했다.
강의를 위해 기입했던 정보는 이름, 주소, 전화번호 정도밖에 없었지만, 그 정도면 상황을 분석하기에는 충분했다.
‘예상대로야 상황이 좋지 않아.’
수혁은 찬명이 가져다준 정보 목록을 살펴보았다.
유료화 첫 주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었으나 시간이 점점 갈수록 교육열이 높은 지역의 학생들 숫자는 줄어들었다.
‘원인을 분석해봐야겠어.’
수혁은 사이트에 올린 자사의 강의를 몇 개 들어보았다. 그는 대부분의 강의가 과거 생에 보았던 인터넷 강의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각 과목에서 1타를 찍고 있는 강사들 정도만 강의를 지속해도 될 수준이었다. 한참을 고심하던 수혁은 찬명을 불렀다.
“형, 괜찮으면 맥주 한 잔 하실래요?”
“알겠습니다.”
밤이 다 된 늦은 시각, 수혁은 찬명을 데리고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러 술집에 갔다.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회사 밖을 나온 그들은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형, 제가 방금 확인해봤는데 현재 1타 강사 분들은 거의 다 초창기에 데려온 분들이고 추가로 영입한 강사들의 활약은 미미하던데요.”
“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골치야. 처음 와준 사람들이야 과외시장에서 증명이라도 된 사람들이라지만 영입한 강사들 중 대부분은 강의 경험이 거의 없는 분들이니까.”
“왜 그렇게 된 거죠? 인재가 그렇게 없나요?”
수혁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그게 인터넷 강의라는 개념을 강사들이 아직 잘 못 받아들이더라고. 학생 없이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부분이 많이 어색한가봐. 게다가 현재도 충분히 돈을 잘 벌고 있어서 상관없다는 식이야.”
“왜 진작 말씀 안 하셨어요? 후,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네요. 그러면 지금까지 강사들은 어떻게 영입했어요?”
“그냥 동네 작은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시는 분들 위주로 접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마저도 대부분이 자신의 얼굴이 팔리고 전문적으로 강사가 되는 것에 부정적인 사람들을 간신히 설득해서 데려온 거야.”
찬명은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면 모의고사 문제도 이번에 영입한 강사들하고 같이 만든 거예요?”
아직 한 번도 학원에서 만드는 문제들을 검토해 본 적이 없는 수혁은 설마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응, 맞아....... 미안하다. 솔직히 내가 봐도 문제 수준이 형편없었는데 열심히 일하는 너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어.”
“어떻게 그런......”
수혁은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동안 마음고생 하였을 찬명을 생각하니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맥주잔을 비우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침묵을 지키던 수혁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어려운 결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모의고사 문제들은 모두 폐기하세요, 그리고 지금까지 영입했던 강사들은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서 계약을 해지해야 되요.”
청천 벽력같은 소리를 들은 찬명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수혁을 바라봤다.
“모의고사 문제야 다시 만들면 되지만 강사들을 자르면 현재 열린 강의 중 80퍼센트 가까이를 종료해야 돼. 수혁아, 대책을 한 번 찾아보자. 안 그러면 회사 운영에 큰 차질이 생길 거야.”
“강의 부분은 최대한 빨리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서 잘 끝내면 되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강사들을 다 바꿔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나도 바꿔야 하는 건 알지만 이유나 한 번 들어보자.”
대답을 하려던 수혁은 맥주잔이 빈 것을 확인하자 다시 한 잔 시키고 생각을 정리했다. 주문한 맥주가 오자 그는 맥주를 한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우리가 처음에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는 무료였기 때문에 학생들의 기대치가 낮은 상태였어요, 게다가 데려온 강사들의 수준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죠.”
“그랬지.”
찬명은 수혁의 말에 선선히 동의했다.
“많은 학생들은 무료로 나쁘지 않은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2주 동안 우리 홈페이지에 접속했던 거예요, 그에 따라 우리 회사에 호감을 갖게 된 사람들은 유료강의도 고려해보게 된 거고요.”
“맞아, 분명 고객 게시판을 살펴보면 다들 호평일색이었어.”
“그런데 유료로 강의를 전환한 이후 우리는 다양한 수요를 가진 고객들을 위해서 과목을 확충하고 강사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했죠. 그 결과 강의 질은 이전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고요.”
“게다가 무료강의에서 유료강의로 전환됐을 때는 학생들의 기대치와 요구치는 더 높아졌을 거고......”
찬명은 수혁이 하는 말의 맥락을 이해했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호감을 가졌던 학생들은 우리 사이트를 가격은 싸지만 형편없는 강의를 제공하는 싸구려 회사로 여기기가 쉽게 됐죠. 이렇게 되면 형편이 아주 어려운 아이들만 어쩔 수 없이 우리 강의를 들을 거예요. 즉, 실패라는 이야기죠.”
“옳은 말이야.”
찬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공감했다.
“아시겠지만, 사교육 시장은 입소문이 중요해요. 우리 회사의 기치는 어디까지나 양질의 콘텐츠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겁니다. 이런 싸구려 콘텐츠가 아니라요. 그리고 수익을 내려면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는 주요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돼요.”
“예를 들면?”
“예를 들면 강남 대치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학원가에 다니는 학생들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동네학원이나 과외를 받을 여건이 되는 중산계층의 자녀들은 돼야겠죠? 그리고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계층들은 아무리 값싼 강의라도 강의력이 떨어지면 굳이 인터넷 강의를 안 들을 거예요.”
“즉, 네 말은 주요 고객층이 볼 때 허접한 컨텐츠를 제공했다는 이야기잖아? 하, 그러면 이미 우리 회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쫙 퍼졌겠는데?”
찬명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맞는 말씀이에요, 아마 이런 식이면 서비스를 중단하고 다시 회사를 세워야 할 수도 있어요. 한 번 박힌 이미지는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거든요.”
“정말 미안하다 수혁아. 내가 너무 안이하게 일을 처리한 것 같아.”
찬명은 죄책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수혁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이게 어떻게 형만의 책임이겠어요, 저도 생각이 너무 안이했어요. 다행인건 지금부터라도 대책을 세우면 늦진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 아직 기회는 있는 거야?”
풀이 잔뜩 죽어있던 찬명은 고개를 들고 수혁을 쳐다봤다.
- 87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