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37화 (137/316)

137화

“저, 보성아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명학의 눈치를 보던 미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너도 그 친구랑 아는 사이라고 했지?”

답답했던 상황에서 실마리를 찾은 보성은 얼굴이 환해졌다.

“미희야 난 네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소 미희를 살갑게 대했던 명학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휴, 넌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보성이한테 진작부터 알려주고 싶었는데 네 눈치 보느라 가만히 있었던 거야. 내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마.”

미희는 명학이 한 번 원한을 가지면 좀처럼 풀지 않는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껄끄러웠다.

“야, 이명학. 연락한다고 해서 걔가 우리 모임에 들어오는 것이 확정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보성아 무슨 일이야?”

“싸우지들 마.”

자리가 점점 시끄러워지자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다가와서 물었다.

“네 마음대로 해. 난 분명히 말했어, 강수혁은 안 된다고.”

명학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괜시리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고 말없이 가게를 나갔다.

“마중은 안 나간다, 잘 가라.”

보성은 명학의 뒷모습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보성아, 수혁이 연락처 문자로 보내줄게.”

“괜찮겠어? 저 자식 한 번 앙금 품으면 오래가잖아.”

“상관없어. 그렇다고 명학이 말을 들을 수는 없잖아.”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낸 미희는 수혁의 폰번호를 보성에게 보내주었다.

“네가 말하기 그러면 내가 대신 이야기해줄 수 있는데......”

그녀는 대연 모임에 정성을 많이 쏟는 보성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어 했다.

“아니야, 내가 직접 연락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보성은 타인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애들아. 근처에 내가 아는 맛집이 있는데 거기 가서 저녁이나 먹자. 선배님들이 넉넉히 챙겨주셔서 마음껏 먹어도 될 거야.”

“좋아. 안 그래도 슬슬 배고팠는데 잘 됐다.”

맛집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날 밤 보성은 대연 회원들을 데리고 회전 초밥 집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댓글 보는 재미가 생각보다 쏠쏠한데?’

수혁은 서초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웹툰에 달린 댓글들을 읽고 있었다.

지난 회의 이후 수혁은 대부분의 시간을 웹툰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직원들에게 해야 할 일은 다 지시했으니까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돼. 시간도 많이 남는데 이럴 때 웹툰을 많이 그려놔야겠다.’

웹툰은 어디까지나 부업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최종화까지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웹툰이 엄청난 인기를 끌어도 120화 이내로 완결을 낼 생각이었다.

‘스마트 폰이 하루빨리 나와야 포털 사업이 훨씬 커질 수 있을 텐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한 화 분량의 작업을 끝낸 수혁은 휴식을 취하며 생각했다.

그는 스마트 폰이 출시됨과 동시에 전 연령대에서 인터넷 사용 빈도가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 폰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시점이 2009년쯤이었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를 차려서 직접 제조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안 돼.’

수혁은 회귀하기 전에 썼던 스마트 폰을 참고해서 핸드폰을 생산해볼까 고민해봤지만, 반도체와 LED액정 제조와 같은 첨단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현실을 무시할 순 없었다.

‘하, 모르겠다 그냥 쉬자.’

머리가 지끈 거리는 것을 느낀 수혁은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잠이든지 1시간쯤 지났을까, 머리맡에 둔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지?’

단잠을 자던 수혁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폰을 열어 발신자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모르는 번호라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여보세요?”

수혁은 사업상 중요한 전화일 수 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국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는 강수혁씨 핸드폰 맞나요?”

“네. 그런데 누구시죠?”

‘뭐지? 회사 일 때문에 연락 온 건 아닌 것 같고 행정실 직원인가?’

수혁은 낯선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미희한테 번호를 받고 연락드렸습니다. 저는 한국대학교 전자 컴퓨터 공학부에 재학 중인 현보성이라고 합니다.”

“현보성씨요?”

“네, 맞습니다. 혹시 제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그는 상대가 놀란 반응을 보이자 자신을 아는가 싶어 질문했다.

“한 달 전쯤에 현명길 회장님을 뵌 적이 있는데 그때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안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협회에 다녀온 이후 수혁씨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보성은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회장님은 잘 계시죠?”

“네, 할아버지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일전에 찾아뵌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면목이 없네요.”

수혁은 호텔에서의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석호에게 연락하여 명길의 연락처를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주저하고 있었다.

“하하, 할아버지는 그런 것에 연연하시는 분이 아니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보성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뭐 때문에 저한테 연락하셨나요?”

“네, 다름이 아니라 수혁씨랑 상의하고 싶은 것이 있어 어렵게 연락드렸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수혁은 보성의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전화상으로도 말씀드릴 수 있지만 웬만하면 얼굴을 보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보성은 대연에 가입 하라는 권유를 전화상으로 하는 것은 경우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네, 저는 상관없습니다. 언제 보면 좋을까요? 최근에는 비교적 한가한 편이라 보성씨한테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자고 한 건데 굳이 저한테 맞추실 필요는 없습니다.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시면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그는 처음 통화하는 수혁에게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저는 당장 내일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한테는 차가 있어서 장소는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 내일 오후 2시에 신사역에 있는 카페에서 볼까요?”

“네, 좋습니다.”

수혁은 보성과 구체적인 약속 장소를 정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잘 됐어. 이번 기회에 손자랑 친해져서 현 회장님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가져가야겠다.’

침대에서 일어난 수혁은 내일 만날 보성과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나갈 준비를 마친 수혁은 약속시간이 임박하자 차를 몰고 신사동으로 향했다.

‘여기였던 것 같은데?’

약속 장소로 언급된 카페에 도착한 수혁은 앞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네.”

수혁은 종업원에게 주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를 받을 수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보성씨가 오면 무슨 이야기부터 하면 좋을까?’

그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보성을 기다렸다. 수혁은 평소 버릇대로 약속 시간보다 10분 이상 먼저 도착하여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한참을 생각하고 있던 수혁은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알아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어디 계세요? 저는 막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파란 옷 입으신 분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수혁은 카운터 앞에서 커피를 들고 있는 청년을 발견하자 전화를 끊고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강수혁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현보성입니다.”

수혁은 미소를 지으며 보성에게 악수를 청했다.

“사업하시느라 바쁘실 줄 알았는데 만날 수 있게 돼서 다행입니다.”

“웬만한 일들은 다 처리를 해놓아서 지금은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보성은 수혁이 미리 맡아놓은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미희랑 친구면 저랑 동갑인 것 같은데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하하, 그래도 될까요? 제가 원래 낯을 가리지 않는 편인데 우리 할아버지가 항상 수혁씨를 대표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서 조금 어려웠던 것 같아요.”

보성은 수혁을 동년배 친구가 아닌 견실한 기업을 운영하는 오너로 느끼고 있었다.

“비즈니스 때문에 만난 것도 아닌데 어렵게 대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미희 친구면 저랑 아예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수혁은 보통 때와 달리 넉살 좋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편하게 할게.”

“그래. 나도 이 편이 더 편할 거 같아.”

“어차피 친구처럼 지낼 건데 격식 차릴 필요가 뭐 있겠어?”

초반의 딱딱했던 분위기는 말을 놓은 이후로 한결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한 거야?”

어느 정도 안면을 텄다고 생각한 수혁은 용건을 물었다.

“우리 학교에 있는 사교클럽 중에 대연이라고 있는데 혹시 들어봤어?”

“응, 옛날에 미희가 그곳에 가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맞아. 미희도 나랑 같이 대연에서 활동하고 있어. 우리 모임에 대해서 아는 거는 있고?”

보성은 클럽 가입을 제안하기에 앞서 수혁이 대연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궁금했다.

“잘은 모르지만, 미희가 아버지 추천에 의해서 들어갔던 걸 보면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던데?”

“맞아, 우리 모임은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고 신입회원 같은 경우에는 선배들이 점찍어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외부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아. 그런데 우리 선배님들께서 너를 좋게 보시는 거 같더라고.”

“나를?”

수혁은 보성의 말에 의아해했다.

“선배들이 매스컴을 통해서 너에 대해 알게 됐나 봐. 아무래도 네가 우리 또래 중에서는 독보적이잖아. 그래서 말인데 대연에 들어올래?”

“흠, 생각을 안 해봐서 결정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은데?”

수혁은 대연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이런 말해서 미안하다. 널 데려오라고 하는 선배들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었어.”

“아니야, 제안 자체는 고마운데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수혁은 민망해하는 보성을 달래주었다.

“잘 생각해봐. 우리 모임에는 쟁쟁한 선배들이 적지 않아. 재계뿐만 아니라 정관계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이 많아서 네가 무슨 일을 하든 큰 도움이 되 주실 거야.”

“오늘 당장 대답해야하는 건 아니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수혁은 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당연하지 마음 정해지면 알려줘. 그런데 너 명학이랑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이명학? 개도 대연 멤버야? 하긴 못났긴 했어도 일송 가문이니 선배들이 가만 놔뒀을 리가 없지.”

“응, 게네 아버지도 대연 출신이라 입학하자마자 나랑 같이 추천받아서 들어갔어.”

“일송가문의 자식인데 그럴 만도 하지.”

수혁은 명학의 이름이 나오자 표정이 굳어졌다.

- 13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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