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대표님께서 처음부터 우리 회사의 오너였다면 퇴사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같이 하시죠.”
이들은 마감시간이 되어 카페를 빠져 나온 뒤 술집에 가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 중이었다.
“좋습니다. 언제부터 출근하면 됩니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유신은 수혁과 대화를 나눌수록 그에 대한 호감이 생겼고 결국 회사에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4월 1일부터 출근하세요. 그 안에 본부장님이 일하기 좋게 회사를 재편성 해놓겠습니다.”
수혁은 유신이 돌아올 것을 확신하고 호칭을 바꿔 불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표님. 저도 출근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오시면 하실 일이 많을 테니까 남은 시간 푹 쉬세요.”
수혁과 유신은 호프집에서 늦은 시각까지 술을 기울인 뒤 헤어졌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4월이 되었다. 봄이 된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침 저녁에는 쌀쌀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되겠어.’
4월의 첫날, 수혁은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철역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이날 임직원 회의를 할 생각이었다.
‘직원들에게 유신씨와 용민이를 소개하고 전반적인 경영 방향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야겠어.’
그는 걸어가는 내내 회의에 대한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야, 강수혁 너 나 좀 보자.”
수혁은 학교를 빠져나와 대학가에 위치한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뭐냐? 볼 일이라도 있어?”
“볼 일? 이 새끼가 사람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지?”
수혁을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명학이었다.
그는 대낮부터 친구들과 대학가에서 술을 마시다가 일송유통에 출근해야 하는 것이 떠올라 급하게 술자리에서 빠져나온 상황이었다.
“뻔뻔? 아, 네 회사 인수한 것 때문에 그러냐?”
“개자식이 미친 소리를 되게 차분하게 하네?”
명학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거칠게 말했다.
“개자식?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마라. 안 그래도 나도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었어.”
“하, 뭔데?”
원래 수혁은 회사를 인수한 부분에 대해 일말의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의 거친 언사를 보자 그런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네 방에 있던 술이랑 골프 도구들 다 버렸다.”
“그깟 것 다 버려도 아무상관없어. 그건 그렇고 내가 자리만 잡으면 네 회사들을 가만 둘 거 같아? 이제까지는 빈말이었지만 앞으로 두고 봐라.”
명학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그래 네가 망친 그 회사가 어떻게 크는지 지켜봐라.”
수혁은 차갑게 대꾸했다.
“훗, 넌 번지수를 잘못 골랐어. 내가 왜 그 회사를 버린 것 같아? 다 망해가는 회사를 거액을 주고 인수했다지? 병신 같은 놈. 그렇게 보는 눈이 없는데 회사 운영은 어떻게 하려고 하냐?”
“넌 새끼가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냐? 널 믿고 일하던 직원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수혁은 명학이 계속 심기를 건들자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너 진짜 죽고 싶어? 내가 아는 사람들이 움직이면 너 하나 어떻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야.”
명학은 방탕하게 놀면서 알게 된 조직 폭력배들이 몇 있었다. 그는 이들을 믿고 수혁에게 은근히 협박을 했다.
“사람 혈압 오르게 하네? 주변에 버러지들을 좀 아나본데 다 데리고 와.”
수혁은 명학의 코앞까지 다가가서는 매섭게 노려봤다.
“…….”
“아까 뭐라고 했어, 죽고 싶냐고? 또 지껄여봐 새끼야.”
수혁이 으름장을 놓으며 압박했지만, 명학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땅만 보고 있었다.
“하, 됐다. 꺼져 새끼야.”
수혁은 두려움에 떠는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 자리를 떠났다.
명학은 정신적 충격이 심한지 제자리에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뭐, 뭐야. 왜 이렇게 떨리지?’
명학은 재벌 집 아들로 태어나 누구한테도 이런 종류의 공격적인 언사를 겪어보지 못했기에 살면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전봇대를 잡고 떨리는 몸을 추슬렀다.
‘재수 없는 새끼.’
수혁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회사로 향했다. 그는 명학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 직원들에게 공개할 사업 구상들을 정리했다.
“빨리 오셨네요?”
“천천히 준비하세요. 저는 회의실에 먼저 들어가 있겠습니다.”
수혁은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직원들은 대표가 도착한 것을 확인하자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보고서 준비는 다 끝났습니까?”
“프린트만 하면 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각 부서 팀장들은 직원들을 독촉했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다들 오신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 진행에 앞서 여러분들에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김용민 팀장님 인사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SH커뮤니케이션의 개발 팀장을 맡게 된 김용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용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김용민 팀장님은 한국대학교 전자컴퓨터 공학부에 재학 중이시고 프로그래밍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앞으로 잘 지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용민을 처음 본 직원들은 저마다 인사를 건네며 환영해주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개발팀이 국내 최고의 명문 대학인 한국대학교 출신 신입사원으로 구성된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대학교 학생들이 중소기업에 불과한 우리 회사에 무슨 생각으로 왔을까?’
‘우리 회사에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직원들은 회사 내에 불어오는 혁신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다음으로 박유신 본부장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이제 본부장님께서는 저와 호흡을 맞춰 회사 일을 총괄하실 겁니다.”
“안녕하십니까? 팀장님들을 이렇게 보게 되니 조금 민망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어색하시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유신은 대리 직급으로 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팀장들 보기가 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직원들도 용민때와는 달리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박유신 본부장을 대리로 기억하시는 분이 많은 걸로 압니다. 제가 파격 인사를 감행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를 믿고 앞으로 박유신 본부장의 말을 잘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수혁은 직원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유신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지난 대화에서 유신의 사업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확인했기 때문에 파격 인사에 거릴 낄 것이 없었다.
‘박유신 본부장이라면 한정길 부대표 못지않게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을 거야.’
그는 시기상조라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유신을 차기 오너로 점찍어 둔 상태였다.
“논의할 사안들이 많은 관계로 인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회의 시작하세요.”
“네, 대표님 먼저 SH커뮤니케이션의 3월 매출에 대해 보고하겠습니다. 지난달 매출은 80억으로 2월 매출에 비해서 100퍼센트 이상 급락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수혁은 보고를 들으면 차분하게 물었다.
“경쟁업체들도 우리 회사와 상황이 비슷한 것을 보면 이는 닷컴버블 붕괴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푸른 닷컴과 넥스트는 어떻습니까?”
“그, 아마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직원은 수혁이 질문한 사안에 대해서 파악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얼버무렸다.
“전혀요. 제가 말한 두 회사는 업계에 불어온 불황 속에서도 매출이 떨어지기는커녕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적응하는 것도 회사가 갖춰야 할 중요한 역량 중 하나입니다. 더 이상 바깥 상황을 이유로 변명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수혁은 대외활동을 담당하는 마케팅 팀장이 경쟁업체에 대한 분석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 가볍게 질책했다.
“김 팀장님 검색엔진에 대한 보완은 완료되었습니까?”
수혁은 이전 회의에서 지시한 사항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네, 말씀하신대로 경쟁 업체들의 포털들과 비교했을 때도 뒤떨어 지지 않게 작업을 했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특정 단어를 검색할 때 예전과 달리 자료들이 깔끔하게 표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팀장은 화면을 띄워 달라진 검색 엔진의 기능들을 보여주었다.
“관련도가 높은 순서대로 사이트들과 자료들이 뜨게 만든 것은 인상적이군요. 하지만 단순히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월등히 앞서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다음으로 메일에 관한 사안과 블로그 활성화에 대한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메일에는 파일 첨부기능을 추가했고 타 사이트들을 참고해서 블로그와 카페를 네티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수정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검색 엔진에 대한 점검이 끝나자 수혁은 지시사항에 대한 작업 진척 상황을 직원들에게 물어보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 부서에서 포털 개편에 열심히 임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잘 갖추어 놓아도 대중들에게 홍보가 되지 않으면 별 쓸모가 없을 겁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현재 우리 부서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홍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미 신문이나 타 사이트에서는 포털에 대한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고 예산만 맞춰진다면 티비광고도 할 생각입니다.”
“다른 매체들 보다는 티비 광고를 하는 것이 효율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 광고의 같은 경우 굳이 유명 연예인이 등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예산 편성에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겁니다.”
회의 내내 침묵을 지키던 유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팀장님께서는 광고시안을 만들면 본부장님에게 검토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수혁은 유신의 의견에 공감하며 말했다.
“저, 팀장님께 재량을 드리면 어떨까요? 제 도움 없이도 잘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신은 팀장들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저를 제외하고는 본부장님이 회사의 전반적인 일에 대해서 가장 잘 아셔야 합니다. 조금 힘드시겠지만 제 말을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홍보팀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회사에 부재할 시에는 본부장님과 회사 일을 상의하세요. 여러분들과 본부장님 간에 협업이 잘 이루어져야 회사 운영이 원활히 될 겁니다.”
수혁은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본부장님, 계획하고 계신 펀 갤러리에 대해서 발표해주세요.”
“넵, 저는 우리 포털에 고객을 많이 유입시키기 위해 기존의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와 다른 형태의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합니다.”
유신은 직원들에게 펀 갤러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이 관심 분야별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 건데 핵심은 고객들 자체적으로 카테고리를 형성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자발적으로 게시판이 만들어져 고객 입장에서는 능동적으로 펀 갤러리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유신은 펀 갤러리의 컨셉과 사이트 도안을 직원들에게 보여주며 열띤 설명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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