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55화 (155/316)

155화

“오래 기다리셨죠?”

수혁은 1층 중앙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 있는 부모님께 다가갔다.

“아니야, 우리는 싸움이라도 벌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었어.”

“직원이랑 저랑 싸울 일이 뭐 있어요. 자, 가시죠. 마저 쇼핑하셔야죠.”

안절부절못하는 혜정과 달리 수혁은 담담해 보였다.

“수혁아, 다른 곳들이라고 해서 많이 다르지 않을 거 같은데 그만 나갈까? 여기 있으니까 괜히 마음이 불편하구나.”

선웅은 가족들의 마음이 행여나 다칠까 두려웠다.

“저런 놈 때문에 뭐 하러 스트레스 받으세요? 보니까 바로 옆에 좋은 명품 매장이 있는 거 같던데, 거기로 가시죠.”

“……그래, 그렇게 하자.”

선웅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버지, 우리가 그냥 이렇게 나가면 저 자식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이럴 때일수록 더 당당하게 대처해야 해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주눅들 거 하나도 없어, 자 가자.”

수혁의 말을 들은 혜정은 눈을 부릅뜨고 앞장섰다.

“안녕하세요, 카르지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이곳은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제품들을 취급하는 매장으로 바로 옆에 있던 프랑스 명품 매장과 경쟁하는 관계였다.

“부모님께서 쓸 만한 물건들이 있나 해서 왔는데 뭐가 있을까요?”

“잘 찾아오셨습니다. 여기 보시면 의류, 보석, 시계 등 없는 것이 없습니다. 혹시 원하는 가격대가 있으신가요?”

“흠, 그냥 좋은 물건들로 추천해 주세요.”

수혁은 돈은 충분했기 때문에 가격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카르지오 안에는 여러 브랜드들이 있어 다양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가끔 몇몇 고객님들께서 가성비 좋은 물건을 찾으시곤 하거든요.”

“가격은 신경 쓰지 마시고 이 매장에서 가장 좋은 물건들만 보여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여자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수혁아, 조금 전에 들렸던 데보다 비싸면 비쌌지, 싸진 않은 거 같은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선웅은 물건들의 가격표를 보며 말했다.

“뭐가 비싸요? 우리 정도면 여기 있는 것들은 부담 없이 살 수 있어요. 아버지, 그러지 말고 엄마랑 같이 사고 싶은 거 모두 골라요. 오늘은 제가 다 사 드릴게요.”

“사장님, 사모님. 제가 제품들을 하나하나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자는 어느새 선웅과 혜정에게 다가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가방이랑 신발 먼저 볼 수 있을까요?”

머뭇거리는 선웅과 달리 혜정은 거침없이 주문을 했다.

“네, 이쪽으로 오시죠.”

“멍하니 있지 말고 아들이 사 준다고 하니까 가서 옷들 좀 보고 있어요.”

직원을 따라가려던 혜정은 잠시 멈춰 서더니 선웅에게 당부했다.

“아버지, 저랑 같이 고르시죠. 이쪽에 남성 제품들이 있네요.”

“알겠다. 천천히 한번 둘러보자.”

선웅은 가족들의 성화에 쇼핑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셔츠가 아버지랑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어떠세요?”

“좋기는 한데,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니냐?”

“이제 시작이에요. 돈 생각하지 마시고 사고 싶은 거 마음껏 사세요.”

수혁은 선웅의 의견을 물어보며 거침없이 물건들을 골랐고 어느새 그의 양손은 명품들로 가득했다.

“수혁아, 어때? 예쁘지?”

혜정은직원이 골라 준 신발을 신고 이들의 앞에 나타났다.

“들고 계신 가방이 더 예쁜데요?”

수혁은 혜정의 손에 걸려 있는 가방을 보며 말했다.

“사모님이 이 가방 말고 다른 걸 선택하셨는데 아드님 생각하시느라 마음을 바꾸셨어요.”

대화를 지켜보던 여자는 수혁에게 슬쩍 말을 던졌다.

“이거 말고 다른 가방들도 다 가지고 나와 주세요.”

“아니야, 수혁아. 난 이것도 좋아.”

당황한 혜정은 손을 저으며 아들을 말렸다.

“엄마, 어떻게 보면 오늘 처음으로 아들로서 부모님을 백화점에 모셔온 거잖아요. 더 좋은 거로 사 드리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부탁 한 번만 들어주세요.”

“……알았다.”

“가방이랑 신발 가리지 말고 다 가지고 오세요.”

“저, 그러지 말고 차라리 저희가 택배로 부쳐 드리는 건 어떠세요? 물건들이 많은데 나중에 들고 가시기 불편하실 것 같아서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죠.”

수혁은 직원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물건들은 다 살 거니까 따로 빼 주세요.”

“네, 제가 눈치껏 잘 골라놓겠습니다.”

여직원은 기분이 좋아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엄마, 저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요. 아버지랑 같이 보고 있어요.”

“그래, 알았다.”

수혁은 잠시 매장을 나와 핸드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용민아 나야, 급하게 돈 쓸데가 있어서 그러는데 내 방 금고에 있는 수표들 몇 장만 가지고 와 줄 수 있어? 바쁘면 직원 시켜도 돼.”

“알겠어, 수혁아. 바로 보내 줄게.”

“여기가 어디냐면…….”

수혁은 그에게 금고를 여는 방법과 백화점의 위치를 알려 줬다.

“압구정이면 금방이네, 알았어. 곧 사람을 보낼게.”

“고마워, 나중에 회사에서 보자.”

수혁은 전화를 끊고 다시 매장으로 향했다.

“엄마, 다 고르셨어요?”

“응, 직원 분께서 어떤 것들인지 다 따로 표시를 해 두셨어. 야, 살다 보니 아들 덕분에 이런 날도 오네?”

“아버지, 시계가 멋진데요?”

“흠흠, 이건 바로 가져가도 될 거 같아서 한번 차 봤다.”

선웅은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잘하셨어요. 좋은 게 있으면 몇 개 더 고르시지 그랬어요?”

“안 그래도 마음에 쏙 드는 것들이 있어서 몇 개 더 골랐다.”

처음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선웅은 명품시계를 보자 체면을 내려놓기로 했다. 한편 이를 지켜보던 진우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런 젠장, 저 사람들 저기서 뭐 하는 거야? 나한테는 싸가지 없게 굴더니 저쪽 가서는 돈을 펑펑 쓰고 있잖아?’

수혁과 가족들이 옆 매장에서 물건을 쓸어 담고 있는 것을 본 진우는 배알이 꼴렸다.

‘아이 씨, 저렇게 돈을 쓸 줄 누가 알았나? 하필 저딴 거지같은 옷을 입고 와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거야?’

그는 끝까지 반성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 잠깐 물어볼 게 있는데요.”

수혁은 여자를 조용히 따로 불렀다.

“네, 말씀하세요.”

“다 합해서 얼마나 나왔나요?”

그는 부모님이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게…… 아버님, 어머님께서 좋아하시는 거 같아서 여러 개를 보여 드리다 보니, 조금 과하게 나왔거든요.”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방금 계산해 봤는데, 다 합해서 1억 4천 7백만 원 나왔습니다.”

여자는 수혁의 눈치를 살피며 금액을 말했다.

“가방들이랑 시계들 다 합해서 그 정도밖에 안 나왔어요?”

“네?”

그녀는 덤덤한 수혁의 반응에 화들짝 놀랐다.

“2억까지 맞춰 드릴 수 있으니까 쓸 만한 것들 더 챙겨 주세요.”

“가……감사합니다.”

“부모님이 알면 안 되니까 알아서 택배로 부쳐 주세요.”

“네, 제가 최선을 다해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여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정기용 대리입니다. 김용민 팀장님께서 전해 달라고 해서 왔습니다.”

SH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온 직원은 매장에 있는 수혁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는 흰 봉투를 품속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이만 퇴근하세요. 제가 회사에 말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수혁은 아직 근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고했다는 의미로 퇴근을 허락했다.

“부지점장님, 오셨습니까?”

판매된 물건들을 따로 정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던 여자는 풍채가 좋은 장년의 남성이 매장으로 들어오자 꾸벅 인사를 했다.

“1층에 VIP 고객께서 오셨다고 들었는데 어디 계십니까?”

“네, 저쪽에 계십니다.”

그녀는 카운터에서 계산할 준비를 하고 있는 수혁을 가리켰다.

“안녕하십니까, 김성민 부지점장입니다. 쇼핑은 즐거우셨습니까?”

성민은 수혁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네, 매장에 좋은 물건들도 많고 백화점도 쾌적해서 부모님과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다행입니다. 영업팀장 말로는 고객님께서 우리 백화점을 특별히 잘 이용해 주셨다고 해서 인사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수혁이 2억 원에 달하는 돈을 썼다는 사실은 이미 윗선에 보고된 상태였다.

“네, 부모님께 선물을 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제가 직원들에게 말해 백화점 사은품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성민은 씀씀이가 큰 수혁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사은품도 사은품인데 하나 건의 드릴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언제 한번 날을 잡아서 직원 교육을 시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매장에 아주 무례한 직원이 있더군요.”

수혁은 진우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 기회를 살려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저희는 매달 한 번씩 직원들을 한데 모아 서비스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직원 중 누군가 고객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은데…… 자세히 말씀해 주실 있으실까요?”

“제 부모님께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며 매장에서 나가라고 하더군요. 비싸니까 3층 가서 옷을 사라느니, 영업 방해하지 말라느니 하면서 말이죠.”

“…….”

평소 고객 서비스를 강조하는 성민은 화가 치미는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손님이라고 다 같은 손님이 아니라고 하면서 사람을 차별해 놓고 사과 한마디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시정조치 하겠습니다.”

성민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치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러면 지금 바로 가능하시겠습니까?”

“고객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여건이 허락되는 한에서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잘됐네요, 그 무례한 직원이 바로 저 사람이에요.”

수혁은 손가락으로 진우를 지목했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수혁과 부지점장의 대화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진우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기, 이쪽으로 잠시 와 주실 수 있습니까?”

“저, 저요?”

진우는 성민이 손짓을 하며 부르자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고객님들께 실례를 저질렀다는데 사실입니까?”

“부지점장님, 그건 원활한 영업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고객님도 화가 나셔서 그런지 몰라도 과장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 왜 카르지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죠?”

“그, 그건…….”

성민의 논리적인 말에 남자는 사고가 정지되고 말았다.

“그뿐이 아닙니다. 도대체 이분들이 어떻게 영업을 방해했다는 겁니까? 영업 방해의 기준이 뭡니까?”

“부지점장님, 제 입장에서는 다른 고객들의 편익을 방해하는 행동을 영업 방해로 본 겁니다. 부디 제 말도 좀 들어주세요.”

진우는 애원을 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어떻게 다른 고객들을 방해했는지 똑바로 말하세요!”

성민은 진우가 빙빙 말을 돌리자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 15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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