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제가 SH커뮤니케이션에서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핸드폰과 관련된 신제품을 만들려고 하는데 여러분들도 알아야 될 거 같아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 신제품이 사교육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보군요?”
열심히 경청하던 찬명은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았다.
“맞습니다. 다른 분야에 끼치는 영향과 비교해보면 그렇게까지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지각 변동은 예상이 됩니다.”
수혁은 그의 말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신제품이라는 것이 정확히 뭡니까?”“저도 무척 궁금하네요.”
“제가 드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우리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다른 경쟁업체들이 알지 못하게 보안을 철저히 신경 써 주세요.”
수혁이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를 하자 정길과 찬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현명길 회장과 미래의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는 최첨단 핸드폰을 같이 만들기로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제조기술이 없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와 어플을 제공하는 거지만 그들에 비해 결코 비중이 낮은 것은 아닙니다.”
“현명길이라면 WG의 그 현명길 말입니까?”
의외의 이름을 들은 정길은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네, 맞습니다. 제가 스마트 폰이라는 신제품을 기획을 했는데 현 회장님과 같이 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대단하군요. 우리 회사가 이제 WG와 같은 대기업과 일하는 날도 오다니요.”
“두고 보세요. 언젠간 WG와 일송을 넘어 더 크게 비상하는 순간이 분명히 올 테니까요.”
찬명은 WG와 협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했지만 수혁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스마트 폰이 무엇입니까?”
“설명하려면 좀 긴데 다들 잘 들으세요.”
정길이 스마트 폰에 대하여 묻자 수혁은 30분 가량의 시간을 할애하여 제품 컨셉과 기능 그리고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확실히 컴퓨터의 등장과 비견될 만한 획기적인 상품이군요.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스마트 폰이 예상한 거에 비해 훨씬 대단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정길은 수혁의 지시가 궁금했다.
“스마트 폰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세요. 물론 SH에듀케이션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대신 그 일을 도와줄 사람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수혁은 용민의 명함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명함을 보니 대표님이 운영하시는 SH커뮤니케이션의 직원이군요.”
“네, 제가 특별히 신임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프로그래밍을 전담하고 있는데 개발과 관련된 논의는 김용민 팀장과 하면 될 겁니다.”
수혁을 정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표님, 의견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분야와 달리 온라인 강의 서비스 시장은 특별한 변동이 없을 거 같습니다.”
찬명은 묵묵히 대화를 듣다가 의견을 제시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큰 화면으로 인터넷 강의를 듣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아무리 스마트 폰이 휴대하기 편리하고 갖고 다니면서 들을 수 있다고 해도 많은 집중을 요하는 온라인 강의를 핸드폰으로 시청하기 꺼려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많이 상대해 본 찬명은 경험에 근거한 주장을 펼쳤다.
“부 대표님의 말씀은 일견 타당하지만 그래도 일단 스마트 폰으로 강의를 들을 고객들을 외면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소수의 고객이라도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스마트 폰 전용 프로그램을 따로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길은 찬명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다.
“두 분 다 틀렸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히 박찬명 부 대표님 말씀이 맞는 거 같지만 그건 고객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한 부 대표님 말씀처럼 소수의 고객을 위한 것도 아니고요.”
“제가 미처 생각을 못한 부분이 있나 보군요?”
수혁을 신뢰하는 찬명은 그가 의미없이 남의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 대표님이 하는 말씀은 수학이나 과학과 같이 많은 집중을 요하는 과목들에는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탐 과목과 같은 경우에는 어딜 이동할 때 동영상을 틀어놓고 듣기만 하여도 공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 아무래도 사회탐구 과목들의 경우에는 강의 내용이 단순한 지식 전달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걸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정길은 사회탐구 분야에서는 대표강사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해할 부분이 적은 사탐과목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이동할 때 듣는 고객들의 수요 정도로는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찬명은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사람의 행동이라는 것은 타인을 모방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초반에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스마트 폰으로 인강을 듣겠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스마트 폰으로 듣는 인강의 효과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 무슨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지금까지 대답만 해오던 수혁은 찬명에게 반문했다.
“그럼 아무래도 휴대하기 편한 스마트 폰으로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겠지요.”
“그렇습니다. 독서실이나 학원에서 자율학습을 하는 학생들 입장에서 노트북을 들고 나니는 것보다는 폰을 들고 다니는 것이 편리하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먼 미래의 일이라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겠지만, 대표님이 지금까지 보여준 혜안을 봤을 때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수치나 신빙성 있는 자료가 아니라 예시로 설명을 들은 찬명은 어렵게나마 납득을 한 것처럼 보였다.
“뭐, 백날 설명하는 것보다 나중에 확인해보면 제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나겠지요. 이야기는 끝났으니 이제 술이나 마시죠.”
수혁은 술잔을 들고 건배 제스처를 취했다.
“SH에듀케이션 더 나아가 SH그룹을 위하여!”
“위하여!”
정길의 간단한 건배사와 함께 사람들은 잔을 부딪치며 술을 마셨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들은 회사 이야기를 포함한 다양한 주제로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 * *
“응, 알았어, 미안한데 약속시간에 20분 정도 늦을 거 같다고 전해줘.”
“수혁아, 최필재 이 사람 엄청 예민하단 말이야. 어떻게 된 거야?”
“미안하다. 대화할 때 필요한 자료들을 뽑아놨었는데 모르고 깜빡해가지고......”
중간고사가 끝나고 한산했던 학교는 다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수혁은 캠퍼스를 걷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용민과 통화를 하며 급하게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 왜 그걸 잊어버려가지고.’
수혁은 중간고사 기간에 용민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필재와의 약속을 잡는데 성공했다며 시험이 끝난 후 날을 잡는다고 했었는데 이날이 바로 그 약속했던 날이었다.
수업을 다 들은 수혁은 여유롭게 약속장소로 향하던 중 필재에게 보여줄 자료를 사물함에 넣어놓고 가져오지 않은 것을 깨닫고 혼비백산이 되어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헉, 헉 많이 기다리셨죠?”
수혁은 사람을 처음 만날 때는 카페를 선호했지만 필재의 요청에 의해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벤치를 미팅장소로 잡았다.
“누구시죠?”
가을 남방을 입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필재는 수혁을 발견하곤 물었다.
‘뭐야, 생각보다 평범하잖아? 용민이가 하도 특이하다고 해서 괴짜같은 이미지인 줄 알았는데 겉으로 봤을 땐 멀쩡한데?’
정돈된 머리와 뿔테 안경을 낀 필재는 겉으로 봤을 때는 보통 대학생과 크게 차이점을 느낄 수 없었다.
“저기요, 제 말 안 들립니까?”
필재는 수혁이 숨을 헐떡거리며 대답을 하지 않자 부드러웠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날카로워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약속시간에 늦어 뭐라고 사과드려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수혁은 급하게 말을 만들어 변명을 했다.
“늦은 건 상관없어요. 저도 관심 없는 약속들은 1~2시간씩 늦는 건 예사니까요. 그것보다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데 사실입니까?”
필재는 용민에게 수혁이 계획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대강은 들은 상태였다.
“맞습니다. 지금 특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필재씨의 도움이 필요할 거 같아서 뵙자고 그런 겁니다.”
“스마트 폰이라는 것을 기획하고 계시다면서요?”
“설명을 들어서 아시겠지만 개발에 성공만 한다면 사람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엄청난 상품입니다.”
수혁은 필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용민에게 스마트 폰에 대해 언급해도 된다고 말했었다.
“실력도 없는 프로그래머를 데리고 용케 회사를 잘 키우셨던데?”
“음, 용민이는 제가 가장 믿는 엔지니어입니다. 여태까지 우리 회사가 이만큼 클 수 있었던 것은 용민이의 공이 작지 않았습니다. 물론 필재씨 정도는 아니겠지만요.”
‘자존심이 강해보이니까 적당히 비위를 맞추자.’
수혁은 그의 거친 언사에 흥분하기보다는 침착하게 대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표가 가지고 있는 비전에 비해 일하는 직원이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지, 용민이를 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필재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수혁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아했다.
“그건 그렇고 스마트 폰을 만드는데 댁네 회사가 소프트웨어를 담당하기로 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김용민 팀장이 지금 스마트 폰에 들어갈 운영체계를 만들고 있는데 작업에 진전이 없어 답답한 상황입니다.”
“훗, 당연하지. 일이 그렇게 된 건 용민이 때문만은 아니에요.”
“네?”
수혁은 필재가 뭔가 중요한 말을 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스마트 폰을 쉽게 이야기하면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가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게 이해하셔도 무방할 거 같네요.”
“혹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얼만 큼의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지는 아십니까?”
필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수혁을 쳐다봤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 회사의 역량으로는 턱없이 힘들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필재씨를 만나러 온 것 아니겠습니까?”
“멍청한 소리.”
수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필재는 욕설을 내뱉었다.
‘하, 용민이가 왜 이상한 사람이라고 한 지 알 거 같다.’
성인이 된 이후 누구에게도 무시를 당하지 않았던 수혁은 필재가 자신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제가 이 일에 끼어든다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게 가능할 거 같습니까?”
“제가 이쪽 분야는 잘 모르지만 저는 필재씨라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휴, 이래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대화를 나누면 피곤하다니까? 이봐요. 현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를 좀 합시다. MC소프트와 같은 세계 최고의 기업도 컴퓨터 운영체계를 만들려면 수천 명의 직원들이 몇 년을 투자해야 가능할 텐데 당신네 회사가 할 수 있겠습니까?”
필재는 수혁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딱 봐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인데 여기는 그럼 왜 나오셨습니까?”
필재의 계속되는 모욕이 듣기 싫었던 수혁은 자기도 모르게 속내가 튀어나왔다.
‘아차, 실수했다. 사업을 하러 왔는데 이런 미숙한 모습을 보이다니......’
수혁은 행여 필재가 기분이 상해 자리를 뜰까 속으로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쓸 만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나왔지, 내가 왜 나왔겠습니까?”
필재는 일반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흥미를 끌 수 있는지의 여부로 사람을 판단했기 때문에 감정의 동요는 없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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