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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97화 (97/316)

97화

‘그때 선배들이 회사 CEO가 새파랗게 어린 사람이라고 한 건 들었는데 그게 강수혁이었어?’

명학은 심경이 복잡한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혁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수혁아, 아이디어가 진짜 좋은 것 같아. 회사는 계속 잘 되고 있고?”

“응, 초반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잘 크고 있어. 하지만 두고 봐야지 반짝하는 회사들은 많으니까.”

수혁은 이곳저곳에서 많은 관심을 받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창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명학이 맥주병을 들고 그가 있는 곳으로 왔다.

“강수혁, 이야기 들었다. 사업하고 있다면서? 내가 축하의 의미로 한 잔 줄게.”

‘이 자식이 왜 안 하던 행동을 하지?’

수혁은 그의 행동이 미심쩍었지만 많은 동기들 앞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순순히 잔을 들어 술을 받았다.

“동기모임에 왜 이렇게 안 나오나 했더니 꽤나 바빴나 보네?”

명학은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꼭 그거 때문만은 아니지만 사업 때문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어.”

대화가 내키지 않았던 수혁은 명학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참나 사업 좀 한다고 되게 유세떠네? 하긴 구멍가게 같은 회사도 나름대로 할 거는 많다지?”

명학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수혁의 잔에 자신의 잔을 갖다 대었다.

“역시 네가 나한테 좋은 말을 할 리가 없지. 귀찮으니까 자리로 돌아가서 술이나 마셔라.”

수혁은 냉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명학은 테이블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 서서 말을 이어갔다. 동기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아등바등 해봤자 학원이라는 것이 다 똑같지 않아? 열심히 해봤자 우리 회사 계열사 하나라도 따라올 수 있을까? 분발하라고.”

명학은 술을 들이키며 조롱 섞인 말을 던졌다.

“알아서 잘 할 테니까 그만 자리에 앉아. 애들이 보고 있는데 창피하지도 않냐?”

수혁은 마음이 들끓었지만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꾹 참았다.

“그래 최선을 다해보라고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 나중에 사업 망하면 연락해. 혹시 알아? 내가 회사에 취직시켜줄 수도 있잖아?”

명학은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 생각하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네 기대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입 닥치고 술이나 마셔라. 아까부터 우리 회사, 우리 회사, 넌 도대체 네 능력으로 한 게 뭐가 있냐? 병신 같은 새끼 쯧쯧.”

수혁은 혀를 차며 그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내가 굳이 왜? 난 너처럼 발버둥 안 쳐도 돼.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으스대지 마라.”

명학은 기분이 상했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하, 진짜 한심하다. 그러니까 네가 그 모양 그 꼴이지. 듣자하니 네 형제들은 일찌감치 회사에 들어가서 경영수업을 일찌감치 시작했다면서? 집에서 개무시 받고 사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설치고 다녀?”

수혁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는 찬식에게 정보를 들어 명학이 집안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고 있었다.

“이 자식이 진짜. 거지새끼면 거지새끼답게 굴어.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내 밑이야 새끼야!”

명학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로 말했다. 그러자 수혁은 차분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에게 다가갔다.

“배경 뒤에 숨어서 위세 부리는 쥐새끼들은 이미 충분히 만나봤다. 나랑 이야기 하고 싶으면 능력이나 먼저 갖춰. 후, 어떻게 보면 너도 불쌍하다 불쌍해. 집안 빼면 정말 쥐뿔도 없는 거잖아?”

“.......”

185에 탄탄한 체격을 자랑하는 수혁이 가까이 붙어 이야기를 하자 명학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애들아 미안하다. 나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아진 것 같아. 먼저 가볼게 할 일이 좀 있어서.”

수혁은 멍하니 있는 동기들한테 인사를 한 뒤 술집을 빠져나왔다.

“수혁아 잠깐만.”

찬식은 수혁의 기분을 살피러 같이 따라 나섰고 명학은 주먹을 부서져라 쥐며 그대로 서 있었다.

‘두고 보자, 언젠간 내 앞에서 머리를 숙이게 만들겠어.’

어수선했던 술자리는 수혁이 떠나고 얼마 안 돼서 파해졌고 그렇게 개강총회는 마무리 되었다.

* * *

노량진에 있는 SH스터디의 학원 대표실, 수혁은 찬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입시설명회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네, 설명회는 삼성동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데 학원별로 부스가 할당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행히 한정길 이사님께서 협회와의 논의 끝에 좋은 위치를 받아 놓으셨습니다.”

찬명은 만족스러운지 입가에는 미소가 서려있었다.

“이번에 만든 모의고사 문제지를 검토해 봤는데 질이 괜찮더군요. 제작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강사님들과 교수님들이 힘써준 덕분이지요.”

찬명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한정길 이사님한테 전해주세요, 입시설명을 할 때 고등학교 관계자로 보이는 분은 모두 저한테 보내라고요. 원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수혁은 입시설명회에서 모의고사에 대한 프로모션을 열 계획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지시하여 할당된 부스의 공간을 쪼개서 프로모션을 위한 장소를 만들었다.

서울에서 가장 큰 컨벤션 센터에서 유명학원들 중심으로 설명회가 열렸기에 부스의 규모는 다른 전시회들에 비해서 훨씬 큰 편이었다.

“아, 그리고 제가 일전에 명함 만들라고 한 거 기억하시나요?”

“물론입니다.”

“그것들 좀 저한테 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찬명은 명함들이 가득 들어있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통째로 수혁에게 주었다.

그는 케이스를 열어 수량이 넉넉한 것을 확인한 뒤 닫았다.

“학원 상황은 어떻습니까?”

수혁은 9월에 오픈한 노량진 학원에 대해서 물었다.

“학생들 반응이 폭발적입니다. 기존에 온라인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뿐만 아니라 신규학생들이 물밀 듯이 수강신청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인원이 꽉 찬 상황이라 문의 전화를 받을 때 곤란할 정도입니다.”

보고를 하는 찬명의 얼굴은 무척 밝아보였다.

“이전에도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던 강사들이 온라인 강좌로 더욱 유명해진 탓이 크지요. 문의가 계속 들어오는 고객들을 위해서 추후에 진행할 커리큘럼도 만들어 놓으세요. 예를 들면 12월에 진행할 윈터스쿨이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추가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기회를 놓친 고객들이 미리 수강신청을 할 수 있게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이 외에도 보고할 사안이 더 있나요?”

“네, 최근 들어........”

찬명은 그렇게 한동안 학원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가 입시설명회 관한 세부사항들을 논의한 뒤 대표실을 나갔다.

* * *

수혁을 포함한 SH스터디 직원들은 다가오는 입시설명회 준비와 새로 오픈한 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지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9월 2째 주 토요일, 입시설명회 날이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왔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수혁은 정길과 함께 컨벤션 센터 앞에서 구름 떼 같은 인파를 쳐다보고 있었다.

삼성역 근처에 있는 일송 컨벤션센터 주차장에는 각 지방에서 올라온 버스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럼 들어가 볼까요?”

설명회 개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을 확인한 수혁은 정길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 대전, 광주, 부산 등 곳곳에서 올라온 고등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 그리고 부모님들은 중앙 홀에서 서울학원 협회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었다.

“서울학원 협회와 여러 대학교에서 후원하는 제8회 전국입시설명회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저는 서울학원협회장 김수길 입니다.”

그는 간단히 인사말을 마친 후 중앙 홀 옆에 마련된 학원 부스들에 대해 설명을 해줬고 곧 부스들이 모여있는 홀이 개방되었다.

“어디 먼저 가볼까?”

“그러게 학원들이 한 두 개가 아닌데?”

사람들은 인사말이 끝나자 부스들이 있는 공간으로 몰려갔다.

그곳에는 SH스터디, 명성학원, 신일학원을 비롯하여 나름대로 유명세를 갖고 있는 학원들이 고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협회에서는 학원들의 호객행위를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 학원 관계자들은 그저 부스 안에서 손님들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슬슬 오는군. 다들 오늘 하루 수고해주세요.”

“네, 대표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혁은 사람들이 홀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것을 확인하자 자신의 자리로 갔다. 찬명과 수길도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분주히 움직였다.

“저기, SH스터디다.”

“최근에 엄청 뜨는 학원 아니야? 유명한 강사들도 많이 있던데?”

온라인 강의와 적극적인 홍보로 인지도를 쌓은 SH스터디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홀이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인파들은 SH스터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SH스터디에 사람들이 몰리는 군요.”

명성학원 부스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휴, 그러게요. 예년에는 우리학원에 제일 많이 사람들이 몰렸는데 말이죠.”

다른 직원이 남자의 말에 힘없이 대답했다. 명성학원 부스에는 SH스터디만큼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었지만 그들은 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분주히 부스들로 움직이는 사이 수혁은 부스 안에 마련된 방에서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잘 잡아야 돼. 긴장하지 말자 잘할 수 있을 거야.’

수혁은 준비해온 상담 매뉴얼을 다시 한번 읽어보며 대비를 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네, 안녕 하세요. 데려온 학생들이 학원 안내 상담을 받고 있는데 직원이 이쪽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저기, 이쪽에 마실 것 좀 가져다주세요.”

수혁은 고등학교 관계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오자 직원에게 마실 것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관계자들은 그의 말에 따라 원형 테이블에 배치된 의자에 앉았다.

“밖에 학생들을 기다리시느라 지루하실 텐데 잘 오셨습니다. 저는 SH스터디 대표 강수혁입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수혁과 사람들은 서로 인사했다.

“제가 여러분들을 여기로 모신 이유는 우리 학원에서 제작한 모의고사가 있는데 막간을 이용해서 짧게 설명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수혁은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모의고사요? 전 그냥 들어 가라고해서 온 건데 미처 몰랐네요.”

“대표님이 오신 이유가 따로 있었군요.”

그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수혁은 사람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바로 간파했다.

“저는 선생님들께 모의고사에 대해 짧게 소개만 드리려고 하는 거지 곧장 계약을 맺을 의도는 없습니다. 부디, 학생들이 상담을 하고 있을 동안만 시간을 할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혁은 관계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대표님, 죄송하지만 저희 학교는 오래전부터 명성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받아쓰고 있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신일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받아쓰고 있기 때문에 조금 곤란할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말을 꺼내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대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수혁은 주눅이 들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이미 학원들과 계약을 맺어 모의고사를 공급받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신생 회사이기 때문에 그 틈을 비집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수혁은 선생들의 냉담한 모습에도 여유롭게 말을 이어갔다.

- 9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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