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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13화 (113/316)

113화

종로에 위치한 명성학원 지점 근처, 학생들은 오전 수업을 듣기 위해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야, 저기 좀 봐. SH스터디에서 1월 2일에 개강한다는데?”

“진짜?”

학생들은 지하철역을 나와 학원으로 가는 길목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발견하고 말했다.

“내 주변 애들은 다 SH스터디 학원을 다니거나 인터넷 강의를 듣던데, 나도 이번 기회에 갈아탈까?”

“저 학원에 스타강사들이 많잖아. 내가 친구한테 들은 이야긴데 명성학원에 계시는 강사들 중에 SH스터디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데.”

“명성학원에 비해서 건물도 훨씬 깔끔하고 크더라고. 난 다음 달에 옮기거야.”

SH스터디는 1월 초 개강을 목표로 신문, 인터넷, 거리 현수막까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인 홍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 생기는 SH스터디 분점들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SH스터디를 너무 우습게 봤어.’

명성학원 종로 지점에 잠깐 들린 규식은 오가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거운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는 원장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흠, 아침부터 씁쓸하군. 여기서부터 시작을 했는데.’

현재 명성학원의 본점은 강남에 있지만 처음 학원을 연 곳은 종로였다.

규식은 젊은 나이에 학원업에 뛰어들어 승승장구했는데 기반을 이곳 종로에서 쌓았던 터라 종종 찾아오곤 했다.

‘그래서 SH스터디에서 직원들을 빼돌린 거였군. 느낌이 좋지 않아.’

규식은 SH스터디가 명성학원이 있는 곳마다 분점을 연다는 보고를 받았고 직원들이 단체로 재계약을 거부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 * *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이 되었다. 한국대학교에서는 인턴을 신청한 학생들을 한데 모아 제휴를 맺은 여러 회사들 중 원하는 기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우리 한국대학교 경영학부에서는 인턴생활을 함으로서 많은 학생들이 사회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별도로 학점인정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학교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경영대 측 행정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강당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인턴쉽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로서 인턴쉽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자, 지금부터는 원하는 회사를 선택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교직원들은 강당에 준비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회사를 배정해주기 시작했다.

“저는 일송에서 인턴을 하고 싶은데요.”

“혹시 푸른닷컴에는 자리 있습니까?”

학생들은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회사를 선택하는 중이었다. 수혁은 어느 회사를 가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느긋하게 줄을 서고 기다리가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직원에게 물어봤다.

“저는 딱히 원하는 회사가 있지는 않은데요. 추천 해주실만한 곳이 있습니까?”

“아, 그게 미안하지만 앞선 학생들의 지원으로 티오가 남은 곳이 한 군데 밖에 없네요.”

직원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수혁은 늦장을 부린 탓에 선택권이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가 어딥니까?”

“한영건설 건축 사업본부에 자리가 하나 남았습니다.”

“그럼 거기로 해주세요.”

수혁은 인턴을 하는 것에 의의를 뒀기 때문에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한영건설은 우리나라 굴지의 건설기업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건설사업을 활발히 하는 회사다. 그러나 강한 업무강도와 군대식 문화 때문에 인턴 기업으로는 기피하는 곳이었다.

“수혁아 넌 어디로 가기로 했어?”

“한영건설로 출근하게 됐어.”

유리와 수혁은 설명회가 끝나고 강당을 나오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선배한테 들었는데 한영은 피하라고 그러던데?”

“왜?”

수혁은 회사들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궁금해 했다.

“인턴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회사 일을 미리 경험해보는 데 있는 건데 한영건설은 인턴이면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고. 갖다 온 선배들마다 좋은 말씀하시는 분을 본 적이 없어. 심지어 중간에 그만두신 분도 계시고.”

유리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상관없어, 어차피 3주만 버티면 되는 거잖아. 가서 하라는 대로 해보지 뭐.”

수혁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담담하게 반응했다. 이들은 한동안 인턴 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 * *

인턴쉽 설명회가 있은 후 며칠이 지났다. 수혁은 신정 다음 날인 1월 2일 날, 인턴으로서의 첫 출근을 위해 선릉에 있는 한영건설 본사로 향했다.

‘아파트나 만드는 회사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하잖아.’

수혁은 한국대학교 학생들 중에서 혼자만 한영건설에서 인턴을 하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홀로 건물 안에 들어갔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출입구를 지나 내부로 걸어 들어가려고 하자 회사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대학교 인턴쉽 프로그램 때문에 찾아온 강수혁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남자는 데스크로 수혁을 데리고 간 다음 수화기를 들어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담당 직원이 1층으로 내려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사팀 과장 김근식이라고 합니다. 길명준 교수님은 건강하시죠?”

근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강수혁입니다. 교수님을 아십니까?”

수혁은 근식이 자신의 지도교수를 알고 있는 것에 의아해 했다.

“네, 옛날에 제가 학교에 있을 때 많은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입니다.”

“선배님이셨군요. 제가 미처 몰라뵙습니다.”

근식의 말을 들은 수혁은 학교 선배라는 것을 깨닫고 전보다 더 예의바르게 대했다.

“교수님이 많이 예뻐하시는 것 같던데요? 저한테 잘 챙겨주라며 전화까지 하셨어요.”

“교수님께서요? 저는 몰랐습니다.”

명준은 학생지도면담을 한 이후 수혁에게 큰 호감을 가졌었고 이후에도 종종 교수실에 불러 대화를 나누곤 했다.

“우선 올라가죠. 앞으로 건축 사업본부 제2팀에서 근무를 할 건데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각오요?”

근식은 수혁을 엘리베이터에 데리고 가면서 말했다.

“2팀 총괄을 맡고 있는 이원진 팀장님이라고 계시는데 성격이 보통이 아니시거든요. 타부서에서도 상대하기 어려워하는 분입니다.”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명색이 선배인데 알려드릴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네요.”

근식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엘리베이터는 사업 본부가 있는 5층에 도착했다.

“이원진 팀장님 계십니까?”

근식은 일하고 있는 사원 한 명을 불러 물었다.

“지금, 자리에 계십니다. 오셨다고 알려드릴까요?”

“아닙니다. 인턴 인계 때문에 왔는데 제가 직접 가서 말씀드려야지요. 감사합니다.”

근식은 직원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원진에게 갔다.

“과장님이 여기까지 무슨 일입니까?”

원진은 하던 업무를 멈추고 자리에 일어서서 말했다.

“이번에 한국대학교에서 인턴이 한 명 와서 소개드리려고 왔습니다.”

“한국대학교요? 그쪽 출신들은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인턴으로 온 사람들 보면 하나같이 일머리가 부족하더라고요.”

“하하, 네.”

근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원진은 본인이 다른 학교를 다녀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국대 출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사람 때문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한영건설을 피하는 구나.’

수혁은 한눈에 보아도 깐깐해 보이는 원진을 보며 생각했다.

“잘할 수 있겠어? 다른 곳은 몰라도 우리 팀은 대충 일하는 직원은 사람 취급 안합니다. 인턴증 발급 받고 싶으면 똑바로 해야 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한국대를 보면 우리 김근식 과장님 같이 야무진 사람이 없는 거 같아서 걱정이에요.”

“뭐든 시켜만 주시면 잘 따르겠습니다.”

수혁은 비아냥대는 그의 태도에 빈정이 상했지만 꾹 참고 말했다.

“팀장님, 잘 지도해주세요. 저는 업무 때문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근식은 더 이상 원진과 같이 있기 싫은지 급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정 대리, 일로 오세요.”

“네.”

원진이 호명하자 정연주 대리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녀는 업무강도가 강해 남자들도 잘 적응을 못 하는 한영건설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여기, 인턴 왔으니까 잘 지도해주세요. 우리 회사 돌아가는 거는 잘 모르니까 일 생기지 않게 업무배정에 신경 쓰세요.”

“알겠습니다.”

할 말을 마친 원진은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일을 시작했고 연주는 수혁을 데리고 자리로 안내했다.

“얼마 전에 퇴사한 사원이 쓰던 자린데 나쁘지 않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수혁은 마련된 자리에 앉아 짐을 풀고 일 할 준비를 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점심시간이 다 되가는데 아무 일도 안 주잖아?’

회사에 출근한 지 3시간 가까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직원도 수혁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다. 수혁은 그저 앞에 있는 컴퓨터를 켜놓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 죄송한데,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수혁은 옆에 앉은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게, 어, 흠.”

직원은 원진의 눈치를 보느라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저희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알아서 시킬 거니까 너무 조급해마세요.”

연주는 대화를 지켜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수혁은 이들의 반응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한 수혁은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지만 역시나 아무도 일을 주지 않았다.

‘왜 선배들이 이곳을 싫어하는지 알겠다.’

수혁은 열중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사하시려고요? 제가 가서 하겠습니다.”

신입사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문서들을 들고 복사기 앞에 서자 보다 못한 수혁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꺼냈다.

“제가 해도 괜찮은데.”

잔뜩 경직된 사원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그 때 연주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런 일들은 인턴한테 맡기세요.”

그녀는 원진의 눈치 때문에 일을 못 시키고 있었지만 내심 수혁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복사 외에도 잡다한 일들은 저한테 말씀하세요. 간단한 일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수혁은 복사할 문서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 문서들 복사해서 기획팀에게 보내주시고요. 갔다 오시면 일할 것들을 더 드리겠습니다.”

사원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말했다.

수혁은 문서들을 복사한 뒤 타 부서 직원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아와서 연주에게 교육을 받았다.

“우리 팀 업무는 기본적으로 9시 시작이지만 8시 전까지 도착해야 되요. 팀장님이 본인보다 늦게 출근하는 사람을 정말 싫어하시거든요.”

“명심하겠습니다.”

“아침에 일찍 오시면 사무실 청소부터 하세요. 아마 팀장님이 내일부터는 수혁씨를 많이 지켜볼 거예요. 꼬투리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연주는 원진이 듣지 못하게 은밀하게 말했다.

‘이 사람 완전 꼰대잖아, 업무시간도 자기 마음대로고.’

수혁은 할당된 업무시간 외에 추가 근무를 시키는 원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11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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