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59화 (159/316)

159화

‘뭐야, 마음 약해지게 왜 질질 짜고 난리야?’

수혁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남은 사지마저 부러뜨려 버렸다.

“커컥, 으…….”

고통을 견디지 못한 성준은 그대로 실신하고 말았다.

‘후,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나가고 싶지만 그래도 병원에는 보내야겠지?’

수혁은 쓰러진 건달들 중 의식이 있는 자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뭘 어쨌다고…….”

남자는 두 눈으로 성준의 사지가 박살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복면을 쓴 수혁이 악마처럼 보였다.

“병원.”

“알겠습니다. 바로 병원에 연락하겠습니다.

말귀를 알아들은 남자는 급하게 핸드폰을 꺼낸 다음 119에 연락했다.

‘후, 이 정도 했으면 말귀는 알아듣겠지?’

수혁은 장갑 덕분에 지문이 남을 염려가 없었기 때문에 쇠파이프를 바닥에 버린 후 현장을 떠났다.

* * *

서울의 한 대형병원, 성준은 양팔과 다리에 깁스를 하고 특실에 입원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병문안을 온 명학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준에게 물었다.

“보면 모르겠어? 그냥 된통당한 거지 뭐.”

“들어 보니까 누가 그랬는지 알 수도 없다며?”

“응, 아버지가 잘 아는 경찰 말로는 CCTV도 없고,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내가 볼 땐 강수혁 그놈이 벌인 일 같은데?”

명학은 확신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나도 목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그 녀석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쓰레기들 말고 좀 더 쎈 애들 없어? 내가 볼 때 다시 공사장 가서 깽판 놓으면 틀림없이 또 나타날 거야.”

“그건 좀 힘들 거 같아. 더 강한 사람들이면 유명한 조폭들을 섭외해야 하는데 그 사람들은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야.”

명학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이 씨, 그냥 돈만 왕창 주면 되는 거 아니야?”

“이름난 조폭들과 한번 엮이게 되면 회사 입장에서도 좋지 않아.”

“야, 그럼 성남지청에 근무하는 검사나 경찰들 동원해서 한번 흔들어 봐. 병신같이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명학은 성준의 자존심을 살살 건드렸다.

“그건 좀 어려울 거 같아. 들어 보니 우리도 범법을 저지른 부분이 있어서 일을 크게 키우면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참 내, 그래서 못하겠다고?”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거지. 두고 봐, 방법을 다시 찾아서 어떤 식으로든 괴롭힐 거니까.”

성준은 분한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다른 방법이 있겠냐? 내가 너한테 기대한 건 네 아버지의 인맥과 건달들밖에 없었는데. 휴, 초반에 잘하는 거 같아서 일송건설에서 일감까지 따다 줬는데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네?”

“…….”

일오가 이끄는 경문건설은 명학이 도와준 덕분에 큰 이득을 본 상황이라 성준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쉬어라, 그리고 연락하지 마.”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마라. 날 부를 일이 또 있을 수도 있잖아.”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명학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병실에서 나갔다.

“……건방진 새끼. 사람이 이 꼴이 됐는데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가네. 하, 인생 참 뭣 같네.”

최소한 6개월 이상 입원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아 우울했던 성준은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한숨만 푹푹 쉬었다.

* * *

공사장에서의 싸움으로부터 3주의 시간이 흘렀다. 기말시험이 끝나고 방학을 맞은 수혁은 회사에 살다시피 했다. 그는 오늘도 사무실에 출근해 컴퓨터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코드 짜는 거랑 신사업 기획안 작성을 동시에 하니까 몸이 남아나질 않네.’

수혁은 포털 사업이 안정화되고 스마트 폰 출시까지 1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스마트 폰이 세상에 나오면 온라인 쇼핑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될 거야. 대기업들은 매장과 점포가 많아 초기에는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였지만 결국은 모두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었었지.’

그는 스마트 폰의 영향으로 새롭게 조성될 시장 환경에 걸맞은 트렌디한 사업들을 구상하던 중 온라인쇼핑몰 회사를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유신은 노크 소리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SH커뮤니케이션을 진두지휘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학교와 대외활동 때문에 회사 일에 소홀해질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본부장님께서 역할을 톡톡히 해주셨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대표님이 그린 밑그림에 채색만 했을 뿐입니다.”

그는 갑작스러운 칭찬이 쑥스러웠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까지 본부장으로서 역할을 잘해 주셨습니다. 이젠 새로운 일을 하셔야 될 거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유신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다음 달부터는 본부장 자리를 김용민 팀장에게 넘기고 본부장님은 새로 시작하는 사업을 총괄하게 될 겁니다.”

“그럼 개발팀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현재 있는 개발1팀, 2팀, 3팀은 이제 모두 최필재 팀장이 이끌게 될 겁니다. 그리고 개발팀은 본부장의 지시를 받던 이전과 달리 독립성이 보장될 거고요.”

수혁은 필재의 성격을 고려한 조치를 취했다.

“대표님, 제가 맡게 될 사업이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업무에 대한 사전 조사는 필요할 거 같아서요.”

“물론이죠,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기획하고 있는 건 온라인 쇼핑몰입니다.”

“음…… 지금도 온라인 쇼핑몰들이 제법 나왔지만 예상했던 거에 비해 성장세가 빠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신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아직도 저를 잘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두고 보세요. 나중에는 이 온라인 쇼핑몰이 시중에 있는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들보다 훨씬 커질 테니까요.”

“대표님의 혜안을 의심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럼 저는 남은 기간 본부장 일을 수행하면서 온라인 쇼핑몰에 대해 나름대로 알아보겠습니다.”

“조만간 사업 기획안을 보여 드릴 테니 그렇게 알고 일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유신은 인사를 하고 대표실을 나갔다.

‘이제, 정 회장님에게 연락을 한번 해 볼까?’

수혁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석호는 바쁘지 않았는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최근에 사업상 중요한 안건들을 대부분 처리하여 요즘은 그나마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하, 편안하시다니 다행입니다. 듣자 하니 현 회장님이랑 같이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요?”

그는 명길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네, 기밀 사안이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중요한 사업 아이템 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안 그래도 제가 어르신께 여쭤봤는데 단서조차 주지 않더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석호는 용건을 물었다.

“제가 생각해 놓은 아이템이 있는데 회장님과 함께 의논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한 번 뵐 수 있겠습니까?”

“저야 좋지요. 시간은 언제가 편하십니까?”

“저는 현재 딱히 일정이 없어 어느 때든 상관없을 거 같습니다.”

“그러면....... 흠.”

잠시 생각하던 석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우리 회사에서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알겠습니다. 마침 회장님 본사가 우리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가는 데 불편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일물류 본사는 삼성역 근처에 있어 선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금일은 늦은 밤까지 회사에 있을 예정이라서 아무 때나 오셔도 됩니다. 그리고 1층 로비에 도착하면 직원이 제 방으로 안내해 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수혁은 용건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 * *

오후 7시쯤이 되었을까, 회사에서 퇴근한 수혁은 차를 몰고 삼성동에 도착했다.

‘제일물류 정도 되는 회사도 이 정도 본사는 가지고 있구나. 뭐, 판교에 짓는 본사는 이것보다 더 크긴 하지만 말이야.’

수혁은 30층 높이의 빌딩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혹시, 강수혁 대표님이십니까?”

안경을 낀 중년의 남성이 다가와 물었다. 그는 석호의 지시를 받고 미리 인터넷을 검색해 수혁의 용모를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네, 맞습니다.”

“따라오시죠, 회장님이 기다리십니다.”

남자는 수혁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탄 뒤 꼭대기 층의 버튼을 눌렀다.

“회장님, 대표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엘리베이터에 내린 남자는 회장실에 먼저 들어가 석호에게 보고했다.

“들어오시라고 하게.”

지시를 받은 남자는 수혁을 방으로 안내한 뒤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오는 길에 건물을 잠깐 봤는데 본사가 아주 멋지군요.”

“종로에 있던 조금한 회사가 이렇게나마 크게 된 걸 큰 복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석호는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다.

“가볍게 한잔하면서 이야기하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는 진열장에 있는 양주와 유리컵 2개를 테이블에 놓고 천천히 술을 따랐다.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내셨다고 했는데…… 도대체 뭐 길래 이리도 급히 연락을 한 겁니까?”

석호는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구체적인 플랜이 다 세워진 건 아니지만 제일물류와 SH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계획을 짜 보았습니다.”

“말씀하시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제일물류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수혁은 그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인터넷 사용 인구가 늘어나면서 온라인 쇼핑몰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보다는 개인이나 중소, 중견기업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긴 합니다. 인터넷이 활성화됨에 따라 온라인 쇼핑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줄 알았지만 대형 마트와 백화점을 선호하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조금 부족했지요.”

“하지만,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이 저에게 온라인 쇼핑몰을 언급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석호는 수혁이 편의점 사업을 도와준 이후로 그의 능력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다.

“맞습니다. 단순히 현재 존재하고 있는 쇼핑몰들을 모방한 아이디어라면 회장님을 찾아오지 않았겠지요. 저는 대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한 온라인 유통 판매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까 합니다.”

“허허, 이번엔 또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올지 기대가 되는군요.”

석호는 너털웃음을 짓다가 이내 자세를 고쳐 앉고 수혁의 말을 경청했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점은 다른 업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특별한 방식을 새로 만들기보단 온라인 거래가 주는 이점을 최대한 살려 많은 고객들을 유인해 보려고 합니다.”

“전자거래가 주는 이점이라…… 그런 거라면 기존 회사들도 다 알고 있지 않을까요?”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수혁은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석호와 달리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 160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