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처음 봤을 땐 마냥 착한기만 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속이 깊단 말이야?’
수혁은 공을 들여 만든 프로그램이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태도를 보이려고 하는 용민을 안쓰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고맙긴 뭘....... 나야 네 덕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벌고 있잖아. 고마운 건 나지.”
용민은 수혁의 말에 괜히 쑥스러워졌다.
“네가 만든 지오챗이 가까운 미래에는 전 국민들이 사용하는 최고의 메신저가 될 거야.”
“그래 나중엔 어떻게든 되겠지. 것보다 무슨 일이야?”
용민은 그의 말을 가볍게 넘기고 용건을 물었다.
“내가 널 따로 부른 이유는 은밀하게 진행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야.”
“엄청 중요한 일인가 보네?”
용민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수혁의 말을 경청했다.
“최근에 내가 비밀리에 WG와 중요한 계약을 맺고 왔거든. 회사 사람들 중에는 너한테 처음 말하는 거야.”
“중요한 계약?”
“그래, 어쩌면 우리 회사를 지금보다 수십 배 이상 더 성장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그런 계약을 맺고 왔어.”
수혁은 이야기를 하다가 명길에게 줬던 사업 계획서를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한 번 읽어봐, 너라면 이해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난 그동안 다른 일 좀 하고 있을게.”
“알겠어.”
서류를 받아든 용민은 소파에 앉아 문서들을 천천히 정독했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혁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된 거야? 정말 놀랍다. 만약 계획서 내용과 같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기만 하면 업무, 여가, 취미 등 삶의 여러 분야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발생하게 될 거야.”
“그렇겠지. 집이나 사무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핸드폰으로 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방식에 큰 변화가 생길 거니까. 제대로 잘 읽었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수혁아, 이게 정말 가능한 이야기야? 아이디어는 좋은데 도대체 이 제품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거야? 감이 전혀 안 오는데? 너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는 제조업을 전문으로 하지 않잖아.”
“제품 생산은 WG에 맡기기로 했어. 네 말처럼 우리한테는 핸드폰을 제조할만한 자본이나 기술이 없으니까. 대신 우리는 스마트 폰 안에 들어갈 소프트웨어와 플랫폼만 만들면 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그런데 아이디어 값은 제대로 받아온 거지? 만약 WG에서 제품 생산에 성공한다면 그 회사는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길이 보장되는 거잖아.”
용민은 협상에서 행여 손해를 보지 않았을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야, 프로그래밍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안목이 제법 있잖아? 맞아 WG에서 스마트 폰을 직접 생산함하게 되면 그들이 얻는 이익은 상상 그 이상일거야.”
수혁은 전생에서 일송이 스마트 폰 시장을 석권하여 시장 가치가 수백 조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거듭났던 사실을 떠올렸다.
“하, 우리 회사가 역량만 갖췄더라면 우리가 생산을 했을 텐데 말이야.”
“상관없어. 나에게는 WG를 능가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무궁무진하게 있으니까. 그리고 아이디어 제공에 대한 대가로 받아온 것들은 결코 가벼운 것들은 아니야.”
아쉬워하는 용민과 달리 수혁은 WG와 맺은 계약에 만족하고 있었다.
“내가 설명해주는 것보다는 네가 직접 확인하는 게 낫겠다.”
수혁은 수기로 작성된 계약서를 용민에게 건네주었다. 사업 계획서에 비해 내용이 간략했던 탓에 용민은 짧은 시간에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네가 말했던 플랫폼이 애플리케이션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말하는 거였구나.”
“응, 앞으로 회사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손쉽게 어플을 만들 수 있게 될 거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플랫폼을 운영하게 되면 일정 수준의 수수료만으로도 큰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거지.”
“어플이 애플리케이션의 줄임말 같은 건가 보네? 그래 네 말이 맞겠지. 그러면 내가 이 계약서에 적힌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되는 거지?”
“응, 그게 내가 너에게 부탁하려고 했던 일이야. WG에서 2년 내에 제품을 생산한다고 공언했으니까 우리도 발맞춰서 작업에 돌입해야 돼.”
수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좀 이따가 믿을 만한 사람들을 뽑아서 바로 작업에 착수할게.”
“보안이 철저하게 요구되는 사안이니까 비밀을 엄수할 수 있는 사람들하고 일했으면 좋겠다. 넌 잘 모르겠지만 이쪽 업계가 소문이 잘 도는 편이거든.”
“걱정하지 마. 그런데 왜 이렇게 조심하는지 물어봐도 돼? 네가 이렇게 까지 신경 쓰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용민은 항상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달리 극도로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수혁이 신기하였다.
“우리가 여러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푸른닷컴에게 밀린다고 생각해?”
“그거야 그놈들이 얍삽하게 우리 아이디어를 베끼기 때문이잖아. 치사한 자식들, 이름하고 내용만 살짝 바꿔서 우리 아이템을 도용하는 걸 보면 회장이라는 사람이 어떤 놈인지 볼 필요도 없을 정도야.”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용민은 생각만 해도 분한지 얼굴이 벌게졌다.
“얄밉긴 하지만 지적을 하기에는 애매해. 어찌됐든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명칭과 내용을 교묘하게 바꿨으니 말이야. 항간에 푸른닷컴의 이 회장이 여우라는 말이 있던데 과연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 사람을 칭찬하는 건지 욕하는 건지 내가 다 헷갈린다.”
용민은 분이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들이 우리의 아이디어를 도용함에도 불구하고 업계 선두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고객들을 유인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야.”
“그야, 그렇지. 푸른닷컴을 이용하는 고객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에게 편하기만 하면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충성고객들의 취향이 여간해선 변하지 않는다는 거야. 한 번 푸른닷컴에 익숙해진 고객들은 아무리 좋은 포털이 있어도 웬만해서는 갈아타지 않는 다는 거지.”
“뭐든 첫 경험이 오래가는 거니까.”
“그래, 그런데 스마트 폰이 출시되고 대중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 포털 시장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될 거야.”
수혁은 진중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였다.
“푸른닷컴과 넥스트가 양분하고 있는 포털 시장을 우리가 뒤집을 수 있다는 말이야?”
“응, 스마트 폰이 대중화되면 인터넷을 잘 이용하지 않는 연령대의 사람들도 매일 폰을 붙잡고 살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포털 시장이 한 번 더 확대되는 시점이 올 건데 우리가 그 기회를 잘 잡아야 돼.”
“네가 어플 개발을 비밀리에 진행하라는 이유를 알겠다.”
그는 이제야 수혁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
“스마트 폰이 출시되어도 다른 경쟁업체에서 포털과 관련된 어플을 개발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야. 우리는 그 사이 시간을 이용해서 고객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들여야 돼. 만약 내 계획이 성공한다면 현재 푸른닷컴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로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을 거야.”
“넌 항상 남들보다 두수 세수 앞서가는 구나.”
수혁이 공들여 세운 계획을 들은 용민은 그의 사업적 혜안에 혀를 내둘렀다.
“두고 봐. 토킹클럽을 비롯한 다른 온라인 메신저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 하고 모두 도태될 거야.”
“그러면 우리가 만든 지오 챗이 그때 치고 나가면 되겠네?”
“맞아. 온라인 메신저 사용 인구도 지금보다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굳이 문자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게 되겠지?”
“흐흐, 그렇게 되면 통신회사에서 우릴 많이 원망하겠는데?”
용민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입에서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때만 하더라도 문자를 많이 이용하면 통신사에 일정 수준의 요금을 지불해야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문자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본인들만 손해야. 초반에야 우리를 조금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겠지.”
“그런데 수혁아. 네가 이 부분까지 감안했을지는 모르겠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던 용민은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그게 뭔데?”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나? 용민이가 아무 생각 없이 저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수혁은 갑작스러운 용민의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너 MC소프트라고 알지?”
“당연하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글로벌 기업이잖아.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수혁은 나름 긴장을 하고 있다가 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너 그 회사가 인터넷 웹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건 알지?”
“음, 그게 문제가 되나?”
“무선인터넷으로 접속하는 것이라고 해도 어찌 됐든 브라우저 프로그램이 있어야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잖아.”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MC소프트의 브라우저만 사용했었기 때문에 포털 어플을 만들려면 반드시 M사의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런 거라면 포털 앱에 브라우저 기능을 추가하면 해결될 문제야. 그리고 어차피 전반적인 운영체제를 우리가 만들기 때문에 브라우저가지고 일희일비 할 필요 없어.”
수혁은 가까운 미래에 여러 회사에서 브라우저를 개발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소프트웨어와 앱스토어 그리고 각종 어플들을 주어진 시간 내에 만들지 못 할 수도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막상 만들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날 믿고 한 번 시도해봐.”
수혁은 스마트 폰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어플들이 개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즉, 개발에 소모되는 시간이 용민의 걱정처럼 길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스마트 폰 안에는 여러 브라우저들이 깔리게 될 거야. 물론 다른 앱들이 실행될 때 특정 브라우저가 작동이 될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한 회사가 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거야.”
“나야 잘 모르지만 네 설명을 들으니까 조금 알 거 같기도 하고......”
용민은 스마트 폰을 사용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적절한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앱스토어나 다른 어플들도 만들 수 있는 거야. 일단은 여러 가지를 신경 쓸 필요 없이 스마트 폰에 들어갈 환경을 만들어야 돼.”
“운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말이지? 후, 솔직히 자신은 없는데 그냥 되는 데로 한 번 해봐야지. 하다보면 요령도 생기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용민은 기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제작이 어마어마하게 복잡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맞아. 해보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 때 또 논의하면 돼. 그리고 함께 일할 직원들은 엄선해서 뽑았으면 좋겠어.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라 타 회사 관계자들의 귀에 들어가면 안 돼. 이건 우리뿐만 아니라 WG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일거야.”
“응, 그 부분은 염려하지 마. 내 친구들이랑 같이 일하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야.”
“그래, 믿고 맡길게. 지원은 아끼지 않을 거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편하게 이야기하고. 아, 그리고 몇 가지 할 이야기가 더 있는데…….”
대화가 어느 정도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앞으로의 회사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생각하여 당부의 말을 아낌없이 해주었고 용민은 종이를 꺼내 그의 말을 메모하며 열심히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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