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09화 (109/316)

109화

잠시 생각을 하던 수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을 더 이상 가만두면 안 되겠습니다.”

“대표님.”

찬명은 수혁이 이례적으로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자 놀라워했다.

지금까지 그는 여러 학원들로부터 비방과 견제가 들어와도 적극적인 대응보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이번만큼은 문제를 짚고 넘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정길이 말했다.

“저는 명성학원 대표와 그들의 제안에 넘어간 강사들에게 모두 책임을 물을 겁니다. 이대로 넘어가면 회사기강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수혁은 내부단속을 하지 않으면 회사가 크게 흔들릴 거라고 판단했다.

“명성학원이 접근해 온 것을 알려준 강사님이 누굽니까?”

“접니다.”

과학탐구 대표강사로 활약하고 있는 김학수가 손을 들었다.

“강사님 혹시 그들의 제안을 받아드릴 수 있겠습니까?”

“네?”

수혁의 말에 놀란 학수는 눈을 크게 떴다.

“진짜 명성학원에 가라는 것이 아니라 가는 척만 해주라는 겁니다. 저는 대표뿐만 아니라 제안에 넘어간 강사들에게도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강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명성학원 측에서 저를 부르면 대표님께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학수는 수혁의 속내를 알 수 없었지만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행히 회의실 안에는 정길과 학수를 제외하고는 강사들이 없었기 때문에 정보가 새어나갈 위험도 없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이 사안에 대해서 대처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저한테 즉각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찬명이 직원들을 대표해서 대답했다.

“이 사안은 모의고사 유출사건과는 차원이 달라요. 회사 입장에서 엄청난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사건입니다. 다들 이 문제를 엄중하게 다뤄주세요.”

수혁은 그 뒤에도 한동안 강사유출 사건에 대해 직원들에게 당부를 하였고 결국 다른 안건에 대한 논의는 하지도 못한 채 회의는 끝이 났다.

‘가만두지 않겠어.’

회의를 마친 수혁은 대표실에 들어와 형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님 접니다.”

“네,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형석은 별 일이 없는지 전화를 바로 받았다.

“회사 일과 관련해서 상의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네, 이번엔 다른 학원인데요......”

수혁은 명성학원이 강사를 빼돌리려는 행위에 대해서 상세히 이야기를 해줬고 형석은 그 부분에 대한 법률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면 이 사안들이 충분히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물론입니다. 명성학원의 행위도 문제지만 강사들의 사해행위에 대해서도 소송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형석은 수혁을 만나 세부적인 논의를 하고 싶어 했다.

“제가 안 그래도 변호사님한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잘됐군요. 시간이 되시면 저랑 직접 명성학원에 찾아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명성학원 대표가 자신의 사유지에 우리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때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형석은 법적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형석은 수혁에게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주었다. 그들은 그렇게 명성학원 관련된 일로 한참을 상의했다.

* * *

“다 왔군요. 들어가시죠.”

수혁은 형석을 데리고 강남역 근처에 있는 명성학원 본사 앞에 도착했다.

“대표님, 문제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제가 대화를 이끌어가겠습니다.”

형석은 규식과 강사들을 만나기에 앞서 당부했다. 수혁은 학수에게 연락을 받고 명성학원으로 넘어가려는 강사들이 규식과 미팅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가시죠.”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형석은 1층 안내 데스크에 가서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SH스터디 대리인 자격으로 온 김형석 변호사입니다. 혹시 대표님 계십니까?”

“대표님은 왜 찾으시는 거죠?”

직원은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았다.

“현재 SH스터디 소속 강사들이 계약을 위반하고 명성학원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겁니다. 저는 천규식 대표님과 강사님들에게 법률적 위반 사안에 대해서 경고를 하려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데스크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대표님이 워낙 바쁘셔서요. 그리고 SH스터디 강사님들이 여기 온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그러면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형석은 직원이 예상한대로 발뺌을 하자 능숙하게 대처를 했다.

“저기 죄송한데 두 분이 학원 앞에서 이러고 계시면 영업에 방해가 됩니다. 죄송하지만 나가주시겠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자리에 계속 서있으시면 불편하거든요.”

직원은 수혁과 형석을 사유지에 무단침입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요.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건물 밖 공용도로는 사유재산에 포함되지 않으니 바로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명성학원 출입구는 두 군데 뿐이었는데 형석은 입구가 잘 보이는 장소에서 규식과 강사들을 기다리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직원은 발끈하여 언성을 높였다.

“변호사님 좋게 말해서는 안 되겠군요. 제가 말하겠습니다.”

수혁은 원래 형석에게 일을 맡기려고 했으나 그가 너무 조심스럽게만 행동을 하는 것 같아 직접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봐요. 저는 SH스터디 강수혁 대표입니다.”

“그런데요?”

직원은 수혁의 정중한 소개에도 불구하고 까칠하게 반응했다.

“지금 학원 주차장에 우리 쪽 강사님들 차들이 주차되어 있던데 정말 모르는 일입니까?”

수혁은 직원을 날카롭게 쳐다보며 물었다.

“그, 그거까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직원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모르겠다고 하시는데 제가 여기 어떻게 온 지 아십니까? 저는 지금 이 건물 안에 있는 대표강사님의 연락을 받고 온 거에요. 계속 거짓말하시면 이대로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학수는 수혁의 지시를 받고 명성학원의 제안을 받은 척을 했다. 그는 현재 명성학원 본사에 와있는 상태였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대표님한테 지시받고 말한 것뿐이에요.”

핀치에 몰린 직원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 대표님한테 당장 전화하세요. 제가 다 알고 찾아왔으니 강사들 데리고 이쪽으로 오라고. 만약에 거절 시에는 후회하게 될 거라고 전해주세요.”

수혁은 할 말을 모두 마친 후 형석과 함께 데스크 앞에 배치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직원은 1층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고 잠시 뒤 수혁에게 다가왔다.

“저는 몰랐는데 대표님이 학원에 계셨네요. 대표실로 올라오시랍니다.”

수혁은 끝까지 발뺌하는 직원을 노려보다가 말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한편 규식은 학수와 몇몇 강사들을 데리고 새로 만든 인터넷강의 전용 스튜디오를 구경시켜주다가 직원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대표실로 향했다.

“저 대표님, SH스터디 강수혁 대표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직원은 노크를 하고 대표실에 들어가 알렸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그는 강사들에게 스튜디오에서 남겨두고 혼자 대표실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수혁과 형석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 강 대표. 어서 오세요.”

“인사는 됐고 강사님들은 어디 있습니까?”

인사를 생략한 수혁은 차갑게 물었다.

“뭐 다 아신다고 하니까 숨길 생각은 없습니다. 강사들은 현재 다른 곳에 있어요.”

규식은 직원에게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숨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안 되겠네.”

수혁은 규식이 비협조적인 태도로 나오자 전화를 꺼내 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에게 강사들을 데리고 대표실에 오라고 말했다. 규식은 그 모습을 보더니 무안한지 얼굴이 빨개졌다.

“잠깐 기다리죠. 자세한 이야기는 강사들이 도착하면 하겠습니다.”

수혁과 형석은 대표실 안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자 학수와 내통한 강사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방에 들어온 학수는 수혁을 발견하고 인사했다. 다른 강사들은 부끄러운지 할 말을 잊은 채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강 대표, 그래요. 기왕 이렇게 된 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합시다.”

규식은 자세를 고쳐 앉더니 입을 열었다.

“다행히도 배신한 강사님들이 많지 않네요.”

수혁은 그의 말은 듣지도 않고 학수 옆에 서 있는 강사들을 쳐다봤다.

학수를 제외하고 명성학원의 유혹에 넘어간 강사는 2명이었는데 그들은 대표강사는 아니었지만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강 대표, 솔직히 우리가 좋은 관계는 아니지 않소. 어떻게 보면 경쟁관계이기도 하고. 내 당장 이분들과 함께하겠다고 부른 것이 아니라 나중에 같이 일하면 어떨까 해서 부른 거요.”

규식은 학원 관행상 강사들과 1년 단위로 계약한 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말했다. 사실 회사들 간에 계약이 거의 만료되어가는 직원을 스카웃하는 일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

“역시 사과보다는 변명을 늘어놓으시네요. 명성학원에서는 계약기간이 4년 이상 남은 강사들을 몰래 빼돌리는 취미를 갖고 있나 보군요?”

수혁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애시 당초 계약서를 만들 때 계약기간을 최소 3년에서 많으면 5년까지 설정해놓은 상태였다. 회귀하기 전에 강사들이 학원을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것을 목격한 수혁은 사전에 그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형석과 작업을 해놓은 상황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규식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당황하여 강사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규식의 시선을 외면하고 땅만 보고 있었다.

“계약 내용을 모를 리는 없었을 테고. 돈을 많이 준다니까 그냥 간 거 같은데?”

수혁은 강사들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대표님 지금부터는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형석은 상황을 쭉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수혁은 선선히 형석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여기 계신 강사님들과 천규식 대표님은 심각한 법률 위반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뭐요? 그럼 우리가 범죄라도 저질렀다는 말이요?”

규식은 황당해하며 말했다.

“엄밀히 말해서 형사적 의미의 범죄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확대 해석을 하면 다툼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강 대표. 내가 기분상할 만한 행동은 했지만 조금 너무한 거 아니요?”

규식은 일이 점점 커지자 수혁을 보며 호소했다.

“그러니까 사과를 먼저 하셨어야지요. 아니 이미 늦었습니다. 이런 파렴치한 행동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변호사님 계속 하세요.”

수혁은 규식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냉정하게 굴었다.

- 11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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