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혜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 뒤에도 그녀는 사안에 대한 몇 가지 질문들을 하였고 수혁은 그때마다 잘 답변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터뷰는 끝이 났다.
“오늘 허심탄회하게 인터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혜선은 수혁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있는 그대로 공정한 보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수혁은 혜선의 손을 맞잡았다.
“다음에는 인터뷰가 아니라 가볍게 식사라도 하면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혜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수혁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기회가 된 다면요.”
“흠, 알겠습니다, 만나서 반가웠고 나중에 또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네, 수고하세요.”
수혁은 짧게 대답했다. 혜선은 조금 민망했지만, 작별인사를 한 뒤 짐을 챙기고 카페를 나섰다.
‘이제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면 되겠어.’
그는 남아있는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예상을 해보았다. 인터뷰가 있은 후 며칠이 지나자 투데이 서울은 지역신문에 SH스터디와 신일학원 간 사안에 대한 보도를 개재했다. 비록 1면을 장식하지는 않았지만, 사회면에서 제법 비중 있게 다뤄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게 되었다.
“신일학원이 글쎄 SH스터디 모의고사를 그대로 도용했나 봐요.”
“저도 신문보고 그 소식 알았어요. 신일학원같이 유서가 깊은 학원이 그런 치졸한 행동을 하다니 믿겨지지가 않네요.”
“아직 모르셨어요?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던데. 모의고사 도용만 한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음해한 흔적들이 이번에 밝혀졌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아이가 신일학원을 다니는데 이제 그만 보낼까 해요.”
기사를 읽은 학부모들은 자신들이 참석하는 모임에서 신일학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미 어느 정도 퍼져있던 소문은 더욱 더 확산되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 * *
신일학원의 만행에 대한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자 덕수는 임직원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학원을 그만두겠다는 전화가 학원에 빗발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여러 언론사들이 신일학원의 입장을 알려달라고 계속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총체적 난국에 빠진 학원의 상황을 덕수에게 보고했다.
“다들 왜 그렇게 호들갑들을 떨어요!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언론들에게 알려주세요.”
덕수는 우왕좌왕하는 직원들에게 분노를 하며 말했다.
“신문기사를 보면 SH스터디에서 사실 인정과 공식적인 사과가 없을 시에는 공고문에 예고한 대로 법적인 대응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괜찮을 까요?”
임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법적인 대응이요? 허, 참 기가 막혀서......”
덕수는 어이없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공식적인 사과가 없을 시 비방에 의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죄로 고소를 하고 지적재산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도 청구할 거라고 합니다. 대표님, 감정적으로만 대응하지 말고 사건을 현실적으로 보셔야 됩니다.”
덕수의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히지 못했던 남자는 진지하게 말했다.
“사과는 무슨 사과요. 잘못을 인정하면 대중들이 봐준답니까?”
덕수는 남자의 말에 화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당분간은 피해가 계속 되겠죠. 하지만 만약에 SH스터디와 법적 소송까지 들어가면 학원의 많은 직원들까지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대표님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학원에 다녔던 학생들까지 증언을 한 상태고 SH스터디는 제보 메일들을 통해 다양한 증거들을 확보했습니다. 마냥 우길 수는 없습니다. 대표님.”
“SH스터디가 제시한 증거들을 뒤집을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소송까지 가면 우리들은 더 큰 피해를 봅니다.”
남자가 덕수에게 항의를 하여 물꼬를 트자 다른 직원들도 앞다투어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서 강조했다. 그는 물밀듯이 들어오는 직원들의 말에 더이상 고집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덕수는 모든 걸 내려놓고 의견을 물었다.
“우선 큰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정식으로 사과를 해야 됩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분명 파장이 예상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야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남자는 덕수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말 한대로 진행하세요.”
덕수는 망연자실해 하며 말했다. 직원들은 그 외에도 학원에 발생한 문제들을 차례대로 보고했다. 그러나 그의 귀에는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 실수야. 강 대표를 너무 얕잡아봤어.’
덕수는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혼잡했던 회의는 끝이 났고 덕수의 지시를 받은 직원은 사과문을 작성하여 신일학원 사이트와 게시판에 공고했다. 그러자 서울투데이를 비롯한 각 언론사들이 사과문을 확인하고 바로 기사를 만들어 내었고 많은 대중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 * *
신일학원이 공식적인 사과를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수혁은 그동안 한국대학교에서 중간고사를 치렀고 남는 시간에는 회사 업무를 보았다.
마지막 중간고사 시험을 마친 수혁은 곧장 회사로 향했다. 이날은 SH스터디의 임직원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신일학원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은 후 여론이 우리에게 더 호의적으로 변하여 많은 학생들의 유입이 있었습니다.”
직원은 최근 늘어난 온라인 강의 학생 수와 새로 들어온 원생들의 숫자를 언급하며 학원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신일학원에서 나온 대부분의 학생들이 우리학원에 온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 우리 회사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학원입니다.”
정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명성과 비교해보았을 때는 어떤가요?”
수혁은 회사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싶었다.
“명성이 비록 오랜 기간 최고의 자리를 유지했지만, 오프라인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 회사한테는 안 될 겁니다.”
“맞습니다. 모의고사 판매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신규고객들로 인해서 이번 달 매출이 150억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비해 명성의 매출은 우리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옆에 있던 직원은 정길의 말을 거들었다
“좋습니다. 이 기세로 앞으로도 잘해봅시다.”
신일학원과의 일을 처리하고 학원도 탄탄대로로 잘 나아가자 수혁은 편안함을 느꼈다. 그 때 찬명이 질문을 했다.
“신일학원이 공식적인 사과를 했지만 저는 고소를 해서 법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표님은 어떠십니까?”
“이미 신일학원은 큰 타격을 입었고 또 많은 학원들은 우리를 질투하고 있어요. 이때 우리가 너무 공격적으로 나선다면 다른 학원들의 조직적인 반발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수혁은 사실 다른 학원들의 조직적인 반발 같은 것은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지만 시끄러운 일로 SH스터디가 언론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일을 정리하려고 했다.
“대표님 뜻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찬명은 수혁의 말을 듣고 금세 순응했다.
“자 그러면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 볼까요?”
수혁은 직원의 보고를 들으며 회의를 계속하였고 1시간 정도 지나자 회의는 마무리 되었다.
‘휴, 조금 피곤하군.’
수혁은 회의를 마치고 대표실에 들어와 휴식을 취했다.
그는 중간고사 기간에 회사업무와 시험 준비를 병행했기 때문에 밤을 새기 일쑤였고 피로가 많이 누적되어 있었다. 수혁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선잠을 청했다. 그런데 그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후, 쉬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네.’
수혁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군지 확인도 안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혁아, 나다.”
휴식을 취하려던 수혁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평우였다. 목소리를 확인한 그는 자세를 고쳐 앉고 대화를 시작했다.
“네, 할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그래, 금요일인데 뭐하고 있어?”
“아, 오늘 시험이 끝나고 회사에 급하게 회의가 있어서 처리하고 잠깐 쉬고 있었습니다.”
“휴식 중인데 괜히 전화했나보구나.”
평우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에요, 마침 다 쉬고 일어나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수혁은 평우가 민망해 할까봐 거짓말을 했다.
“별일은 아니고 내가 아들에게 우리 가문의 일을 너에게 물려주기로 했다고 말하니 너를 한번 보고 싶다는 구나. 혹시 일요일 날 시간 괜찮아? 아들 녀석이 토요일까지는 회사 일로 무척 바쁜 모양이야.”
“네, 저도 일요일이면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회사 일로 한창 바쁠 텐데 괜찮겠어? 여유가 안 되면 편하게 이야기해라.”
평우는 틈틈이 SH스터디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어서 수혁의 사업 활동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진짜 괜찮아요. 그럼 어디서 뵈면 될까요?”
수혁은 시험도 끝났고 신일학원 일도 처리한 상태라 여유가 있는 편이었기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한국대학교 근처에서 볼까? 거기 근처에서 살고 있다면서? 내가 차를 타고 그쪽으로 가마.”
“넵, 알겠습니다.”
수혁은 평우와 약속시간을 정한 뒤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통화가 마친 수혁은 중간고사 때문에 가져왔던 가방을 멘 뒤 학원을 나와 바로 자취방으로 갔다.
‘잠을 좀 자야겠어.’
이런저런 일로 신경을 많이 썼던 수혁은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 * *
수혁은 토요일 하루 동안 어딜 나가지 않고 원룸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일요일이 되었다.
그는 평우와 약속한 시간에 맞춰 한국대학교 후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평우가 먼 곳을 갈 때 항상 타고 다니는 검은색 세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혁아, 오래 기다렸지?”
평우는 차에서 내리며 말을 건넸다.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다행이구나. 일단, 차에 타라. 아들이 식사를 준비해놨다고 빨리 오라고 성화다.”
평우는 수혁을 데리고 차 안에 들어갔다.
“어디로 가나요?”
수혁은 차가 한국대학교를 벗어나 시내에 진입하는 것을 확인하고 물었다.
“성북동 아들 집으로 갈 꺼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거니까 좀 쉬고 있어.”
바깥 풍경을 보고 있던 평우는 차분히 대답했다.
‘성북동이면 기업 회장들이 많이 사는 곳 아닌가? 아드님이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서울에는 여러 부촌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성북동과 한남동은 기업 오너들이나 거물 정치인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했다.
수혁은 아들이 사업을 한다고 했던 평우의 말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내리자, 다 도착했다.”
“네.”
성북동 내의 고급 주택가로 들어온 차는 어느 저택 앞에서 정차했다.
“집이 정말 멋지네요.”
그는 담으로 둘러싸여있고 3층 높이로 지어진 럭셔리한 느낌의 저택을 보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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