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본부장님은 지금까지 설명하신 펀 갤러리 프로젝트를 착수해주세요.”
“네, 회의가 끝나는 대로 팀장님들과 논의해보겠습니다.”
유신은 대답했다. 수혁은 이날 회사의 구체적인 발전 플랜을 직원들과 공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오후 3시에 시작했던 회의는 6시가 다 되도록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처음에 소개드린 김용민 팀장님은 콘텐츠들을 개발하게 될 겁니다. 팀장님은 현재 아동과 10대 넓게는 20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게임과 생활에 유용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팀장님 발표해주세요.”
“네, 먼저 여러분들에게 보여줄 것은 간단한 조작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들입니다. 대표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비교적 젊은 연령층을 겨냥한 거지만 30대 이상 고객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민은 직원들에게 여러 게임들을 선보였다.
“보시다시피 지오닷컴 회원의 경우에는 랭킹이 표시되기 때문에 다른 네티즌들과 실력을 겨룰 수 있어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게임이 로딩될 때 광고를 삽입할 수 있게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기에도 용이하고요.”
“여러분들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용민의 발표가 얼추 마무리되자 수혁은 직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유명 해외 포털에서 비슷한 테마로 큰 인기를 얻은 적이 있는 것을 볼 때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포털은 해외 사이트와 달리 네티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야 된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해외 네티즌들과 국내 네티즌들의 성향은 많이 다르니까요.”
직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본부장님, 팀장님과 상의해서 포털에 게임섹션을 하나 만드세요.”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포털에 게임들을 올릴 수 있게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용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는 이 외에도 많은 콘텐츠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회사의 규모를 고려해보았을 때 이 정도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수혁은 회의에서 말한 프로젝트들 외에도 웹툰 플랫폼을 만들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날 나온 안건의 수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차마 입 밖에 꺼내놓지 못했다.
‘넥스트에서 2002년 가을 쯤에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던 거 같아. 아직은 시간이 좀 있으니까 기초작업부터 진행하자.’
수혁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유신은 수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네 일단, 이것으로 회의를 마치죠. 본부장님한테 따로 드릴 말씀이 있는데 그건 추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혁이 서류들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직원들도 짐을 챙겨 퇴근할 준비를 했다.
‘난 일을 좀 더 해야겠어.’
회의를 마친 수혁은 학교생활을 하느라 처리하지 못했던 회사 업무를 하기 위해 대표실로 들어갔다.
* * *
“부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수혁은 대표실에서 일을 하다가 정길에게 연락을 했다.
“네, 새로 사업을 시작하셨던데 잘 되고 있습니까?”
“아직 초기 단계라 뭐라 말하기가 좀 그럽니다. 그건 그렇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수혁은 사업에 필요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지오닷컴이라는 포털을 운영하는데 지금 회원 수가 30만명 밖에 안 되거든요.”
30만이라는 숫자는 적은 숫자가 아니었으나 대형 포털로 발돋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지오닷컴 회원이면 SH스터디에 따로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해서요.”
“좋은 생각이시네요. 중학생, 고등학생들 중 인터넷 사용 인구가 자꾸 늘어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정길은 수혁의 의견에 동의했다.
“제가 그래서 한두 달 정도 프로모션을 진행하려고 하는데요. 지오닷컴 회원이면 SH스터디 강의를 10퍼센트 할인된 가격에 신청할 수 있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흠, 그렇게 되면 SH스터디 매출에 타격이 작지 않겠는데요?”
정길은 회사 부 대표로서 걱정을 했다.
“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한된 강좌에 대해서만 프로모션을 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그렇게 하면 오히려 SH스터디에도 새로운 학생들 유입이 있어 SH스터디에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런 거라면 문제가 없겠네요. 직원을 시켜 우리 측에서도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러시지 마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수혁이 정길을 행동을 만류하자 그는 의아해했다.
“그래도 명색이 학생들에게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인데 사적 이익을 위해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면 대중들에게 욕을 먹을 수 있습니다. 홍보는 전적으로 우리가 담당하겠습니다.”
“아, 그런 뜻이 있으셨군요. 역시 대표님이십니다.”
수혁의 의도를 이해한 정길은 감탄했다.
“그러면 SH스터디 회원이면 지오닷컴 사이트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겁니까?”
“흠, 그 부분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오닷컴에서 SH스터디로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 반대는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요?”
“하긴, 공부를 하러 회원 가입한 고객들에게 사설 사이트 사용을 권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지요.”
정길은 수혁에게 공감을 표시했다.
“우리 회사에 부 대표님처럼 회사 일을 총괄해주는 담당자가 있습니다. 조만간 우리 측에서 연락이 갈 거니까 잘 협조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저는 그럼 타 사이트와 회원 연동이 가능한 지 알아보겠습니다.”
수혁은 사이트 사용을 촉진시킬 수 있는 프로모션에 대해 설명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포털 사이트는 기세 싸움이야. 짧은 기간 안에 충성 고객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해.’
그는 전화를 하느라 잠시 멈추었던 업무를 다시 처리하기 시작했다.
* * *
‘시험 기간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되네.’
수혁은 4월 중순에 예정된 중간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회사 일을 마치자마자 학교 도서관에 왔다.
그는 메인이 사업이고 학업은 보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험공부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너도 도서관에 오긴 오는구나.”
수혁은 자판기 커피를 마시러 열람실에 나왔는데 우연히 유리를 마주쳤다.
“어, 유리야 공부는 잘 되고 있어?”
“나야 뭐 맨 날 여기 사니까. 포털 사업 시작했다면서? 안 그래도 최근에 너희 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했어.”
“진짜? 고마워.”
수혁은 유리의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들어보니까 네가 과탑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진짜야?”
“그냥, 운이 좋았지 뭐.”
유리의 학점은 4.3 만점으로 학과 전체에서 수석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너도 성적이 나쁘지는 않을 거 같은데, 실례가 안 되면 물어봐도 될까?”
“난 지금까지 해서 4.17이야.”
“와, 진짜? 그러면 너도 조기졸업이 가능하겠는데?”
이야기를 들은 유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수혁이 사업에 집중하느라 학업에 매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놀란 반응을 보였다.
‘어플로 스텟들을 충분히 올려놓지 않았다면 불가능했겠지? 그건 그렇고 조기 졸업이라, 사업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할 것 같긴 한데......’
뜻밖의 정보를 들은 수혁은 조기졸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도 봐서 일찍 졸업할 수 있으면 해야겠다. 알려줘서 고마워 유리야.”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맙긴. 그건 그렇고 미희는 최근에 휴학한 거 같더라고. 들어보니까 올봄에 사법고시 1차를 합격했다던데?”
“그래? 대단하다. 하긴 너도 그렇고 다들 잘하니까.”
수혁은 덤덤하게 반응했다.
“훗, 공부는 네가 제일 잘했잖아. 아무튼 열심히 해서 같이 조기졸업하자. 난 공부할게 많아서 먼저 들어갈게 수혁아.”
유리는 수혁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들어갔다.
‘열심히들 사니 보기 좋네. 나도 들어가서 마무리 공부를 해야겠다, 그런데 요즘 따라 어플이 너무 조용한데?’
유리와 헤어진 수혁은 도서관을 나와 주변을 걷다가 어플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사업에만 집중했다고는 하지만 보통 이맘때쯤이면 퀘스트가 하나 정도는 떠 줘야 되는데…….’
인턴을 마친 이후 3개월 가까이 잠잠한 어플이 이상하게 느껴진 수혁은 도움말을 켰다.
<궁금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프로그램이 너무 작동을 안 하는 거 같아서 왜 예전처럼 퀘스트를 주지 않는 거야?’
오랜만에 어플을 켠 수혁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대화를 시작했다.
<본 어플은 사용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퀘스트를 찾지 못해서 한동안 휴면상태로 있었습니다.>
‘하긴 회귀하기 전 기억을 토대로 사업을 꾸려나가도 충분하다 보니 어플의 도움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거 같아.’
<사용자가 경영을 원활히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과거 기억에 의존해서가 아닙니다. 현재 사용자는 알게 모르게 어플을 통해 늘어난 지력, 통찰력, 운, 매력 등의 도움을 많이 받고 계십니다.>
어플은 주인이 자신을 쓸모없었던 것처럼 판단하자 나름대로 항변을 했다.
‘생각해보니 중요한 사업적 결정을 할 때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지. 옛날과 달리 인간관계 맺는 것도 훨씬 수월해진 점도 있고.’
수혁은 도움말의 설명에 금방 수긍했다.
<사용자가 뭘 원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부터는 사업에 도움이 되는 퀘스트와 조언을 집중적으로 해드리겠습니다.>
어플은 수혁의 마음 안에 있는 욕망을 읽고 제안을 했다.
‘나야 좋지. 그럼 지금까지는 뭘 기준으로 날 도와준 건데?’
<사용자는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오시면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그 욕망에 맞춰 작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사용자를 지원하겠습니다.>
‘그래, 알겠어. 잘 부탁한다.’
수혁은 어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현재 충분히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이제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플이 어떻게 작동할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야. 아무튼 이제 그만 돌아가자.’
수혁은 어플을 종료한 뒤 다시 공부를 하러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 * *
중간고사가 끝나고 4월 말이 되었다. 이 기간 동안 SH커뮤니케이션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혁을 비롯한 회사 직원들은 회의시간에 논의되었던 계획들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에 따른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대표님, 현재 회원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게임 섹션을 론칭하고 SH스터디와 관련된 프로모션을 실시한 이후 회원 수가 50만을 돌파했습니다.”
유신은 대표실에서 수혁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군요.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우리나라 인구를 감안했을 때 2000만 명 이상의 회원 수를 확보해야 업계 최고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수혁은 SH스터디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포털에 접속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서버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서버관리팀과 이야기해서 장비 확충에 대한 논의를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수혁은 자본이 충분히 쌓이면 해외 유수 기업 못지않은 서버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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