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11월이 지나 12월이 되었다.
가로수의 낙엽들은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고 겨울의 찬 기운이 공기 중에 감돌고 있었다. 수혁은 매달 한 번씩 있는 월례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노량진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직원들은 회의 준비를 위해 회의실을 세팅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와 있는 상태였다.
“준비 끝나면 바로 회의 시작하죠.”
수혁이 자리에 착석하자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들 도착한 것 같습니다.”
“네, 그러면 지금부터 월례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지난달 매출에 대한 보고가 있겠습니다. 지난 11월 SH스터디 매출이 200억을 넘겼습니다.”
“잘 됐군요.”
수혁은 차분히 보고를 경청했다.
“현재 인터넷 강의에 대한 수요도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현장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운영하는 노량진 학원 외에 추가로 지점들을 운영하면 더 많은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직원은 고객들의 의견을 수렴해놓은 자료를 보며 말했다.
“원장님, 저번에 지시했던 사항들은 잘 이행되고 있나요?”
“넵. 현재 강남과 목동에 건물 매입을 완료했고 다른 곳도 계약이 거의 성사되었습니다.”
찬명은 지난달 수혁의 지시를 받고 바로 작업에 착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진행하세요. 1월부터는 개원을 할 수 있게 해서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시켜드려야 합니다.”
수혁은 적절한 시기에 분점을 열어 재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학생들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입한 건물들에 대해서는 이미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개원시기에 맞춰 학생 모집에 들어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작 1달인데 내부 리모델링 작업을 끝마칠 수 있겠습니까?”수혁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각 층마다 각각 다른 업체들을 불러 작업을 동시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비용은 배로 이상 들어가고 있습니다.”“돈은 신경쓰지 마시고 고객들에게 약속했던 시기를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던 대로 계속 진행하세요.”
그는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사님, 명성학원 직원들과 접촉해 보셨습니까?”
수혁은 정길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안에 호응하더군요. 명성학원 측에서 평소 계약 기간을 길게 하지 않은 부분이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천대표가 직원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은 것도 한몫했고요.”
정길은 지시를 받은 이후 행정직원들과 강사들에게 접근했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교무실과 데스크에서 일할 직원들의 경우야 안심이 되지만 강사 영입은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겁니다. SH스터디에 공부를 하러 오는 학생들이 우리 회사에 기대하는 퀄리티는 상당히 높으니까요.”
수혁은 스타강사들로 인해 한껏 높아진 회사의 인지도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염려했다.
“우리 정도는 아니지만, 명성에는 훌륭한 강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강사들을 컨택할 땐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접근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것보다 좋은 소식이 또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요?”
그는 정길의 말에 호기심이 들었다.
“모의고사 유출 사건 이후로 큰 타격을 입은 신일학원 출신 강사들과 직원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니 우리 학원에 들어오고 싶은 자들이 상당 수 되더군요.”
신일학원은 날이 갈수록 학원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안 좋은 여론 탓에 많은 학생들이 빠져나갔고 내부에서도 성덕수 대표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아 학원 운영에 큰 차질을 겪고 있었다.
“잘 됐군요. 앞으로 우리 회사는 더 공격적으로 확장에 나설 겁니다. 이사님은 사람들을 엄선해서 인재들을 충원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신경 써 주세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정길은 대답했다.
“현재 우리 회사는 업계 최고의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중요한 선택을 했습니다. 초반에는 공격적인 운영으로 인해 많은 돈이 빠져나갈 겁니다. 하지만 결국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게 될 겁니다.”
주변에서는 지점을 동시다발적으로 여는 것에 대해 무리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수혁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이후에도 회사의 여러 안건들에 대한 보고를 듣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던 회의는 무사히 끝이 났다.
* * *
때는 12월 중순. 이 시기의 대학생들은 기말시험을 위해 도서관에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대부분의 수업들이 조기 종강하거나 기말시험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내가 내준 숙제는 잘 하고 있었겠지?’
수혁은 시간이 남자 용민을 불러 중간점검을 하기로 했다. 그는 학교 광장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다.
“수혁아, 빨리 왔네?”
용민은 이 날 있었던 시험을 막 끝내고 부리나케 카페에 왔다.
“아니야, 나도 방금 도착했어. 뭐 마실래?”
“괜찮아 들어오면서 주문했어. 잠깐만 커피 좀 가지고 올게.”
용민은 짐을 놓고 주문한 커피를 가지러 카운터에 갔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네.’
지난 6월에 수혁은 용민에게 조작법이 간단한 게임이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너는 잘 지내고 있었어? 요즘 보니까 너희 회사 완전 잘 나가던데?”
커피를 손에 든 용민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나중에 너랑 내가 벌일 일은 SH스터디보다 더 크게 될 수도 있어.”
수혁은 SH스터디가 완전히 안정화되면 인터넷 사업을 할 의향이 있었다. 그는 그 계획안에 용민을 동참시킬 생각이었다.
“그래?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네? 잠시만, 우리가 만든 거 보여줄게.”
용민은 가방을 뒤지더니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같이 작업을 하는 친구들과 만든 프로그램들을 실행시켰다.
“이것들은 게임들인데, 네가 말한 대로 간단한 조작으로 쉽게 할 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어.”
그가 보여준 게임들은 테트리스처럼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임부터 전략시뮬레이션과 같이 다소 복잡한 게임까지 다양했다.
“고생 많았어. 확실히 이전보다 조작이 쉬워진 것 같아. 용량도 이전에 비해서 많이 줄었고.”
수혁은 게임들을 꼼꼼히 살펴보며 말했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아서 부족한 것이 많아. 네가 피드백해주면 바로 보완할게.”
“흠, 우선 다른 것들도 다 보고 한 번에 이야기해줄게.”
“알겠어. 이건 네가 저번에 말했던 프로그램들인데.”
용민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실행해서 보여줬다. 수혁은 그의 설명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고생한 흔적은 보이는데 수정해야 할 사안들이 많다. 아무래도 처음에 자세히 설명을 안 해준 것이 문제였던 것 같네.’
수혁은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던 중 문제점들을 발견했다.
“그, 용민아. 우선 게임 먼저 이야기하면 노력한 건 알겠지만 용량을 조금만 더 줄여줬으면 좋겠어.”
“그래?”
게임들은 기존의 것들에 비해 크기가 상당히 작아졌지만, 스마트폰 어플로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용량이었다.
“그리고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전문게임회사가 만드는 것처럼 높은 퀄리티를 갖출 필요는 없어. 나는 그냥 사람들이 쉴 때 생각 없이 편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이 필요해.”
“어떻게하면 좋을까?”
용민은 피드백이 시작되자 대화에 더욱 집중했다.
“우선 게임 캐릭터를 멋있게 만들기 보다는 단순하지만, 특징이 살게 만들었으면 좋겠어. 그러는 편이 용량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되고 대중들에게 호감을 얻기도 더 쉬울 거야.”
수혁은 잘 만든 게임 캐릭터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한 회사가 스마트폰으로 조작하는 게임 하나로 수천억의 매출을 올린 것을 회상했다.
‘그 게임이 성공한 이유는 조작법이 쉽고 간단한 것에도 있었지만 많은 유저들이 게임 캐릭터에 열광했기 때문이었지.’
수혁은 회귀하기 전 성공했던 어플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캐릭터 관련된 부분은 주변에 애니매이션 작업을 해본 사람들한테 조언을 얻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디펜스 게임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는 캐릭터 외에도 미래에 유행하는 게임 컨셉들을 용민에게 자세히 알려줬다.
“진짜 끝내주는 아이디어다. 이런 게임이라면 사람들이 금방 빠져들겠어.”
용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의 말을 경청했다.
“다음은 버스랑 지하철 프로그램 관련된 건데, 잘 만들긴 했지만, 추가 기능을 더 넣어줘야 될 것 같아.”
“뭐를 넣으면 좋을까?”
“목적지까지 가는데 걸리는 예상시간이나 최단 거리 코스를 찾아주는 기능을 넣으면 어떨까?”
수혁은 현대에서 많이 쓰이는 대중교통 어플의 여러 기능들을 상세히 설명해줬다.
“와, 생각보다 되게 복잡한 프로그램이었네. 난 되게 쉬운 과제라고 생각했는데......”
작업이 만만치 않다고 느낀 용민은 급기야 메모장을 꺼내 설명들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유가 되면 나중에 지도 관련한 프로그램도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지도도 만들면 괜찮겠다, 되게 유용하겠는데?”
용민은 끊임없는 나오는 수혁의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지도를 만드는 게 쉽지는 않을 거야. 국토부나 여러 사이트들을 뒤져 자료를 잘 구하고 사람들이 보기 편리하게 제작을 해야 돼.”
수혁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지도 검색을 많이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이트 맵 기능은 한 해외업체에서 인공위성을 활용해 지도를 제작한 후로 점차 보편화되었는데 그는 인터넷 사업을 위해 부족하게나마 미리 만들어 놓으려고 했다.
“음, 어렵겠지만 친구들하고 상의해서 잘 만들어볼게.”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가는 추가적인 비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그리고 친구들에게 전해줘, 내년 상반기에 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니까 참여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수혁은 용민과 대화를 나누며 다음 사업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도 조금씩 짜고 있었다.
“애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겠지만 잘 말해볼게.”
“고마워, 나중에 또 보자.”
그들은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다.
‘SH스터디를 궤도에 올려놓으면 바로 다음 사업을 준비해야겠다.’
수혁은 인터넷 사업에 대한 구상을 하며 길을 걸었다.
* * *
한편, 명성학원 회의실서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규식을 비롯한 직원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네, 현재 각 지점의 직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재계약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연말 이후에는 학원 운영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
강사들과 직원들 계약을 관리하는 인사담당 직원은 상황의 심각성을 보고하고 있었다.
“그러면 공고를 내서 사람들을 뽑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규식은 명성학원의 브랜드라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안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계약을 거부하고 있는 인원들의 능력을 고려해봤을 때, 대규모로 신규채용을 하면 업무 공백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새로 뽑힌 직원들에게는 적절한 교육이 필요한데 기존 직원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규식은 퉁명스럽게 물어봤다.
그는 최근에 SH스터디에서 고소가 들어와 가뜩이나 예민해졌는데 직원의 말을 듣자 짜증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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