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웹툰, 갤러리, 게임까지 승부수를 띄운 것들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원 수가 예상보단 많이 늘지 않았어.’
수혁은 어느덧 이천만명 이상의 회원 수를 보유하게 된 푸른닷컴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졌다.
“우리 포털은 단순히 게임이나 만화를 보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지금보다 배 이상의 회원 수를 보유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4월에 비해 10배 이상의 회원 수 증가가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분발하면 충분히 대표님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유신은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것을 우려하여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휴, 저는 여러분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푸른 닷컴과 넥스트 이용 고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 포털이 시장을 점유하기가 어려워져서 조금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수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고객들이 한 번 사용하는 포털을 여간해서 바꾸지 않는다는 특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스스로 활로를 찾아야 하겠지요. 김용민 팀장님, 메신저 프로그램 개발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네, 현재 프로토 타입은 완성되었고 세부적인 기능들을 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언제쯤 출시가 가능할 것 같습니까?”
“그게, 마음만 먹으면 당장 다음 달이라도 상용화가 가능하겠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뭡니까?”
용민은 팀원들과 개발한 메신저 프로그램에 대해 확신이 없어 보였다.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온라인 메신저 업체 중 제일 잘나가는 토킹클럽 같은 경우, 아바타와 미니홈페이지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현재 만들고 있는 메신저 프로그램에는 그러한 기능들이 없습니다.”
“흠, 그런 기능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수혁은 초기 온라인 메신저와 달리 미래에는 미니 홈페이지나 아바타 기능 없이도 대중의 인기를 끄는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 같은 경우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생각이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춘 토킹클럽에 더 매력을 느낄 것 같습니다.”
* * *
용민은 본인이 개발한 프로그램이 타 업체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돌려서 표현했다.
“뭐,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만약에 그런 기능들을 추가한다면 출시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내년 초쯤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늦어요. 매력적인 상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시기에 상품을 출시하는 겁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고객들이 대화를 편리하게 나눌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네요. 메신저에 필요한 부가적인 기능은 추후에 제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오닷컴의 회원들만 잘 끌어들여도 고객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유신이 의견을 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회원 수 확보와 마케팅의 중요성에 대해 계속 말하는 겁니다. 팀장님, 메신저로 수익창출은 얼마나 가능하겠습니까?”
“이모티콘과 음원들을 판매해서 수익을 낼 건데 현재 상황에선 큰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이모티콘은 어느 부서에서 만들고 있나요?”
밝지 않은 전망에 풀이 죽은 용민과 달리 수혁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콘텐츠 개발 부서에서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원 같은 경우 스트리밍 사이트와 음원협회등과 논의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이모티콘은 우리 회사에서 만들기보다는 외부 업체에 작업을 맡기는 편이 훨씬 나을 겁니다. 아니면 인사팀과 논의하여 전문성이 있는 직원들을 뽑으세요. 캐릭터를 개발하는 일은 얼핏 보면 쉬워보이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작업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나는 대로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용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고객들이 프로필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음악을 재생할 수 있게 만드세요. 그러려면 사진 첨부 기능은 기본적으로 구비해놔야겠죠?”
“네, 대표님이 보내주신 도안을 참고해서 프로필 기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수혁은 회귀하기 전에 유행했던 메신저 프로그램을 참고해 프로필을 표시할 수 있는 기능을 메신저 안에 넣으라고 지시했었다.
“아직은 경쟁업체들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계속 보완하다보면 더 나아질 겁니다. 7월 한 달 동안 고생 많으셨고 다음 달에도 수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논의해야할 사안들을 모두 처리했다고 판단한 수혁은 회의를 끝마쳤다.
* * *
8월의 어느 오후, 압구정의 한 칵테일 바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날은 한국대학교 출신 사람들로 이루어진 클럽인 대연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미희야, 오랜만이다. 시험은 잘 봤어?”
“10월에 발표긴 한데 크게 기대는 안 하고 있어.”
1학기에 휴학을 했던 미희는 6월에 있던 사법고시 2차를 치른 상태였다. 그녀는 시험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에 계속 공부하고 있었다.
“맨 날 선배들하고 같이 만나다가 우리끼리 보니까 살 거 같네.”
명학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했다. 그러자 옆에 앉은 남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선배들이랑 있으면 돈 안 써도 되고 좋잖아.”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뭐가 좋냐?”
대연은 엄격한 기준 하에 회원을 엄선했기 때문에 모임에 참석한 회원들은 모두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건 그렇고 어쩐 일로 동기 모임을 갖자고 한 거야?”
명학은 이번 모임을 주최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들이 우리끼리 놀라고 지원금을 주셨어. 상의할 것도 있고.”
명학은 대연 47기 회원이었는데 대답을 하는 남자는 WG그룹 회장인 현명월의 손자 현보성이었다. 그는 기수 회장임과 동시에 재학생 회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난 또 네가 한턱내는 건 줄 알았네.”
“네가 지난 학기에 사업한다고 바쁠 때 우리들끼리는 종종 만났었어.”
“크흠......”
보성이 아픈 곳을 찌르자 명학은 입을 다물었다. 일송과 WG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명학과 보성은 은연중에 서로 견제하는 사이였다.
“그래 명학아. 너 없을 때 보성이가 선배들이랑 애들 챙기느니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맞아, 우리가 만날 때면 돈은 항상 보성이가 냈잖아.”
보성은 책임감 있게 모임을 이끌었기에 아이들의 신망을 얻은 상태였다.
그는 겸손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고교시절부터 부유층 자제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재수 없는 새끼.’
명학은 1학년 때 대연 재학생 모임의 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보성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보성은 엄한 집안 분위기 탓에 예의가 바를 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명학에 비해 훨씬 성숙했다.
“뭐 됐고 할 말이 뭔데?”
“안 그래도 너랑 관련된 이야기야. 혹시 경영학과에 강수혁이라고 들어봤어?”
보성은 명학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
“강수혁? 아는 애긴 한데 왜?”
“선배님들께서 그 친구를 대연에 가입시키라고 말씀하셨거든. 괜찮으면 연락처라도 알 수 있을까? 내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될 것 같아.”
“뭐라고?”
보성의 이야기를 들은 명학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런 근본도 없는 놈을 왜 대연에 가입시키려고 하는 거야?”
“그렇게 쉽게 무시할 만한 애가 아니야. 우리 집안 어른들도 그렇고 선배들 사이에서 엄청 인정받는 것 같던데?”
보성은 명학의 발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야, 그놈은 내가 아는데 우리 모임에 어울리지 않아, 조금한 사업 하나 성공했다고 얼마나 건방을 떠는 줄 알아? 그리고 출신도 미천한 놈을 뭘 믿고 영입한다는 거야? 하 참 선배님들한테 내가 따로 말씀 드려야겠어.”
명학은 수혁이 대연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집안까지 언급하며 비하했다.
“선배들 선에서 결정된 이야기를 네가 뭔데 함부로 말씀드린다고 하는 거야? 내가 봐도 배울 점이 적지 않고 대연에 큰 도움이 될 친구야. 그리고 능력 좋은 사람이 우리 모임에 들어오면 더 좋은 거 아니야?”
“네가 그놈을 잘 몰라서 그래. 나랑 같은 분반에 속해 있어서 술도 몇 번 마셔봤는데 거들먹대는 꼴이 아주 보기 싫더라고.”
명학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수혁이는 그럴 애가 아니야.”
미희는 이야기를 듣다 거북한 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미희야 네가 그 자식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보기와 다르게 음흉한 놈이야. 내가 예전에 사업했던 거 알지?”
“그런데?”
“내가 사정이 생겨서 회사를 처분하게 되었는데 그놈이 얍삽하게 내 회사를 가로챘어. 치사한 새끼, 어떻게 동기한테 그따위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명학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네가 회사를 말아먹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보성이 차갑게 말했다.
“뭐라고?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흥분한 명학은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네가 경영을 잘 못 해서 회사를 말아먹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들어보니까 일송에서 전폭적으로 도와줬는데도 네가 다 망쳤다면서?”
“그게 무슨 소리야?”
명학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몹시 당황했다.
“이 바닥 좁은 거 몰라?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일송에서도 너를 포기했다는 말까지 나왔다는데 사실이야?”
지오닷컴이 명학의 방만 경영으로 인해 수혁에게 인수되었다는 이야기는 재벌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네가 사업을 안 해봐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그 회사는 어차피 발전 가능성이 없었어.”
“지오닷컴이 SH커뮤니케이션에 인수된 이후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고 하는 이야기야?”
보성은 명학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래, 나도 지오닷컴에서 자료도 찾고 웹툰도 보고 그러고 있어.”
미희는 수혁을 옹호하기 위해 한마디 거들었다.
“훗, 그래봤자 푸른닷컴이랑 넥스트한테 밀리게 되어 있어. 내가 바보라서 인터넷 사업을 그만둔 줄 알아? 그쪽은 시장을 먼저 선점한 회사가 잘 나가게 되어 있는 구조야. 미희야 너랑 친한 거 같아서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강수혁 그 놈도 얼마 안가서 한계를 느낄 거야.”
명학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하였다.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수혁이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애야.”
미희는 수혁이 어떤 난관이든 헤쳐나가는 모습을 고교시절 때부터 봐왔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야, 됐고 연락처 좀 알려줘라. 네 말대로 사람이 건방진 지 아니면 괜찮은지 내가 만나서 직접 판단할게.”
보성은 명학에게 수혁의 연락처를 물어봤다.
“뭐 하러 일을 번거롭게 만들어? 연락할 필요 없다니까.”
“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지. 선배님들이 지시한 사항이라고 내가 말했잖아.”
“야, 회장이면 네 선에서 선배들에게 잘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말했지? 그 녀석은 능력은 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이 부족하다니까? 하, 이래서 내가 널 못 믿는 거야. 일처리가 이리 미숙하니 참.”
명학은 계속 수혁의 집안을 꼬투리 잡으며 보성과 실랑이를 이어갔다.
“야 됐어. 말하지 마라, 더이상 너랑 말도 섞기 싫다.”
보성은 영양가 없는 대화가 계속되자 명학에게 연락처를 얻는 것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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