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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12화 (112/316)

112화

“아시다시피 현재 오랫동안 일하던 직원들을 중심으로 재계약을 거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통 직원들은 고참들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그들이 재계약을 안 하자 내부적으로도 동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참들이 그 모양이면 새로 직원들을 뽑아도 교육 시킬 사람도 부족할 거 아닙니까? 거참, 다들 왜 그런답니까?”

규식은 상황이 답답한지 언성을 높였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SH스터디 쪽에서 우리 직원들과 접촉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직원은 행여나 천 대표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말해다.

“뭐라고요? SH스터디에서요?”

규식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어봤다.

“네, 그쪽에서 지금 계약기간이 거의 만료되는 직원들에게 접근해서 인력을 빼내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제시하는 조건에 배 이상 괜찮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있는 거 같습니다.”

“이런 뻔뻔한 사람을 봤나? 나한테 훈계를 하고 가더니 뒤에서 개수작을 부려?”

규식은 화가 많이 나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SH스터디에서 부정경쟁행위 명목으로 고소를 했는데 현재 형사와 민사 양방향으로 소가 제기되면서 소송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셔야 됩니다. 지금 우리는 전쟁 중이에요.”

규식은 수혁이 전 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후속조치에 대해서 논의하다가 회의를 마무리했고 곧장 수혁에게 연락했다.

“여보세요, SH스터디죠? 강대표 부탁드립니다.”

규식은 수혁의 번호를 몰랐기 때문에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직원은 천규식 대표의 신원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대표실로 연결 시켰다. 수혁은 한창 업무를 보고 있다가 전화가 걸려오자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강수혁 대표 맞습니까?”

‘천규식?’

수혁은 대번에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바쁜데 뭣 때문에 전화하셨습니까?”

수혁은 전화를 건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냉담하게 말했다.

“이 사람아, 내가 당신네 강사들을 좀 만났다고 본원까지 찾아와서 그 난리를 치더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분을 참지 못한 규식은 호통을 쳤다.

“이제 제 기분을 좀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절 뭐 하러 건들어서 이 사단을 만드셨습니까?”

“뭐야?”

수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능청을 떨었다.

“우리 직원들 데리고 가서 뭐하려고 하나? 어차피 노량진에 조그만 학원 하나 가지고 있으면서 욕심이 지나친 거 아닌가?”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고 계시지 못하는 군요, 우리 회사가 업계에서 1등을 한 지 벌써 몇 달 되었습니다. 명성학원이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왜 못하겠습니까?”

“흥, 분점을 내보려는 생각인가 본데, 마음먹은 것처럼 될 것 같은가? 학원 운영하는 것이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게 아니야.”

“그래도 저는 대표님처럼 직원 대우를 형편없이 하지는 않습니다. 듣기로는 명성학원에서 부려먹는 만큼 돈을 주지 않아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데요?”

“이 사람이 정말.......”

상호간에 날이 선 대화가 오가자 그들의 언행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두고 보세요, 후회하는 날이 올 겁니다. 저는 바빠서 이만 전화를 끊어야겠습니다.”

수혁은 규식이 명성학원 주변에 학원을 열 계획을 간파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자 더이상 대화를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철부지 같은 행동 하지 말고 처신 똑바로 하게.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같으니라고.”

“말씀 잘 들었습니다. 본인의 행동으로 인해 회사가 어떤 꼴이 될지 두고 보세요.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겁니다.”

수혁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규식은 이미 전화를 끊은 상태였다.

‘멍청한 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끝까지 꼬장꼬장하게 구네.’

그는 조소를 머금으며 규식을 생각하다가 다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 * *

12월 중순의 어느 날, 일정이 모두 끝난 대학은 방학을 했고 수혁은 모처럼 여유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평우의 연락을 받고 헌책방 거리에 있는 베네치아로 향하고 있었다.

‘진짜 오랜만이다. 세월이 지나도 여기는 변한 게 없네.’

카페 앞에 도착한 수혁은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감상에 빠졌다.

그는 시계를 보고 약속 시간이 임박한 것을 확인하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수님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잘 지냈지. 자네는 사업이 아주 잘 된다면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 없이 잘하고 있습니다.”

평우는 회포를 풀 생각으로 우진도 자리에 불렀다.

“수혁아, 김 교수가 좋은 소식이 있다는데, 혹시 이야기 들었어?”

“전 들은게 없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수혁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우진을 바라봤다.

“하하, 형님 제가 말하겠습니다.”

우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2년의 시간 동안 고서 번역에 충실했고 귀중한 자료들을 학계에 아낌없이 공유하지 않았나?”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수혁은 겸손하게 말했다.

“내가 최근에 협회에 다녀왔는데 위원회에 있는 친구한테 들으니 자네가 학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영구회원으로 승급시키자는 논의가 있었다는구먼.”

“영구회원이요? 정식회원과는 많이 다른가요?”

수혁은 처음 듣는 말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많이 다르지. 지금까지 협회에서 매달 돈을 지급해준 건 알지?”

“네, 제가 정기적으로 고서를 번역해준 대가로 받았었지요.”

그는 대학 입학 전에 수많은 고서들을 번역해 두고 시간이 되면 하나씩 우진에게 보내주고 있었다.

“영구회원이 되면, 고서 번역을 안 해도 협회에서 정기적으로 돈을 지급받을 수 있네. 그리고 위원회 심사결과 자네는 대한지식인협회의 영구회원이 되었어.”

우진은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허허, 젊은 나이에 연금을 받는다니 부럽구나.”

평우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저한테 과분한 것이 아닌가 싶어 부담스럽습니다.”

수혁은 번역해놓은 고서들이 다 떨어져 가자 조만간 우진에게 고서 번역을 그만 둔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는 사업에 열중하느라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할 여유가 없었다.

“자네가 협회에 기여한 공을 생각하면 전혀 과분하지 않아. 지금까지 작업한 고서들이 학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되면 오히려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 걸세.”

우진은 커피를 마시며 차분히 말했다.

“그러면 앞으로 번역본들은 보내주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수혁은 가장 궁금한 사안을 질문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굉장히 아쉽지만 그렇네. 더이상 의무적으로 고서를 보내줄 필요가 없게 됐어.”

“제가 사업 때문에 바쁘긴 하지만 교수님이 번역하고 싶으신 작품이 있으면 시간을 내어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닐세, 지금까지 해준 것만으로 고맙네.”

수혁은 우진에게 미안했지만, 고서 번역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다. 그리고 내 아들이 정말 감사하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해달라고 했다. 네가 보내준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편의점 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평우는 대화를 하다가 문득 아들의 부탁이 떠올랐다.

“아직 시작도 안했습니다. 그런 인사를 받기에는 조금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수혁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아니야. 제일물류에서 자체적으로 너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했는데 기획팀 소속 전문가들이 굉장히 호평했다고 들었다. IMF 이후로 정체되었던 회사의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찾았다며 다들 좋아했다는구나.”

“좋게 봐주셨다니 다행이네요.”

평우는 석호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수혁에게 말해줬다.

“형님 이렇게 만났는데 좋은데 가서 식사나 하시죠.”

우진은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다가 말했다.

“나야 좋지. 여기 근처에 내가 아는 식당이 하나 있는데 거기로 가지.”

평우는 수혁과 우진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맛집으로 갔다. 그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포를 풀며 저녁을 먹었다.

* * *

‘요즘 들어 퀘스트가 뜸하네.’

수혁은 대표실에서 업무를 보다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학기 중에 있었던 발표 이후 별다른 퀘스트를 주지 않는 어플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대표님, 접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수혁이 한창 생각에 잠겨있는데 노크소리와 함께 찬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찬명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최근 진행되었던 분점 개원에 대한 보고를 하러 왔습니다.”

“말씀하세요.”

찬명은 SH스터디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돈을 끌어모아 5개의 지점을 열 계획을 세우고 일을 진행했고 지금은 거의 막바지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1월 초를 목표로 개원준비를 하고 있는데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정길 이사님이 강사들과 직원들을 잘 수급해주어 분점 운영에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돈은 부족하지 않았나요?”

수혁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어봤다.

“생각보다 매물들이 많이 나와 학원 건물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왕 사는 거 명성학원보다 더 좋은 건물들을 매입하려다 보니까 조금 빠듯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잘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업계 최고를 지향해야 합니다.”

수혁은 찬명의 결정이 마음에 든 듯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어서 개원 날짜를 잡는데 조금 고민이 됩니다.”

통상적으로는 영업을 개시하기 전에는 개업식을 했기 때문에 찬명은 머리가 아픈 상태였다.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개원식은 이 학원으로 충분하다고. 쓸데없는 형식들은 모두 생략하고 학원 운영에 필요한 세부적인 사항들에 더 신경 써 주세요.”

그는 개업식이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최대한 빠른시간에 학원들이 개원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찬명은 수혁의 말을 대번에 이해했다.

“필요한 지원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아 그리고 제가 당분간은 회사에 출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따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업무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시사항들은 원장님 메일에 보내놨으니 확인해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한동안 여러 사안들에 대해서 간단히 논의하였고 찬명은 일을 하기 위해 대표실을 나갔다.

‘하, 귀찮다. 회사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수혁은 이번 겨울방학에 3주 동안 인턴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한국대학교 경영학과는 학생들에게 졸업을 위한 요건으로 일정 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하는 것과 제휴를 맺은 기업에서 인턴을 할 것을 요구했다.

‘어차피 하는 거 지금 하는 것이 훨씬 낫지. 하 머리 아프다.’

수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바빠질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1학년 때 인턴을 갔다 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인턴에 관한 생각이 길어질수록 골치가 아파 오자 잠시 멈췄던 업무를 다시 처리하며 생각을 떨쳐냈다.

- 11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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