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08화 (108/316)

108화

수혁은 석호와의 만남 이후 틈이 날 때면 편의점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회사 업무 같은 경우 중요한 결정 외에는 찬명과 정길이 알아서 처리를 해주었기 때문에 크게 무리는 없었다.

‘다 완성됐다.’

대표실 컴퓨터로 사업계획서를 모두 작성한 수혁은 텍스트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본 뒤 명함에 적힌 메일로 전송했다.

‘아깝지만 인맥을 쌓아두면 도움이 될 때가 분명히 있을 거야.’

수혁은 사업계획서를 쓰기 위해 시장과 동종업계의 수익창출 구조를 분석했고 회귀하기 전에 보았던 편의점들의 특성들을 보고서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다.

편의점은 여건만 되었으면 그가 해도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었다.

‘SH스터디가 안착 됐으니까 이제는 외연확장에 나서야겠어.’

컴퓨터를 끈 수혁은 의자를 젖히고 누워 앞으로의 사업방향에 대해서 고민을 하며 휴식을 취했다.

* * *

명성학원 대표실, 규식은 임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대표님, SH스터디가 이제는 우리를 넘어 학원들 중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를 넘어 선지는 벌써 2달이 넘었고 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직원들은 SH스터디를 두고 설왕설래를 하며 열띤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규식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제가 대책을 강구해야 될까요? 여러분들은 학원에 그냥 몸만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입니까?”

“노력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직원들은 규식의 질책에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SH스터디가 잘 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스타강사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강의를 통해 인지도를 크게 올린 덕에 많은 학생들이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그들의 강의를 듣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규식은 직원의 설명을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 그 강사들을 우리가 데려오면 상황이 변하겠네요?”

“맞습니다. 그렇게 하면 전세를 역전하는 건 시간문제일 겁니다.”

직원은 규식의 말에 동의했다.

“자, 들으세요. 지금부터 SH스터디 소속 강사들과 접촉을 할 겁니다. 그 전에 그들이 계약금을 얼마나 받았고 어떤 조건으로 일하고 있는지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앞서 브리핑을 하던 남자는 전 직원을 대신해서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규식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정보들을 다 알아내면 무조건 SH스터디의 2배되는 조건을 제시해서 계약을 하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SH스터디에서 인재들을 빼와야 합니다.”

당시 학원계에서는 강사들의 이적이 빈번했기 때문에 그의 말은 크게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출혈이 너무 클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미 우리 학원의 그 어떤 강사들보다도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남자는 재정상황이 걱정되어 말을 꺼냈다.

“아니에요, 강사들을 영입하면 이제부터 우리도 온라인 강의 시장에 뛰어들 겁니다. 도태되면 그대로 망하는 겁니다. 그리고 온라인 강의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면 우리가 제시하는 조건들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규식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다음 직원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러면 인재 영입과 동시에 온라인 강의 서비스를 위한 작업도 함께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남자의 얼굴은 열정이 넘쳐보였다.

“시끄러워지지 않게 은밀하게 진행하세요. 강 대표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규식은 덕수가 수혁을 얕잡아보다가 큰 코 다친 것을 떠올리며 당부했다.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책임지고 일을 진행해보겠습니다.”

“하하, 든든합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학원 현황에 대해서 들어볼까요? 이번 달 매출은 어떻게 됩니까?”

규식은 호쾌하게 웃으며 회의를 계속했다.

‘강수혁, 이 어린놈이 물을 많이 흐려놨어. 네가 먼저 시작했으니까 후회하지 마라.’

그는 이번에야말로 수혁을 제압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 * *

명성학원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던 그 시각, 수혁은 오랜만에 본가로 향했다. 선웅은 중대 발표를 할 것이 있다며 그를 집으로 불렀다.

‘시간이 참 빠르다 벌써 11월이구나. 이 동네는 아직도 변한 것이 없네?’

수혁은 빌라촌 근처에 있는 학원가를 걸으며 추억에 잠겼다.

“아버지 저 왔어요.”

수혁은 자신이 살던 빌라에 도착했다.

“수혁이 왔냐? 일로 와서 앉아라.”

선웅은 거실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혁아 배고프지? 먹을 것 좀 들어.”

혜정은 아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과와 마실 것을 준비해 놓았다. 거실에는 상이 세팅되어 있었고 가족들은 상 주변에 앉아 회포를 풀었다.

“사업이 아주 잘되는 것 같던데, 많이 바쁘겠구나?”

“아니에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혜정은 수혁이 사업을 잘 꾸려나가 기뻤지만 한 편으로는 서운해 했다.

“아니 수혁이가 오랜만에 왔는데 왜 이렇게 부담을 줘? 신경 쓰지 말고 하는 일 잘 해라.”

선웅은 아들이 행여 본인들을 신경 쓰느라 일에 지장을 받을까 조심스럽게 대했다.

“아니에요, 엄마 말씀이 맞아요. 그런데 아버지,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어요?”

수혁은 회포를 어느 정도 풀었다는 판단이 들자 용건을 물어봤다.

“하하, 좋은 소식이 있어서 이렇게 자리를 만들었어. 엄마랑 나 다음 주에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잠실로 말이다.”

선웅은 기분이 좋은지 웃으면서 말했다.

“잠실이요? 거기 많이 비싸지 않아요?”

“현월당이 생각보다 잘 돼서 크게 무리한 것도 없어. 수입이 예상보다 많아서 빚 없이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현월당은 장사가 아주 잘 되어 한 달 매출이 5천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 선웅은 장사를 시작한 지 1년이 훌쩍 넘어 적지 않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00년 당시 잠실 집값을 생각해보면 이들이 집을 구한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축하드려요 아버지. 이제 우리도 아파트에서 살게 됐네요.”

수혁은 기뻐하는 아버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수혁이한테도 아파트 하나 해줘야하는데 마음에 걸리네? 현월당이 잘 되게 된 것도 다 우리 아들 덕분인데......”

혜정은 혼자 자취하는 수혁에게 미안한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당분간 원룸에서 계속 지낼 거예요. 학교에서 가까워서 수업 듣기도 편하고 최고에요.”

수혁은 손사래를 치며 혜정을 달랬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한국대학교 주변에는 대학가 특성상 상점들이 많았고 그나마 있는 아파트들이라고는 30년 이상 된 오래된 것들뿐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민망하네.”

선웅은 이사를 가는 기쁨에 취해 수혁에 대한 생각을 못했던 터라 멋쩍어했다.

“괜찮으니까 새집에서 행복하게 잘 사세요. 저는 제가 알아서 잘 할게요.”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선웅은 서운해 하는 내색 없이 말하는 아들의 모습에 다시 얼굴이 밝아졌다. 그들은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새집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 그리고 어떤 사람이 가게에 찾아와서 체인점을 내고 싶다고 문의를 하더라고. 매출의 일정부분을 수수료로 내는 조건으로 말하던데 네 생각은 어떠냐?”

선웅은 수혁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건 아버지 선택에 달려있어요. 식당 음식과 영업 방식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서 가맹점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어요. 대신 점주를 잘못 만나면 현월당의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셔야 되요.”

수혁은 프렌차이즈 사업의 특성을 선웅에게 설명해주었다.

“들어보니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데? 안 그래도 집 근처에 점포를 하나 더 낼 생각은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우리 음식의 비법을 알려주는 것은 좀 꺼려지더라고.”

선웅은 인상을 쓰며 고민에 잠겼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꽁꽁 숨겨? 그냥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우리는 점포 관리만 하면 훨씬 편하잖아.”

혜정은 선웅과 달리 가맹사업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날 그들은 늦은밤이 다 되도록 프렌차이즈 사업에 대해서 논의를 했고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 * *

11월의 어느 날, 수혁은 월례회의를 위해 노량진으로 가고 있었다. 가로수의 낙엽들은 거의 다 떨어져 나무들은 앙상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빨리 가야겠다.’

수혁은 보통 때와 달리 회의시간이 다 임박해서야 학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곧장 회의실로 들어가 준비를 했다.

“대표님이 오셨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찬명은 사람들이 모두 참석한 것을 확인하고는 회의를 개시했다.

“SH스터디 10월 매출이 170억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지난달에 비해서 70퍼센트 이상 성장한 것으로 고무적인 성과로 볼 수 있습니다.”

직원은 매출현황표를 들고 보고했다.

“곧 200억 이상을 찍겠군요. 우리 학원 재정상태는 어떻습니까?”

수혁은 회사가 완전히 안착한 것을 확인하고 다음 스텝을 밟으려고 했다.

“현재 우리 학원의 재정상태는 매우 좋습니다. 인건비나 기타 비용 등을 제하고도 100억에 가까운 돈을 융통할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면 슬슬 학원 분점을 알아봐야 할 것 같군요. 원장님 새로 개원할 학원자리 좀 알아봐 주세요.”

직원의 보고를 들은 수혁은 찬명에게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강의문의가 빗발쳤는데 숨통이 좀 트이겠군요.”

“그래요?”

“네, 지금 노량진 학원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안 그래도 분점 개설을 건의 드리려고 했습니다.”

찬명은 대답했다.

“이번 기회에 좋은 위치에 건물을 매입하여 제대로 된 곳으로 본점을 옮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회사의 규모를 생각해볼 때 노량진을 본점으로 두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정길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 우리 학원 재정상황으로는 본점 건물을 사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확장에 집중하고 여건이 갖춰지면 다시 생각해봅시다.”

수혁은 본점에 관한 것은 신중하게 결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나중에 논의하도록 하죠. 그런데 대표님 문제가 하나 발생하였습니다.”

정길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문제라니요?”

수혁은 웬만한 일로는 동요하지 않는 정길이 진지하게 말하자 궁금해 했다.

“명성학원에서 우리 강사들을 빼돌리려는 시도가 최근에 포착되었습니다. 학원들 사이에서 이런 일들이 가끔씩 발생했으나 이번 경우에는 조금 심각합니다.”

“명성학원이요?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수혁은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며 침착하게 물어봤다.

“명성학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우리 회사 대표강사들에게 접근하여 엄청나게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휘둘리지 않은 강사 한 분이 저에게 알려줘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사태를 파악한 수혁은 해결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10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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