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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60화 (160/316)

160화

수혁은 술잔에 입을 대고 한 모금 마신 다음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보실 때 온라인 거래가 주는 이점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간단하지 않습니까? 점포가 필요 없고 종업원을 따로 채용하지 않아도 되니 비용이 절감되는 거겠죠.”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격은 인하하게 되겠지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온라인 쇼핑몰은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이기지 못했을까요?”

“음, 아무래도 대다수의 고객들이 편하게 집에서 쇼핑을 하는 것보단 눈으로 직접 보고 물건을 고르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석호는 자신이 없는지 말끝을 흐렸다.

“그 말씀도 일견 타당합니다. 현재 운영되는 쇼핑몰 같은 경우, 소수 품목에 한정되어 있거나 개인이 운영하는 샵의 물건만 팔기 위한 곳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품의 품질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이번에 기획하신 사업은 그런 부분들을 모두 보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것뿐이겠습니까? 온라인 상거래가 가지는 다른 약점들도 싹 다 보완해야지요.”

“약점들이요?”

석호는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경청했다.

“물류 사업을 하고 계셔서 잘 아시겠지만 온라인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빠르면 3일, 길면 5일에서 일주일까지 걸릴 때가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한마디로 백화점이나 마트는 물건들을 즉시 구매할 수 있는 반면에 온라인 쇼핑몰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그리고 현재 운영되는 온라인 쇼핑몰들엔 커다란 약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수혁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흠, 그게 뭘까요?”

“타 쇼핑몰 사이트에 올라온 상품들을 살펴보면 브랜드가 적고 카테고리도 다양하지 않습니다. 현재 쇼핑몰에서 거래되고 있는 대부분의 제품들은 농산물, 의류, 전자기기 위주이지요.”

“그러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처럼 모든 물품들을 다 판매하게끔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네, 예를 들면 과자나 음료수 같은 것들부터 싼 제품들부터 시작해서 값비싼 명품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말처럼 쉬울까요?”

석호는 수혁이 이상론자처럼 보였다.

“왜 못합니까? 이미 미국의 한 기업은 제가 말씀드린 것과 유사한 컨셉의 온라인 거래망을 구축해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벨리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아벨리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로 1990년대 말부터 급속도로 성장하는 기업이었다. 그리고 세계 유수의 언론 매체에서도 인터넷 발전의 영향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을 곳을 아벨리로 뽑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회사였다.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아벨리는 국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글로벌 기업입니다. 과연 아이디어만으로 그런 회사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시장 여건을 고려하면 아벨리를 뛰어넘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국내의 어떤 유통 업체보다도 더 크게 만들 자신은 있습니다.”

수혁은 단순히 인터넷 쇼핑몰 시장이 아니라 유통 시장 자체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그런 회사가 없었을까요? 외국 기업에서 뻔히 하는 것을 보고도 말이지요.”

석호는 여전히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쉽게 들 수 있는 이유는 자본이 부족하다는 점과 대기업을 비롯한 제조업체들의 참여 부재가 아닐까싶습니다.”

“자본의 부족이요?”

“네, 온라인 상거래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완하려면 물건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당일 택배를 실현하거나 늦어도 다음 날에는 도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죠.”

“당일 택배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저도 물류업에 종사한 지 오래됐지만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석호는 고개를 저으며 회의감을 드러냈다.

“주요 도시에 물류창고를 짓고 제조 업체와 긴밀히 협력하여 물품들을 각 도시에 있는 지점들로 바로 보낼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겁니다.”

“그래서 제가 자본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수혁은 덤덤하게 말했다.

“당일이나 다음 날까지 물건을 전달하려면 수많은 택배기사들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시스템을 갖췄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일단 당일 택배는 가능한 상품들에 한해서만 옵션으로 달아둘 겁니다. 그리고 추가적인 서비스 요금을 고객에게 부과한다면 예상보다 적은 사람들이 이용할 겁니다.”

수혁은 제품의 특성을 고려한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해 냈는데 이는 회귀하기 전에 이용했던 유명 물류 업체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기사들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인터넷 쇼핑몰의 경우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주문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때문에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돌아가는 물류 유통망을 구축해야 할 겁니다.”

“오히려 괜찮지 않습니까? 일자리도 창출하고, 건수마다 수당을 잘 챙겨 주면 기사들도 이전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물론 과도한 근로로 혹사당하는 것은 미연에 방지해야 되겠지만요.”

“그 전에 사람들을 어떻게 모을지 고민해 봐야합니다. 아무리 기발한 발상이라도 따라와 줄 인력이 없으면 그림의 떡이니까요.”

석호는 목이 탔는지 술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각 도시별로 물류창고를 짓고 난 후 대대적으로 기사들을 모집하면 됩니다. 택배 차량을 지원해 준다고 하면 인력 공급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창고를 짓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차량까지 지원해 준다고요?”

“그래야 고객들이 물품을 받을 때 지오쇼핑을 쉽게 기억할 수 있고, 기사들 또한 소속감을 느끼면서 서비스의 질도 높일 수 있습니다.”

“지오쇼핑이라, 벌써 이름까지 정해 뒀군요. 이거, 제 예상보다 세세하게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수혁이 디테일한 사안까지 아이디어를 짜놓은 것을 확인한 석호는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는 해 줘야, 회장님이 함께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해야 할 일은 뭡니까?”

“알다시피 우리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사업들을 진행하기에는 자본과 노하우가 부족합니다.”

그는 수혁은 에둘러 용건을 말했다.

“허허, 그럼 얼마 정도면 되겠습니까?”

석호는 수혁이 말을 꺼내자마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네? 아, 제가 아직 정확한 견적을 뽑지 못해서 바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거저 달라는 건 아닙니다. 정확히 5:5로 지분을 나눠 수익을 분배할 예정입니다.”

“SH는 이 사업을 위해 뭘 하게 됩니까?”

“우리는 먼저 쇼핑몰 사이트를 만들 겁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끌어올 수 있는 예산을 최대한 모아 지오쇼핑 설립에 기여할 예정입니다.”

수혁은 침착하게 질문에 답했다.

“지분은 7:3으로 하죠,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7:3이라 하면……?”

“하하, 당연히 SH가 7이고 우리가 3이죠. 설마 제가 뻔뻔하게 더 많이 가져갈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석호는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의가 지나치십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기본 인프라 구축부터 택배 인력 지원까지 제일물류가 우리보다 부담하는 부분이 훨씬 큽니다. 사실 전 5:5도 무리라고 생각하고 여쭤본 거였습니다.”

수혁은 손을 저으며 제안을 거부할 의향을 내비쳤다.

“전 아버지에게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배웠습니다. 일전에 주신 사업 계획서 덕분에 우리 회사가 IMF 이후 침체되었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도울 수 있게 해 주십쇼.”

“하지만, 제가 드린 거에 비해 너무나 큰 선물입니다. 게다가 택배업에 진출하는 사안이라 제일물류에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냥 5:5로 하시고 택배 업무는 제일물류에서 전담하는 거로 하죠.”

수혁은 석호의 호의에 감격해 원래 지분을 유지하는 것에 더해 택배 업무를 제일물류에게 모두 맡기려 했다.

“초반에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택배 업무를 도와드릴 수는 있겠지만 이후에는 SH에서 관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겁니다. 두 업체가 혼선을 빚게 되면 고객들은 당황할 수도 있거든요. 저는 앞서 말한 지분으로 족하니, 더 이상 부담 안 가지셔도 됩니다.”

“휴, 알겠습니다.”

석호가 거듭 괜찮다고 말하자 수혁은 끝내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호의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히 받겠지만 그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는 겁니까?”

“흠…… 사실은 편의점 사업보다는 우리 아버지 때문입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석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연세가 드시면서 점점 우울해하셨습니다. 본인은 사회에서 인정받고 아들도 나름 번듯한 사업체를 꾸려나가고 있었지만, 조상 대대로 물려온 고서들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지 고민이 깊으셨지요.”

“그런 말씀이셨군요.”

수혁은 석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렸다.

“아버지는 제게 고서를 관리해 달라고 부탁하셨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부자는 관계가 소원해졌지요. 하지만 3년 전, 한 청년을 만난 이후 아버지는 활기를 되찾으셨고 예전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설명이 될까요?”

“네, 충분합니다. 할아버지께 받은 은혜가 작지 않은데 이번 일로 또 신세를 지게 됐네요.”

수혁은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하, 아닙니다. 강 대표님을 도와드렸다고 하면 그 누구보다도 우리 아버지께서 제일 좋아할 겁니다. 제 입장에서는 효도도 하고 새 회사 설립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니 일석이조이지요.”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오쇼핑을 론칭하게 되면 열심히 키워서 제일물류에도 보탬이 되는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수혁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어떻습니까? 술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제가 한 잔 드리겠습니다.”

수혁은 두 손으로 양주병을 들어 그의 잔에 따라 주었다.

“평소대로 편하게 주세요, 술은 편하게 마셔야 맛있습니다.”

두 사람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술을 주고받았다.

* * *

“이런 젠장, 왜 나한테 이런 핫바지 일들만 시키는 거야?”

명학은 종로에 있는 일송유통 본사, 회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현장 근무 외에도 회사 내에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상무님을 왜 이렇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옆에는 중년의 남성이 아부를 떨고 있었다.

“김 부장, 그러니까 나중에 삼촌을 보게 되면 말 좀 잘 해 주세요. 이게 뭡니까? 방학이라서 좀 쉬려고 했는데 대전으로 출장이라니요.”

“제가 힘이 닿는 대로 노력해서 기간이라도 줄여 보겠습니다.”

명학은 회장인 삼촌의 지시를 받아 일송유통 대전 지점에 2달 동안 근무하게 되었다. 이는 실무에 대한 경험을 쌓고 오라는 배려가 있는 결정이었지만 그는 불만만 가득한 상태였다.

“말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대전 지점에 제가 잘 아는 직원이 있으니 잘 모시라고 미리 말해 두겠습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수고해요.”

말을 마친 남자는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아이 씨, 강수혁 건도 그렇고,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어?’

명학은 오만상을 쓰며 회사를 빠져나갔다.

- 16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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