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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71화 (171/316)

171화

“그럼 당신은 본인 회사보다 다른 회사를 먼저 생각하나? 댁네 직원들이 불쌍하네. 오너라는 사람이 이리 아둔해서야.”

수혁은 계속 시비를 거는 정욱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헛소리 하지 말고 하던 말이나 마저 해 보시지.”

‘이 자식들은 왜 쌍으로 나한테 그러는 거야?’

명학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어오자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으나, 수혁은 꾹 참고 말을 이어 갔다.

“자세한 사안은 영업 기밀 사안이라 말씀드릴 수 없으나 저랑 계약을 맺은 회사에게는 확실한 이익을 보장해 드릴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떳떳하면 왜 여기서 말하지 못하는가? 설마 우리가 자네 회사의 아이디어를 사용하는 유치한 행동을 할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겠지?”

정수는 수혁을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런 건 아니지만, 굳이 제가 이야기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는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하던데 왜 갑자기 빼지?”

“말씀 못 드리는 점은 죄송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수혁은 평소답지 않게 답답한 언사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분명 소문을 낸 쥐새끼가 있을 거야. 누군지 한번 알아봐야겠어.’

수혁은 속으로 명학을 크게 의심하고 있었으나, 이 자리에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싶었다.

“협회장님 죄송하지만 잠시 강 대표랑 대화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명학아.”

정수는 명학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제지했다.

“회장님, 절 믿어 보세요. 저 녀석을 꼼짝 못 하게 할 방법이 있습니다.”

명학은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지금 이대로만 흘러가도 여론은 우리 편이야.”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휴, 알았다.”

정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부탁을 들어주었다.

“이명학 상무라고 했나요? 말씀해 보세요.”

석호는 선선히 그에게 발언권을 제공했다.

“저희는 업계 종사자이기 전에 교우이기도 합니다. 대화 중에 반말과 거친 말이 오가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야, 강수혁 어디서 거짓말을 해?”

“허허, 아무리 그래도 서로 예의는 지켜야지요.”

“협회장, 가만 있어 보세요.”

정수는 석호가 명학의 행동을 지적하는 것을 막고, 그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줬다.

“이 회장님, 아무리 부친께서 협회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조금 무례한 것 같습니다.”

“협회장님께서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많은 회원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사안을 터놓고 논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흠…….”

석호 또한 회원들이 이 일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반박하기 어려웠다.

“편하게들 이야기하라고. 우리는 조용히 있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네가 상생을 위한 대책을 세웠다고 했는데 그러면 왜 지금까지 제조업체들에게만 연락을 돌렸지? 앞뒤가 안 맞는 행동 같은데?”

명학은 직원에게 전달받은 문서와 보고받은 내용을 토대로 자신 있게 주장을 펼쳤다.

“너한테 설명할 이유 따위는 없지만 일이 커진 것 같으니 말해 주지. 유통 업체와의 협력 부분은 장기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현재 협약을 맺어 봤자 큰 실익이 없어서 연락드리지 않은 거야. 그리고 당장 다음 달부터 회사가 영업을 개시하는데 우리도 상품 라인을 갖춰야 했고.”

“거짓말하지 마. 무슨 장기 프로젝트야 인마. 전국에 유통망을 설치해서 제조사의 물품들을 빠른 시일 내에 고객에게 전달하는 게 네놈 목적이잖아.”

“하하, 그래서 뭘 어쨌다는 거지? 내가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말하는데, 사업하는 사람이 수익을 창출하는 게 잘못한 건가? 그리고 어차피 계획은 계획일 뿐 실현되는 건 또 다른 문제야.”

수혁은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과 아이디어와 현실과의 괴리를 강조하며 자신을 변호하고 있었다.

“네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지. 하지만 정석호 회장님이 거액의 투자를 해 주고 인맥을 동원해 준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잖아?”

“거액의 투자?”

“푸핫, 이거 봐라? 정 회장님이 지오쇼핑 설립에 수천억 규모의 투자금을 제공하고 지분까지 획득한 걸로 아는데 끝까지 발뺌하네?”

“오호, 네가 한 말에 꽤나 자신이 있나 보네?”

수혁은 약 올리는 투로 말했다.

“당연하지. 너야말로, 자신 있으면 직원을 불러서 설립하는데 들어간 지출 내역을 이 자리에서 공개해. 만약 내 말이 틀렸다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질게.”

“누가 네 말이 틀렸대?”

“뭐라고?”

명학은 순순히 인정하는 수혁의 태도에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맞아. 투자를 받았어. 그런데 넌 어떻게 우리 회사의 기밀 사안들을 자세히 알고 있는 거지? 뭔가 수상한데?”

“그걸 내가 왜 알려 줘야 되지? 기밀을 잘 유지하지 못한 네 녀석의 책임 아니야?”

“누구한테 들었는데?”

“익명의 제보자에게서 메일이 온 거다.”

그는 뻔뻔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긴장을 한 나머지,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 새끼가 틀림없군. 하여간 못된 짓은 다 골라서 한단 말이야.’

수혁은 통찰의 능력을 사용할 것도 없이 명학의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한눈에 파악했다.

“메일 주소 좀 알려 줘. 아무래도 우리 회사 직원 중 한 명이 쥐새끼랑 내통을 한 것 같아서 말이야.”

“강 대표, 지금 이 자리가 내통자를 찾는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 해명을 하라고 했더니 갑자기 웬 탐정 놀이야?”

정수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끼고 수습하려고 했다.

“탐정 놀이가 아니라 오해를 풀기 위해서입니다. 저야 뭐, 직원을 색출하고 대응되는 처벌을 내리면 되지만, 업계 어르신들의 마음을 어지럽힌 건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아서요.”

“메일 주소라면 제가 알려 드리죠. 우리 쪽 직원에게 메일이 왔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병섭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범인을 색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강 대표가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저희 일송은 지오쇼핑과 앞으로 어떤 거래도 하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

“저희 한신해운도 직접 관련된 건 아니지만 SH그룹과는 어떤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 않겠습니다.”

정수는 대화가 길어지면 불리해질 거라는 예감이 들자 급하게 승부수를 던졌고 정욱은 이에 금방 호응했다.

“찔리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제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성급하게 구시죠?”

수혁의 얼굴에는 황당해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흐흠, 강 대표. 적절한 해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이면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그렇지, 이경욱 회장님의 혈육분들에게 말씀이 과하셨습니다.”

일송의 권위에 눌린 몇몇 회장들은 은근슬쩍 정수의 의견에 찬동하고 나섰다.

“제 말이 거칠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다만,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 해명하자면…….”

“더 이상 들을 필요가 뭐 있어?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정수는 수혁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회장님 한번 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저 녀석, 아무것도 없으면서 무리하는 것 같은데요?”

명학은 정수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메일을 보낸 자는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회장님들께 호도해서 저를 함정에 빠뜨린 겁니다.”

수혁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끝까지 오리발이네? 너 나중에 정치해도 되겠다. 우리가 메일로 받은 게 뭔 줄 알아?”

“사업 계획서였겠지.”

“그걸 아는 놈이 뻔뻔하게 억울한 척을 해? 역겨운 새끼?”

“내가 애당초 직원들에게 보낸 사업안은 총 기획안이 아니라 초반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요약본이었을 뿐이야. 잘 모르면 함부로 나불대지 마. 그리고 이번 일은 절대 그냥 안 넘어갈 거니까 각오해라.”

수혁은 명학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이, 이 새끼가 말을 지어내네? 이놈 말은 믿지 마십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거짓인 놈입니다!”

“말 더듬지 말고 똑바로 이야기해. 사업의 전반적인 사안을 아는 사람은 나랑 내 최측근들이 다야. 그러니 네가 어떤 보고서를 훔쳤든, 유통 업체와 협력한단 내용이 적혀 있을 리는 없겠지.”

명학은 역으로 자신이 궁지에 몰리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SH그룹의 기밀 내용이라 말씀 못 드렸는데 저도 강 대표님께서 상생에 관한 내용을 언급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때 만났던 시간이 짧아 자세한 사안은 못 들었지만, 유통 업체와의 협업을 기획하고 계셨습니다.”

“협회장님이 어지간히 급하셨나 봅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즉석에서 지어내시다니요.”

정수는 석호가 수혁을 옹호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려하자 노련하게 방어하려고 했다.

“아까부터 저에 대한 인신 모독을 계속하시는데, 제가 협회에서 일하면서 허튼 언행을 하는 걸 보신 적이라도 있습니까?”

“…….”

정수는 석호가 평소 언행에 실수가 없고 신중한 모습을 보인 것을 알기에, 더는 거칠게 대응하기 힘들었다.

“우리 회사 영업 기밀 사안이라 이 자리에서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저희와 협업을 맺으면 그때 허심탄회하게 아이디어를 공유하겠습니다. 제 말씀을 들어 보면 이 소문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그때 다 알게 되실 겁니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수혁은 흐름이 자신에게 넘어온 것을 알아채고 발언을 적절하게 마무리했다.

“그래요. 개인적으로 더 궁금한 사안이 있으면 강 대표에게 문의해 보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모임을 마치도록 하죠. 다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다음에 볼 때는 더 좋은 모습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협회장님, 일을 공정하게 봐주세요. 아끼는 사람이라고 편애하면 그동안 쌓은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우리 일송을 무시하는 처사는 안 하셨으면 좋겠군요.”

“제가 감히 이경욱 회장님을 어떻게 무시하겠습니까?”

석호는 정수를 지그시 바라보며 차분하게 대응했다.

“일전에 우리 회장님께 무례를 저지른 저 친구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제일물류의 앞날에도 좋지 않을 겁니다. 사람이 위아래를 모르면 탈이 나는 법이죠. 아시죠? 일전에 한기연 모임에서 강 대표가 어떤 망발을 했는지.”

정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강 대표님께서 비록 말씀이 과하신 부분은 있었지만 악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경욱 회장님께 그러는 건 아니죠.”

“맞습니다. 어르신께 실례를 저지른 건 사실이니 이정수 회장님께 사과드리세요.”

일송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던지며 수혁을 쳐다봤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경욱 회장님을 존경하는 입장에서 말이 과했던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현명길 회장님이 모욕을 받은 사실은 알고 계시는지 궁금하군요.”

“크흠, 그, 그건…….”

수혁의 항변을 들은 정수는 말문이 막혔는지 헛기침을 했다.

‘훗, 네 녀석이 아무리 일송의 사람이지만 현 회장님은 무시하기 힘들겠지.’

그는 WG의 힘을 빌려 이 위기를 타개하려 했다.

- 17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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