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21화 (121/316)

121화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어.’

수혁은 지오닷컴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던 중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다.

유신은 카테고리 별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는 그가 만들었던 E-Salon의 컨셉과 흡사했다.

‘이 사람은 무조건 잡아야 해. 유능한 직원을 눈앞에서 놓칠 순 없지.’

수혁은 좋은 인재 한 명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길을 통해서 이미 겪어봤기 때문에 유신을 회사에 남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이날 밤 새벽이 다 되도록 회사 내부 상황에 대한 분석을 계속했다.

“아버지,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인터넷 사업을 한다고 우리 회사의 인력들도 데려가서 쓰고도 실패했잖아. 이제 그만 해라!”

한남동에 있는 고급저택 안에서 명학과 그의 아버지인 정찬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솔직히 회사가 잘 안 된 이유가 저 때문인가요? 인터넷 업계에서 망한 회사들이 어디 한 둘이냐고요.”

명학은 정찬이 냉정하게 말에 뾰로통한 얼굴이 되었다.

“나도 뉴스로 봤다. 닷컴버블이 터져서 많은 회사들이 망했더구나, 그런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회사들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

“저는 회사 설립한 지 6개월 정도 밖에 안 되었던 신생회사였잖아요. 한 번만 봐주세요.”

“네 놈이 그런 태도기 때문에 사업은 더더욱 안 된다는 것이다. 이거나 좀 읽어봐라.”

정찬은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탁자 위에 올려진 서류들을 명학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뭔가요?”

“네 회사에서 일했던 일송전자 직원이 만든 사업 실패에 대한 원인분석 보고서다. 내용을 읽어보니 아주 기가 막히더구나.”

정찬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명학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서류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이 감히.......’

명학은 보고서를 읽다가 부아가 치밀었다.

보고서는 경영실패 원인을 시장상황, 운영 방식 그리고 사업 아이템 등의 목차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를 화나게 만든 마지막 결론 부분 내용은 이러했다.

[결론적으로 사업 아이템과 직원들의 역량은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서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결국 경영자의 안일한 태도였다. 직원들에게 모든 일을 일임하고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탓에 여러 프로젝트가 중구난방으로 진행되었고 결국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결론에 다다르지 못한 채 미완의 상태로 남았다.]

보고서의 내용은 뒤로 갈수록 비판의 강도는 거세져 갔고 명학은 결국 읽는 것을 중단하고 종이를 내려놓았다.

“이 보고서는 엉터리입니다. 제가 학교에 가느라 비록 회사 운영에 소홀한 적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명학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변명은 그만 둬라, 직원을 불러서 네 놈이 어떻게 회사를 운영했는지 직접 들었다. 회사 경영은 뒷전이고 허구한 날 친구들을 불러 사무실 구경 시켜주고 술이나 퍼 마셨다는데 사실이냐?”

“아니, 그건.......”

명학은 대표실에 양주들을 갖다놓고 종종 친구들과 술을 마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변명하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이것 좀 보거라.”

정찬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 잡지인 월드 이코노미 3월 판을 명학에게 보여줬다.

“이건 왜요? 그냥 잡지잖아요.”

“기다려봐라.”

정찬은 잡지를 빠르게 넘기더니 한 기자가 작성한 글을 보여줬다.

“월드 이코노미에서 대한민국에 주목해야 할 10명의 청년 CEO를 선정했는데 보니까 너랑 나이가 같더구나.”

명학은 정찬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사를 읽었다.

‘뭐야, 강수혁이잖아? 이 녀석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다들 난리인거지?’

잡지에 실린 글에는 SH스터디가 교육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수혁의 경영 철학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었다.

“아버지, 이놈이 제 동기이긴 하지만 저는 별로 관심 없습니다. 뭐 요즘 잘 나간다고 해도 그래봤자 우리 회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명학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잡지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미련한 놈, SH스터디의 올해 예상 매출이 얼마인지 아느냐?”

“그래봤자 학원일 뿐인데 별거 있나요? 그리고 굳이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는 아버지와 수혁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이 상황이 불편했다.

“현재 여러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잠재 성장 속도를 감안한 SH스터디의 예상 매출이 5000억에 달한다고 한다. 일송 안에는 52개의 계열사가 있지만 50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곳은 단 9곳뿐이야, 이래도 SH스터디가 동네 학원 정도로 밖에 안 보이냐?”

“…….”

명학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침묵을 지켰다.

“난, 강 대표가 어린 친구이긴 하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 기사를 보여준 것은 네 동기에게 자극받으라는 이유만 있는 게 아니야.”

“그러면요?”

“휴, 기사를 끝까지 읽기는 했느냐? 내가 언제까지 내가 일일이 설명해줘야 되냐?”

“알겠어요, 읽어볼게요.”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은 정찬은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뭐가 더 있나?’

명학은 수혁에 대해 칭찬일색인 기사가 보기 싫어 대충 읽고 덮었으나 아버지의 말을 듣고 다시 잡지를 펼쳐 자세히 읽었다.

‘이 새끼가 진짜.......’

기사를 정독하던 명학은 화를 참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드디어 눈치 챈 모양이구나? 강 대표는 온라인 강의 사업에 그치지 않고 포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인수한 회사가 내 아들놈이 운영하던 회사라니 창피하다 창피해 쯧쯧.......”

정찬은 명학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혀를 찼다.

“4월부터는 약속한 대로 일송유통으로 출근해라. 삼촌에게 다 말해뒀으니까 별 문제는 없을 거다. 학교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해준다고 하니까 나중에 고맙다고 연락 하고.”

“하, 아버지 저는 삼촌네 회사로 갈 생각 없어요. 전 회사체질이 아니에요......”

명학은 고개를 숙이고 소심하게 말했다.

“네 얼빠진 소리를 더 이상 들어줄 여유가 없으니까 신중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정찬은 커피를 마시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지금은 말을 들어야겠다.’

명학은 정찬이 부드럽게 말하지만 한 번 이야기 한 것을 번복하지 않음을 잘 알기에 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알겠어요. 말씀 따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이 친구가 너랑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지켜봐라. 네 놈이 그렇게 쉽게 포기한 회사를 어떻게 경영하는지. 나이는 같을지 몰라도 사업 수완이나 역량은 너보다 한 참 위인 것 같구나.”

“아버지, 저 이만 들어 가보겠습니다.”

“쯧쯧,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방으로 들어가라!”

정찬은 쓴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명학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강수혁, 날 이렇게 엿 먹이다니.’

그는 분통 터지는 마음을 다스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 *

‘5시에 회의가 있으니까 애들 보고 바로 선릉으로 가야겠다.’

수혁은 대학가에 있는 카페에서 용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혁아 먼저 와 있었네?”

“어, 커피는 마시던 걸로 시켜놨어.”

“고마워 수혁아, 항상 너한테 얻어먹네.”

용민은 수혁이 맡아 놓은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사이에 누가 사는게 뭐가 중요하냐? 것보다 용민아 4월부터 나랑 같이 일하지 않을래? 최근에 회사를 새로 인수했는데 너랑 네 친구들이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응, 알겠어. 만약 회사에 가면 구체적으로 뭘 하는 거야?”

용민은 수혁이 오래전부터 같이 일하는 것에 대해 언급을 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안을 승낙했다.

“네가 일할 곳은 지오닷컴 이라는 곳인데 조만간 회사 명칭을 바꿀 거야. 그리고 사무실은 선릉에 있어서 학교에서 멀지 않아서 통근하기에도 편할 거야.”

“지오닷컴이면 포털 사이트 아니야? 작년부터 홍보를 하도 거창하게 해서 들어가봤는데 깔끔하고 괜찮던데?”

명학은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사이트 홍보에 열을 올렸기 때문에 지오닷컴의 인지도는 나쁘지 않았다.

“응, 지금 회사에 프로그램 개발 부서가 있기는 한데 내가 별도로 콘텐츠 개발 팀을 하나 더 만들 거거든. 난 네가 그 팀의 팀장이 돼서 날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2001년 당시에는 프로그래밍을 하는 인력이 많이 늘어나고 있었으나 용민과 같이 능력 있는 프로그래머를 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수혁은 그에게 바로 팀장 자리를 주려고 했다.

“다른 직원들 반발도 있을 텐데 괜찮겠어?”

“내가 대푠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그리고 난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생각해. 너라면 어떤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을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

수혁은 찬명과 정길처럼 새로운 회사에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수혁아. 내가 친구들에게 이야기해볼게.”

“그래, 4월 1일부터 출근이고 월급은 업계 최고 수준으로 맞춰준다고 전해줘.”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프로그래머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업계에서 제일 높은 연봉을 보장해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인재를 모으려면 약간의 출혈이 있더라도 인건비를 아껴선 안 돼.’

수혁은 한국의 많은 인재들이 국내에서 일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박봉으로 인해 미국이나 호주로 나가는 현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회사가 자리를 잡으면 업계 최고 수준을 넘어 적절한 연봉을 지급하여 우수한 인력을 끌어모을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수혁아, 네가 말한 대로 게임들을 몇 개 만들어봤는데.”

용민은 노트북을 꺼내 친구들과 만든 게임들을 선보였다.

“내가 피드백 해준 데로 잘 만들었네. 특히 플래쉬 게임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않을 거 같아.”

수혁은 용민과 게임들을 두고 다양한 논의를 했고 잠시 후 그들은 헤어졌다.

* * *

“대표님 회의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예상보다 길어진 대화로 인해 수혁은 평소답지 않게 지각을 했다.

“회의실은 어딘가요?”

“이쪽입니다. 따라오시죠.”

수혁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대표실 옆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크지 않네.’

회의실은 1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 임직원 회의를 하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간부들인가 보군.’

회의 테이블에는 각 부서의 팀장들이 앉아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강수혁 대표입니다. 오는 길에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회의시간에 늦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수혁은 회의를 하기에 앞서 직원들에게 사과를 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수혁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어쩔 줄 몰라 했다.

‘첫인상이 제일 중요한데 실수했어.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수혁은 서류가방에서 회의 자료들을 꺼내며 생각했다.

“제가 회사 온 이래로 처음 열리는 회의입니다. 현안에 대한 브리핑은 굳이 할 필요 없습니다. 어젯밤에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 대충 파악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회사 현황을 보고하려 했던 직원은 머쓱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본격적인 회의를 진행하기 전에 중대발표가 있겠습니다. 전 회사 이름을 바꾸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회사의 명칭은 지오닷컴이 아니라 SH커뮤니케이션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작성한 문서나 계약들에 표시된 회사이름을 모두 바꿔주세요.”

“그러면 혹시 사이트 이름도 바꾸실 겁니까?”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 중 한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닙니다. 사이트 명은 그대로 갑니다. 그냥 대외적으로 표시되는 회사이름만 바꾸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수혁은 SH이름으로 거대한 그룹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 명칭을 바꾸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 12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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