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67화 (167/316)

167화

“왠지 음식 맛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마을 분들이 만드셔서 그런가 봐.”

“제가 듣기론 한국대 학생이 만들었다는데요?”

“이야, 역시 요리도 머리가 좋아야 잘한다니까?”

봉사자들은 긴 시간 동안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몇몇 집들은 상태가 심각해 보이던데......”

“맞아요, 지금 이렇게 일하다가는 시간만 낭비할 뿐이라고요.”

“음, 내가 한번 팀장님께 말씀드려 봐야겠어.”

머리가 희끗한 장년의 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경애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그의 이름은 이성우로 봉사자들 중에서 가장 오랜 경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잠시만요, 조금 있다가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무슨 일이신가요?”

경애는 지역주민과 대화를 나누다가 양해를 구하고 성우를 쳐다봤다.

“태풍에 손상된 집들을 보수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어서요.”

“심각한 모양이군요.”

“네, 자재의 부식 정도가 심각해서 언제 허물어져도 모르는 집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임시방편으로 보수를 해 놔서 겉으로 봤을 때는 멀쩡해 보이는 집들도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일이 다 살펴보기에는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어떡하죠?”

봉사활동은 주 1회씩 4회에 걸쳐 진행하기로 계획돼 있었는데 문제점을 해결하기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제 생각에는 마을 근처에 숙박할 곳을 찾아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숙소야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면 되지만, 봉사자들이 괜찮을까요?”

“적어도 저랑 일하는 사람들은 다들 동의할 겁니다.”

성우는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주민들과 이야기를 해 보니까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은 본인들이 직접 집을 지었는데 돈이 없어 폐자재를 활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보신 주택들이 아마 그분들의 집일 것 같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게다가 자재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어설프게 지어져서 한눈에 보아도 불안정해 보이는 집들이 제법 있더군요.”

“제가 마을 주민들과 의논해서 조치를 취해 보겠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최선을 다해 주세요. 저도 마을에 남아서 여러분들을 돕겠습니다.”

“후, 마음 같아서는 싹 다 고쳐 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론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되는 데까지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손이 더 필요하겠는데요?”

식사를 마친 수혁은 우연히 대화를 엿듣게 되었고, 성우가 말한 문제가 퀘스트와 관련이 있음을 직감했다.

“아, 여러분들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예요. 단체에 소속된 회원들 중에 자원하시는 분만 남아서 봉사를 계속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제 말을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일손을 보태 드리고 싶어서 여쭤본 거였습니다.”

“저희야 힘을 보태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죠. 그러면 저랑 같이 저녁거리를 사러 가시겠어요?”

경애는 수혁이 식사 준비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좋지만 저는 다른 봉사자분들과 남아 집고치는 것을 돕고 싶습니다.”

“집수리를요? 많이 힘드실 텐데요.”

“괜찮습니다. 봉사하러 왔는데 힘든 일 쉬운 일 따지면 안 되죠.”

“허허……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힘쓸 일이 많이 필요했는데 이렇게 젊은 청년이 도와준다니 든든하군요.”

수혁의 말을 들은 성우는 흐뭇해하였다.

“이 방면에는 경험이 없어 보이시는데 괜찮겠어요? 차라리 저랑 같이 식사 준비를 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네, 문제없습니다. 비록 집을 지어 본 적은 없지만 공구를 다룰 줄은 압니다.”

“팀장님, 저녁 만드는 건 제가 도와드릴게요.”

옆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유리는 그녀를 돕겠다고 나섰다.

“쓰읍, 알겠습니다. 따라오세요.”

경애는 수혁의 요리 솜씨를 봤기 때문에 내심 아쉬웠지만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유리와 함께 장을 보러 나갔다.

“안녕하세요. 이성우입니다. 괜찮다면 말을 편하게 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시키실 일 있으면 뭐든 말씀해 주세요.”

“후후, 알겠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혹시 방송 일을 한 적이 있나?”

성우는 왠지 모르게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 아닐까요? 전 방송 쪽엔 아예 관심이 없거든요.”

‘잡지나 경제 뉴스에서 날 본 모양이군.’

수혁은 그가 왜 물어보는지 짐작이 됐지만, 회사 대표라는 자신의 신분을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았다.

“내가 착각했나 보네. 어차피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 치고 지금부턴 일을 해야 되니까 따라오게.”

“넵.”

성우는 수혁에게 같이 일하는 봉사자들을 소개시켜 준 뒤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후, 완전 엉망이네. 나무 기둥이 완전히 썩어 버렸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아예 갈아야 될 것 같은데요?”

“트럭에 가서 목재 좀 찾아봐. 기둥으로 쓸 거니까 두꺼운 걸로 가져오고. 학생, 이 친구 따라가서 나무 좀 들고와.”

성우는 수혁을 보며 말했다.

“저 혼자 다녀올게요. 몇 개 가져오면 되나요?”

“안 돼, 그러다가 허리 다쳐.”

“넉넉히 3개 정도 가져오겠습니다.”

수혁은 말이 길어지기 전에 얼른 트럭으로 향했다.

‘이걸 말씀하시는 건가?’

트럭에는 원형으로 된 목재가 있었는데 통나무보다 두께는 얇았지만 속이 꽉 차 있어 무게가 제법 나갔다.

‘3개는 무리고, 2개만 들어야겠다.’

수혁은 양어깨에 나무 목재를 하나씩 얹었다. 그의 힘은 52에 달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무게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상태였다.

“아니, 이걸 어떻게 혼자 들고 온대?”

“이봐, 그러다 다쳐. 우리랑 같이 들어.”

남자 둘이 수혁을 도와주러 다가왔다.

“아니에요. 전 됐으니까 두 분이서 하나 들고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수혁은 짧게 한마디 던진 뒤 보수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주택으로 향했다.

“이쪽으로 놓으면 됩니까?”

“그래, 그쪽에다 두면 돼. 자네 힘이 장사고만.”

성우는 혀를 내둘렀다.

“더 들 수 있었는데, 두께가 있어서 한 번에 여러 개는 무리더라고요. 또 뭘 하면 될까요?”

“공구를 사용해 본 적이 있다고 그랬지? 톱질을 해서 길이를 맞추고 대패질을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는 수혁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는지 말끝을 흐렸다.

“기존 기둥의 길이에 맞춰서 자른 다음 대패질을 해서 표면을 매끈하게 하라는 말씀이시죠?”

“……한국대 학생이라더니 척 하면 착 하고 알아듣는구먼. 하나 팁을 주면 대패질할 때는 기둥별로 두께를 균일하게 되도록 신경을 써야 되네.”

“이것들은 저한테 맡기시고 벽이나 문 쪽 작업을 먼저 하고 계세요. 기둥 작업이 완료되면 바로 도와드리러 가겠습니다.”

수혁은 오래되어 균열이 생긴 기둥을 살핀 뒤 작업에 들어갔다.

‘믿어도 되려나?’

성우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뒤에서 수혁이 작업하는 것을 지켜봤다. 수혁은 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거침없이 나무를 자른 뒤 대패질을 시작했다.

“학생, 조심해. 그렇게 성급하게 하면 다칠 수 있다고.”

“걱정 마세요.”

그는 도구 이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십 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목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무를 손질해 나갔고 성우는 다른 일을 잊고 입을 쩍 벌린 채 지켜보기만 했다.

“다 됐습니다. 이 정도면 처마 기둥으로 쓰는 데 문제없을 거예요.”

순식간에 작업을 마친 수혁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정말 대단하네. 나도 나름 건축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지만, 자네 같은 사람은 보지 못했어.”

“다음은 뭘 해야 되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이 집은 끝내고 싶네요.”

수혁은 칭찬에 반응하지 않고 해야 할 일부터 물어봤다.

“균열이 가 있는 벽에 시멘트를 바르고 지붕을 교체해야 되는데, 미장을 맡은 친구가 아직 다른 집에 있어서 조금 기다려야 할 거야.”

“그냥 저한테 알려 주시면 안 돼요?”

“반죽이야 만들면 그만이지만 미장은 섬세함이 요구되는 작업이야. 그냥 쉬면서 기다리자고.”

성우는 수혁의 능력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만류했다.

“방법만 알려 주세요. 제가 금방 끝낼게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전 미장일도 자신 있습니다.”

‘허튼소리를 할 친구는 아닌 거 같으니까 한번 믿어 볼까?’

성우는 수혁의 높은 매력 수치에 영향을 받아 그의 말을 쉽게 신뢰하게 되었다.

“알았다. 한번 해 보자.”

“가서 물이랑 시멘트 가져올게요.”

그는 일전에 목소리와 외모가 보정된 이후 알게 모르게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수혁은 가져온 시멘트를 물과 섞은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하고 있나요?”

“아주 잘하고 있어.”

수혁은 그의 지도 아래 시멘트를 잘 펴 바르고 있었다. 원래라면 균열을 메꾸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대충해도 됐지만 성우는 무슨 일이든 철저하게 하는 편이었다.

“좀 쉬어. 이만하면 네 역할은 충분히 했어.”

“다른 곳들도 남았는데 이대로 쉴 순 없죠. 지붕도 해야 된다고 했죠? 알려만 주시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좋다. 어차피 지붕 교체는 같이 할 거지만 궁금해하니 미리 말해 주마.”

성우는 교체 작업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 건지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그렇게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앞으로 30분 뒤에 저녁을 먹을 거니까 점심 식사했던 곳으로 와 주세요.”

“유리야, 잠깐만.”

수혁은 부엌으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응, 왜?”

“난 일 끝나고 밥 먹을 건데 1인분만 따로 퍼줄 수 있어?”

“무리하지 말게, 밥 한 끼 안 먹는다고 일이 빨리 끝나는 건 아니야.”

“제가 원래 뭐 하나 집중할 땐 흐름이 끊기는 걸 싫어하거든요.”

옆에서 듣던 성우가 식사할 것을 권했지만, 수혁은 보수 작업을 빨리 마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가 가져다줄 테니까 먹고 해 수혁아.”

“아니야, 귀찮게 뭐 하러 그래.”

수혁은 유리의 호의가 고마웠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괜찮아, 조금 이따 가져다줄게.”

“유리야.”

그녀는 말을 듣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

“좋은 친구를 뒀구먼. 난 잠시 다른 현장들 좀 둘러보고 올게. 좀 쉬고 있으라고.”

“네, 편히 다녀오세요. 저는 알아서 하고 있을게요.”

“거 참. 알겠네.”

성우는 더 말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자리를 떴다.

‘지붕을 먼저 걷어내 볼까?’

수혁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아까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지붕에 박힌 못들을 빠르게 뽑아내기 시작했다.

“수혁아, 밥 여기다 둘게. 식기 전에 먹어.”

유리는 식사시간에 맞춰 먹을 것을 가져왔지만, 수혁은 그녀가 온 것을 모를 정도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렇게 캄캄한데 어떻게 일하고 있대?”

“학생, 같이 해.”

저녁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려던 봉사자들은 쉬지 않고 일하는 수혁의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전 괜찮습니다. 혹시 조명이 있으면 불 좀 밝혀 주실 수 있으세요?”

“기다려 보세요. 금방 가지고 올게요.”

수혁의 말을 들은 봉사자들은 야간 작업 때 요긴하게 쓰이는 랜턴이 달린 안전모를 가지고 왔다.

“감사합니다.”

그는 헬멧을 착용한 뒤 다시 일을 하러 지붕 위로 올라갔다.

- 168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