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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33화 (133/316)

133화

‘일송그룹 이경욱 회장이 과거에도 1등이었네? 미래에는 20조가 넘었는데 이때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구나.’

수혁은 4조원으로 집계된 경욱의 재산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대표님, 보고 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뭡니까?”

생각을 하느라 침묵을 지키고 있던 수혁은 유신을 쳐다봤다.

“한국 기업인 연합에서 초대장이 왔습니다. 7월 10일 오후 5시, 하인츠 호텔에서 기업인의 밤 행사를 여는데 참석하시겠습니까?”

“한국 기업인 연합이면?”

“네, 중견기업 이상 되는 회사라면 암묵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전대연이 있는데 우리 회사는 그 요건에는 충족하지 못해 아직 연락은 없는 상태입니다.”

전대연은 전국 대기업 연합의 줄임말로 대기업의 요건을 충족해야 할 뿐만 아니라 30대 기업에 선정된 회사들만 참여할 수 있는 모임으로 국가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협회였다.

“우리 회사는 중견기업 요건을 충족하지 못 했는데 한국 기업인 연합에서 왜 우리를 초대한 겁니까?”

중견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10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해야 될 뿐만 아니라 자산 총액이 5000억을 넘겨야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3년 평균 매출액이 1500억 이상을 기록해야 했기 때문에 신생 회사인 SH커뮤니케이션이나 SH스터디는 중견기업에 해당될 수 없었다.

“맞습니다. 대표님은 기업인의 밤에 한기연 회원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초청연사로 초대받았습니다.”

“그쪽에서 저한테 연설을 부탁했단 말입니까?”

“네, 5분 연설이라 그렇게 부담스럽진 않으실 겁니다.”

올해 들어 수혁은 각종 언론으로부터 주목해야 할 기업인으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한기연에서 초청연사를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관계자에게 참석하겠다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직원을 시켜 참석의사를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셨던 거 같은데.......”

“그, 제가 조금 민망해서 그런데 비밀로 해주시겠습니까?”

“편하게 말씀하십쇼.”

수혁은 웹툰을 그린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웹툰을 그리면 타인들의 시선이 곱지는 않을 거야.’

회사 대표가 본인 회사의 포털에 웹툰을 개재하면 타인들이 볼 때 특혜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수혁은 일을 조심스럽게 진행하기로 했다.

“지오웹툰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는 것을 돕기 위해 웹툰을 하나 그렸습니다. 본부장님께서 연재를 도와주셨으면 좋겠는데 괜찮으십니까?”

“일하시는 것도 바쁘실 텐데 웹툰은 언제 그리시려고 합니까?”

보통의 웹툰 작가들은 일주일을 기준으로 매일 10시간 가까이 그림을 그려야 한 화 분량을 완성할 수 있었다.

“직접 해보니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더라고요. 온 김에 제가 그린 작품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수혁은 1화 분량의 웹툰을 유신에게 보여줬다.

“이걸 대표님이 그리셨다고요? 이 정도면 프로작가가 그렸다고 해도 사람들이 믿겠는데요?”

“그림체 외에도 스토리나 이런 부분도 살펴봐 주세요.”

수혁은 작품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연재에 앞서 누군가에게 검증을 한 번 받아볼 필요를 느꼈다.

“되게 좋네요. 제가 고등학교 졸업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었는데 흥미로웠어요.”

“다행이군요.”

유신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그려진 웹툰을 보고 소회를 밝혔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학교 분위기가 너무 밝고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말투도 그렇고 선생들이 학생 대하는 것도 제가 겪은 학교에 비해서 훨씬 부드럽다고나 할까요?”

‘아, 맞다. 학교 배경이 요즘보다는 미래에 가깝게 그려지다 보니 그런 부분은 신경 쓰지 못했어.’

수혁은 2010년대의 학교를 배경으로 웹툰을 그렸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의 학교와 비교했을 때 현실감이 떨어졌다.

“좋은 피드백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부분을 반영해서 내용을 수정해야겠어요.”

“가볍게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마십쇼. 수정까지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고칠 부분이 많지 않으니 아마 내일쯤이면 파일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늘 당장 담당 직원에게 말해놓겠습니다. 물론 직원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진행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 내로 연재를 할 거니 신경 좀 써주세요. 신분을 속이려면 별도의 작가명이 필요할 겁니다.”

“뭘로 하시겠습니까?”

유신의 질문에 수혁은 잠시 고민했다.

“월명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올려주세요.”

수혁은 과거 고서를 번역할 때 사용했던 필명을 작가명으로 선택했다.

“알겠습니다. 나가는 대로 바로 웹툰 부서에 가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넵, 수고하세요.”

유신은 수혁에게 인사를 한 뒤 대표실을 나갔다.

‘빨리, 수정을 해야겠어. 하루에 3시간 정도 투자하는 거니까 큰 부담은 없을 거야.’

수혁은 드로잉 패드를 꺼낸 뒤 그림들을 수정했다.

* * *

“수혁아, 하인츠 호텔이 이쪽 맞지?”

“네, 맞아요,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천천히 가도 돼요.”

수혁은 기업인의 밤 행사에 혼자 참석하려고 했으나 수행원과 함께 참여하라는 주변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찬명과 동행하게 되었다.

“다 온 거 같네요.”

“그러게, 와, 높으신 분들이 많이 온 모양인데?”

찬명은 수혁이 최근에 구매한 고급 외제차를 운전하여 명동에 있는 하인츠 호텔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행사를 위해 동원된 경호 인력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한기연에서 초대를 받고 왔습니다.”

찬명은 차량 통제를 하고 있는 직원에게 초대장을 보여줬다.

“편안한 시간 보내십시오.”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초대장을 확인하고 차를 통과시켰다. 찬명은 수행원들의 수신호에 따라 주차장으로 갔다.

“잠깐만 기다려 수혁아.”

수혁이 차 문을 열려고 하자 찬명이 그를 제지했다.

“왜요?”

“사람들 이목도 있는데 내가 열어줄게.”

“괜찮아요. 저 그런 거 안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찬명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지만, 수혁은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차 문을 열고 나왔다.

“대표님, 들어가시죠.”

“제 발표순서는 언제인가요?”

찬명은 호텔에 도착하자 수혁에게 깍듯이 대했다.

“개회식과 재정경제부 장관의 인사말 다음이 대표님 차례입니다.”

국내의 조세와 경제 현안들을 처리하는 부서인 재정경제부는 기획재정부의 과거 이름이었다.

“얼마 안 돼서 바로 제 차례 내요.”

수혁은 미리 작성해 놓은 연설 원고를 주머니에서 꺼내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었다.

‘정석호 회장님이 아니었으면 큰 일 날 뻔했어.’

수혁은 원래 협회 측에서 정해준 SH스터디의 성공 요인을 주제로 원고를 작성했으나 조언을 듣고 연설문을 대폭 수정했다. 석호는 협회에서의 연설이 신고식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강 대표님도 기업인의 밤 행사에 오신다면서요?”

행사가 있기 며칠 전, 수혁은 석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네, 5분간의 짧은 연설을 부탁받아서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협회 측에서 아마 경영비전이나 앞으로의 포부 같은 것을 주제로 연설을 부탁했을 겁니다.”

석호는 대기업 오너였기 때문에 이런 모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맞습니다. 막상 준비하다 보니 제 자랑을 하는 거 같아서 민망합니다.”

“공치사는 되도록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선배 기업인들과의 첫 만남에서는 되도록 겸손한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습니까?”

“네, 이번 자리가 어떻게 보면 국내 CEO들에게 처음으로 인사하는 자리기 때문에 첫 인상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서로 협력 관계에 있는 회사들이 많기 때문에 언행을 조심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충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석호는 이 외에도 기업인들 간에 지켜야 할 관행에 대해 말해주었다. 수혁은 다소 경직적인 국내 기업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기라성 같은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신인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참고하기로 했다.

‘후, 이런 것까지 신경 쓰기 싫은데,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수혁은 석호의 조언들을 떠올리며 호텔 내부에 있는 컨벤션 홀로 들어갔다. 홀 안에는 수백에 달하는 회사 대표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회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일송에서 만든 핸드폰이 국내를 넘어 유럽과 북미에서도 큰 인기를 끈다고 들었습니다.”

“일송이 어디 핸드폰만 잘 만드나요? 어떤 분야든 일송이 손을 대면 대박이 나니 참 부럽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일송그룹의 회장 이경욱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일송과 협력 관계를 맺은 회사의 대표들로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저분이 그 유명한 이경욱 회장이군요.”

수혁은 티비를 통해서만 본 경욱을 실제로 보게 되자 신기해하였다.

“네, 가서 인사를 드리면 어떨까요? 여러 방면에서 나쁘지 않을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면 어떻게든 일송과 마주치기 마련이니까요.”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자리로 가죠.”

수혁은 인사를 하라는 찬명의 권유를 거절하고 배정된 자리에 착석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권력을 가졌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기업인의 밤은 정부와 협회에서 공동주최하는 모임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재정경제부 장관이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이었으나 사람들은 장관보다는 경욱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

“강 대표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수혁을 발견한 석호는 다가와서 인사했다.

“경기가 회복되니 제일물류가 다시 성장세로 돌아선 것 같더군요.”

“겸손한 말씀이십니다. 이게 다 강 대표님이 물꼬를 터주셔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IMF 여파에서 벗어난 유통업계는 예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은 상태였다.

“회장님, 이쪽은 SH스터디와 지오닷컴의 대표로 역임하고 있는 강수혁 대표입니다. 강 대표님 인사하시죠. 이분은”

“아닙니다. 제 소개는 제가 해야지요.”

‘누구지?’

수혁은 석호가 소개하려는 노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허허,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교육 사업에 이어 인터넷 사업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지요? 저는 WG그룹의 현명길 회장입니다.”

명길은 일송 다음가는 재벌그룹인 WG의 대표 겸 한국기업인연합의 회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존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후배 경영인으로서 많이 배우겠습니다.”

수혁은 예를 갖추고 인사를 했다. 명길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재벌답지 않게 소탈하고 사회에 모범이 되는 행동을 많이 하여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는 기업인이었다.

‘이경욱 회장과 달리 현명길 회장은 권위적이지 않고 사회에 공헌도 많이 했었지.’

수혁은 전생의 경험을 통해 명길이 천문학적인 재산을 사회에 기부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반면에 경욱은 스캔들과 각종 비리로 인해 국민의 지탄을 받는 등 평탄한 노년을 보내지 못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강 대표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들어보니 한국대학교에 다니신다면서요? 제 손자도 강 대표와 같은 또랜데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손자 분께서도 한국대를 다니나 보군요? 실례가 안 되면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현 회장의 손주가 동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수혁은 호기심이 들었다.

- 13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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