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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42화 (142/316)

142화

“아닙니다. 본치 않게 조금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수혁은 빠르게 감정을 다스렸다.

“저였어도 충분히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외람되지만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저도 스마트 폰이 엄청난 상품인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 회사를 그렇게 크게 키워줄 수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명길은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말 속에는 의심을 하는 기색이 묻어나왔다.

“WG가 스마트 폰으로 트랜드를 주도하면 기업 브랜드 순위가 크게 상승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 일송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던 여러 전자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런 차원에서 말씀하신 거였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수혁이 기업의 인지도가 상품 판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언급하자 명길은 금세 알아들었다.

“정 부회장, 더 이상 이견은 없지요?”

“네, 그렇습니다.”

정명은 아까와 달리 수긍하는 자세를 보엿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묻겠습니다. 지분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따로 원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명길은 조심스럽게 좀 전의 제안을 다시 꺼냈다.

“지분을 받는 것도 좋지만 저는 상호간에 상생할 수 있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수혁은 미리 생각해두었던 조건을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엇이든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명길은 수혁이 내밀 조건이 무엇인지 잔뜩 궁금해졌다.

“스마트 폰을 만들게 되시면 그 안에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통칭되는 프로그램들을 다운받을 수 있게 될 겁니다.”

“애플리케이션이요?”

정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WG가 스마트 폰 제작에 들어가게 되면 폰 안에 장착되는 기본 프로그램에 대해서 생각을 하시게 될 겁니다. 예를 들면 사용자들의 폰 사용을 원활하게 해주는 소프트웨어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런 프로그램들 하나하나를 모두 애플리케이션이라고 말하는 겁니까?”

“엄밀히 말하면 소프트웨어 그 자체라기보다는 여러 데이터들이 모여 있는 패키지라고 볼 수 있지요. 쉽게 말하면 응용프로그램이라고 봐도 됩니다.”

수혁은 정명의 질문에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답변해주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한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우리 SH커뮤니케이션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을 우리 회사에서 독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스마트 폰 사용에 근간이 되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고자 합니다.”

수혁은 앱 스토어를 SH커뮤니케이션에서 관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들어드릴 수는 있지만, 정확히 이해가 되진 않군요.”

스마트 폰을 써본 적이 없는 명길은 앱 스토어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나중에 보시면 알겠지만 스마트 폰이 나오면 회사들부터 일반인들까지 너도 나도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게 될 겁니다. 제가 말씀드린 플랫폼이라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올릴 수 있는 장소를 말하는 겁니다.”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그 플랫폼을 통해서만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단, WG에서 만드는 기본적인 프로그램들은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스마트 폰에 넣어둘 수 있으니 마냥 손해는 아닐 겁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운영체제가 필요한데 그 작업을 우리가 맡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수혁은 플랫폼에 관한 것 외에도 부가적인 설명을 곁들였다.

“저는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우리 회사에서 스마트 폰에 들어가는 모든 과정들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해외 업체나 국내의 경쟁 회사에게 맡기기 보다는 강 대표님에게 부탁드리는 것이 우리 회사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대표님, 스마트 폰 생산 준비가 어느 정도 완료되면 따로 알려드릴 테니 그때까지 프로그램 개발을 완료해주시길 바랍니다.”

명길은 흔쾌하게 수혁이 내민 조건을 수락했다.

“저 실례지만 SH커뮤니케이션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나요? 대표님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운영체제를 만드는 작업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거든요.”

“그만하게. 그냥 대표님을 한 번 믿어보자고. 그만 일어나지.”

아직 궁금한 게 남았던 정명은 수혁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명길은 이를 제지했다.

“그리고 또 다른 부탁이 있습니다.”

“그래요? 말씀해보세요.”

명길은 용건을 마쳤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스마트 폰이 나오면 현재 인터넷을 사용하는 주 연령층인 30대 이하 사람들뿐만 아니라 비교적 나이가 있는 장년층이나 노년층에서도 인터넷을 수월하게 사용하게 될 겁니다.”

“그렇습니까?”

명길은 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게 되면 각종 포털 회사에서 앞다퉈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겁니다.”

“SH에서는 미리 개발에 들어갈 수 있어서 유리하겠군요.”

“맞습니다. SH는 타 회사보다 좀 더 유리한 고지에서 앱을 제작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히 빨리 출시하는 것을 넘어 우리 회사의 애플리케이션들은 따로 다운받지 않아도 스마트 폰에 깔려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수혁은 스마트 폰을 처음 사용하는 초기 고객들을 확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님이 우리에게 제공해준 걸 생각하면 크게 어려운 부탁은 아니군요. 사용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정도로 애플리케이션이 많지만 않다면 괜찮을 듯 보입니다.”

정명은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이 짧은 명길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마 메신저와 포털 애플리케이션 외에 몇 개 더 추가되는 수준일 테니까요.”

“그 정도 조건이면 우리도 수용할 수 있습니다.”

“허허, 이야기가 잘 된 모양이군요. 부회장이 괜찮다고 하면 저도 찬성입니다.”

명길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수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잠시 만요. 말로만 이럴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죠.”

명길은 자필로 내용을 기입할 수 있는 간이 계약서를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계약서를 보시면 빈 공간이 보일 겁니다. 거기에 대표님이 원하는 조건을 쓰세요. 기왕 오신 거 확실히 해두는 편이 좋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계약 내용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수혁은 탁자 위에 있는 만년필을 이용하여 앞서 말한 조건들을 써내려갔다.

“이제부터 WG와 SH는 서로 도와가며 긴밀하게 협조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계약서 작성을 끝낸 수혁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SH에 누가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명길은 수혁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하하, 지금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내려가서 같이 저녁이나 드시죠. 아마 보성이도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겁니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수혁은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했다.

“부회장님도 온 김에 식사하시고 가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명길은 수혁과 정명을 데리고 1층으로 내려갔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오래 한 거야?”

보성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계단을 내려오는 수혁을 발견하곤 말을 걸었다.

“회장님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어? 벌써 음식들이 준비되었나 보네?”

“응, 할아버지가 저녁 시간 맞춰서 조리해놓으라고 지시해 두셨거든.”

거실에는 부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맛있는 음식냄새가 퍼져 있었다.

“와 엄청 푸짐하네요. 우리 가족들이 와도 이렇게까지 상을 차린 거는 못 봤는데.”

기다란 식탁 위에 놓인 각종 음식들을 본 보성은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거야, 우리는 자주 보니까 그런 거고 대표님은 이 자리가 처음이잖아? 대표님, 음식 식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명길은 사람들이 모두 착석한 것을 확인한 뒤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이 입에 맞으십니까?”

“네, 정말 맛있네요.”

명길은 이날 수혁을 위해 유명 호텔에서 일하는 요리사를 불러 음식을 준비했다.

“먹다가 부족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셰프가 바로 만들어 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장시간의 회의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식사를 마친 그는 보성과 밤이 다되도록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후, 피곤하다. 오늘은 집에 가서 좀 쉬자.’

수혁은 차를 몰고 서초동으로 향했다.

<히든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현 회장이 사용자에게 느끼는 호감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잘됐네, 안 그래도 대화가 이어질수록 회장님이 나를 신뢰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틀리지 않았어.’

퀘스트 창의 내용을 확인한 수혁은 어플을 종료하고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뜨거웠던 8월이 끝나고 9월이 되었다. 여름의 열기는 한풀 꺾였고 한국대학 안에는 다시 활기가 감돌고 있었다.

‘조기 졸업을 하려면 학점을 많이 들어야 하는데 회사 일은 점점 늘어가니 참......’

수혁은 이전까지 경영학과 교양 위주로 수업을 들었다면 2학년 2학기에는 타 전공과목으로 시간표를 짰다. 그는 WG와 업무협약을 맺은 후 밤잠을 줄이며 일에만 매진했다. 그러다 보니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할 짬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번 학기는 학점을 따는데 어렵지 않겠어.’

수혁은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2학기 수업들을 모두 어학 과목으로 채웠다.

그에게는 언어이해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어, 불어, 일본어 등 다양한 외국어 과목들을 주저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타 과 학생들에게 공지합니다. 기초 독일어와 중급 독일어 과목을 수강하지 않은 분들은 수업을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목표는 학생들이 실생활에서 자유롭게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초적인 부분은 모두 생략한다는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출석부 명단을 확인한 독어독문과 교수는 타 과 학생들에게 경고를 했지만 수혁은 수강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 보성아 광장 옆 카페에서 보자. 그래.”

독일어 수업을 마친 수혁은 보성에게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끊은 그는 학교 광장에 위치한 카페로 향했다.

“수혁아, 여기야.”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보성은 수혁을 발견했다.

“미안해. 진즉 봤어야 했는데.”

“아니야. 할아버지도 너랑 만난 이후로 집에는 거의 안 들어오시고 일만 하시는 것 같더라고.”

보성은 개강 후 만남을 갖기 위해 여러 번 연락을 했었지만 그때마다 수혁은 일을 이유로 약속을 미루어 왔었다.

“이야기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WG하고 우리 회사가 같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거든. 이르면 내년, 늦으면 내 후년에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인데 생각보다 시간이 빠듯하더라고.”

“할아버지는 내년으로 보고 계신 거 같아. 요즘 WG전자 개발팀 사람들 보면 매일 야근하고 고생이 많더라.”

보성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수혁아, 혹시 저번에 내가 이야기했던 거 생각해봤어?”

“응? 우리가 무슨 이야기 했었지?”

수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예전에 우리 모임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잖아.”

“아, 맞다. 미안해 보성아 내가 최근에 바빠서 미처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

“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대연 총회가 있는데 너 오냐고 물어보는 선배들이 있어서 보자고 한 거야.”

보성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모임에는 어떤 분들이 오시는 거야?”

“졸업하신 선배님들이랑 재학생 회원들이 오는데 보통 총회는 한국대학교 동문회관에 있는 웨딩홀에서 해.”

“웨딩홀 건물이면 엄청 큰데 거길 전체 다 빌린다고?”

학교 안에는 한국대 출신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웨딩 홀이 있었다.

건물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느 웨딩홀에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규모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 14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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