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대표님 신일학원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원뿐만 아니라 이제는 고등학교 안에서도 신일학원의 부정행위에 대한 소문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SH스터디 대표실에서 정길과 수혁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법적으로 대응을 하는 것보다는 이편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한 번 안 좋아진 이미지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요. 뭐 경우에 따라서는 소송과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고요.”
탁상에 앉은 수혁은 볼펜을 돌리며 말했다.
“확실히 온라인 강의의 위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강사들이 한마디씩 언급을 하니 전국에 있는 학생들한테까지 그 파장이 미치고 있습니다. 신일학원의 인지도도 소문의 확대에 한몫했고요.”
10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는 상황에서 유명강사를 중심으로 신일학원의 만행이 언급되자 소문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다.
“바보 같은 행동이었어요, 그 정도 규모의 학원이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다니.”
수혁은 한 번 대중에게 잘못 찍힌 회사들이 어떤 꼴이 되는지를 전생에서 수도 없이 많이 봤기 때문에 신일학원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됐다.
“많은 학생들과 부모님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다보니 벌써 언론 쪽에서도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수혁은 정길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이미 유명 일간지 기자들 중에는 우리 쪽에서 소송을 거는 걸 기다리는 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학원도 명실상부한 유명학원이니 대형학원 간의 분쟁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거지요.”
“뭐, 아직은 언론 쪽까지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는 없어요. 그들의 반응을 보도록 하죠. 하여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정길은 수혁에게 인사를 한 뒤 대표실을 나갔다. 그는 정길이 나간 것을 확인하자 다시 밀린 업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누구지?’
수혁은 평소에 모르는 전화를 받지 않는 주의였다.
그는 걸려오는 전화를 무시하고 업무에 다시 집중해보려 하였지만 연달아 울리는 핸드폰 때문에 집중이 계속 분산되자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
“누구신데 계속 저에게 전화를 하는 겁니까?”
“여보세요? 강수혁 대표님 전화가 맞습니까?”
연배가 제법 있어 보이는 목소리를 가진 남자는 자신이 전화를 건 상대가 수혁이 맞는지를 확인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수혁은 상대방이 나이가 적지않음을 확인하고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신일학원 대표 성덕수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전화는 다름 아닌 덕수에게 걸려온 것이었다.
수혁은 내키지 않았지만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과 관련이 있는 당사자였기 때문에 전화를 계속하기로 했다.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죠?”
수혁은 차갑게 물었다.
“협회 직원에게 물어봐서 알게 됐소. 내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덕수는 불필요한 말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SH스터디에서 우리 학원을 음해하는 이유가 뭐요? 온라인 강의니 뭐니 하면서 많은 학원들 힘들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제 우리 학원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을 했소?”
덕수는 흥분한 목소리로 궤변을 늘어놨다.
“음해라니요? 우리 학원의 공고도 그렇고 관계자들도 직접적으로 학원의 이름을 언급한 적은 없는 걸로 아는데요?”
수혁은 무례한 덕수의 반응에 화가 났지만, 감정을 조절하고 오히려 능청을 떨었다.
“언급을 안 하다니요! 댁네 강사들이 종로에 있는 큰 학원이 부정행위를 했네, 사람들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학원이네 이런 식으로 말을 해서 대중들이 오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혁의 말을 들은 덕수는 격분하였다.
“말은 바로 하셔야죠. 오해는 무슨 오해입니까, 신일학원에서 우리 회사 모의고사 문제 도용하고 불법적으로 다른 학원들에 유출한 거를 모두가 알고 있는데.”
수혁은 냉정하게 말했다.
“증거가 있습니까?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증거를 갖고 이야기를 해야지!”
그의 태도는 뻔뻔하다 못해 당당하였다.
“인터넷 강의 듣는 학생들 중에 신일학원 학생이 없을 줄 압니까? 그들로부터 제보 메일을 수 차례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건 말 안하려고 했는데 우리학원에서 오래전부터 악성댓글과 악의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들을 추적해왔습니다.”
“그 그래서요?”
덕수는 아까와 달리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명성학원과 신일학원이 중심이 되어서 몇 몇 학원들과 함께 SH스터디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증언을 받아놓은 것도 있고 증거들도 충분합니다.”
일전에 수혁은 악성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꾸준히 지켜보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찬명은 몇몇 사람들과 접촉하는데 성공했고 신일학원의 행태에 대한 증언을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강 대표, 만약 우리가 그랬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니오? 학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문제를 돌려쓰는 걸 모르진 않았을 것 아닙니까?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끼리 너무 매섭게 대하지 맙시다.”
그는 대화를 할수록 자신이 불리해지는 것을 느끼자 화제를 바꾸고 정에 호소했다.
“물론 그렇지요. 저도 대표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셔서 정중히 사과만 하시면 이번 한 번은 눈감아주려고 했습니다. 제가 고소를 안 한 것만 봐도 모르시겠습니까?”
수혁은 덕수를 질책했다.
“사과요? 허 참 물의를 일으켜 미안하게 됐소. 이제 음해는 그만 둘 거요?”
덕수는 자기 나름대로 억지로나마 사과를 했지만, 이는 수혁에게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이거 안 되겠군요. 저보다 업계 경력이 많으셔서 선배로 대접하려고 했는데 더 이상 봐드릴 수 없겠습니다. 지금까지 저질렀던 만행들에 대한 책임을 모두 지게 될 거니까 그만 전화 끊으시죠.”
더 이상 말을 섞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낀 수혁은 전화를 끊으려 했다.
“이 사람 이거 사과까지 했는데 너무 야박하구먼. 이쪽 사정도 좀 봐주시오 제발.”
덕수는 상대가 강하게 나오자 아까와 달리 저자세를 취했다. 수혁은 전화를 끊으려 했으나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한 뒤 입을 열었다.
“대표님, 마지막 기회입니다.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사과하시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약속하십쇼.”
수혁의 말을 들은 덕수는 속에서 천불이 끓었지만 꾹 참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안하게 됐소. 앞으로 피곤한 일은 없을 거요.”
“뭘 잘못했는지 제대로 말씀하시고 확실하게 약속을 해주세요.”
수혁은 덕수의 말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 다시 한번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이성의 끈이 끊겨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아래 연배이고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수혁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에 대해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그러나? 이 사람아 양심 좀 가지고 똑바로 살아! 너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줄 알아? 어린 것이 말이야 어른한테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반 존대에 가까운 언행을 하던 덕수는 급기야 반말을 하며 수혁을 모욕했다.
“이제 기회는 없습니다. 후회하지 마십쇼. 그리고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해야지요. 예우해주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수혁은 싸늘하게 대꾸했다.
“뭐? 이 자식이, 야!”
덕수는 전화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으나 전화는 이미 끊긴 후였다.
“빌어먹을 자식이 어디서 감히 나한테...... 헉, 헉.”
덕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흥분한 감정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 한편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 새끼가 우리 학원을 공격하면 어떻게 하지? 일을 벌여도 크게 벌 일 녀석인데.’
덕수는 안절부절못하며 사무실 안을 왔다갔다 거렸다. 한편 수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찬명을 불렀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네, 예전에 제가 회사를 비방하는 자들에 대해서 증거들을 모아달라고 한 적이 있죠?”
“넵.”
“증거들 중에 신일학원과 관련된 것들만 모아서 대표실로 보내주세요. 그리고 언론사에 연락해서 조만간 강수혁 대표가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우리 회사와 신일학원 간의 이슈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전해주세요.”
“언론사 말입니까?”
수혁의 말을 들은 찬명은 놀라서 되물었다.
“네 맞습니다. 신일학원 대표라는 사람이랑 잠깐 통화를 했는데 가만 두면 안 되겠더군요. 이번 기회에 확실히 처리해둘 필요가 있어요. 제가 말 한대로 일을 진행해 주세요.”
“안 그래도 취재 연락이 오는 기자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엄선해서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찬명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신일학원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수혁은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을 보며 상념에 잠겼다.
“큰일 났습니다. 강대표가 뭔가 저지를 것 같아요. 당장 대책을 세워야 됩니다.”
덕수는 수혁과의 통화 이후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음 날이 되자마자 명성학원의 규식과 다른 학원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하여 항상 모이는 찻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성 대표님 진정하세요. 별일이야 있겠어요?”
덕수 건너편에 앉은 남자가 그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우리 학원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들이 계속 돌고 있어요. 현재 우리는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부정행위를 한 나쁜 학원으로 낙인이 찍혔다 이 말이에요.”
덕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모의고사 문제를 무단 사용한 것은 옳지 못한 거지만 어떻게 보면 관행과 같았던 건데 큰 일이 있겠습니까?”
다른 남자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제가 아는 변호사한테 물어봤는데 SH스터디에서 문제로 삼는 지적재산권 위반 사항은 충분히 법률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평이 SH스터디를 도와주고 있는 상황이라 안심할 수 없습니다.”
“신평이라면 법무법인 신평 말하는 거예요? 세상에.......”
처음 말을 꺼낸 남자는 덕수가 신평을 언급하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 학원의 문제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도 우리 학원이 준 모의고사 문제를 쓴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덕수는 자신의 문제에 사람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모임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신일학원이 편법으로 수정하여 만든 모의고사를 받아 쓴 자들이 몇 되었다.
“그건, 크흠.”
“성 대표님 말씀이 맞기는 한데…….”
신일학원에게 모의고사를 받아 쓴 학원의 대표들은 덕수의 말에 당황했고 찻집 안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무거워졌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여러분들을 불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강 대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거예요.”
덕수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능글맞게 말했다.
“거 참, 성 대표.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요?”
여태껏 말없이 대화를 지켜보던 규식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아니, 천 대표님.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예상치 못한 반응에 덕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규식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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