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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10화 (110/316)

110화

형석은 사안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다음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명성학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학원은 현재 불법적으로 타 회사의 중요 인재를 빼돌리려고 했습니다. 이는 부정경쟁행위 및 시장교란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계약기간이 많이 남은 강사들을 본사에 부른 행위만으로 이미 불법행위에 착수했다고 볼 수 있지요.”

“아니, 변호사 양반 난 그냥 대화하자고 부른 거라니까요. 강사들을 빼낼 의도까지는 없었다 이 말입니다.”

규식은 당황해하며 말했다.

“그거는 나중에 법정에서 다툴 문제고요. 다행이신 건 빼돌리려 한 강사들을 데리고 아직 수익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배상액이 예상보다는 크지는 않겠네요.”

형석이 차분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그때 학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천규식 대표님, 그냥 대화라니요. 좀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에게 SH스터디와 계약을 해지하고 넘어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그건.......”

학수가 규식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언을 하자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쩔쩔 매었다.

“나중에 소를 제기해서 정식으로 재판에 들어가면 증언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그 부분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형석은 학수에게 부탁을 한 뒤 말을 이어나갔다.

“명성학원은 강사들에게 전속계약 위반을 유도한 정황도 있습니다. 이는 경쟁사에 불법적으로 큰 피해를 입히려 한 행동으로 판단이 되기 때문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SH스터디 같이 업계에서 제일가는 회사라면 말이죠.”

“마음대로 하시오.”

규식은 체념을 한 듯 눈을 감고 말했다. 그로서는 현장에서 들킨 것도 컸지만 학수의 존재로 인해 더 이상 변명할 여지는 하나도 없었다.

“혹시, 계약서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형석은 강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읽어는 봤지요.”

강사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계약을 위반할 시 거액의 위약금이 걸려 있다는 건 아시지요? 강사들마다 계약서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0억의 위약금이 걸려있습니다.”

“10억이요? 그건 불공정 계약 아닌가요?”

강사는 예상보다 큰 금액에 놀란 듯 항변했다.

‘10억이 크다고? 미래에는 위약금으로 200억을 내는 강사도 생긴다고.’

수혁은 회귀하기 전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의 전생에서는 사교육 시장이 팽창됨에 따라 강사의 영향력은 비약적으로 커졌고 급기야 수백억에 달하는 위약금을 걸고 계약을 하는 경우도 발생했었다.

“지금까지 강사님이 온라인 강의와 현장 수업으로 회사에 벌어다 준 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만약 타 학원 이적시 남은 계약기간 동안 발생할 회사의 손해를 생각해보면 납득이 아예 안 가는 것은 아닐 텐데요?”

“…….”

논리 정연한 설명을 들은 강사들은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자,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혁은 고개를 숙이며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사들을 보며 말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강사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수혁에게 사정했다.

“여러분들의 처분은 한정길 이사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일단은 먼저 들어가세요.”

수혁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한 번 사과를 한 뒤 명성학원을 빠져나갔다.

“이제 우리끼리 대화를 해보죠.”

수혁은 책상에 앉아 멍하니 있는 규식에게 말을 걸었다.

“이미 결론 다 지어놓고 사람을 핍박하는데 무슨 대화를 합니까?”

규식은 고개를 저으며 푸념만 늘어놓았다.

“그러면 대화는 끝난 것으로 알고 나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십쇼.”

수혁은 형석을 데리고 대표실 문을 나서려고 했다.

“거 참 젊은 사람이 그렇게 뻣뻣하기만 해서 쓰나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아야지.”

“당신 같으면 공경하는 마음이 들겠습니까?”

“뭐 당신?”

수혁은 나가려던 차에 몸을 돌려 차갑게 대꾸하였고 규식은 화가 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내가 잘못했다고 했는데도 계속 강하게만 나오니 별 수 있나? 사람이 부드러운 면도 있어야지.”

“학원 지키고 싶으면 경거망동 하지 말고 자중하십쇼.”

수혁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명성학원에서 나와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정식으로 소제기를 하시겠습니까?”

형석은 진중한 목소리로 물어봤다.

“네. 대신, 소가 쓸데없이 길어 질만한 쟁점사안들은 신중하게 접근해주세요. 그 외에 잘못이 명백한 부분들은 바로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수혁은 각오를 굳혔는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법인으로 돌아가서 바로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형석은 수혁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여보세요, 네 원장님 접니다. 지금 회사로 가는데 긴급미팅이 있으니까 총괄이사님하고 대표실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혁은 형석이 떠나자 바로 전화를 꺼내 찬명에게 연락했다. 그는 전화를 끊고 곧장 노량진으로 향했다.

* * *

“대표님, 명성학원에서 일은 잘 해결 되었습니까?”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금방 오셨군요?”

정길과 찬명은 대표실 밖에서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시죠.”

수혁은 문을 열고 대표실로 들어갔다.

“원래 임직원 회의를 통해서 밝히려고 했는데 시간이 걸릴 거 같아서 여러분들만 보자고 했습니다.”

수혁은 목이 마른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마시며 이야기했다.

“원장님, 서울 근방에 명성학원 지점들이 몇 개나 됩니까?”

“강남, 종로, 노량진, 용인, 목동 등 못해도 다섯 개 이상은 되는 것 같습니다.”

찬명은 대답했다.

“명성학원 지점들 모두 파악한 다음에 그 옆에 괜찮은 건물이 있으면 모두 매입하세요. 이제부터 전면전에 들어갈 겁니다.”

“네?”

“현재 우리 회사의 매출 수준이면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받는데 어렵지 않을 겁니다. 재정 상황 고려해서 최대한 많은 건물들을 사들이세요.”

수혁은 명성학원과 정면으로 붙어보기로 했다. 그는 명성학원 지점들 옆에 학원을 열어 경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표님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지만 돈보다는 직원과 강사 수급이 쉽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많은 학원들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들이 필요합니다.”

찬명은 현실적인 제약을 이유로 지시 이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걱정할 거 없습니다. 그 부분은 한정길 이사님이 처리해주실 겁니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정길은 그들의 대화를 듣다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궁금해 했다.

“명성학원 본점이든 지점이든 가리지 않고 행정직원들과 강사들을 영입하세요. 조건을 명성보다 더 후하게 제시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원장님과 잘 상의하여 학원에 필요한 인력만큼 사람들을 영입하겠습니다.”

“계약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사람들 위주로 영입하세요. 12월 중순이나 말경에 학원들을 개원할 생각이니까 시간을 감안해서 작업을 진행해주세요.”

명성학원은 SH스터디와 달리 직원들과의 계약을 대부분 1년 길어야 2년으로 하는 편이었다. 수혁은 학원업무에 익숙한 명성의 직원들을 데리고 새로 연 학원들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적당히 했어야지. 천 대표 본인이 했던 행동으로 당하게 되면 속 꽤나 썩겠는데?’

그는 여름 때부터 시작되어온 SH스터디에 대한 비방과 여러 음모들의 중심에 명성과 신일이 있다는 것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수혁은 이번 일을 계기로 그들과의 일을 모두 매듭지으려고 했다.

“그러면 전 곧바로 명성학원 근처에 있는 건물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저도 명성학원 직원들과 접촉을 해보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수혁은 명성학원 사안에 대한 논의를 끝내고 짐을 챙겨 원룸으로 향했다.

* * *

쌀쌀한 늦가을의 저녁, 수혁은 대학가 근처 자신의 원룸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서 씻고 쉬어야겠어. 피곤하다.’

수혁은 명성학원으로 인해 들끓었던 감정을 다스리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때 낯익은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수혁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유리야, 여긴 어쩐 일이야?”

수혁에게 말을 건 여자는 유리였다. 그녀는 대학가 근처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카페에서 공부 좀 하다가 집에 가는 길이야. 그건 그렇고 요즘 통 못 봤네?”

“그러게, 거의 6개월 만인 것 같은데?”

사업으로 인해 바쁘게 지냈던 수혁은 비즈니스와 관련된 자가 아닌 이상 사람들을 잘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유리도 공부에 열중하느라 바쁘기는 매한가지였다.

“난 초과학점 듣느라 친구들 만날 겨를이 없었어. 최대한 빨리 졸업하고 일하고 싶어서 좀 무리했거든.”

유리는 방학 때도 계절 학기를 듣고 초과학점을 신청할 정도로 학업에만 매달리는 중이었다. 그녀는 한국대학교에 있는 조기졸업 제도를 이용해 사회진출 시기를 앞당기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 하는 일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응, 관련 자격증들 준비도 하고 있고 졸업하면 들어갈 기관들도 알아보고 있어. 들어보니까 사업이 잘되고 있다며?”

유리는 수혁이 교육 사업으로 성공했다는 사실을 주변 아이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아직 멀었어. 더 열심히 해야지.”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다음주에는 NGO단체에서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해보기로 했어. 가서 비정부단체에서 어떻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지 알아보려고.”

그녀는 열의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유리는 변한 게 없네. 나중에 사업이 더 번창하면 재단을 하나 만들려고 했는데 같이 일해도 괜찮겠어.’

수혁은 사업이 더 커지면 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공헌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가까운 미래가 되면 사회적 기업이 큰 이슈로 대두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생 때 보면 국민들에게 호감을 산 기업일수록 더 번창했었지. 반면에 회사 이미지 관리를 잘 못한 기업들은 도태되는 경우도 많았고.’

그는 회귀하기 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재단을 설립할 계획도 대략적으로 생각해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유리는 수혁이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말이 없자 물어보았다.

“별 거 아니야. 유리야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나랑 일 하나 해볼래? 나도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것에 너만큼은 아니지만 관심은 있거든.”

수혁은 본인이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에 회사 이미지 제고 차원이 아니더라도 재단을 꾸려 사회에 이바지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네가 말하면 고민해볼게.”

유리는 흔쾌히 승낙하지는 않았지만 여지는 남겼다.

“그래, 그거면 됐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

그들은 대학가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잠시 후 헤어졌다.

‘간만에 유리랑 만나니까 편안해졌어. 오늘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다행이다.’

수혁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원룸에 들어갔다.

- 11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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