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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40화 (140/316)

140화

사장과 통화를 마친 매니저는 다시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사장님하고 혜미랑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천천히 하고 오시라고 해요.”

수혁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장님, 제가 싫다고요 도대체 왜 제가 이 광고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녀는 스튜디오 밖에서 있는 대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제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지만 무시할 정도의 위약금은 아니겠지. 사장도 골치가 아프겠어.’

전전긍긍하는 스태프들과 달리 수혁은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하, 촬영할게요. 대신 빨리 끝내야 되요.”

혜미는 20분간의 통화 끝에 광고촬영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위약금이 그렇게 클 줄이야. 괜히 고집 부리면 나만 손해겠어.’

사장에게 계약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혜미는 말을 듣기로 했다.

“오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면서요?”

“그냥 좀 피곤하긴 해요.”

수혁은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감독님, 배우님이 촬영해야 할 부분 먼저 빠르게 진행하죠.”

“알겠습니다. 자 다들 준비하세요.”

“넵.”

소강상태로 있던 스튜디오는 촬영감독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속을 알 수 없네, 갑자기 왜 착한 척을 하는 거지?’

혜미는 수혁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의아해했다. 본래 수혁은 여자에게 함부로 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광고촬영이 무사히 재개된다는 판단이 들자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뿐이었다.

“저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촬영이 끝나면 바로 퇴근하시기 바랍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준은 상황을 정리해준 수혁에게 고마워했다.

“혜미씨, 좀 전의 대화는 잊고 앞으로 우리 회사랑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장담은 못하지만 시간이 되면 같이 식사도 하고요.”

수혁은 혜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아, 네. 좋아요. 아까는 죄송했어요.”

“저도 실례가 많았습니다.”

수혁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화가 봄 눈 녹듯이 모두 없어졌다. 혜미는 수혁이 가까이 다가와 이야기를 하자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뭐 대충 일이 잘 풀린 것 같네,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기분이 한결 풀어져 보이는 혜미를 본 수혁은 그녀를 뒤로 하고 스튜디오 밖을 나섰다.

* * *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8월의 어느 오후, 수혁은 차를 몰고 성북동으로 향했다.

‘정 회장님 사시는 곳이랑 멀지 않은데? 생각보다 금방 찾겠어.’

수혁은 석호의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명길의 집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강수혁 대표님 맞으십니까?”

한눈에 보아도 으리으리한 저택 앞에 도착하자 대문이 자동으로 열리더니 비서로 보이는 남자가 마중 나왔다.

“네 맞습니다.”

수혁은 창문을 내리고 대답했다.

“차는 저쪽에 주차하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수혁은 비서의 손짓에 따라 주차를 마쳤다.

‘정 회장님 집도 놀라웠지만 확실히 재벌 회장의 집이라 으리으리하네.’

다섯 대 이상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넓은 정원을 갖고 있는 명길의 저택은 한 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았다.

“들어오시죠. 회장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서는 수혁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집무실로 갈 겁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남자는 수혁을 3층에 있는 집무실로 데리고 갔다.

‘뭐야 바로 문이잖아?’

계단을 타고 3층으로 향하던 수혁은 커다란 문을 발견했다.

“회장님, 강수혁 대표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남자는 문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말하였다. 그러자 얼마 후 문이 자동으로 열리면서 거대한 사무실이 수혁의 눈에 들어왔다.

‘이래서 집무실이라고 한 거구나.’

벽을 헐어 한 층 전체를 사무실로 활용한 3층 공간은 명길이 일에 대해 얼마나 열정적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명길은 수혁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회장님 그럼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비서는 문을 닫고 집무실에서 나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WG전자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는 황정명입니다.”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수혁에게 악수를 건넸다.

‘저 사람 덕분에 WG가 일송과 경쟁을 할 수 있었지.’

수혁은 전생에서 매스컴에 종종 나온 정명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제일가는 명문대학에서 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인재였다.

“부회장님께서는 우리 회사가 진행하는 전자 쪽 사업은 모두 꿰뚫고 있습니다. 아마 강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명길은 수혁과 정명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존함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교수를 하시고 계셨는데 회장님이 직접 스카우트를 했다죠?”

“허허, 내막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맞습니다. 황 부회장은 제가 일송에 맞서기 위해서 특별히 영입한 사람입니다.”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뵌 적은 없지만 저도 황정명 부회장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하하, 저도 강 대표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정말 좋군요.”

정명은 자신을 칭찬하는 소리를 듣자 기분이 좋은지 호쾌하게 웃었다. 그들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자,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명길은 벽에 설치된 거대한 모니터 앞으로 수혁과 정명을 인도했다. 모니터 앞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었고 수혁과 사람들은 자리에 착석했다.

“회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 보성이는 오늘 안 오는 겁니까?”

수혁은 원래 같이 오기로 한 보성이 보이지 않자 궁금하여 물었다.

“보성이는 제가 연락하면 오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제 손자보다는 대표님과의 대화가 훨씬 중요하니까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시작하시죠.”

수혁은 프리트 해 온 사업 계획서를 서류가방에서 꺼냈다.

“음, 제안하실 제품의 이름이 스마트 폰인 가보죠?”

정명은 프린트 맨 앞장에 적힌 단어를 읽었다.

“네, 향후 20년 이상 WG의 미래를 책임져 줄 중요한 상품입니다.”

“그럼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첫 페이지를 펴시면 사업에 대한 개요가 나와 있습니다. 먼저 제품 소개와 함께 왜 이 제품이 상품성이 있는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수혁의 말을 들은 명길과 정명은 페이지를 넘겼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세계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현대인들은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고민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표를 보시면 현대인들이 접하는 정보의 양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과거와 비교가 안 되는 정보들이 사람들에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요.”

명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굳이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나온 제품들이 다름 아닌 핸드폰과 노트북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도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핸드폰 같은 경우는 소형화, 노트북에 대해서는 경량화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지요.”

정명은 수혁의 말에 첨언을 했다.

“WG는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가는 회사가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할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즉, WG에서 나온 제품으로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나 업무 방식에 혁신을 가져올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죠.”

“이 스마트 폰이라는 걸로 트렌드를 주도하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군요.”

명길은 진지한 자세로 수혁의 말을 경청했다.

“네, 다음 장을 넘겨보시면 스마트 폰이 갖고 있는 기능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습니다.”

정명은 스마트 폰이 뭔지 궁금하여 급하게 페이지를 넘겼다.

“흠,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들이지만 기술적으로 구현하기에는 여러 장벽들이 있겠군요.”

빠르게 내용을 살펴본 정명은 스마트 폰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현재 핸드폰으로도 게임이나, 뱅킹 서비스는 이용 가능하나 인터넷, 메신저, 헬스 케어, 화상 회의 같은 것들은 논의만 되었지 어떻게 실현시킬 것이냐에 대해서는 누구도 답을 내지 못한 문제입니다.”

명길은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수혁을 바라봤다.

“제 설명을 들으시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드실 테니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스마트폰이 단순히 회사의 업무나 일감들을 처리하는 정도를 넘어 일상생활에 큰 유용함을 대중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수혁은 자신 있게 말했다.

“이러한 기능들을 제품으로 구현하려면 하드웨어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한데 무슨 묘안이라도 있으십니까?”

“핸드폰에는 키보드와 마우스가 없는데 어떻게 할 거냐, 그런 질문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혁신적인 기획안도 제품으로 구현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제 예상을 벗어난 질문은 아니군요.”

정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날카롭게 질문했으나 수혁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에 배치된 음료를 가볍게 마셨다.

“7P를 보시면 제가 그린 스마트 폰 외형에 대한 도안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궁금증이 모두 해소될 겁니다.”

수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명길과 정명은 빠르게 종이를 넘겼다.

“터치기능으로 자판과 마우스 기능을 대체한다라 흥미롭군요.”

문서를 읽던 명길은 입을 열었다.

“이미, 94년도에 미국의 한 회사에서는 터치기능이 있는 노트북을 개발했습니다. 따라서 핸드폰에 터치기능을 넣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을 겁니다.”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특정 기술에 대해서 일정 수준의 로열티를 지불하면 사용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려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뭐 때문에 그러시죠?”

정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수혁은 물어보았다.

“도안의 규격을 보면 현재 유통되고 있는 핸드폰들에 비해서 거의 2배 이상 큰 것 같습니다.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소비자들은 가벼우면서도 작은 즉 휴대하기 좋은 핸드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요?”

“네? 그게, 아실지 모르겠지만 소비자들의 취향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서요.”

수혁의 태연한 반응에 정명은 당황하며 말했다.

“소비자들의 취향이라는 것은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면 언제든지 변하기 마련입니다. 1950년대에 처음 컴퓨터가 발명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조작하기 어렵다며 회의감을 표시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건, 좀 다르지 않습니까? 초반에 발명된 컴퓨터는 대중들이 쓰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후에 편의성을 대폭 향상시킨 개량된 컴퓨터가 나온 거 아닙니까?”

정명은 자신을 가르치는듯한 수혁의 말투에 감정이 격앙되었다.

- 14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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