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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66화 (166/316)

166화

‘쳇, 이제야 내 말을 들어주네.’

명학은 자신을 무시하는 정수의 태도에 기분이 상했지만 꾹 참고 말을 이어 갔다.

“네, 예전에 할아버지한테 무례하게 굴었던 녀석 있잖아요.”

“나도 알아. 언젠가 기회가 되면 혼쭐을 내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놈이란 관련 있는 일이라는 게 뭐냐?”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이 대단했던 정수는 수혁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자식이 겁도 없이 유통 쪽으로 넘어오려고 하더라고요.”

“흠, 역량만 된다면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지. 하지만 아버지를 모욕한 놈을 가만둘 순 없어. 기다려 봐라, 내가 한번 그 녀석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가 대충 파악해 놨어요.”

“간단한 서류 업무도 버거워하는 놈이 강 대표에 대한 파악을 끝냈다고?”

정수는 일송유통에서 명학을 데리고 있는 동안 그의 미흡한 점을 많이 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일 처리에 관한 건 믿지 않았다.

“작은아버지, 이번엔 진짜예요. 제가 미덥지 못하시겠지만 한번 들어 보세요.”

“듣고 있어. 이야기해 봐.”

“강수혁은 지오쇼핑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전국에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어요.”

“그 구멍가게 같은 회사가 돈이 어디서 나서 유통망을 만든다는 거야? 최근에 본사 사옥을 짓느라 자금이 부족했을 텐데?”

정수는 SH커뮤니케이션이 판교에 본사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맞아요. 지금 대전, 광주, 부산과 같은 광역시와 각 도의 주요 도시에 물류센터를 짓고 있는데,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제일물류가 자금을 대줘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에이, 잘못 안 거 아니야? 내가 정 회장을 잘 아는데 철두철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야. 그 사람이 바보도 아니고 뭐 하러 업계에 경쟁업체를 하나 더 만들겠어? 더군다나 자기 돈 들여가면서까지 말이야.”

그는 명학의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제가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틀림없어요. 지금 그 부분이 맞냐 틀리냐는 따지고 싶진 않습니다. 그것보다 제가 재밌는 걸 알아 왔습니다.”

“뭔데?”

“이 녀석이 온라인 쇼핑몰에다가 종합마트 수준의 상품 라인을 갖추려고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볼 땐 아주 질 나쁜 녀석 같은데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아이디어군. 하지만 현실 가능성이 너무 낮아. 많은 제조업체들과 제휴도 맺어야 되고 자체적으로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저장창고도 구비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사업성이 떨어지기 마련이야.”

“하, 작은아버지. 현실성을 따지기보단 그 녀석에게 어떻게든 타격을 줘야 될 거 아닙니까?”

명학은 대화가 딴 길로 세는 것처럼 느끼자 자기도 모르게 볼멘소리를 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어디서 그따구로 말하래? 어!?”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넌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기본 예의도 없고 싹수가 노랬지. 으이구, 형님만 아니었으면 너 같은 놈을 우리 회사에 받지 않았을 텐데.”

“…….”

명학은 모욕감을 느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침묵을 지켰다.

“죄송합니다. 제가 답답한 마음에 실언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는 보통 때와 달리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크흠,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고사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라.”

“유념하겠습니다. 회장님, 전 개인적으로 강수혁을 싫어하지만, 그 녀석이 뛰어난 놈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 녀석은 남들보다 항상 두 수, 세 수 앞서가며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명학은 호칭까지 바꿔가며 예의를 갖추고 말하기 시작했다.

“실력은 확실한 사람이지만 경험이 부족해, 봐라. 지금도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잖아?”

“예전에 제가 사업을 하다 망한 적이 있습니…….”

“쯧쯧, 너도 경험이 부족하니까 실수를 한 거야.”

‘이런 씨, 말을 왜 자꾸 끊는 거야.’

정수가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자 짜증이 났지만 침착하게 말을 이어 갔다.

“저는 일송기획에서 파견 온 직원의 조언에 따라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마냥 충동적으로 결정한 건 아니란 말이지?”

“맞습니다. 제가 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오닷컴은 업계 후발주자로서 시장경쟁력이 떨어지고 닷컴버블까지 겹쳐 성장 가능성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강수혁은 그 회사를 20배 이상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흠, 사실 그렇지. 네가 운영할 때만 해도 지오닷컴의 존재도 몰랐는데, 이젠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포털 회사가 되었으니까.”

그는 처음으로 명학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래서 전 그놈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할아버지를 모욕한 부분에 대해서도 마땅히 응징해야지만, 일송유통의 미래를 고려해봤을 때도 적절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푸하하하, 그런 애송이 놈이 내 상대가 될 것 같아?”

정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회장님과 비교할 만한 놈은 아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아, 그 부분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자. 오늘은 그렇고 내일 오후 8시까지 본사로 와라.”

“알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화의 자리를 만든 명학은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빌어먹을 새끼, 내가 지 부하인 줄 아나? 어디서 훈계를 하려 들어?’

그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다스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강수혁 그놈에게 한방 먹일 수 있겠어, 기다려라.’

명학은 이를 갈며 정수와 의논할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 * *

3월의 어느 주말, 수혁은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경기도에 있는 작은 마을에 와 있었다. 그곳은 가난한 농민들이 사는 지역이었는데, 작년 가을에 왔던 태풍으로 인해 파손된 가옥들과 시설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유리야, 저쪽에 계신 분들도 우리랑 같은 봉사자들이야?”

수혁은 봉사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을 보고 말했다.

“응, 다들 자발적으로 봉사를 하겠다고 나서 주신 분이야. 그린해비타트는 국내에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에게 가옥을 지어 주는 일을 하는데, 이번엔 특별히 재해로 피해 보신 분들을 도와주러 발 벗고 나선 것 같아.”

“그런데 이런 건 원래 공무원들이 알아서 지원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깊은 산골이다 보니까 행정처리가 늦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하더라고. 후, 추운 겨울은 어떻게 나셨을까?”

유리는 가옥들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집들은 완전히 박살 난 것은 아니었지만 부분적으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전 임경애 팀장이라고 합니다. 한국대에서 오셨죠?”

“네, 안녕하세요.”

푸근한 인상을 가진 중년의 여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두 사람 곁에 와서 인사를 건넸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셨는데, 힘드시지 않으셨어요?”

“친구가 차를 갖고 있어서 편하게 왔습니다.”

유리는 수혁의 차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교통상의 불편함은 없었다.

“저, 팀장님. 봉사자분들을 보니까 보수 작업하는 것을 도와주러 오신 것 같은데 저희도 함께하면 되는 겁니까?”

오늘 해야 할 일이 궁금했던 수혁이 물었다.

“학생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봉사자들은 건축 현장에서 일해 본 경력을 갖고 계셔서 보수 작업에 참여하시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봉사자들과 주민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되요.”

그녀는 수혁과 유리가 보수 작업을 도와주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뭐부터 하면 될까요?”

“식재료들을 부엌에 먼저 옮겨야 됩니다. 다행히도 주민 중 한 분이 장소를 제공해주셔서 음식 준비에 지장이 없을 것 같네요.”

경애는 유리의 질문에 답변했다.

“이것들을 옮기면 되는 거죠?”

수혁은 각종 채소와 고기가 담긴 비닐봉지를 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는 먼저 재료들을 손질하고 있을 테니까 이쪽으로 옮겨 주세요.”

경애는 손가락으로 허름해 보이는 주택 하나를 가리켰다. 그 후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식사 시간까지 1시간밖에 안 남았어요. 다들 조금만 힘내 주세요.”

경애는 부엌에 있는 봉사자들을 독려했다.

“와, 너 칼질을 왜 이렇게 잘해? 당근이랑 양파 손질이 벌써 끝난 거야?”

“예전에 부모님 가게에서 많이 해 봐서 나한텐 쉬운 일이야.”

유리는 엄청난 속도로 채소들을 썰고 수혁을 보고 감탄했다. 수혁은 도구 이용 프로그램 덕분에 남들보다 배 이상 빠르게 채소들을 손질해 나갔다.

“총각, 어디 요리 학원이라도 다닌 거야? 매일 요리하고 사는 우리보다 훨씬 낫네?”

“아닙니다. 어머니가 하시는 걸 보고 눈대중으로 배운 게 답니다.”

마을에 거주하는 아주머니들은 수혁의 솜씨를 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채소를 모두 다듬은 수혁은 당면을 익힘과 동시에 채소들을 한데 모아 볶기 시작했다.

‘궐중일기에 잡채 만드는 법이 있었던 것 같은데?’

수혁은 과거에 번역한 고서의 내용을 떠올리며 능숙 능란하게 음식을 만들었다.

“이건 너무 맛있는데?”

“한국대에서 온 총각이 눈 깜짝할 새에 만들더라고.”

“곧 있으면 식사시간이니까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경애는 잡채 반찬에 사람이 많이 몰리자 다른 사람들이 먹기도 전에 동이 날까 걱정이 되었다.

“수혁아, 아까 나도 살짝 맛봤는데 맛이 끝내주더라.”

“다음에 기회 되면 잡채 말고 다른 요리도 해 줄게. 유리야, 잠시 차에 가져올 것이 있어서 그러는데 잠깐만 나갔다올게.”

“응, 천천히 다녀와.”

봉사자들은 수혁의 활약 덕분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음식 준비를 빨리 마칠 수 있었다.

‘갑자기 왜 퀘스트가 뜬 거지?’

수혁은 요리를 하던 도중에 화면이 켜진 것을 발견했고, 내용을 확인해 보니 어플이 퀘스트를 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텟 보상을 주는 퀘스트가 생성돼서 알리게 되었습니다.>

‘봉사만 하면 될 일이지, 여기까지 와서 퀘스트를 수행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퀘스트가 사용자께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저도 모르지만, 사업에 도움이 되는 퀘스트가 부여되도록 설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마냥 시간 낭비는 아닐 겁니다.>

‘흠, 확실히 그런 적이 있었지.’

수혁은 오래전에 나눴던 어플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퀘스트 내용을 알려 줘.’

<봉사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애로사항이 발생했습니다.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무사히 봉사를 마치십시오.>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인데? 아무튼 알았어.’

수혁은 지체없이 수락 버튼을 눌렀다.

“수혁아, 어서 와. 다들 식사 시작했어.”

“곧 갈게.”

유리의 부름에 그는 어플을 종료하고 야외에 차려진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음식 만드느라 힘드셨죠? 여기 와서 드세요.”

“감사합니다.”

경애는 보수 일을 하고 온 봉사자들 사이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유리야, 맛있게 먹어.”

“응, 너도.”

“역시, 직접 만든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

“그러게. 일하고 먹으니까 진짜 꿀맛이다.”

그들은 테이블에 앉은 뒤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 16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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