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펀 갤러리는 잘 만들고 있습니까?”
수혁은 유신이 진행하고 있는 핵심 프로젝트에 대해 물었다.
“네, 현재 샘플은 완성되었고 서비스 개시 시기는 5월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서비스 개시에 맞춰 홍보팀에 적절한 마케팅을 지시하세요.”
“이미 팀장님께 말해두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유신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매출 상황은 어떻습니까?”
“4월이 지나야 정확한 집계가 이루어지겠지만 2배 이상 뛴 회원 수와 접속자수의 폭발적 증가로 광고 수당이 많이 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못해도 3월에 비하면 3배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할 것 같습니다.”
“흠, 나쁘진 않네요.”
‘확실히 포털 사업이 교육 사업보다 사업성이 좋구나. 짧은 기간에 매출 200억을 넘기다니.’
수혁은 겉으로는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포털 사업의 잠재성에 놀라고 있었다.
“푸른닷컴이랑 넥스트 회원 수는 어떻게 됩니까?”
“업계 1위인 푸른 닷컴은 1400만명이고 넥스트는1100만명입니다.”
“이거 큰일이네요. 경쟁업체들이 더 성장하기 전에 고객들을 빨리 선점해야 되요.”
수혁은 한 포털에 길들여진 고객이 여간해서는 다른 회사로 갈아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들었다.
“펀 갤러리 외에 카페랑 블로그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보세요. 그리고 현재는 고객들이 메일 기능과 검색 기능 위주로 포털을 사용하지만, 나중에는 인터넷 뉴스를 보는 구독자들도 많아질 겁니다. 현재 뉴스란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지금 정치, 사회, 경제 세 파트로 운영되고 있는데 다행히 많은 언론사들과 제휴가 맺어져 있어 기사 공급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유신은 운영 계획보다는 현재 돌아가는 상황 위주로 대답했다. 왜냐하면, 회사 내에 벌여 놓은 일이 많아 다른 것들을 신경 쓰기에도 벅찼기 때문이다.
“뉴스 카테고리를 더 늘리세요. 사회면으로 합쳐진 문화와 국제 파트는 따로 분리를 하시고 스포츠와 연예섹션을 따로 만들어서 운영하세요. 그리고 언론사들 기사들을 분석해서 카테고리를 창설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도 찾아보시고요.”
수혁은 가까운 미래에 자동차와 부동산에 관련한 뉴스도 전문적으로 다뤄진다는 것을 생각해내고는 말했다.
“휴, 연예랑 스포츠 란은 타포털에서는 이미 취급하고 있는 분야인데 왜 지금까지 개설이 안 되어있었을까요? 끊임없이 개선할 점을 찾아야 되요. 이러한 상태가 유지되면 업계 최고는커녕 2류기업에 머무르고 말 겁니다.”
“최대한 노력해서 말씀하신 부분을 모두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유신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인력은 충분한가요?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많아서 직원들이 고생하고 있을 거 같은데.”
“사실 그렇습니다. 포털을 운영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 지금은 한 부서에서 여러 일을 맡고 있어 효율성이 높지 않은 상황입니다.”
유신은 회사를 경영하며 느끼는 에로사항에 대해 말했다.
“현재 사무실 규모로는 신규직원을 채용해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합니다. 자본이 쌓이면 우리 회사에 걸맞은 사옥을 구입할 거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장담하긴 힘들지만 못해도 3개월 안에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있는 형편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후, 맞는 말씀입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지요.”
수혁은 개선해야 할 점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유신과의 대화가 끝난 후 혼자 고민에 빠졌다.
‘경쟁업체들이 파이를 다 가져가기 전에 빨리 성장해야 돼. 그러려면 한 방이 필요한데. 웹툰 서비스를 개시하면 될 텐데 언제가 좋을까? 아니야,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지금도 늦지 않았어.’
수혁은 여러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는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 * *
“수혁아 잘 지냈어?”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들어오시죠.”
어느 토요일 오후, 평우의 초대를 받은 수혁은 그의 별장에 도착했다. 별장에는 평우뿐만 아니라 우진과 석호도 와있었다.
“우선 가볍게 한 잔 하자고. 너무 일에만 매몰되는 건 건강에 좋지 않아.”
평우는 수혁을 부엌으로 데리고 간 뒤 테이블에 놓인 시원한 맥주를 한 잔 건네주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일 때문에 제대로 쉬기 어려웠는데 할아버지 덕분에 좋은 시간 보낼 수 있겠네요.”
잔을 받은 수혁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네, 번역 일을 그만둬서 그런가 신수가 아주 훤하구먼.”
우진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겉보기에만 그렇지 회사 운영하느라 스트레스가 작지 않습니다. 아, 그리고 고서 번역 해놓은 것이 조금 남아있는데 원하신다면 갖다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사업하느라 바쁜 사람한테 고서 번역은 무슨....... 그저 하는 일이나 잘 되었으면 좋겠네.”
“단순히 바쁘기만 한 줄 아나본데 우리 수혁이가 최근에 주목해야 할 CEO로 뽑힌 건 알고 있는가?”
평우는 수혁을 자랑스럽게 쳐다보며 대화에 참여했다.
“알다마다요. 최근에 기업인들 사이에서 강 대표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교육 사업보다는 IT 사업에 집중하시는 걸로 아는데 잘 돼가고 있습니까?”
석호는 수혁을 이전보다 더 예의를 갖추며 대했다.
“편하게 강 대표라고 하세요. 저한테 굳이 그렇게 경어를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대표님이 주신 사업 아이템 덕분에 우리 회사가 숨통이 트였습니다.”
“그건 그저 단순한 호의였을 뿐입니다.”
“은인에게 함부로 대했다가는 아버지에게 혼이 납니다. 저는 이것이 편하니 괜찮습니다.”
석호는 수혁이 작성한 사업 계획서를 토대로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었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IMF로 인한 불경기의 여파로 물류량이 줄어 침체기를 겪던 제일물류는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 수혁아. 이번에 너에게 큰 빚을 졌다. 우리 아들이 됐든 내가 됐든 이 은혜는 꼭 갚으마.”
평우는 둘의 대화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저에게 베푸신 걸 갚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사심없이 한 행동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수혁은 손사래를 치며 겸손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안 그래도 제가 이 자리에 온 건 대표님께 작게나마 보상을 해드리고 싶어 온 겁니다.”
석호는 말을 하면서 품속에 있는 서류를 꺼냈다.
“이게 뭡니까?”
“제일 물류는 조만간 JL편의점을 주식 시장에 상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대표님께 우리 회사 지분의 10퍼센트를 양도해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하다. 이 정도의 호의를 베풀기는 참 어려울 텐데.’
통상적으로 비상장 회사가 주식에 상장되면 그 가치가 몇 배 이상 뛰었기 때문에 석호의 제안은 놀라운 것이었다. 수혁은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앞선 자리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할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으로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수혁은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수혁아, 그러지 말고 받아라. 사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지 않겠냐?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된다. 사양하지 말고 받아.”
평우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일이 있으면 그때 한 번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할아버지 제가 술 한 잔 드리겠습니다.”
수혁은 대화를 마무리 짓기 위해 화제를 바꿨고 석호도 그런 수혁의 모습을 보고 지분을 양도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그래요, 무거운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우진은 술잔을 들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렇게 하지. 수혁아 가서 술 좀 더 내 와라. 아무래도 자리가 길어질 것 같다.”
“네, 할아버지.”
수혁은 냉장고에서 술들을 더 꺼내왔고 사람들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며 하루를 보냈다.
‘지분을 받는 것도 좋지만 나중에 크게 도움 받을 일이 있을지도 몰라.’
수혁이 석호의 제안을 거절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포석이 있었다.
그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은혜를 베풀 때는 확실히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 * *
며칠이 흘러 5월이 됐다. 수혁은 수업이 끝나자 여느 때처럼 회사로 출근하고 있었다.
‘차가 있으니까 확실히 편하네.’
수혁은 지난달에 자동차 판매점에 가서 차를 구입했다.
그는 원래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차를 구매하려고 했으나 회사 대표라는 자신의 신분을 고려해 고급 외제차를 한 대 뽑았다.
‘그래, 내용 못지않게 겉으로 보이는 형식도 중요한 거니까.’
수혁은 대외적인 이미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길의 말을 떠올리며 차를 운전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네, 10분 뒤에 본부장님하고 김용민 팀장님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수혁은 직원에게 지시를 한 뒤 대표실에 와 짐을 풀고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노크소리와 함꼐 용민과 유신이 방으로 들어왔다.
“오셨군요. 다들 앉으세요.”
수혁은 용민과 유신을 책상 앞에 있는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대표님,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용민은 학교에서와는 달리 존칭을 쓰며 말했다.
“원래는 월례회의 때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사업을 빨리 추진할 필요가 있어서 여러분들을 먼저 불렀습니다. 팀장님. 게임 개발은 잘 되고 있습니까?”
“네, 현재까지 7개의 게임을 개발해 포털 사이트에 공개했는데 추가로 5개의 게임을 더 공개할 예정입니다.”
“잘하고 계시군요. 그럼 혹시 회사 프로젝트와 별도로 온라인 메신저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온라인 메신저라면 토킹클럽같은 프로그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토킹클럽은 온라인 메신저 업체들 중에서 가장 선두의 자리에 있는 회사였다.
“그렇습니다.”
“외람된 이야기지만 우리가 나서기에는 조금 늦지 않았을까요?”
인터넷에는 이미 여러 회사들의 메신저가 공개된 상황이라 시장에 뛰어 들기에는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나중에 스마트 폰이 상용화 될 것을 생각하면 메신저를 미리 개발해두는 것은 필수야. 어차피 목표하는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기존의 업체들이 얼마나 있냐는 중요하지 않아.’
회사의 미래까지 내다 본 수혁은 메신저 사업에 뛰어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장 진출 시기가 늦냐 빠르냐보다는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현재 있는 메신저들을 참조해서 작업에 들어가 주세요. 세부적인 컨셉들은 추후에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수혁은 미래에서 많이 쓰인 메신저의 특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부 설정을 고안하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본부장 님.”
“네, 말씀하십쇼.”
수혁은 용민과의 용건이 끝나자 유신을 불렀다.
“펀 갤러리 상황은 어떤가요?”
“현재 서비스를 개시한 지 3일 차가 되었는데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고 시간이 흐르면 중장년층의 고객들도 자연스럽게 이용하게 될 겁니다.”
“중장년층들의 참여를 늘리려면 저급한 게시글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할 겁니다.”
“유념하겠습니다.”
그는 2000년 초기의 중장년들 중에 마이너한 감성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펀 갤러리에 관한 사항은 본부장님께서 알아서 관리를 잘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안하고 싶은 사업 아이템이 있는데요.”
수혁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웹툰 플랫폼 제작을 서두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좋은 아이템이라도 발견하셨습니까?”
“네. 고객들의 즐거움을 위해 우리 포털에서 웹툰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웹툰이라면....... 설마 만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때 당시만 해도 웹툰의 개념이 보편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신은 대번에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이 사업은 우리 회사의 중요한 승부수가 될 겁니다.”
수혁은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126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