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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46화 (146/316)

146화

오랜 시간 자주 보지 못했던 수혁과 혜정은 그동안 풀지 못했던 회포를 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달동네 살았을 때 기억나? 그때 우리 참 힘들었잖아.”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던 혜정은 수혁이 냉장고에서 꺼내 온 맥주를 마시다가 옛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거 같아요. 그것보다 이사는 정확히 언제에요? 알려주시면 제가 짬 내서 짐 옮기는 거 도와드릴게요.”

수혁은 혜정이 울적해 보이자 화제를 바꿔 분위기를 전환했다.

“얘는 별걸 다 걱정하네. 기사님들이 알아서 잘 옮겨줄 거니까 넌 신경 쓰지 말고 할 일이나 해.”

“그렇게 말씀 하시면 어쩔 수 없죠 뭐.”

그녀는 자신의 일로 아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수혁아, 아버지가 그러던데 사업이 잘 되고 있다며?”

“뭐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어요.”

수혁은 마음 같아서는 그녀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내 아들이지만 널 보면 참 신기해. 고2 때였을 거야, 네가 변하기 시작했던 때가 말이야. 갑자기 안하던 운동을 하겠다고 산을 막 오르는데 얘가 웬일이지 했다니까?”

“네 그럴 때가 있었죠.”

술기운이 어느 정도 오른 혜정은 수혁이 회귀했을 시점을 지목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업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돈도 충분한 거 같은데, 너도 괜찮으면 이제 편하게 사는 게 어때? 더 이상 아등바등 안 살아도 되잖아.”

그녀가 보기에 수혁은 목표에만 매진하느라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요, 기왕 사업하기로 마음먹은 거 최고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예요. 조금 하다가 힘들면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은 과거로 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구나,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네 목표가 확실하고 과정 중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야.”

혜정은 애시 당초 수혁이 뭘 하든 응원할 사람이었다.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디에 안주하거나 조금 힘들면 포기하는 것은 더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네요. 그리고 제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수혁은 어플을 통해 부여 받은 새로운 삶을 대충 흘려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렸을 때 널 보면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들고 위축돼 보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멋지게 커주다니…… 고맙다 수혁아.”

“아니에요. 현재 우리 회사에서 WG와 신제품을 같이 개발하고 있는데 나중에 제품이 출시되면 아버지랑 엄마한테는 공짜로 드릴게요.”

“WG가 내가 아는 그 회사가 맞니?”

혜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맞아요, 지금 현명길 회장님과 협업하고 있어요. 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을 2년 정도로 보고 있는데 나중에 상품이 출시되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온라인 강의랑 포털 사업보다 더 대단한 걸 할 생각인가 보구나?”

“사업들 간에 비교는 하고 싶지 않지만 굳이 한다면 엄마 말씀이 맞을 거예요. 그래도 앞선 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덕분에 신제품도 개발할 수 있는 거라서 뭐가 더 비중이 높다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네요.”

수혁은 이야기를 하며 주전부리로 먹을 땅콩을 가져왔다.

“내 친구들 말로는 요즘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너희 회사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고 하더라. 다들 훌륭한 아들을 두었다며 어찌나 부러워하던지. 자식 잘 둔 덕분에 내가 호강하고 산다.”

“조금 있으면 더 부러워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지오닷컴도 아마 지인분들이 알고 계실 거고요.”

“그래? 나중에 친구들 만나면 자랑 좀 해야겠네?”

“하하하, 그런데 너무 그러면 싫어하실까봐 걱정되네요.”

혜정의 넉살을 들은 수혁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새벽이 다 되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 *

10월 중순이 되었다. 가을은 점점 무르익어 사람들은 한 낮에도 공기 중에서 느껴지는 찬 기운을 미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으아악, 어째 나는 가면 갈수록 공부랑은 거리가 영 머나 봐. 이래 봬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나름 촉망받는 인재였는데 말이야.”

시험을 마친 수혁은 오랜만에 찬식을 만나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그는 저조한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수혁이 넌 학교 성적 괜찮아? 학교에 있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찬식은 내심 수혁도 자기와 비슷한 처지일 거라고 생각하며 물어보았다.

“그럭저럭 선방은 하고 있는데 정확히 과에서 몇 등정도 하는지는 모르겠네.”

“휴, 난 이번 학기부터 학점관리 하려고 5과목밖에 신청을 안 했는데도 버거워 죽겠다. 넌 혹시 몇 과목 듣고 있어?”

“난 1학년 2학기 때부터 쭉 7과목씩 듣고 있어.”

“뭐야, 그렇게 수강을 많이 했는데 지금까지 선방했다고? 그래도 2학년이 되면서 조금 버겁거나 그러지 않아?”

자신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확신을 갖고 있던 찬식은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운이 좋았지 뭐. 맞아 나도 그래서 예전보다는 신경을 더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

수혁은 이날 본 어학과목 시험들을 모두 잘 보았으나 괜히 이야기하면 긁어 부스럼이 될까봐 말을 아꼈다.

“으, 수혁아 오늘 기분도 안 좋은데 맥주나 한잔 하러 안 갈래? 시험도 끝났는데 기분 좀 풀자.”

“미안하다 찬식아. 내가 가봐야 할 데가 있어서 오늘은 좀 힘들 거 같아. 나중에 기회 되면 그때 같이 술 한잔 하자.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이만 가봐야겠다. 나중에 보자.”

수혁은 학교 안에 받쳐 놓은 차를 발견하자 대충 인사를 하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쳇, 요즘은 밥 한번 같이 먹기도 힘드네.”

찬식은 아쉬운지 한동안 제자리에 서서 입맛을 다시더니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서울 강남 역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15층짜리 건물 앞에는 행사업체 직원들이 나와 커팅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잘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키웠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

수혁은 차를 주차한 뒤 건물에 설치된 SH에듀케이션이라는 글자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가 IT사업에 전념을 하는 동안 SH스터디 부 대표로 있던 정길은 공격적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회사를 엄청나게 발전시켜 놓았다.

‘신축 건물이 아니라 아쉽지만 이만하면 본사로 쓰기에 손색은 없는 거 같군.’

예전부터 정길은 회사의 명성에 걸 맞는 본사 건물을 매입할 것을 꾸준히 건의했었고 적당한 매물을 발견하자 바로 사들였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하하, 형 잘 지내셨죠?”

수혁은 사업 초기에 같이 동고동락했던 찬명을 보자 무척 반가웠다.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좀 있다가 행사 끝나면 따로 편하게 이야기하자.”

찬명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제 회사 규모도 더 커졌으니 책임감이 커지겠네요?”

“한정길 부 대표님 덕분에 회사가 나날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토익, 공무원, 전문직 시험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여 제법 많은 자회사도 갖춘 상태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SH스터디를 비롯한 자회사들이 SH에듀케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SH스터디를 메인에 두고 자회사를 관리하고 싶었는데 좀 아쉽습니다.”

찬명은 SH스터디의 창립 멤버로서 회사에 대해 강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SH스터디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많은 회사들을 포괄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회사가 더 이상 대입 수험생들만 다루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수혁은 따뜻한 목소리로 그를 위로해줬다.

“맞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SH스터디에서 나오는 수익은 다른 자회사들을 합친 것보다 더 큽니다. 비록 SH스터디가 자회사로 편입되서 들어가는 거지만 그렇다고 근본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요.”

“저는 안심해도 되겠네요. 부 대표님이 이렇게 회사를 신경 써주고 계시니까요.”

수혁은 찬명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네, 드디어 우리도 제대로 된 본사를 갖게 되었네요.”

정길은 건물 1층에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수혁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와 인사를 했다.

“그렇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학원 건물에서 회의를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감개가 무량합니다.”

정길은 건물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뒤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분들 같은데 누구신가요?”

수혁은 정길 뒤에 따라온 한 무리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아, 제가 소개드리겠습니다. 이쪽은 SH랭귀지를 맡고 있는 김현모 사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현모입니다.”

키가 훤칠한 중년의 남성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강수혁입니다. 부 대표님을 도와서 회사를 잘 이끌어주길 바랍니다.”

“안 그래도 부 대표님이 대표님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늦게나마 뵙게 돼서 기쁘군요.”

“좀 더 일찍 만났어야 했는데 바쁘게 지내느라 틈이 없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회사 이름을 SH랭귀지로 한 것은 토익 외에 다른 것들도 해 볼 생각으로 그러신 거지요?”

수혁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운영에 관한 사항을 질문했다.

“제대로 보셨습니다. 현재는 토익 강좌 위주로 회사를 꾸리고 있지만 나중에 자본이 쌓이고 역량을 갖추면 텝스, 토플, 일본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할 생각입니다.”

현모는 침착하게 질문에 답변했다.

“좋은 생각이에요. 회사를 운영할 때 굳이 한계를 미리 지어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SH랭귀지라...... 확장할 여지를 남겨둔 이름 같아서 마음에 드네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감정을 드러냈다.

“대표님, 김 사장님 외에도 소개할 분들이 남아있습니다. 이쪽은…….”

정길은 수혁과 현모의 대화가 마무리 된 것을 확인하자 남은 사람들을 친절하게 소개해주었다.

‘회사가 커지다보니 내가 모르는 임직원들이 많이 생겼구나. 짧게 만나서 판단하기 이르지만 다들 믿을 만한 것 같아. 역시 한 부대표님은 남다르신 분이야.’

수혁은 정길이 심혈을 기울여 영입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생각했다.

“커팅식 준비가 끝났습니다. 모두 자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수혁을 비롯한 사람들은 행사업체 직원의 안내에 따라 위치에 선 다음 사회자의 신호에 맞춰 테이프를 잘랐다.

“대표님,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은 본사를 한 번 살펴보시죠.”

“네 알겠습니다. 일정을 빨리 마무리하고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

“아, 회식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제가 임직원들에게 미처 공지를 못했습니다. 직원을 시켜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정길은 손을 들어 다급하게 직원을 부르려고 했다.

“회식을 하자는 게 아니라 박 부대표님이랑 해서 간단히 맥주 한잔 하자는 말입니다.”

“하하하, 그거라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수혁의 말에 긴장을 했던 정길은 호탕하게 웃었다.

- 14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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