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45화 (145/316)

145화

대화가 있은 후 며칠이 지났다.

수혁의 지시를 받은 용민은 회사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비밀리에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스마트 폰의 운영체제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회사 내에서 특별히 엄선된 인재들이 합심하여 일에 몰두했으나 성과는 나오고 있지 않았다.

‘하, 이게 생각보다 어렵네.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해서는 나름 자신이 있는 편이지만 수혁이가 만든 계획서대로 운영체제를 만드는 건 내 능력 밖인 것 같아.’

수혁이 준 기획안을 토대로 프로그램을 만들려던 용민은 초반부터 난항을 겪고 있었다.

“팀장님, 이대로라면 예정된 기간 안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 번 고민해보겠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친구가 있기는 한데......’

난관에 봉착한 용민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수혁과 대화를 나눈 후 일주일의 기간 동안 나름대로 일을 해봤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용민을 비롯한 직원들은 많은 프로그램들을 개발한 경험이 있었지만 운영체제를 만드는 것은 들어가는 컴퓨터 언어의 숫자나 복잡성이 이전 작업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작업은 답보 상태에 빠져있었다.

‘하, 최필재 그 사람이라면 분명히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워낙 꽉 막힌 성격이라 대화가 통할지 모르겠네.’

책상에 앉은 용민은 한국대학교에서 알게 된 최필재를 떠올렸다. 그는 용민과 함께 프로그래밍을 하던 친구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저, 잠시 다녀올 때가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남아서 수고들 해주세요.”

“네, 팀장님.”

용민은 필재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 밖을 나섰다.

* * *

10월의 어느 오후, 수혁은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 가서 간단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학이라 준비할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외국어로 교양공부를 하는 꼴이네.’

언어능력을 갖추면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을 줄 알았던 수혁은 교양수준의 지식이 서술된 서적에서 시험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책을 읽어나갔다.

중간고사까지는 10여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지만,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한 상황이었다.

“수혁아, 공부하고 있어?”

수혁은 도서관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중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어? 용민아. 여긴 어쩐 일이야?”

평소, 학교보다는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이 긴 용민이 도서관 근처에 나타나자 수혁은 의아해하였다.

“잠깐 사람 좀 만나느라고. 사업이랑 공부를 병행하느라 고생이 많다.”

“고생은 무슨, 공부는 그냥 짬날 때 틈틈이 하는 거지 뭐. 그런데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

수혁은 용민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걱정되었다.

“네가 준 스마트 폰 기획안 있잖아? 그걸 토대로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머리로는 금방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전에 만든 게임이나 여타 프로그램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복잡한 작업이더라.”

“그래? 음,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내가 생각해도 애플리케이션과 터치 방식을 사용해서 컴퓨터의 프로그램과 유사한 운영체제를 구현하는 것이 쉽진 않겠더라고. 자금이나 인력이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되는 데까지 지원해줄게.”

수혁은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용민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후, 사실 우리 회사의 인력 풀로는 스마트 폰에 쓰이는 운영체제를 개발하기에는 역부족이야. 그래서 최필재라고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유명한 사람을 영입해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는데 방금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이야.”

“최필재?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설마 그 사람인가? 레녹스의 기술개발 이사로 신문에 많이 나왔던 거 같은데? 국내 언론이 취재를 하려고 수차례 시도를 했지만,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한 탓에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

레녹스는 미국의 거대 기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였다. 국내 포털과 달리 검색엔진에 중점을 둔 심플한 스타일의 사이트로 글로벌 기업이 된 레눅스는 포털 회사로서만 유명했던 것이 아니라 스마트 폰이나 각종 기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내가 회귀하기 전에 썼던 일송의 스마트 폰도 레눅스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했지. 그리고 내가 알기로 최필재씨는 스마트 폰에 들어간 각종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도했었어.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직 한국에 있는 거 같네?’

필재는 프로그래머로서 천재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외골수적이고 괴팍한 성격 때문에 수직적인 회사문화를 갖고 있는 국내 회사에서는 적응을 못 하고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수혁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런데 네가 들어봤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나도 친구 소개로 몇 번 만나봤지만 만나는 사람도 적고 자기가 노출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거든. 혹시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거 아니야?”

“아, 그게....... 그래 내가 착각했나 보다. 그래서 네 말은 우리 사업에 최필재씨가 꼭 필요하다는 말이지?”

수혁은 회귀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마음에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돌렸다.

“쯧, 최근에 연락이 돼서 힘들게 만났는데 도통 말이 통하지 않네.”

용민은 아쉬운지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직접 찾아뵙고 싶은데, 다리를 놔줄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우리 팀원 중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어서 그건 어렵지 않아. 근데 이상하네? 넌 최필재씨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을 텐데 뭘 믿고 만나보려는 거야?”

“네가 추천하는 사람인데 따로 검증할 필요가 있겠어? 약속 잡히면 나한테 알려줘.”

“훗, 알겠어. 내가 빠른 시일 내에 만남을 주선해볼게.”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용민은 자신을 알아주는 수혁의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만나서 5분만 이야기해보면 알게 될 건데 최필재씨는 다른 사람들이랑은 조금 달라. 대화하다가 괜히 감정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음, 뭔가 자기주장이 강한 분이신가 보네? 괜찮아 용민아. 나도 나름 사업하면서 사람 보는 눈이 없지는 않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의 말을 아예 듣지 않는 사람이야. 완전 고집불통이라고.”

용민은 필재와 대화했을 때를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어떻게든 우리 회사로 데려올 거니까 너는 약속 잡으면 시간하고 장소만 알려줘. 난 오히려 만남이 기대되는 걸?”

“그래? 하긴, 너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용민은 자신만만해 보이는 수혁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까지 어떤 어려운 난관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많이 봤었기 때문에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그들은 이후에도 사업에 대한 논의를 짧게 하다가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헤어졌다.

<히든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최필재를 회사에 영입하고 소프트웨어 개발 중 발생한 어려움을 극복하십시오.>

‘현 회장님 때랑 다르게 관계를 맺는 것을 넘어서 뭔가를 해결하라고 그러네?’

수혁은 지금까지 수없이 히든 퀘스트를 받았던 터라 어플의 안내가 이전과는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이번 퀘스트의 경우에는 사업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소정의 보상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어플은 퀘스트 창을 끄고 어느 새 도움말 창을 활성화시켜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일단 알겠어, 뭐가 됐든 피할 생각은 없어.’

수혁은 가벼운 마음으로 퀘스트를 수락한 뒤 공부를 하기 위해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 * *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0월의 어느 저녁, 수혁은 서초동 집에서 웹툰 그리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는 원활한 경영을 위해 해결해야하는 사안들이 적지 않음을 깨닫고 웹툰 연재를 종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화가 많이 나겠지만 지오웹툰이 잘 나가니 더이상 도와줄 필요는 없을 거야.’

수혁은 애시당초 회사를 도와주기 위해 웹툰을 그렸지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지오웹툰은 신욱을 필두로 하여 유망한 작가들을 많이 섭외했기 때문에 웹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수혁아 나 왔다.”

“네, 오셨어요.”

컴퓨터를 끄고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하던 수혁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 몸을 일으키고 방을 나섰다.

“별일 없으시죠?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수혁은 집에 찾아온 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바쁘니까 얼굴 보기가 쉽지가 않네? 밥은 먹었어?”

식당 운영이 잘 되어서였을까 혜정의 안색은 밝았고 온 몸에는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도착하시기 전에 먹을 거를 요리해놨어요. 오늘은 그냥 저희 집에서 푹 쉬었다가 가세요.”

수혁은 혜정이 오는 시간에 맞추어 음식들을 미리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어디 한 번 맛 좀 볼까?”

혜정은 된장국을 한술 뜬 뒤 입안에 집어넣었다.

“안 본 사이에 요리실력이 많이 늘었네?”

“간단한 재료에 간만 잘 맞춰도 먹을 만 하더라고요.”

수혁은 칭찬이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인 채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너한테 미처 이야기 못 했는데 다음 달부터 현월당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 그러면 아버지랑 엄마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묵묵히 밥을 먹던 수혁은 깜짝 놀랐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식당들은 점장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양평으로 이사를 갈 거 같아. 이날 평생 고생만 해서 그런가 이제는 좀 쉬고 싶더라고.”

혜정은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잘 생각하셨어요. 제가 다행히 요즘 사업이 잘되고 있거든요. 계좌번호만 알려주시면 제가 돈을 부쳐드릴게요.”

수혁은 부모님이 전원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생활비나 주거비용을 보태주기로 마음먹었다.

“괜찮아 수혁아. 현월당을 하면서 돈은 충분히 벌었고 서울 집도 전세를 내주기로 해서 이사하기에는 문제가 없을 거야.”

“그래도 제가 도와 드리는 게 조금 더 낫지 않겠어요?”

“너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도 그동안 돈을 제법 모았어. 그리고 직접 운영만 않을 뿐이지 현월당에서 수익은 계속 날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수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었지만 혜정은 그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현월당은 사업 초기부터 매스컴을 타 장사가 잘되고 있었고 최근에는 관광을 온 외국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어 있었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수혁아. 저번 주에 양평에 있는 집에 다녀왔는데 너무 근사하더라. 일하다가 머리 식히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알겠습니다. 이젠 스트레스 다 털어버리시고 양평 가시면 행복하게 지내세요.”

수혁은 더 이상의 설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 같아서는 너랑 같이 가고 싶은데 네가 워낙 바쁘게 지내서 미리 이야기를 못 했어.”

혜정은 소식을 늦게 전하게 미안한지 아까와 달리 목소리는 작아져 있었다.

“아니에요, 바빠서 잘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배려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수혁은 적절한 말로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 14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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