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29화 (129/316)

129화

“직원들을 더 뽑으려면 사무실 공간을 확충해야 될 거 같은데.......”

용민은 최근에 들어온 신입사원들과 추가로 뽑힐 인력들을 고려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다음 달부터는 위층을 리모델링해서 쓰기로 했어.”

건물 매입을 지시받은 직원은 선릉에 있는 건물들을 알아봤으나 사업체들이 빽빽하게 입주해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이라 본사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건물주와 협의해서 위층 공간을 계약해 작업공간을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잘됐네. 본부장님이 회사 사옥 부지도 알아보고 계시니까 임시로 사용하기에는 나쁘지 않겠어.”

“판교 근처에 부지를 알아봤는데 토지 가격하고 건축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라고.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

수혁은 대기업에 비견되는 본사 건물을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 따른 비용이 천억 원 이상 든다는 것을 알고 계획을 보류했다.

“그런데 수혁아 뭐 때문에 그렇게 고민을 하는 거야? 나한테 알려주면 안 돼?”

“내가 요즘 웹툰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잖아. 괜찮은 작가를 영입하려고 하는데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서 좀 걱정이네.”

수혁은 지오웹툰의 발전에 있어서 장신욱의 작가의 중요성을 설명했고 에로 사항을 토로했다.

“그 문제라면 내가 해결해줄게.”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용민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나만 믿어 봐. 내일은 오전출근이지?”

“응.”

때는 6월 중순, 대학 기말시험 기간이라서 대부분의 과목들이 종강한 상태였기에 수혁은 오전에 출근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내일 아침까지 내가 장신욱 작가 연락처를 구해볼게.”

“그렇게 빨리?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야?”

수혁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용민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말하기가 좀 그렇네? 아무튼 걱정하지 말고 일 봐.”

용민은 급하게 대표실을 나갔다.

‘허튼소리를 하는 애는 아닌데 뭐지?’

수혁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밑져야 본전이지. 나는 내 할 일이나 하자.’

용민은 어플이 말한 주변사람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출근한 수혁은 대표실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때도 드로잉 패드랑 마우스 펜이 있었네?’

수혁은 해외 전자 상거래 사이트에서 상품들을 구매했다.

드로잉 패드와 마우스 펜은 웹툰을 그리는데 필요한 도구로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었으나 아직은 수요가 많지 않아 미리 주문을 해야 물건들을 구할 수 있었다.

‘배송까지 10일이나 걸리네. 한국이었으면 3일 안에 도착했을 텐데.’

이때는 인터넷을 통한 매매가 직거래에 비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통과정의 효율성이 떨어지던 시절이라 배송기간이 더 길었다. 그나마 일본에서 생산되었기에 유통 시간을 줄일 수 있었지 다른 나라의 제품이었다면 상품 도착까지 2주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었다.

“누구세요?”

“김용민 팀장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뭐야, 진짜 왔잖아?’

용민은 약속한대로 이른 시간에 수혁을 찾아왔다.

“네, 들어오세요.”

수혁의 목소리를 들은 용민은 서류들을 손에 쥔 채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간밤에 장신욱 작가 연락처를 찾아냈어. 여기 봐 바.”

용민은 신욱의 연락처가 있는 종이를 수혁에게 건네주었다.

“아니, 진짜 장신욱 작가 연락처잖아? 이걸 어떻게 찾아낸 거야? 이거 진짜 작가님 번호야?”

“최근에 번호를 바꾸지 않았으면 아마 맞을 거야.”

반신반의하며 기다렸던 수혁은 번호를 확인하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뒤져도 못 찾았던 건데, 대단하다. 장신욱 작가뿐만 아니라 다른 만화작가들 전화번호까지 있네?”

수혁은 문서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냥 하는 김에 신경 좀 썼어. 일을 두 번 하는 것보다 한 번 할 때 제대로 하는 게 낫잖아?”

“맞는 말이긴 한데 이 자료들을 어떻게 구했는지 정말 안 알려줄 거야?”

“하하, 어떻게 구했냐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 난 먼저 가볼게.”

용민은 집요하게 묻는 수혁의 질문을 피하기 위해 어색하게 웃으며 대표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뭐라고 안 할 테니까 나한테만 알려줘.”

“진짜 뭐라고 안 할 거야?”

문을 열고 나가려던 용민은 수혁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뭐 때문에 이리 꾸물대는 거야?’

수혁은 용민이 주저할수록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내가 찾아보니까 한국만화협회라는 곳이 있는데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더라고.”

“그런 곳이 있었어?”

수혁은 작가 위주로 검색을 하다 보니 만화협회의 존재에 대해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화협회면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었겠다.”

“응, 사이트 가보니까 협회에 등록된 작가들의 인적사항이 다 있더라.”

“인적사항?”

수혁은 이야기를 하다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왜? 뭐 뭐 문제라도 있어?”

수혁의 반응에 당황한 용민은 말을 더듬었다.

“아무리 협회에 등록된 사람들이라지만 개인 정보는 함부로 공개할 수 없었을 텐데?”

“그거야…….”

용민은 변명할 거리가 없는지 말을 흐리기 시작했다.

“뭔데? 내가 따지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편하게 말해.”

“사실, 사이트 가보니까 네 말대로 개인 정보는 비공개해놨더라고. 그래서 어젯밤에 사이트를 해킹해서 자료들을 빼냈어.”

“뭐?”

수혁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걱정하지 마. 협회 사람들은 자료가 유출된 지도 모를 거야. 그냥 너랑 나만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 돼.”

“휴, 용민아 다음부터는 웬만하면 이런 행동은 안 했으면 좋겠다. 괜히 너한테 피해가 가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

수혁은 용민을 책망하지 않고 걱정해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없더라고. 네가 빨리 필요한 것 같아서 조금 무리했어.”

“수고 많았어. 방법이야 어쨌든 네 덕에 일이 잘 풀릴 거 같아. 다음부터는 이런 일을 할 거면 나랑 상의하고 진행하자. 선의로 한 행동이라 고맙긴 하지만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곤란해지니까 말이야.”

수혁은 고심했던 부분을 해결해 준 용민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비록 정당한 방법은 아니었으나 그가 가져온 문서들 덕분에 작가들과 연락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수고는 무슨. 다음에 또 도와줄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수혁아.”

“고맙다. 가서 일 보고 다음에 이야기하자.”

용건을 마친 용민은 문을 닫고 대표실을 나갔다.

‘후, 이제 연락을 해야는데 뭐라고 하면 좋을까?’

수혁은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손에 쥔 채 생각에 잠겼다. 그의 경험상 무턱대고 연락을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전생에서 장신욱 작가가 어떤 사람이었지? 흠.......’

수혁은 신욱에 관한 과거 기억들을 떠올려봤다.

신욱은 정길과 달리 자서전을 쓰거나 언론 인터뷰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억해내기 어려웠다.

‘작품들은 기억이 나는데 작가의 사상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뭐가 있을까? 인터뷰도 잘 안 했던 것 같은데. 잠깐, 작품 자체가 작가의 생각들이 집결된 거잖아?’

수혁은 20대 때 그의 작품들을 많이 읽었고 내용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거면 되겠어.’

수혁은 전생에 연재되었던 신욱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공통특징들을 알아냈다. 신욱은 기존의 만화작가들과 달리 사회적 문제를 담은 웹툰을 그려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그는 가난한 노인들과 같이 소외된 계층부터 정부로부터 피해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그려냈다.

‘지금은 점심시간이니까 조금 있다가 전화해봐야겠어. 그전까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고민해보자.’

수혁은 그가 출간한 단행본을 찾아보며 원활한 대화를 위한 전략을 짰다.

* * *

비가 오는 금요일 오후, 신욱은 창밖을 보며 상념에 잠겨있었다.

‘하, 이번에도 실패하면 정말 끝장인데.......’

신욱은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졸업한 후 전업 만화가로서 열심히 살았다.

그는 여러 작품들을 그려냈고 몇몇 출판사에 제출하였지만,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심혈을 기울여 그렸던 작품 하나가 단행본으로 나오긴 했으나 그마저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말 힘들게 그렸는데, 자신이 없다.’

집 한쪽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신욱은 좋지 않은 날씨 탓에 우울한 생각이 몰려와 멍하니 빗소리를 들으며 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식탁 위에 놓은 핸드폰이 진동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지? 연락 올 사람도 없는데.’

별안간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놀란 신욱은 전화를 받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SH커뮤니케이션 대표 강수혁입니다.”

수혁은 식사를 한 뒤 적당한 시간대에 신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SH커뮤니케이션이요?”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지오닷컴이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포털인데 들어보셨습니까?”

수혁은 의아해하는 신욱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아, 네 압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작가님과 함께 좋은 웹툰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우리 포털에서 웹툰 사이트를 별도로 운영하는 건 알고 계신가요?”

수혁은 인사치레는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폰 번호는 어떻게 아시고 연락하셨나요?”

“예전에 출간하셨던 ‘행복한 이웃들’을 읽고 감명을 받아 항상 뵙고 싶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전화번호를 알게 되서 연락드렸습니다.”

“그 책을 읽어보셨다고요? 부수도 많지 않아서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신욱은 자신이 그린 단행본이 언급되자 연락처 출처에 대한 궁금증은 금세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옛날에 우연히 서점에서 사서 읽었습니다.”

수혁은 책의 대략적인 줄거리만 알고 있었으나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현재 계약한 회사는 있으신가요?”

“마지막 작품을 출간한 이후로는 혼자 일하고 있습니다.”

‘많이 힘들었나보군.’

수혁은 힘이 없는 신욱의 목소리를 듣고 짐작했다.

“만약 괜찮으시면 우리 회사에서 작가님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지오웹툰은 챌리지 웹툰에서 인정을 받아야 정식연재가 가능하지 않나요?”

“잘 알고 계시는군요.”

신욱은 출판사에 작품을 제출해 출간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는 생각이 들자 최근에 유행을 타기 시작한 웹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미 각 플랫폼 별로 연재를 하기 위한 방법과 수익성에 대한 분석을 해놓은 상태였다.

‘지오웹툰은 작가 지망생들에게나 좋지 달마다 선 인세를 챙겨 주는 넥스트나 푸른닷컴에 비하면 매력이 없어.’

신욱은 기성작가들에게 달마다 고액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타 업체들에 비해 지오닷컴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작가님은 우리와 다이렉트로 계약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정식연재는 자동으로 보장이 될 겁니다. 그리고 회사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줄 계획도 있습니다.”

“전폭적인 지원이요?”

“네, 혹시 괜찮으시면 뵐 수 있을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고 싶습니다.”

수혁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전화보다는 대면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시간을 좀 줄 수 있습니까?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신욱은 넥스트나 푸른닷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 13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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