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대한민국을 4강으로 이끈 월드컵 영웅들과 인터뷰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승만 해도 성공이라는 평가를 뒤집고 기적을 일궈내셨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이 모든 건 감독님과 코치님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 출근한 수혁은 티비를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전에 다 본 거라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네.’
6월 한 달, 대한민국의 여름은 뜨거웠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광화문 일대는 길거리 응원을 나온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고 터져 나오는 함성으로 인해 서울 전체가 들썩들썩했다. 하지만 수혁은 결과를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에만 매진했을 뿐, 따로 경기를 시청하진 않았다.
‘어제 제일물류에서 돈이 들어와 무사히 공사대금을 낼 수 있었어. 이렇게 쉴 때가 아니야. 최대한 빨리 성과를 내서 지오쇼핑을 안정궤도에 올려야 해.’
수혁은 티비를 끄고 책상에 놓인 서류들을 하나하나 검토하기 시작했다.
“회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한참을 업무에 열중하던 그때, 직원 하나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의 준비가 모두 끝나 알려 드리러 왔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잠시만요.”
수혁은 의자에 걸쳐놓은 웃옷을 입고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장님께서 오셨으니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참석 인원들이 모두 착석한 것을 확인한 유신은 회의를 개시했다.
“6월 한 달 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해 주세요.”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오쇼핑은 지난 한 달 괄목할 만한 성장은 없었지만 40억에 달하는 매출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5월에 비해 100퍼센트 이상 상승한 수치로 크진 않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가 5월 13일부터 영업을 시작한 걸 고려하면 인상적인 증가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주가량의 기간 동안 20억을 번 것과 한 달 동안 40억을 번 것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총무팀장의 보고를 들은 수혁의 얼굴은 대번에 굳어졌다.
“그래도 적게나마 완만한 상승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 7월이 많이 남았으니 이번 달은 좀 더 분발하겠습니다.”
유신은 민망해하는 팀장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여러분을 책망하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최근에 투자와 관련된 사안으로 제일물류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주주들과 대화를 나눴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오쇼핑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현재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빠르게 결과를 만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직원들과 논의해서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은 수혁의 말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다들 잘해 주실 거라 믿고 다음으로 넘어가죠. 지오쇼핑 사이트에서 취급하는 상품의 가지 수는 얼마나 됩니까?”
“제가 답변 드리겠습니다. 최근에 여러 기업들과 활발히 협약을 맺은 결과 100여 개의 상품을 사이트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대외활동을 담당하는 직원은 뿌듯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처음 회사를 론칭할 때 200여 개의 제품이 올라간 것으로 아는데, 최근 계약한 회사들의 제품을 모두 더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틀 전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총 332개의 제품이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SH 계열사에서 제공한 상품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네? 아, 물론입니다.”
남자는 수혁의 날카로운 질문에 순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최소한 만 개의 이상의 상품 라인을 구축해야 인터넷 쇼핑몰 시장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어. 지금 상태라면 업계 최고는커녕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일 거야.’
그의 기억에 따르면 인터넷 쇼핑몰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국내 기업의 경우 13,000~14,000개의 상품 라인을 갖고 있었고,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아벨리는 25,000종에 달하는 상품을 취급하고 있었다.
“제조 회사들과의 계약이 예상보다 더딘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뭘까요?”
“음, 아마 인력이 부족해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팀 내의 직원들이 쉬지 않고 연락을 돌리고 있긴 하지만 계약에 응해 주는 회사는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연락 인력을 늘려 더 많은 회사와 접촉을 해 보자는 말씀이시군요.”
“제 짧은 머리로는 그게 최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자는 자신감이 넘치던 조금 전과 달리 작은 목소리로 소심하게 이야기했다.
“방금 건설사 관계자와 대화를 나눴는데, 쉬지 않고 공사를 진행하면 내년 6월쯤에 물류창고가 완공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나 빨리요?”
수혁의 말을 들은 유신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본 건물이 완공되면 설비는 외부에서 들여오는 거라 생각보다 건축 기간이 짧아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우리 측에서 제공했던 설계도도 큰 도움이 된 것 같고요.”
“아, 회장님께서 그린 도면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생각보다 진척 속도가 빠른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일의 진행이 빨라진 만큼 우리도 발맞춰서 대비해야 합니다. 내년에 인프라가 완성되기 전까지 적절한 상품 라인을 갖추고 충성 고객을 많이 확보해야 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유신은 그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사장님, 엘마트와의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회장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로 지점장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식료품, 완구류 등 마트 내에 있는 다양한 상품들이 온라인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매출은 좀 나오고 있습니까?”
“약간의 매출이 발생하긴 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닌 듯 보입니다. 아무래도 주부들의 경우에는 물건을 눈으로 보고 직접 고르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전단지가 생각보다 큰 효과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홍보 수단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홍보팀장님, 엘마트 측과 협의해서 티비 광고를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세요. 최소한 7월 말경부터는 광고가 시작되었으면 좋겠군요.”
“회장님,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하지만 현재 청량리 지점 하나만 관리하고 있는데 점포 하나를 위해서 티비 광고를 하는 건 수지에 안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엘마트 측에서 협조를 해 줄지도 의문이고요.”
보통 때라면 말없이 지시를 따르는 홍보팀장은 이번만큼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엘마트에는 광고비용 전액을 우리가 부담하겠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대신 ‘청량리점 외에 다른 지점에 대해서도 온라인 판매를 검토 중에 있다’라는 문구를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려 타 지역에 사는 소비자들에게 서비스 이용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 주는 방향으로 잡아봅시다.”
“저, 현재 우리 회사 사정으로는 티비 광고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 같습니다. 혹시 광고 자금으로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실까요?”
지오쇼핑은 신생회사였고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곳곳에 돈이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광고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
“최대한 돈을 끌어 모아서 예산을 확보해 보세요. 모자라는 자금은 제 사비를 털어서라도 충당을 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혁은 회사에서 들어오는 돈을 차곡차곡 모았기 때문에 통장에 적지 않은 액수가 쌓여 있는 상태라 광고비용 정도는 얼마든지 낼 수 있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모델을 선정하고 광고 컨셉을 짜는 데만 해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라 기한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리고 오늘이 7월 4일인데, 3주라는 기간 동안 방송국과 협의하고 광고를 찍는 일까지 다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8월 중순쯤으로 기한을 늘리시는 건 어떻습니까?”
이야기를 듣던 유신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지만 수혁은 어려울 것 없다는 듯,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모델은 황혜미 씨로 하고 광고 업체는 이전에 계약을 맺었던 회사로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로…… 사장님께서 본부장으로 계실 때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던 거로 아는데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오래전 일이라 깜빡하고 있었습니다. 저한테 광고회사뿐만 아니라 방송국 관계자의 연락처까지 모두 있으니, 홍보팀장과 협의해서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해 보겠습니다.”
“광고 컨셉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트의 상품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배달받는 과정만 효과적으로 표현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전단지 광고를 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티비 광고로 선회하시는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유신은 급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수혁의 의중이 궁금했다.
“우리는 제일물류, 엘마트 등과 같은 협력회사들에 지오쇼핑의 잠재력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엘마트에서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 판매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합니다. 사장님은 매출이 크게 늘지 않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음, 전단지 광고를 통해 고객들의 서비스 이용을 유인해 보려고 했지만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혁의 질문에 유신은 나름대로 고민을 한 후 답변을 내놓았다.
“맞습니다. 사이트를 통해 식료품 등을 주문하고 당일 날 배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우리의 기획은 큰 편의를 제공하기 때문에 한 번 써 본 고객은 이후에도 계속 서비스를 이용할 확률이 무척 높습니다. 물론 전단지 광고는 고객의 서비스 이용을 유도하지 못했지만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신의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티비 광고를 통해 온라인 구매의 편리함을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면,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신규고객이 적지 않게 발생할 겁니다. 직접 체험해 볼 의사가 없다면 광고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을 하게 만들자는 거지요.”
“회장님 말씀을 들어 보니, 전단지 광고보다는 훨씬 효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사장님과 논의해서 오늘부터 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
홍보팀장은 수혁의 의견에 찬성하고 나섰다.
“그렇게 하세요. 일을 진행하다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엘마트와 관련된 논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그리고 영업팀장님.”
“네, 회장님.”
회의 초반에 상품 라인에 대한 질문을 받았던 남자가 빠르게 대답했다.
“업체들에 일일이 연락을 돌리느라 고생이 많으신데,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나중에 회사가 크게 되면 우리 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알아서 찾아오는 날이 있을 겁니다.”
“고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후,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금일 회의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혁은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확인하고는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상품 수도 너무 적고, 엘마트와의 프로젝트도 지지부진한 상태야. 이대로는 안 되겠어.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직원들에겐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회의 내내 고민이 많았던 수혁은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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