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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68화 (168/316)

168화

‘생각보다 별로 안 힘든데?’

혼자 지붕을 뜯어낸 수혁은 미리 준비된 슬레이트 지붕을 집 위에 얹은 뒤 못을 박기 시작했다.

“이봐, 학생! 다들 쉬고 있는데 이제 그만 내려오는 게 어때?”

봉사자들 중 하나가 쉬지 않고 일하는 수혁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거의 다 끝났습니다.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

수혁은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일을 해나갔다.

‘다 끝났다. 배고픈데 뭐 좀 먹을 거 없나?’

밤 11시가 다 된 시각, 수혁은 주택에 관한 보수 작업을 완료했다. 그는 중간에 식사를 하긴 했지만 배가 출출했다.

“수혁아, 고생했어.”

“어, 유리야. 왜 나와 있어?”

“나만 어떻게 편하게 있을 수 있겠어. 피곤하진 않아?”

“응, 체력은 자신 있는 편이라 문제없어.”

수혁은 가뿐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라면 먹을래? 팀장님이랑 장 보러 갈 때 몇 개 사 왔는데.”

“나야 좋지.”

“잠깐만 기다려. 금방 만들어 줄게.”

“아니야, 내가 끓여 먹어도 돼.”

유리는 그대로 부엌에 들어갔고 수혁은 그녀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봤다.

* * *

“자, 먹어.”

“고마워. 잘 먹을게.”

수혁은 유리가 소반 위에 차려 준 라면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수혁아, 오늘 너한테서 의외의 모습을 봤어.”

“하하, 갑자기 왜 그래.”

“난 네가 사업에만 열중하느라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봉사활동 하는 걸 보니까 내가 너에 대해 잘 몰랐던 거 같아.”

‘엥? 이게 이렇게 되는 건가?’

그는 유리가 자신이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집을 수리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비록 바쁘긴 했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지역 사회와 이웃들에게 공헌할 방법을 찾고 있긴 했었어.”

“되게 좋다. 혹시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건 있어?”

유리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요즘에 운이 좋아서 그런지 하는 사업마다 잘 되고 있거든. 그래서 내년쯤에는 재단을 하나 만들어서 운영할까 생각 중이야.”

수혁은 가까운 미래에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이슈가 대두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SH에듀케이션의 경우, 교육과 관련된 곳이면 가리지 않고 진출했기 때문에 업계 생태를 파괴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시장을 점유하는 건 나쁘지 않지만, 괜히 사람들의 미움을 사서 좋을 건 없지.’

그는 SH재단을 설립하여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함으로써 SH를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게 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확실히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크긴 하다. 난 그냥 공부 열심히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방법을 찾아보려고.”

“괜찮겠어? 옛날엔 성공해서 할아버지와 번듯하게 살고 싶어 했잖아.”

수혁은 봉사단체나 NGO에 몸담으면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사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랬었지. 하지만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이웃들을 보면 도저히 외면할 수 없겠더라고. 그리고 이 일 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낼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찾아보고 있으니까, 할아버지를 모시는 것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너라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 좀 들을 수 있을까? 대학 온 이후 이런 시간 갖는 건 처음이잖아.”

그는 사업을 하느라 바빠 고등학교 때 이후로 나누지 못했던 속 깊은 대화를 이번 기회에 하고 싶어 했다.

“좋아. 너도 알다시피 난 1학년 때부터 조기 졸업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하느라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시간도 거의 갖지 못했어. 게다가 사회복지 복수전공을 하다 보니까 마음에 여유가 안 생기더라고.”

“힘들었겠다.”

“근데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활동을 하니까 내가 살아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더라고. 책만 보며 공부하던 나에게 활기를 줬다고나 할까?”

“훗, 완전히 봉사 체질인가 보네.”

“그리고…….”

수혁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자 유리는 신이 나서 하나하나 다 말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활동했던 단체와 봉사하면서 느꼈던 소회들을 열정 넘치게 말하고 있었다.

“유리야, 다 듣다가는 밤이 새겠는데?”

“그러게, 너랑 오랜만에 이렇게 대화하니까 고등학교로 돌아간 기분이야.”

“나도 오랜만에 느껴 보네. 유리야. 계속 생각해 온 건데,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응, 뭔데?”

수혁은 신중하게 할 말들을 골라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재단을 만들 계획이 있다고 한 거 기억해?”

“응, 아까 말했잖아.”

“혹시 괜찮으면, 나랑 같이 일해 보지 않을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네가 재단 운영을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수혁은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난 아직 학생이고, 네 회사에서 일할 만한 역량이 있는지도 의문이 들어. 괜히 너한테 피해를 끼칠 것 같아서 마음이 내키지 않아.”

“아니야. 그만하면 여러 단체에서 경력도 훌륭히 쌓았고, 학교에서도 경영과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기본적인 지식도 충분히 습득한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 말하는 거야.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

“뭔데?”

유리는 수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난 일만 잘하고 영악한 사람보단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여러 재단들을 살펴보면 방만 경영이 이루어지는 곳도 많고, 단체 본연의 목적과 거리가 먼 행사들에만 치중하는 곳들이 많아, 하지만 너라면 정말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재단을 운영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수혁아…….”

그의 진심 어린 말에 유리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졸업하기 전까지 역량을 많이 키우고 비전을 세웠으면 좋겠어. 난 허울 좋은 장학 사업 같은 거 말고도 해비타트처럼 이웃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봉사에 관심이 많아. 어때? 같이해 보지 않을래?”

“응, 알았어. 다음 학기가 마지막 학기라 시간이 많진 않지만, 그때까지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볼게. 그리고, 고마워. 나한테 이런 좋은 기회를 줘서.”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유리는 선선히 제안을 수락했다.

“좋아, 그럼 나도 내년 초까지 재단을 설립해 놓을게.”

“와, 내년 초라고 하니까 확 와 닿는다. 내일부터는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하, 지금처럼만 해.”

이날 밤, 수혁과 유리는 새벽이 다 되도록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 * *

다음날이 되었다.

“허허, 아침부터 또 연장질인가? 어제 늦게까지 일을 한 걸로 아는데 참 부지런도 하네.”

“주어진 시간 동안 수리를 끝내려면 열심히 해야죠.”

성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수혁에게 말을 건넸다.

“다들 들었지? 우리도 빨리 움직이자고.”

“알겠습니다!”

주변 봉사자들은 쉼 없이 일하는 수혁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이전보다 더 진지한 자세로 작업에 임했다. 봉사활동은 이날 오후까지 진행됐고, 봉사를 마친 수혁은 유리와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수혁아, 고생 많았어. 이야기 들어 보니까 네 덕분에 2번만 더 하면 마을 수리가 끝날 수 있을 것 같데.”

“내 덕분은 무슨, 다들 합심해 준 덕택에 일이 빨리 진행된 거지. 그런데 이곳은 예전 모습 그대로구나.”

그들은 달동네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할아버지랑 이웃들이 종종 네 소식을 가끔 물어볼 때가 있어. 나중에 여유 되면 놀러와. 그건 그렇고, 넌 이제 뭐 할 거야? 난 피곤해서 좀 쉬려고 하는데.”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회사에 좀 들러야 할 것 같아. 이틀 동안 고생했는데 푹 쉬어.”

“응. 들어갈게.”

수혁은 유리와 헤어진 뒤 차를 몰고 회사로 향했다.

‘일요일인데 박 사장이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지?’

오늘 아침, 그는 유신에게 연락을 받고 미팅 약속을 잡은 상태였다. 봉사가 끝나고 유리와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수혁은 전화로 자세한 용건을 듣고 싶었지만 다급해 보이는 유신의 목소리에 마음을 바꿨다.

“휴일이라 쉬셔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약속한 시각이 되자 대표실로 들어온 유신은 미안한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일하는데 휴일 평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최근 1주일 동안 대표님 지시를 받고 여러 제조 업체와 유통 업체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돌렸는데 그들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요?”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김용민 본부장의 도움으로 사이트 제작이 거의 완료되고 있는 시점에 다채로운 상품 라인을 갖추기 위해선 타 업체들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라 열심히 홍보도 하고 전화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뭔가 반응이 다들 시큰둥합니다.”

“제가 드린 매뉴얼대로 관계자들에게 설명을 해 보셨습니까?”

“네, 시간을 들여 친절하게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말이 통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휴, 대표님을 귀찮게 해서 죄송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유신은 답답한지 한숨을 쉬었다.

“왜 거부하는지 이유는 물어봤습니까?”

“긍정적으로 검토했던 업체들이 있어서 그쪽 관계자에게 물어봤는데 회사 사정상 온라인 상품 판매는 어렵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습니다.”

“모두 말입니까?”

“네, 회사 판매 정책상 온라인 판매는 전략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는 희한한 말을 하며 자세한 설명은 회피하더군요.”

“그거 이상하군요. 제가 알기로 몇몇 업체들은 이미 온라인 판매를 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수혁은 이들의 행동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 그래도 그 부분을 언급했는데 지오쇼핑처럼 대대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본사 입장에서 부담이 된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저랑 말을 섞는 것도 싫은지 연락을 받지 않더군요.”

“이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봐야겠군요.”

그는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면목 없습니다.”

“아닙니다. 바로 알려 주셔서 오히려 고맙습니다. 이 외에 또 보고할 사안이 있으십니까?”

“적절한 상품 라인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론칭을 하게 되면 대중들에게 홍보한 사안들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어 신뢰를 잃을 확률이 높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유신은 지오쇼핑에 관해 대대적인 홍보를 해 왔는데 내세운 강점으로 제품의 다양성을 들었기 때문에 이를 지키지 못할까 봐 곤란해 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 보겠습니다. 이만 나가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의기소침해진 유신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대표실을 떠났다.

‘우선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알아봐야겠어.’

수혁은 핸드폰을 꺼낸 뒤 누군가에게 급하게 연락을 하였다.

“허허, 강 대표님 아니십니까?”

“휴일인데 죄송합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부득이하게 전화 드렸습니다.”

수혁은 유통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석호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우리가 그런 거 따질 사이도 아니고 신경 쓰지 마세요.”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최근에…….”

흔쾌한 태도를 보인 석호 덕분에 마음이 편해진 수혁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 16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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