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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14화 (114/316)

114화

첫 출근한 날 오후 6시, 직원들은 퇴근할 때가 되었지만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갈 때가 다 됐는데 다들 뭐하는 거지?’

수혁은 시키는 일을 다 했지만, 시간이 남아 책상에 앉아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그는 퇴근하자마자 SH스터디로 가서 일을 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초조해졌다.

“심 과장 아까 제출했던 사업 보고서 수정해야 할 사안들 메일로 보냈으니까 처리하고 가세요.”

“알겠습니다.”

원진은 퇴근 시간이 훌쩍 넘겼는데도 직원을 불러 업무를 지시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 주변 직원들은 얼굴이 굳어져 갔다.

‘이러다가 8시나 돼야 퇴근하겠어. 하, 옛날에는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지만 너무한 거 아닌가?’

수혁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직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자, 다들 수고했어요. 오늘 인턴도 왔는데 근처에서 회식하러 갑시다.”

오후 7시40분, 원진은 업무를 끝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회식을 제안했다.

“네, 팀장님.”

“회식 장소는 예전에 갔던 데로 잡을까요?”

직원들은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누구 하나 볼멘소리 없이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 오늘도 다들 수고 많았고 건배합시다.”

선릉역 근처에 위치한 한 선술집에서 한영건설 직원들은 회식을 했다.

원진은 기분이 좋은지 연거푸 술을 마시며 사람들에게 건배 제의를 했다.

“내가 84년에 입사했는데, 나 때는 회사 분위기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너희는 많이 좋아진 거야. 입사 2년차 때였나? 내가 모르고 실수를 했는데.......”

원진은 술기운이 오르자 자신의 옛 이야기를 꺼내며 추억을 회상했다.

“팀장님 대단하세요.”

“그러게요, 저였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 같은데.”

직원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쳐줬다.

‘하, 날 위해서 회식 한다고 해놓고는 자기 이야기만 주구장창하네? 도대체 회식은 언제 끝나는 거야?’

수혁은 손목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술자리 분위기는 무르익어 어느새 시간은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어이, 인턴. 오늘 어땠어?”

술기운에 의해 얼굴에 벌게진 원진은 회식을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님들한테 많이 배웠던 하루였습니다. 오늘은 간단한 일만 했는데 더 열심히 배워서 회사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수혁은 꼬투리를 잡히지 않게 최대한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자 원진은 수혁을 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간단한 일? 회사 문서정리랑 복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라? 하여간 요즘 애들은 겉멋만 들어서 기초를 무시해.”

원진이 갑자기 언성을 높이자 술자리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기본부터 똑바로 하고 뭘 배울 생각을 하란 말이야! 인턴주제에 욕심은 많아가지고. 나 때는 기본 잡무 떼는 데 6개월 걸렸어. 분수도 모르고 말이야.”

“하, 알겠습니다.”

수혁은 밑도 끝도 없이 궤변을 늘어놓는 원진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쉬어?”

원진은 눈을 치켜뜨고 수혁을 쳐다봤다.

“수혁씨, 팀장님 말씀이 아무리 듣기 힘들어도 그렇게 반응하시면 어떡합니까? 사과하세요.”

원진의 옆에 앉아 있던 과장이 점잖게 수혁을 나무랐다.

‘사과하기 싫은데 어떡하지? 마음 같아서는 때려치우고 싶다.’

수혁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추스르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수혁씨 이번만 참고 사과드려요.”

연주는 들리지 않게 조용히 수혁에게 속삭였다.

“제가 오늘 피곤해서 저도 모르게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수혁은 연주가 자신을 도와주려는 것을 캐치하고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어린놈의 자식이 똑바로 하란 말이야! 너희들은 뭐하는 거야? 인턴 하나 제대로 관리 못하고?”

원진은 술이 많이 취했는지 혀가 꼬부라져 새는 발음으로 말했다.

“팀장님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오늘은 이만 일어나시죠. 다음에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과장은 원진이 취한 모습을 보이자 회식 자리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끄윽, 아쉬운데 어쩔 수 없지. 내일 업무 지장 없게 들어가서 잘들 쉬라고. 심 과장 법인 카드로 계산하고 직원들 잘 돌려보내.”

원진은 몸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장은 법인 카드를 다른 직원에게 주고 원진을 배웅하러 나갔다.

사람들은 짐을 챙겨 술집을 나왔고 상사들을 택시에 태워 보낸 뒤 하나둘 집으로 갔다.

‘그래, 이것도 인턴 생활의 일부라 생각하고 불만 갖지 말자. 일단 노량진으로 가볼까?’

수혁은 인턴 기간 동안 회사 출근을 자제하려고 했으나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았기에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연주가 말을 걸어왔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아까 팀장님 때문에 힘들었죠?”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수혁은 직장에서 개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아꼈다.

“앞으로 조금 더 힘들어질 거예요.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세요.”

연주는 수혁이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자 안심을 하고 집에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대리님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연주는 택시를 잡으려다 발걸음을 멈추고 수혁을 바라봤다.

“보통 회사 퇴근 시간은 몇 시입니까?”

“그건, 팀장님 마음이에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 확답을 드리기가 곤란하네요.”

“그러면 야근에 대해서는 따로 수당을 챙겨줍니까?”

수혁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사실, 팀장님께서 수당 없이 야근을 하셔서 다른 직원들도 섣불리 수당에 대한 이야기를 못 해요. 앗, 제가 한 말은 잊어주시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연주는 말실수를 했다고 느꼈는지 허둥대며 택시를 타고 자리를 떴다.

‘딱 보니까 팀장이라는 사람이 부당하게 직원들을 대하는 거 같네. 그리고 대리님 태도를 보니 다들 위축되어 있어.’

수혁은 홀로 남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 웬일이래?’

택시를 잡기 위해 대로변에 나와 있던 수혁은 어플이 활성화 되어 화면이 눈앞에 뜬 것을 확인했다.

<히든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팀장으로 인해 발생한 부적절한 관행을 근절하시기 바랍니다.>

‘뭐야, 퀘스트 내용이 너무 어렵잖아.’

평소라면 내용을 확인한 후 별 고민하지 않고 퀘스트를 수락했으나 3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회사 내 악습을 근절시킬 자신은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우선 해보자.’

고민에 빠져 한참을 망설이던 수혁은 손을 들어 천천히 확인 버튼을 눌렀다.

‘하, 우선은 회사 가서 일 먼저 처리하자. 퀘스트는 내일부터 생각해보면 돼.’

수혁은 택시를 잡은 뒤 노량진으로 가 대표실에 쌓여있는 업무를 처리하고 새벽이 다 되어서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한영건설에 일찍 출근한 수혁은 연주의 지시에 따라 사무실 청소로 하루를 시작했다.

“일찍 나오셨네요?”

연주는 팀 내에서 연차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8시가 좀 못 되는 시간에 사무실에 출근했다.

“안녕하세요, 저도 좀 전에 막 도착했습니다.”

수혁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청소를 했다. 시간이 지나자 직원들은 하나 둘 도착했다.

‘팀장이라는 놈은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 왜 안 와?’

대부분의 직원들은 8시30분이 채 되기도 전에 자리에 착석해 일을 하고 있었지만, 원진은 9시가 지나도록 출근을 안 하고 있었다.

“다들 좋은 아침, 어제는 잘 들어갔어?”

원진은 9시 40분이 되어서야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는 술기운이 아직 남아있는지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안녕하십니까?”

직원들은 원진이 들어오자 자리에 일어나 인사를 했다.

‘술 하나 조절 못 할 거면 뭐 하러 회식을 한 거야?’

수혁은 직원들에게는 끊임없이 일 할 것을 강조하면서 본인에게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원진이 얄미웠다.

‘안 되겠어, 퀘스트도 있고 오늘부터는 조금 다르게 행동해야겠다.’

수혁은 문서정리 및 회사 잡무 등을 하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은 흘러 퇴근시간이 되었다.

직원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원진의 눈치만 보면서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혁은 6시를 훌쩍 넘겨 7시가 다 되도록 사람들이 미동도 안 하자 참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너 뭐하는 거야?”

직원들의 눈치는 살피지 않고 일만 하던 원진은 갑작스러운 수혁의 행동에 화가 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퇴근하려고 그럽니다.”

수혁은 원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이런 건방진 자식이. 하, 세상 말세다. 새파란 인턴 놈이 말하는 것 좀 봐라.”

원진은 기가 차는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팀장님 제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수혁씨 저 좀 봐요.”

연주는 사무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수혁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들은 사무실 옆에 마련된 휴게실에 가 대화를 나누었다.

‘혹시 모르니까 녹음을 해야겠어.’

수혁은 연주가 눈치 채지 않게 핸드폰으로 대화를 녹음하기로 했다.

“수혁씨, 사람들 곤란하게 왜 그러세요. 팀장님 기분 상하게 만들면 우리만 손해라고요.”

그녀는 이전과 달리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리님 죄송하지만 회사에서 할 일도 없고, 오래있어서 수당을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있어야 합니까?”

수혁은 행여 연주의 마음이 상할까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제가 수혁씨 마음 모르는 거 아니에요. 직원들 중에도 말은 못 하지만 불만 가진 사람들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팀장님은 회사에서 잔뼈가 굵어 항명을 해도 소용이 없어요. 그리고 3주만 버티면 더이상 팀장님 안 봐도 되지 않습니까?”

“말씀 들어보니까 정말 그렇네요. 회사에 오래 있지도 않을 건데 왜 제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더 모르겠네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듯 했지만, 가시 돋힌 말을 하고 있었다.

“수혁씨, 자꾸 이러시면 저도 더이상 못 도와드립니다.”

연주는 기분이 상해 얼굴이 굳어졌다.

“대리님, 저한테 잘 해주셔서 피해가 갈 거 같으면 굳이 안 챙겨주셔도 됩니다. 저는 어떻게 보면 이방인이지 않습니까? 제 권리는 제가 잘 챙겨보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수혁은 그동안 잘 챙겨줬던 연주에게 미안한 감정을 표시했다.

“휴, 알아서 하세요. 저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요.”

연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면 저는 오늘 퇴근하겠습니다. 팀장님한테는 제가 직접 말씀드릴 테니 걱정마세요.”

“저, 수혁씨,”

수혁은 당황한 연주를 뒤로하고 휴게실을 나와 사무실에 있는 원진에게 다가갔다.

- 11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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